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 최근에 클래식 FM을 듣게 되면서 고등학교때 잠깐 라디오를 들은 이후로 라이오를 켜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설것이 할때 ㅋㅋㅋ 

라디오 채널을 돌리때마다 캐롤이 나온다. 저기도 캐롤, 여기도 캐롤 아마도 우연히 튼 채널에서 캐롤이 나왔으면 좋아라 하고 들었을텐데 너도나도 이것만 틀어대니 듣기가 싫어진다.  

어제 이 주의 관심도서 페이퍼를 작성해야 하는데 하루 늦었다. 이번주 관심도서는 강미현의 <비스마르크 평전>, 조갑제닷컴 편집실 <우리시대의 망언록>, 존 핀더, 시몬 어셔우드의 <EU 매뉴얼>, 파스칼 보니파스, 위베르 베드린의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김순영의 <대출 권하는 사회>,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다.  

       

근세 독일의 정치가(1815~1898)이며, 1862년에 프로이센의 수상으로 임명된 후,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써서 여러 국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1871년에 독일 통일을 완성한 후, 신제국의 재상이 되었다. 밖으로는 유럽 외교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안으로는 가톨릭교도,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여 ‘철혈 재상’이라고 불리우는 비스마르크.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이 책에 대해 관심가지게 된것은 얼마 전에 읽은 리영희 선생의 대담집 <대화>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의 말미에 보면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한 대담중에 비스마르크 애기가 나온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p.609   

리영희 : ... 사회주의 정당이 현존하다 보니 국민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적인 이익추구 위주의 생활방식과 다른 복지 위주의 정책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적 경제생산 양식과 함께 인간 위주의 사회, 문화정책이 조화되어 있어요. 정말 부럽더군. 그런 국민생활을 보면서, 보다 훌륭한 제도가 인류에 의해서 실현될 때까지는 북유럽 국가와 독일처럼 남한도 사회주의를 공인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자본주의 정당과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정치, 즉 사회민주주의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임헌영 : 서구가 그런 복지정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부르주아 지배가 위험해지니까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부르주아의 각성으로 봐야 합니까? 말하자면 투쟁의 결과입니까, 인도주의의 결실입니까? 물론 두 가지의 결합이겠지만. 

리영희 : 1870년 독일의 비스마르크 재상 시대에 채택된 겁니다. 놀라운 사실은, 비스마르크는 스스로 철, 피, 힘과 민족을 내건 수구반동의 제국주의자이지. 온갖 진보적인 사상 또는 지주와 자본가에 대항하는 집단적인 항의나 노동조합의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정당을 무자비하게 박멸한 사람이에요. 가장 극우적인 비스마르크 정권은 이른바 사회주의적 인간 가치와 사회복지를 모든 정책의 중심개념으로 요구하는 세력들은 가차없이 탄압해버리고는, 그 대신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제반 복지 정책을 싹 자기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1870-1890년대 비스마르크 집권 동안 유럽의 다른 정부들도 몇몇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제도를 정책화해요. 지금으로 보면 초보적인 단계였다 하더라도 처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비스마르크가 내세우는 정치기반인 귀족, 자본가, 지주, 고급 인텔리, 상층군인 이들이 중대한 혁명의 도전을 안 받고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기 위해서 노동자와 농민에게 약간의 시혜를 베푸는 우민정책을 푼 것입니다. 

임헌영 : 당시 비스마르크가 사립학교도 없앴을 겁니다.독일의 교육제도가 오늘처럼 이상적으로 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줬지요. 

리영희 : 그것은 정식국가정책으로 1871년에 비스마르크는 그때까지 분립해 있던 제후통치를 규합하여 '독일제국'을 건설하고, 황제가 된 빌헬름 6세를 받들어 재상으로서 강권통치 강화와 함께 백성의 무마책으로 그런 사회정책을 도입하지요. 동양에서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같은 시기에 비슷한 통치철학을 정책화한 거지요.흥미로운 현상이에요. 

임헌영 : 나폴레옹조차도 사립학교를 폐지하려다가 가톨릭의 반대로 실패를 했는데, 비스마르크는 성공했습니다. 그는 독일통일을 이룩하는 혁혁한 공로와 함께 침략전쟁을 감행한 제국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이었지만, 후진국 프로이센을 선진국 독일로 변모시킨 점만은 부럽습니다. ... 

