요즘 시험기간이어서 시간이 좀 여유있어 오랜만에 신촌에 있는 '숨어있는책방'에 다녀왔다. 부서별 모임을 하며 낮술 한잔 하고(어제 그러니깐 수요일(12.8)에 좀 마셔서 딱 소주 2잔 정도만 마셨다) 전철 타고 신촌에 갔다. 이 책방은 언제 가도 참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다. 책을 한 두 권 고르고 있으니 큰 DSLR 카메라를 든 미모(?)의 여성이 헌책방 이곳저곳을 찍어 대더라. 주인장에게 뭐냐고 물어 보려다 말았다. 근데 내내 궁금하다. 다음번에 가면 물어봐야겠다.
첫번째 책은 소흥렬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철학교수의 <윤리와 사고>이다. 이 책을 출간할 당시에는 이대 철학과 교수였는데, 책을 검색하다 보니 <윤리와 사고>개정 증보판으로 <논리와 사고>가 나왔으며, 적이 2006년 부터 포항공대라고 나온다. 머리말을 보면 이렇다.
"윤리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먼저 개인의 도덕적 판단 능력을 향상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한 사회가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도록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윤리학이 어떻게 그러한 실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것은 권위주의에 바탕을 둔 모든 종교가 수행하고자 한 목표와도 같은 것이지만, 어떤 종교도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는 못했다. 하물며 철학의 한 분야인 윤리학이, 권위주의적 방법을 배격하면서, 그러한 기능을 만족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윤리학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과 실제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하나의 방법론이라고 할 새로운 윤리학의 방법을 여기서 시도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윤리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문적인 대답이 아니라 윤리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으로서 비판받을 수 있는 계기의 마련에 불과하다."
올 한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난 읽어보지 않았다.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 도서 판매 기록을 일으키며 돌풍을 일으킨 것에 비해 사실 나의 관심은 '그닥'이었다. 사람들은 MB정부를 애기하며, 이 사회를 애기하며 <정의란 무엇인가>의 사회적 관심은 바로 이 사회 일반 대중의 '정의'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됐다고들 애기한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게다. 하지만 난 '정의' 문제를 이 사회를 좀 더 정확한 눈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기보다는 먼저 다양한 다른 주제의 독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관심가는 주제들이 바로, 윤리, 도덕, 사고력, 논리와 관련된 책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구입한 책 두권도 이런류의 책들이다. 두번째 책은 김광수 한신대 철학과 교수의 <논리와 비판적사고>이다. 검색해보니 2007년 쇄신판도 나왔다. 참고로 내가 구입한 책은 1990년 초판이다. 예전부터 논리학 책은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다. 근데 책들을 들추어보면 알수 없는 수식(?) 비스무레한 것들과 복잡한 말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부디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어느 정도 이해했으면 한다. 머리말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이제 민주화의 시대를 맞았다. 그래서 누구나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지혜를 모아 우리 스스로 가꾸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가꾸는 데에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비판적 사고, 합리적 사고, 과학적 사고, 주체적 사고, 자율적 사고에 대한 길잡이의 역할을 할 목적을 가지고 독자들을 만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당시보다 지금은 어쩌면 더욱 민주화가 진행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나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단순히 개인의 논리적 사고력의 부재만이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만 같다.
마지막 두권은 마광수 교수의 책이다. 난 개인적으로 마광수 교수의 글이 좋다. 소설은 읽지 못하였으나 에세이같은 글들에서 느껴지는 그의 '리버럴'한 면이 끌린다. 예전에 읽은 책이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이다.(언제 한번 리뷰를 써야겠다. 사실 거창하게 리뷰라기 보다는 내 짤막한 느낌 정도이다) 2008년 말에 이 책을 읽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왜 이런책을 읽냐"하는 사람부터, "넌 이런 책만 좋아하는 거 같다"는 반응은 양반이다. "너도 그러면 '불륜'을 할수 있다는 거냐"는 애기까지 가지가지의 애기를 들었다. 난 책하나 읽었을 뿐인데.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사랑' 그리고 '불륜'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책 표지에도 나와있고 목차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문화비평집'이다. 지은이의 기존 도덕적 지형에 관한 저항의 의미에서 제목, 컨셉을 이렇게 잡은것 뿐이다. 마광수 교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유죄판결을 받아 그는 전과 2범이라고 한다. 교원연금도 받지 못한단다. ㅋㅋ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머리말에 쓰여있다. "거의 모든 내용이 '도덕'에 대한 저항의 기록들"이라고. 어찌보면 그는 기존의 도덕적 편견과 지형에 의한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닐까 한다. 그의 시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은
이승만 때도
박정희 때도
전두환 때도
노태우 때도
김영삼 때도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도
언제나 출세한다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환영 받는다
박정희의 '재건 국민 운동'
전두환의 '삼청 교육대'
김영삼의 '도덕 독재' 등등
통치자들은 언제나 도덕을 곁에 끼고 정치를 한다
내가 <즐거운 사라>가 야하다고 잡혀갈 때
「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늘어난다, 잘 잡아갔다 」
고 떠들어대던
어느 서울대학 교수는
전두환 때도
노태우 때도
김영삼 때도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도
언제나 여러 관변단체 장(長)을 지내며
출세했다
그는 지금 서울의 어느 대학
총장까지 하고 있다
그놈을 때려죽이고 싶다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놈들은
다 때려죽이고 싶다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는 1991년 민족과 문학사에서 나왔으나 절판됐으며, 내가 구입한 책은 1997년 사회평론에서 나온 재판이다.<사랑받지 못하여>는 그의 1990년에 나온 두번재 에세이집으로, 첫번째 에세이집은 1989년에 나온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이다. 이 책은 100만권 팔렸다고 한다. 대단하다. 얼마전에 개정판도 나왔다. 개정판 머리말에 이런 글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나친 쾌락주의로 서민들을 혹세무민(?)하여 우리 사회를 성적 향락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밖에도 여성단체들이 '여성을 상품화 한다'는 이유로 나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래서 <마광수의 야한 여자론 비판>이라는 단행본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특히나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내 직장인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들이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 일종의 '인민재판'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따위 저질스럽고 선정적인 책을 내서 교수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애기였다. 내가 그들 요구대로 반성(?)하지 않고 내 주장을 계속 내세우자, 국문학과 교수들은 나를 뺀 전원일치로 다음 학기 (1989년2학기)의 내 강좌를 모두 폐쇄시켜버렸다. 나는 지금까지도, 과련 그때 연대 국문과 교수들이 이 책을 제대로 읽기나 했는지 의문이 간다. 아마 제목만 보고서 모두 그토록 흥분했던 것같다. 이 책은 특히 책 안에 있는 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가지고 말이 많았는데, 나로서는 어리둥절했던 것이, 그 시는 1979년에 '문학과지성' 잡지에 발표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정도 이루어냈지만 문화적 민주화는 아직 멀고도 멀었다. 한국은 빨리 촌스러운 수구적 봉건윤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제목만 가지고 판단하는 성급함, 그리고 단순한 자기 주장과 취향 표현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함 이것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