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물론 혼자. 왜? 혼자 볼 수 밖에 없을만큼 내 주위에 같이 영화를 볼만한 사람도 없기도 했고, 내가 보고자 하는 영화들이 죄다 다른 사람들은 제목도 모르는 영화들이다 보니 어쩔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정말 좋았다. 지금은 자리가 옮겨진것 같은데, 낙원상가에 있는 필름포럼이 나의 아지트였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였던것 같다.
그때 봤던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 왜그런지 제목은 죄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튼 그 큰 극장에 나 포함 5명 정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곤했다.
그 후로 영화를 본 일이 별로 없다. 보긴 봤지만.('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도...) ...그런데 최근에 나를 극장으로 이끌 아주 흥미로운 영화 두 편이 있다. 장애인 부부의 부부이야기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과 한국판 식코라 불리는 의사출신 송윤희 감독의 '하얀정글'이다.
물론 둘다 다큐 영화이다. 내 취향이 다큐를 좋아하다보니...이 영화들은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적어도 '달팽이의 별'만큼은... 왠지 눈시울을 촉촉히 적셔줄 그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오늘 신문에 실린 '달팽이의 별'관련 기사이다.
한겨레신문 2011.12.5 “우리가 놓친 현실이 주는 따스한 전율이 좋다”
» 암스테르담 다큐국제영화제에서 <달팽이의 별>로 아시아 최초로 대상을 받은 이승준 감독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사무실 커다란 포스터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제에 따라간 7살 딸이 엄마랑 먼저 귀국하며 보채듯 물었다. “우리 가고 아빠가 상 받으면 어떡해?” 사실 아빠도 ‘설마설마’했다. 본선 16편 장편경쟁작에만 뽑혀도 영광으로 여기는 최고 권위 다큐멘터리 영화제. 게다가 독일의 세계적인 거장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작품과 본선에서 겨루는 상황에서 아빠는 “수상은 생각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편 부문 대상이라니. “장애인 부부의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와 삶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담고 있다” “난 독신인데 부부를 보고 결혼하고 싶어졌다” 등의 언론과 관객의 호평이 쏟아졌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던 딸이 옆 환자에게 자랑하듯 말을 건넸다고 한다. “우리 아빠가 만든 <달팽이의 별> 아세요?”
1일 서울 시내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준(40) 감독은 케이블채널에서 방송될 ‘트로트 관련 다큐’를 편집하고 있었다. “(독립 다큐 피디로서) 먹고살아야 하니까”라며 웃는 그의 어깨 너머로, 지난달 26일 받은 24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대상 트로피가 보였다. ‘다큐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이 영화제의 꽃인 장편에서 아시아 최초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본선에 뽑혔다는 이메일을 받고도 너무 기뻐 혼자 사무실에서 뛰며 소리쳤다”고 했다.
1년 남짓 촬영한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 중복장애인 남편 ‘영찬’씨와 곱사등이 아내가 살아가는 얘기를 담았다. 아내는 눈과 귀가 닫힌 남편의 손등에 손가락으로 점자를 찍는 ‘점화’로 세상의 소리를 전한다.
일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영찬씨는 밝다. 그의 눈엔 어둠이 깔렸지만, 아내를 위해 형광등도 갈아준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니까 소나기를 맞으며 울기도 했다는 아내의 옛 얘기를 듣고선 아내를 더듬어 꼬옥 안아준다. 나무를 껴안고 계절을, 바람을 느끼는 영찬씨의 감각도 쫓아간다. 그들의 곁에 선 카메라의 시선은 따뜻하다.
영찬씨는 말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이 감독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에서 가치를 찾는 영찬씨의 긍정적인 태도와 두 부부의 동화 같은 사랑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2008년 <교육방송>(EBS) <원더풀 사이언스-제2의 뇌, 손>을 연출할 당시 부부를 처음 만났다. 1년 뒤, 중복 장애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킬 생각으로 영찬씨를 만났는데, 그를 잡아끈 건 영찬씨의 웃음이었다.
“영찬씨를 만나러 맥주를 두 병 사갔어요. 대뜸 천상병 시인을 아느냐고 묻더군요. ‘천상병 시인도 생전에 지인들이 캔맥주나 페트병을 사오면 호통을 쳤대요. 맥주는 병에 들어야 제맛이죠’라며 웃더군요. 그 웃음을 보고 이 사람의 인간적인 매력을 담고 싶어졌죠.”
영화는 한 장애인이 힘들어하고, 버텨내고, 희망을 찾는 수순을 밟지 않는다. “동정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을 그들도, 나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는 “내가 드디어 해냈고, 우리가 해냈다”고 말했다. ‘우리’라 한 것은 2억원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가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펀드, 미국 시네리치 제작지원 펀드, 한국 교육방송, 일본방송 <엔에이치케이>(NHK), 핀란드 국영방송 <위엘에>(YLE) 등의 다국적 제작비 지원을 받아서다. 외국을 돌며 작품가치를 직접 홍보한 결과다.
그는 “사실 내가 한 방법도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큐 감독들과 제작비를 지원하는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연결해주는 통로와 지원제도가 국내에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에 자신의 다큐작품을 납품해온 그가 다큐영화로 확장한 것은 독립피디로서의 활로를 모색한 것이다. 그간 독립피디들은 방송사로부터 형편없는 제작비를 받고도 한번 방송되면 저작권이 방송사에 귀속돼 직접 작품을 해외에 팔거나, 극장에 거는 등의 2차 저작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다국적 제작비를 끌어들여 방송·영화에 동시에 상영할 작품을 스스로 만든 이유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큐 감독이 꿈이었다는 그는 느릿느릿 걸으며 우리가 놓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 ‘달팽이 다큐 감독’을 자처했다.
“다큐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큐의 팩트(사실)가 주는 전율감이 어렸을 때부터 좋았어요. 휴머니즘이 잔잔하게 묻어나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달팽이의 별>은 내년 3월 개봉을 준비중이다. 시청각 장애인도 볼 수 있게 음성해설과 자막을 넣은 ‘배리어프리 영화’로도 동시 제작한다. 영화를 미리 본 기자로서 덧붙이자면, 관객들이 이 영화를 4개월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건 너무 길고 고역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