책의 일부 내용만 보면 언뜻 비스마르크에게서 우리나라의 박정희를 떠올릴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복지에 대해 애기한다고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의원에 대해 '빨갱이' 운운하는 우리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비스마르크 같은 대의적인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들이 처한 상황도 많이 다르지만. 하여튼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우리나라에서의 가능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봄직 하다. 이와 관련하여 연관된 책이 얼마 전에 나온 셰리 버먼 교수의 <정치가 우선한다>이다. 부제가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이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수정주의 이론의 창시자이자 독일 사민당의 지도자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저작도 사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읽어봄직하다.

     

두번재 책은 조갑제닷컴의 <우리시대의 망언록>이다. 조갑제닷컴이란 단체(집단)에서 만들 책들이 꽤많으며 내가 서점에서 당당히 누워있어 본 책들만 해도 꽤된다. 책의 디자인과 '제목'만 봐도 뭔가 '구린' 구것이 많다. 정말 읽다가 책을 찢어 버릴듯 하지만, 그래도 대결의 상대(이것도 웃기지만)를 알기 위해 용기내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의 망언록>의 머리글이다. "자칭 진보·좌파의 문제성 발언을 모았다. 애매한 기회주의형 발언에서부터 노골적인 북한찬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이들 발언의 결론은 反韓·反美·親北·左派라는 네 가지 코드로 귀결된다. 사실과 진실을 말하는 대신 자신의 이념적 잣대로 왜곡과 선동과 거짓을 일삼는 것이다." 물론 진보, 좌파라 하는 이들이 모두 진실되고 문제가 없다고 애기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문제만을 가지고 '자칭 진보,좌파' 모두를 단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조갑제닷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또 여기서 내는 책들을 보면 그들이 문제 삼는 많은 부분들이 문제이다. 케케묵은 빨갱이 이데올로기와 그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두다 '빨갱이', '반한', '친북'으로 모는 마녀사냥식 레토릭이 문제라 본다. 

아마도 아직도 당당하게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 하는 이들은 이네들이 대표적일 것 같다. 이네들의 몰지각성과 몰역사성은 역사가 단죄할 일이다. 그리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김대중 전 태통령에 대한 이들의 비이성적 태도는 대단한 것 같다. 또한 그 반대편에 놓여있는 박정희에 대한 찬양도. 

세번째 책들은 한겨레 지식문고 시리즈로 나온, <EU 매뉴얼>과 외부의 영향을 받거나 국제적 파장을 일으키는 국가 간 분쟁을 각종 도표와 지도를 통해 설명하는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이다. 둘 다 세계지리적 지식 향상에 수업에 도움이 될 듯하다. 흔치 않게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의 번역자 대학 전공이 지리학이다. 경희대 지리학과를 나온 후 한국외대 파리3대학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번역에 있어 지리적 오역이 없을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평소 유럽연합이 궁금하고 중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마땅히 유럽연합에 대한 얼개를 갖추어줄 책이 없었는데 <EU 매뉴얼>이 거기에 적당할 듯 하다. 책의 목차를 보면 이렇다. 

서문
1장 -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2장 - 유럽연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3장 - 유럽연합은 어떻게 통치되는가
4장 - 단일시장, 단일통화
5장 - 농업, 지역, 예산
6장 - 사회정책, 환경정책
7장 - 자유, 안전 및 사법 지대
8장 - 민간 권력은 더 커질 것인가
9장 - 유럽연합과 기타 유럽
10장 - 세계 속의 유럽연합
11장 -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다음은?
옮긴이의 말 | 더 읽을거리 | 연표
| 용어풀이 | 도판 목록 | 찾아보기

    

네번째 책은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김순영씨의 <대출 권하는 사회>이다. 보통 하루 일과를 지내다 보면 몇번씩 대출(부)업체의 광고를 듣게 된다. TV에서 옥외광고판에서 심지어는 버스에서도. 버스에서는 정류장 안내 멘트가 방송으로 나온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광고가 나오는데, 내가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다 용산역 근처에 오면 버스에서 어김없이 '아주캐피탈'인가 뭐시긴가 회사의 광고가 나온다. 중독성있는 어떤 노래 멜로디를 이용해, 한마디로 필요할 땐 '아주캐피탈'하며 지랄을 해댄다. 정말 듣기 싫다. 정말... 

