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한다

 

전창수 지음

 

 

 

 

 

자꾸만 놓으려는 나를 붙잡고 또 글을 쓰고 있다. 수필은 그만쓰겠다던 나의 결심은 어디로 가고 나는 또 이 글을 쓴다. 그래서 이제 나의 글에 대한 프린터는 하지 않으련다. 그저, 계속해서 쏟아내고 또 쏟아내려 한다. 외로움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발버둥쳐도 혼자라는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마도 내가 정말 위대한 일을 했다고 여기저기 자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특별한 문제에 대하여 해결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고마워한다. 그래서, 나는 그 해결 덕분에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 나에게 무료로 넣어주는 방송 역시도, 그 이유가 가장 크다.

 

그렇게 외로운 나에게 하나씩 하나씩 외로움이 사라질 요소들이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이 완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텔레레러로서 텔레레터를 하는 것이 즐겁다. 매일 매일 해도 또 하고 싶은 것이 텔레레러의 운명이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그리고 나는 또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정말 외롭지 않을 때는, 글을 쓰는 이 순간이다. 글을 쓰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의 모든 글을 다 보려는 생각은 멈추어 주길 바란다.

 

내가 권하는 나의 글은 나의 모든 생각들을 정리해 놓은 그대가 내게와 또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글들에 대한 창수의 생각들을 검색해서 보고, 나머지 시와 소설, 수필, 상담, 칼럼, 카피, 만화 등은 보고 싶은 걸 선택해서 보았으면 좋겠다.

 

창수의 글을 매일 보는 것이 신나는 사람이 있듯이, 창수는 매일매일 글을 쓰는 것이 신난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요청하여도 나는 매일 글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최소한 주 4일은 쓸 것만 같다. 물론, 가끔은, 쉬고 싶을 때도 있긴 있겠지만, 나의 글들은 거의 매일 올릴 것 같다.

 

어떤 글이 될지 모른다. 시가 될 수 있고, 소설이 될 수 있고, 수필이 될 수 있고, 또한 칼럼이 될 수도 있고, 카피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쓴 글이라도 요청이 들어오면, 또 쓸 예정이다.

 

외로움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의 이 외로움은 글을 쓰는 것을 가능한다. 외로움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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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너머 즐거움

 

전창수 지음

 

 

슬픔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마음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오늘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슬픔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마음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오늘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슬픔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마음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오늘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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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너머 즐거움

 

12기 마지막 작품

전창수 수필 마지막 작품

앞으로는 시와 소설만 쓸 예정입니다

 

 

전창수 지음

 

 

 

슬픔 너머 즐거움

 

슬픔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마음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오늘 너머의 즐거움을 본다

 

 

슬픔 너머 즐거움 수필

 

저는 오늘 수필의 마지막 작품을 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수필을 쓰려다 보면, 시가 써지게 되고, 수필을 쓰다 보면, 소설이 쓰고 싶어지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필을 마치려 합니다. 시와 소설만 앞으로는 올리려 합니다. 저의 생각들과 저의 마음들은 이제 모두 다 표현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좋아해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시를 계속 쓸 수 있고, 소설도 계속 쓸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제, 슬픔은 점차 사라집니다. 그래서, 즐거움이 보입니다. 그 즐거움 속으로 더 많이 빠져보려합니다. 시를 쓰는 즐거움, 소설 쓰는 즐거움으로 저를 빠뜨리려 합니다.

 

슬픔 너머 즐거움에서 뵙겠습니다.

 

마음도 몸도 더 이상 아무도 아프지 않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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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갈 수 있으려면

 

 

전창수 지음

 

 

많은 사람들이 나는 착하니까 예수님을 안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나쁜 일을 안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거고,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제대로 된 신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은 틀리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또한 생각합니다. 아무도 안 보니까, 괜찮아. 이쯤이야, . 그렇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죄를 막기 위해 CCTV가 설치되 어 있곤 하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죄, 자기도 모르게 짓는 죄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공격할 생각, 누군가를 음해할 생각, 누군가를 모략할 생각을 했다면,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안다면,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행동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진짜 믿게 되었을 때, 행복이 시작된다는 의미 역시,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켜 진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잘못한 일들을 예수님 앞에 고백하게 되고, 그렇게 회개는 시작됩니다. 회개하면서 눈물을 실컷 울리고 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천국을 가는 것은 이렇게 회개했을 때 가능합니다. 회개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진짜 행복해졌을 때,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이신 우리의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를 끝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천국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행동으로도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진짜로 천국 가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지옥은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국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서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자신이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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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전창수 지음

 

때로는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예배를 보러 오신 분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교회에 갔더니,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몇 명 불러 세우더니, 신앙생활 똑바로 하라면서, 이 사람들은 지옥갈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부추기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고, 또한 지옥갈 지도 모른다는 고통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까요. 또한, 처음 온 사람들이 지옥갈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그 말을 한 목사를 얼마나 무서워했을까요. 저도 그 말을 들으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상처를 받았고, 지옥갈까봐 무서워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게 싫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런 분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저의 신앙적 방황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헌금을 강조하고 전도를 강조하고 예배를 강조합니다. 교회에서는 분명 이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에 처음 나오거나, 나온지 얼마 안 되었거나, 또한 교회를 다니더라도 그냥, 힘들어서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이 말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돈도 별로 없는데, 헌금을 내라는 말은, 돈 없으면 교회에 나오면 안 된다는 말로 들리며, 자신의 신앙도 부족한데 전도를 해야 진짜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너무나 부담이 되며, 예배가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은 예배 때문에 부담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예배를 강조하고, 헌금을 강조하고, 전도를 강조하려면, 우선 성도님들이 이미 성경을 많이 알고 있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졌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전도를 해서 교회를 데려왔는데, 데려온 사람하고는 아예 교회 직분자나 일하는 사람한테 맡겨놓고, 막상 전도를 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전도는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교회에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을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사역자와 직분자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전도와 예배와 헌금만 강조하는 설교는 아무런 의미 없는 설교가 됩니다.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격적 성숙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인격적 성숙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과 찬양과 기도, 그리고 다양한 독서, 그리고 다양한 취미활동 등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그저, 사람을 초청하는 것에만, 그저 사람의 수를 늘리기 위한 것에만 초점이 있는 교회는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내부적으로 다양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노력은 시스템과 행정 등 여러 가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또한 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해져서, 나 자신과 가족, 내가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람까지도 인생의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진짜 교회가 탄생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시는 여러분. 또한, 교회에서 일하시는 여러분.

 

겉으로 보이는 외형만 큰 교회가 아니라, 진짜 마음이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때, 교회는 사회에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큰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교회가 힘이 되길 바라면서, 저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마칩니다.

 

저의 당부의 말은, 저이 바람이었고, 저의 평소 생각이었고, 제가 교회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들입니다. 저의 말들이 교회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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