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 였다가
너 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을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ps : 알랭바디우의 <사랑 예찬론>를 거의 다 읽었다. 조만간에 간단한 감상글을 써야겠다. 뒷 부분에 보면 바디우 전공자인 서용순 교수의 "해제: 바디우의 철학과 오늘날의 사랑"과 옮김이의 말이 있는데 여기에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나온다.   

이 시를 읽으며 불연듯, 나에게 '기다림'이란 무엇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면 웃으며 나에게 달려오는 너를 기다리는 '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너를 기다리고 있는 '나'. 둘 다 나에게 기다림이었을까? 난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나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사랑을 기다리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 

바디우에 따르면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융합적 사랑이 아닌 진리를 추구하는 하나의 절차이며 온전한 '둘'의 우연전 만남으로 '둘'이 되는 것이라 한다. 현대 사회처럼 인위적 만남과 기형적인 성애적 만남이 판치는 세상, 사랑이 없는 시대에 바디우의 사랑에 관한 철학적 성찰은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깨우침이 많다. ‘사랑한다는 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이라 바디우는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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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01-1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추천은 제가 했다는 것을 밝히고요,,,님도 글을 잘 쓰시는구나!!!!!!저는 알랜 바디우나 황지우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 짧은 글을 읽고 관심이 팍!!생겼어요!!읽어보고 싶은데 시작하기 위해 좋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부탁드려요,,,,아님, [사랑예찬]으로 시작할까요?????????????

햇빛눈물 2011-01-11 12:23   좋아요 0 | URL
제 블로그는 방문자가 별로 없고 그냥 저 혼자 노는 곳이라서... 나비님의 방문이 더욱 반갑네요. ^^
제가 읽은 책 중에서는 가장 고전적이며 가장 중요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바디우의 <사랑 예찬> 그리고 고미숙씨의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도 꼭 읽어보시길...고미숙씨에 대한 의견은 좀 엇갈리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이 분의 책들을 너무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사랑하려면 공부해라'라는 말을 좀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요즘 드네요...
 


가을 분부신 햇살에
비친 작은 먼지

눈에 보이지 않던 그 놈들
눈부신 햇살에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어디에나 있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수많은 작은 존재들
 

2010.10.22  2-5 교실에서 가을 햇살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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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시인의 한겨레 연재글을 읽고 정리하다 알게 된 김수영 시인의 <절망>이란 시를 옮겨 놓는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나는 반성하는 인간이고 싶다. 

     

 

절망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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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획기사를 읽다 나온 시가 맘에 들어 시인을 찾아보았다. 장석남. 시 속의 '번짐'이라는 말이 너무 맘에 들었다. '번짐' '나'가 '네'가 되고 '그들'이 '우리'가 되는... 맘에 드는 시 두개와 책들을 스크랩 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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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에서 - 장석남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꽃이 졌다는 편지 -  장석남   

1.
이 세상에서
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
야윈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

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 속에서
진 꽃자리엔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그대로 써야 할까

2.
꽃 진 자리에 나는
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
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그 바람에
뺨을 기대어 보기도 한다고

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앉아서
꽃 진 자리마다
애기들 눈동자를 읽듯
읽어 내고 있네 

 

돌의 새 - 장석남 

 
노란 꽃 피어
산수유나무가 새가 되어 날아갔다
산수유나무 새가 되어 날아가도
남은 산수유나무만으로도 충분히
산수유나무 

너는 가고
가고 남는 이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너를
달리 무엇이라고 부르나 

길 모퉁이에 박힌 돌에 앉아서
돌에 감도는
이 냉기마저도 어떻게 나누어 가져볼 궁리를 하는 것도
새롭게 새롭게 돋는 어떤 새살(肉)인 모양인데 

이 돌멩이 속에 목이 너처럼이나 긴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날아가긴 해도 그 자리에서만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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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 좋은 시가 있어 찾아 보니 16c 프랑스의 서정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의 시였다. 제목은 "난 그대에게 꽃다발을 보내나니 ", 근데 어떤 사이트에는 다른 식으로 표현(해석)된 시가 있었다. 같이 옮겨 본다. 난 개인적으로 첫번째 표현이 더 좋다.  

..."지금은 한껏 피었지만 내일이면 덧없이 지리 그러니 알겠니? 꽃 같은 네 아리따움도 머지 않아 시들어 꽃처럼 덧없이 지리라는 걸"... 나도 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새삼.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그래, 잊혀질거야...세월이 가면...모두다!!
 

 

나 그대에게 꽃다발을 보내나니


내 손으로 추리고 묶어
네게 보내는 이 꽃송이들
지금은 한껏 피었지만
내일이면 덧없이 지리

그러니 알겠니?
꽃 같은 네 아리따움도
머지 않아 시들어
꽃처럼 덧없이 지리라는 걸

세월이 가네, 내 여자여, 세월이 가네
아니, 세월이 아니라 우리가 가네
그리고 이내 우리 모두 저 땅속에 누우리

속삭이는 사랑도 우리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니리니
나를 사랑해주렴 지금, 너 아리따운 동안

 

장미


저물녁에 따 모은 이 꽃들 손수 엮어
꽃다발 만들어 당신께 보내드립니다.
내일 아침이면 이 꽃들 다 시들어
꽃잎들 땅위에 이러저리 떨어지리니.

이것을 분명한 보기 삼아 알기 바라나니
당신의 아름다움 지금 더없이 꽃 같으나
이들처럼 시들어 머지않아 기울고 말아
꽃러럼 덧없이 지고 말 것입니다.

아, 시간이 갑니다, 자꾸 갑니다.
아니, 가는 것은 세월이 아니고 우리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도 묘지 아래 눕겠지요.

그러면 사랑에 관한 우리를 애기 아무도 알지 못하고
우리가 누구였는지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사랑, 당신 아름다울 때 다정하게 굴어 주세요.

  

나 그대에게 꽃다발을 보내나니

조금 전에 활짝 핀 꽃들
저녁에 따지 않으면
내일이면 땅에 떨어질 그 꽃들로 만든 꽃다발을
그대에게 보냅니다

이는 그대에겐 분명한 교훈
그대의 아름다움이 꽃과 같을지라도
머지 않아 시들어 떨어지겠죠
갑자기 떨어지는 꽃처럼 사라질 거에요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세월은 가요
세월이 가요
아니! 세월이여! 하지만 우리도 가는 걸요
머지 않은 날 우리들도 저 세상 산 아래 눕게 될 테지요

우리가 애기하는 이 사람들
우리가 죽고 나면 더는 그 삶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그대여, 어쨌든 당신은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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