 

물론 "신용 불량자들은 민주 정부의 경제정책과 그에 대응한 신용카드사들의 과당 경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저자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 아니면 단순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내 하찮은 존재 하나가 발 딪고 사는 이 큰 세상에서 어찌 내 독립적인 의사만으로 내 인생이 결정될 수 있겠는가!! 내 맘과는 다르게 내 의사와는 반대로 돌아 갈때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문제의 원인을 따져보는 일은 개인들의 나태성과 부족함과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 

다섯번째 책은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다>. 책 검색을 해보면 수십개의 책들이 검색되는데 내가 관심가진 책은 얼마전에 나온 Ivan Kramskoi가 그린 <Unknown Woman>(1883)이 표지 그림으로 나온 책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읽게 된 책이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이다. 펭귄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 표지 그림은 Ilya Yefimovich Repin의 <여름 풍경>이다. 소개글은 이렇다. 

"1883년에 발표된 <여자의 일생>은 자연주의의 문학적 주장을 초월하는 작품으로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평가받고 있다. 지방귀족의 순결한 아가씨 쟌느가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맞는 불행을 그린 이 작품 속에는 생에 대한 짙은 허무와 함께 노르망디 지방의 자연풍경이 섬세하고 유연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주인공의 버림받은 삶에 대비한 이러한 자연에 대한 묘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감동에 젖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계 뒤집어보기] 국내 기상이변이 몰고 온 변화들 

  
    
한국에서도 기상이변이 그 강도와 빈도가 세지면서 일상화되고 있다. 올해 1월 첫 주에는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설과 함께 한파가 발생했다. 연초인 1월 4일 하루 동안 서울에 내린 눈은 25.8cm로 1937년 적설 관측 이래 최대치였다. 또 3~4월에는 이상저온현상이 나타났다. 일조시간이 247.1시간으로 평년 338.1시간의 약 73% 수준이었으며, 최고 기온의 평균치가 예년보다 1.6℃나 낮았다. 그런가 하면 무더위 현상도 보였다. 지난 6~8월 평균 기온은 24.8℃로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높았으며 폭염과 열대야 일수가 각각 10.5일, 12.4일로 평년보다 2.3일, 7일 더 많았다. 특히 올 여름에는 집중호우가 많아 시간당 강수량이 30mm 이상인 날은 2.2일로 관측 이래 세 번째로 많았으며 추석 연휴에는 시간당 100mm 안팎의 집중호우로 수도권 1만1000여가구가 침수되기도 했다. 9월 하순 강우량으로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양이었다.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가 이런 기상이변의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매년 1~8월의 전국 일조시간과 강수량 추이를 살펴보면, 일조시간은 1970년대 1548.9시간에서 2000년대에는 1388.1시간으로 160.8시간, 약 10.4%가 줄었다. 이에 비해 강수량은 1004.3mm에서 1124.2mm으로 79.9mm, 약 11.9% 늘었다. 국내 기온 상승 속도는 지구 평균인 0.74℃의 2~3배를 웃돌고 있고 해수면 오름 속도도 지구 평균인 매년 1.8mm보다 빠르다.

기상이변은 다양한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첫째, 기상재해의 강도가 심해지고 피해액도 커진다. 재해당 사망자 수가 1990년대 7.6명에서 2000년대 17.5명으로 늘었다. 재해로 인한 피해액도 1990년대 6.3조원에서 2000년대 19조원으로 3배 이상 커졌다.

둘째, 기상상태에 큰 영향을 받는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른다. 신선채소 물가지수가 3개월(6~8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20% 이상 상승해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배추 가격은 9월 29일 현재 한 포기에 1만5000원까지 올랐다.

셋째, 기상이변은 건설업이나 물류, 유통업 등 기상상태에 민감한 산업의 생산과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넷째, 기상이변은 질병을 증가하게 해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아열대성 전염병인 말라리아의 전체 환자 중 국내에서 감염된 환자 비율이 1993년 33.3%에서 2009년 98.1%로 증가했으며, 발병환자 수도 1995년의 139명에서 2009년 1345명으로 최근 10년간 급증했다.

다섯째, 농작물재해보험과 풍수해보험 등 이상기후 관련 보험료와 보험계약이 증가함에 따라 위험회피 비용도 증가한다. 예를 들어, 풍수해보험의 계약건수는 2006년 1만7000건에 불과했으나, 2009년 34만9000건으로 크게 늘었으며 보험료도 각각 6억원에서 81억원으로 증가했다.

