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런 개념있는 기업가(?)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단순히 싸게 해서 많이 이익본다는 단순한 경제논리에 사로잡혀있기보다는, 제대로된 서비스로 제대로된 기업활동을 하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난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영화들 보면 부시고, 터지고, 깨지는 장면을 떠올리면 대부분 스펙타클한 화면만을 생각하지 미처 생생한 소리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씨너스 이수. 집에서 멀지 않으니 언제 한번 저 상영관에 가서 조용히 귀 좀 호강시켜 줘야겠다. 물론 주위에 팝콘이나 콜라 빨대 물고 있는 인간들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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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1.10 “이제 영화관의 경쟁력은 음향입니다"
운영하는 극장들에 거액 들여 최적 설비 갖춰
작품 맞춰 수시로 리세팅…“미쳤다고들 해요”
주옥같은 영화 선별 ‘시네마 큐레이터’이기도
사운드로 승부하는 ‘씨너스 이수’ 정상진 대표
지난해 5월 서울 용산에서 경험한 <아이언맨 2>는 최악이었다. 문제는 내용도, 화질도 아닌 사운드였다. 최대한 올린 듯한 볼륨은 귀를 왕왕 울려대고, 고음역은 귀청을 찢을 듯하고 저음역은 너덜거렸다. 특히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깜짝 등장하는 콘서트, 전기채찍을 휘두르는 위플래시(미키 루크)와의 대결 장면 등에서는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차라리 고문이었다.
지난 4일 뒤늦게나마 서울 사당동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씨너스 이수 정상진(43) 대표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다. “아 그때요? 우리는 리콜상영을 했어요. 당시 스크린 뒤 저음역 스피커인 서브우퍼 8개 중 4개가 터진 거예요. 어쩌다 오는 분들은 잘 모르지만 자주 오는 관객들은 금방 알아요. 예매 관객들한테 모두 알리고 극장에 현수막을 붙였어요. 그 자리에서 다시 보여드린다고. 영화관에서 리콜한다는 얘기 처음 듣죠? 우리는 가끔 하거든요.”
영화관 통로 천장에 쓰인 ‘모든 것이 끝나고 남는 건 필름뿐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이 재미있다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등의 구절에 정 대표의 고집이 묻어나고 상영관 입구 벽에 쓰인 ‘19,200와트, 세계 최강의 사운드시스템, 롤링스톤스가 고집한 전설의 파워앰프 EV-P3000, 세계 최초 영화관 사용’이란 문구에 자부심이 배어 있다. 다른 극장의 출력 규모가 7000~8000와트임을 아는 이는 안다는 투다.
“문제는 설비, 즉 돈입니다. 200석 규모의 상영관이면 앰프가 있는 영사실에서 스피커가 달린 스크린까지 100m 정도 되죠. 그 거리에 싼 케이블을 깔면 출력이 70%밖에 안 나요. 나머지 30%를 볼륨으로 커버하려니 왕왕 울리는 거죠. 앰프도 그래요. 4웨이 스피커의 경우 적어도 최소 10개 이상이 필요한데 보통 영화관에서는 4개가 고작이죠. 그렇게 되면 소리가 섞이고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1개관 설비에 통상 8000만~1억원이면 될 것을 씨너스 이수에서는 9억원을 들였다고 한다. 순도 99.9999의 3㎜ 선 네 가닥을 꼬아서 만든 스피커 케이블은 1m에 100만원짜리 특제다. 그리고 석 달에 한 차례 상영관마다 마이크 5대를 설치하고 사운드를 점검해 다시 세팅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소리의 틀어짐을 바로잡는 것이다. 큰 영화가 들어올 때는 별도로 한다. 여벌 설비를 갖춘 것도 자랑이다. 스피커가 터지면 영화 상영중에도 컴컴한 스크린 뒤로 가 갈아 끼운다. 알 만한 관객들은 이수에서의 영화 관람을 ‘소리로 경험하는 4디’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죽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영사실과 사무실 직원 사이에서 정 대표는 ‘정틀러’라고 불린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싫어서 붙인 이름은 아닌 눈치다.
“남들은 당연히 ‘또라이’라고 하죠. 돈 엄청 날렸어요. 애초 과장된 영화적인 소리를 내는 돌비시스템을 모르고 하이파이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비싼 스피커가 뻥뻥 나갔거든요. 주변에서 만류를 많이 했어요. 제이비엘(JBL)에서 수십억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시스템을 만드는데 네가 어떻게 하느냐면서요.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실패해도 일단은 해보자고 덤볐어요. 그래서 2004년에 개관한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씨너스 이채와 씨너스 이수는 상영관마다 설비가 다 달라요. 결국엔 프런트의 경우 피에이(PA: 대중용 음향 확성 장치)로 결론을 내렸지요.” 서울 이화여대 모모하우스는 그 실험 덕에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게 됐다. 일본 영화관 업계에서도 그를 불러 자문을 받을 만큼 음향 전문가가 됐다.
그는 대학 영화과 재학 때의 경험으로 소리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영화를 제작할 때 녹음실에서 들어보면 대사가 잘 들려요. 그게 영화관에 가면 뭉개져 안 들리는 거예요. 특히 아주 낮은 남자의 목소리나 높은 여성 목소리가 그렇더군요. 대사 한마디에 테마가 들어 있을 수 있는데 말이죠. 괜찮은 영화를 영화관의 잘못으로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문제죠. 13.1 채널이고 15.1 채널이고 뭐고 대사가 잘 들리는 영화관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앞으로 경쟁력은 음향이라고 했다. “완전 에이치디 홈시어터의 화질은 영화관을 능가합니다. 영화관 스크린이 더 크다지만 일단 영화에 빠져들면 그 차이는 느낄 수 없어요. 온라인 동시개봉 시대가 되면 영화관의 경쟁력은 사운드밖에 없습니다. 집에서는 쿵쾅거리지 못하지만 영화관에서는 그게 가능하거든요.”
더불어 그가 표방하는 것은 시네마 큐레이터. 갤러리에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큐레이터가 있는데, 영화관에서는 왜 표만 팔고 마느냐는 거다. 2008년부터 매달 ‘미니씨어터’ 이름으로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영화, 재능있는 신인 감독의 쇼케이스, 진가가 묻혀버린 보석 같은 영화를 선별 상영해 왔다. 월·화·수·목 저녁 8시 고정이다. 이번 1월에는 중국 작가주의 영화의 현재를 대변하는 자장커 감독의 <24시티> <무용> <스틸 라이프> <세계>를 튼다.
그는 2007년부터 해마다 11월이면 여성을 위한 성담론장인 ‘핑크영화제’도 열고 있다. 여기서는 50여년 동안 에로스를 소재로 실험정신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명맥을 이어온 일본의 핑크영화를 상영한다. 제작비 300만엔, 촬영기간 3~5일, 35㎜ 필름 촬영, 베드신 4~5회, 러닝타임 60분이라는 룰만 지키면 자유로운 창작이 보장되는 일본 독립영화의 한 장르로 감독들의 등용문 구실을 하기도 한다.
“남산자동차 극장, 씨너스 이수, 씨너스 이채 등 영화관 세곳을 운영한다니 부자라고 해요. 지금이라도 청산을 하면 부채만 150억원 정도 돼요. 죽을 때까지 못 갚을지도 모르죠. 그럴 바에야 즐겁게 살자는 게 제 모토입니다. 영화관 건물을 사무실로 임대하면 지금보다 세배 정도 더 벌 수 있어요. 실제 그러라고 권하는 이도 있어요. 앞으로 30년간 작은 수금 가방을 들고 남의 사무실을 전전하는 거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