빈번해지고 일상화되는 기상이변을 최대한 막고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기상예측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기상 관련 2010년 R&D 예산을 비교해 보면 미국은 한국의 21배, 일본은 2.3배나 많다. 기상용 슈퍼컴퓨터도 우리는 2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은 16대, 미국은 277대에 달한다. 기상이변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증가가 절실한 상황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76호(10.10.13일자) 기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래는 알라딘 리뷰 대회에 응모할 작정으로 쓴 글인데 기간을 혼동한 덕에 응모는 하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ㅋㅋ

 

소설보다 재미있는 서평

2010.12.20

최근 서평 모음집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알라딘 블로그의 유명 블로거인 로쟈 이현우씨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 그리고 같은 저자의 얼마 전 나온 <책을 읽을 자유>가 있으며, 소설가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도 출간되었다. 한 편집자의 독서 분투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사용법>도 있다. 새로운 내용도 아닌 '책의 내용에 대한 평'인 서평(書評)에 관련된 책들이 왜 유행처럼 나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서평 책들을 읽어야 할까?

최성각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는 그 수많은 서평 관련 책들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그 이유는 그가 언급한 수 십권의 책들이 단순히 그가 '읽은' 책에 관한 에세이와 같은 책을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가 책을 통해 느끼고 배워온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은이의 독서 편력은 "나는 단지 글자를 읽었을 뿐인데, 글자는 늘 내 마음과 머릿속을 세차게 휘젓곤 했다. 때론 놀라움으로, 때론 숙연한 감동으로 책은 나를 뒤흔들었다. 책은 피로에 지친 나를 덮어주는 따뜻한 담요였고,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천막이었고, 아주 가끔은 모닥불이었고, 때로는 등불이기도 했으며, 언제나 의지할 기둥이었으며, 책 속에 빠져 있던 시간은 혼자만의 잔치판이기도 했다."라는 지은이의 머리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의 차례는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쓸쓸한 젊은 날 책으로 겨우 버텼다’, 2부 ‘시대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3부 ‘우리에겐 바로잡을 시간밖에 없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가장 맘에 드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책의 구성과 제목이다. 특히나 ‘쓸쓸한 젊은 날, 책으로 겨우 버텼다’는 어쩐지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시기 중 하나가 대학 시기이다. 뒤늦게 후회를 하며 열심히 재수생활을 했지만 또다시 실수로 수학시험 문제를 밀려써 점수가 많이 떨어졌다. 당연히, 목표로 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 그리고 애써 외면하고 대학생활에 적응하던 시기, 군대 제대 후 적응 시기, 여자친구와의 힘든(?) 이별의 적응 시기. 이렇게 쓰고 보니 대학 4년 생활이 모두 그 어떤 '적응 시기'인 것만 같다. 문제는 '적응'을 해야만 했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응'을 하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것이 무엇이었느냐가 문제이다. 나에rps 그 시절 적어도 적응의 수단이 책은 아니었다. 술과 친구만이 있었을뿐(물론 나에겐 그 존재들은 소중하다) 그 시기 나에게는 니체도 리영희도 마르크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늦은 나이에 대학때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가는 것 같다.  

      사랑의 기술

이 책에 읽으며 가장 반가운 것 중 하나가 소개된 책 중에 내가 가지고 있거나 읽은 책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이다. 또한 읽지 않았고 미처 몰랐던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고 읽고 싶어진 책들과의 만남이다. 특히 전자에 해당하는 책으로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가 있다. <인간실격>은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었다. 내 성격이 조금은 비관적인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니힐리즘으로 빠질만큼은 아니건만 왜, '인간실격'이라는 단어에 알지 못한 ‘끌림’을 느꼈을까?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로인해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를 알게 되고 그 책을 통해 한 인간의 '허무'를 느끼게 되었다. 부유한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자기 집안의 부의 내력에 대해 괴로워하고 혐오하는 감수성을 지녔던 인물. 몇 번의 자살시도 끝에 종국에는 야마사키 도미에라는 윤락녀와 강물에 빠져 동반자살한 그에게 친근감이 느껴진다. 저자는 "인간실격을 20대 이후에 봐도 공감을 자아낼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공감의 원인이 그의 광기와 퇴폐와 자살과 같은 측면보다는 자신의 존재적 부정의함 느낄 수 있는 '감수성'에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책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나는 창피(?)하게도 이 책을 불과 세달 전에 읽었다. 읽으며 계속 한숨이 나왔다. "왜 난 이 책을 좀 더 일찍, 젊었을 때 읽지 않았을까?" 솔직히 예전에는 정말 이 책이 사랑에 관련된 '테크닉'과 관련된 책인 줄 알았다.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럼 이 책에서 애기하는 사랑의 '기술'이란 무엇일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은 궁극적으로 '기술'이라는 것이다. 어떤 기술인가. 섬세하고 정교한 지식과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사랑과 관련된 논의 중 '기술'을 애기하면 흔히들 섹슈얼리티적인 기술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남자들은. 그러나, 그 어떤 인간의 일 중 사랑만큼 '기술'이 필요한 것이 있을까? 그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부', '독서'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왜 그 어린 시절 연애를 못했을까? 왜 그렇게 찌질했을까?(그렇다고 현재 연애를 잘할 수 있지도 않다. 난 결혼을 해버렸다.ㅋ) 세번째 책은 콜린윌슨의 <아웃사이더>이다. 이 책은 나에게 ‘결정적’인 책이다. 특히나 서평집에서 언급된 수많은 책중에 더 중요하고 심각한 책도 많지만 이 책이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느낀 저자와의 동일감정 때문이다. 그것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 이 책을 읽은 시기의 동일성과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그 후 내 보잘것 없는 기나긴 독서편력이 시작"된 독서 습관의 동일성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읽은 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이라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아마도 서점(천안역 앞에 있는 양지문고이다. 지금은 사려져버린...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양지문고가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 지식의 보고였었다)에서 우연히(이것도 역시 제목에 끌렸을 것이다) 집어 들어 읽었을 것이다. 읽은 곳은 천안 중앙도서관이었던 것 같다. 연습장에 중요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메모해가며 읽은 기억이 난다. 당시 이 책은 나에게 일종의 큰 충격이었다. 이 알 수 없는 지식의 깊이와 범위 그런 이 책을 쓴 지은이의 나이가 불과 25살이라는 사실. 최성각씨는 이 충격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피상적이나마 세계의 어둠에 접근했다. 그리고 콜린 윌슨이 다룬 무시무시한 인물들과 그들이 생과 작품으로 봐버린 세계의 심연에 빠져 들었다. 더러는 이해했고, 더러는 몰이해 상태에서도 왠지 책을 통해 새로 깨달은 사실들에 겨워했다. 내 방황의 근거가 이 책 속에 다 담겨 있다고 곡해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매혹당한 것은 책 속의 인물들만큼이나 한 권의 책으로 'outsider'라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바꾼 콜린 윌슨이라는 작가였다." <아웃사이더>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고 싶다. 

     

읽지도 않고 가진 책도 아니지만 서평집을 통해 관심이 간 책으로는 이태준의 단편 <밤길>과 게일 옴베트의 <암베드카르 평전>이다. 사실 이태준이라는 작가를 잘 알지도 못한다. 아마도 내 기억 속에 있다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속에서 봤거나, 또는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소설'같은 류의 책을 통해서 일 것이다. <밤길>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 소설의 내용보다 최성각씨가 이 책과 만남 그 특별한 기억 때문 일 것이다. 지금도 내 책꽂이에는 여러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 있지만 5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사 후 고등학교로 발령받았을 당시에는 자본론같은 정치경제학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는 그런 책을 읽는 내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으며,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때로는 "아직도 그런 책 읽는 사람도 있나", "그런 책은 대학때 읽는 거야"같은 반응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런 책을 본다고 해서 나를 '불온'시하는 그 어떤 이들의 눈길이었다. 처음엔 난 당당하게 행동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니네 맘대로 생각해”하며 당당하게 읽고 또 일부러 표지가 보이게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로 책상위에 올려 놓기도 했다. 그런데 최성각씨의 글을 읽은 후 어쩌면 그 시설 나의 생각과 행동에 반성할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그런 몸짓은 당시 청년들, 누구에게나 몸에 밴 지나친 자기검열, 혹은 과잉된 방어의 몸짓이었다. 독재정권이 무섭고도 가증스러운 것은 공포를 보통사람의 일상에 생필품처럼 조성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매우 우울한 일이었지만, 한편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떠들 것이야’라는 반권력적 쾌감도 수반되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그 당시 사람들이 흔히 애기하는 '불온'한 책들을 읽은 이유가 학교의 현실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허황된 지식욕과 ‘겉멋’ 때문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또는 진중성 없는 '반권력적 쾌감'이 멋있어 보였을까? 하여튼 나 스스로 뒤돌아 보고 반성해 볼 만한 일이다. 두번째 책은 '내가 치른 국장'에 나온 게일 옴베트의 <암베드카르 평전>이다. 내가 모르던 암베드카르를 알게 되었으며, 인도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간디의 부적절한 면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암베드카르가 위대한 이유는 중 하나, 카스트 제도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만 때문이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우선이었으며, 카스트는 단지 인도의 오래된 직업상의 관습이고 전통일 뿐"이라고 주장한 간디에게는 오랫동안 밑바닥에서 천대받고 멸시받은 불촉천민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암베드카르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독립 인도의 헌법에는 카스트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고 죽었다. 죽기 전에는 스스로 불교도로 개종함으로써 수백만 명의 불촉천민들이 암베드카르를 따라서 개종"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암베드카르가 한 유명한 명언이 "나는 비록 힌두로 태어났지만 불자로 죽겠다."이다. 그의 인간에 대한 약자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다.

최성각씨가 읽은 많은 책들에는 눈물이 배어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읽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읽고 "책상 위에 머리를 파묻고 큭큭 흐느꼈다"고 했으며,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에는 지금도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 난 어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아 봤으며 앞으로 어떤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라고, 그러나 눈물 보다는 웃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시대가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더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화> p. 568 

인간의 원초적 속성인 이기주의 : 인간의 선천적 본성은 이기주의이다. 후천적, 사회적 제도와 '훈련'및 '규율'은 그것이 지속되는 한도에서 어느 정도까지 이기적 본능을 억제할 수 있지만, 그 외적 강요는 영구적일 수 없고, 따라서 외적 조건만 이완되면 잠재했던 이기적 본능이 부활한다. 갓난아기가 물건을 독점하려하고 다른 어린애와 나누지 않으려는 배타적 소유 본능이 인간의 '본원적 속성'을 증명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어교육에 좋은, 추억의 빌보드 팝송 8CD 단돈 만원!!

2010.11.3 지하철 3호선 잠원역에서

난 천안 촌놈이다. 태어나 천안에서 20년을 살았고, 대학을 가면서 천안을 떠나 공주에서 그리고 지금의 서울이란 대도시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2005년 교사 발령을 받고 첫 한 학기 동안은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통근했다. 지하철을 타고 왕복 5시간. 말이 5시간이지 정말 길고 긴 시간이다. 그래서 난 나름 이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내기 위해 12인치짜리 노트북도 사서 그 시간을 재미나게(?) 보내려 다짐도 했다. 그러나 그러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3월이 지나고 그 다음부터는 집에 가는 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회식 혹은 학교 일 등으로 천안에 전철을 타고 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말이 이렇지 사실은 '알콜'이 문제였다. ㅋㅋ

그러나, 그 한 학기 동안의 서울-천안간 통근 전철안에서 여러 일들을 겪었다. 그 중에서 전철 안에서 볼 수 있는 잡상인(?)에 관련된 일이 있다. 대부분 파는 것들이란, 볼펜, 작은 후레쉬, 보온병 등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처음에는 그 물건이 좋아 보이고 무엇보다도 물건값이 대부분 단돈 천원이라는 만족감에 몇 번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나의 손에서 이내 멀어져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또는 조금만 사용해도 부서져 버린 그저 하찮은 것들이 되버렸다.

쉽게 얻은 것은 또한 쉽게 잊혀지게 마련인가 보다. 뭐 때로 어렵고 힘들게 얻은 것들도 허무하게 잊혀지기도 하지만 그건 일부의 예외적 상황이라 생각한다.

내 기억으로는 전철 안에서 파는 '추업의 팝송'의 홍보 문구가 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말그대로 '추억'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 중년을 상대로 한 과거를 파는 '추억 마켓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 마저도 '영어 교육'에 기대어 마켓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본 CD 판매원은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영어 가사와 한글 가사가 들어 있는 해설서가 있어 자녀들 영어 교육에 효과적"이라 운운하며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이 CD가 너희들에게 '영어교육'까지 시켜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의 팝송이 아니라 이제는 자녀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흘러간 팝송 CD를 구입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 지나간 '옛추억'이 아닌 지금 현실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물론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일과 이해관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시대 조류 속에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추억'이 아닐까 한다. 나의 지나간 사람과 장소와 노래 등과 관련된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 이것만은 세속화되지 말고 내 가슴속에 그냥 이대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ps : 이런 생각, 글을 쓰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쓸데없이..."ㅋㅋ 그래도 할 수 없을 듯 하다. 워낙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그냥 살란다. 나이 먹고 경험이 쌓이면 10년 후에는 또 어떤 생각,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는 모르지 않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