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망가지기 쉬운 나의 마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항상 예수님을 찾게 된다. 성경을 읽게 되고예수님께 마음으로 질문을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 어떤 마음이라도 예수님은 다 받아주시기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마음의 기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성경을 보거나찬양을 듣게 된다. 마음이 평온해질 때까지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덧 내 마음의 풍랑이 잠잠해진다. 나는 망가지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예수님을 찾지 않으면, 나는 쉽게 무너지기 쉬운 사람이다. 무너진 마음, 무너진 감정이 두려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암담한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럴 때 ,예수님은 언제나 손짓하며 내게 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웃음이 마음속에 떠오르면 나는 비로소 웃음을 다시 찾는다성경을 읽거나, 찬양을 듣다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구절이 자주 나온다. 그 구절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 삶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 하루 행복했으면 되었다. 내일 일은 예수님께 맡기자그래서 나의 불안도, 행복한 불안이 되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돌보고 계시니까. 망가지기 쉬운 나의 마음도, 예수님이 만져주신다.

 



16. 나의 여린 마음도 단단히 붙잡아주시는 예수님

 

때로는,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안 해 놓고, 최선을 다했다고 합리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엔,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 되겠지. 그러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때. 그건, 나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놓아두는 연습을 한다. 나의 마음을 놓아두고, 나의 결정을 놓아두고, 나의 삶을 놓아두는 연습.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나머지는 기다리는 일. 하나님의 놀라운 뜻은, 내가 모른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누군가는 좋아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싫어하겠지. 내가 이 글을 계속 써나가는 건, 반드시 어딘가에는 이 글을 보고, 삶의 희망을 다시 찾는 이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일 뿐이고, 그 이후의 결정은 하나님의 몫. 나의 여린 마음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예수님, 그 예수님이 누군가의 마음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것이라고,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나는 단단하게 믿는다.

17. 예수님만이 살 길

내가 예수님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러니까, 조건이 단 하나였다. 처음에 나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은 "나는 착하게 사니까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착하게 산다 해도, 언제 어느 때 사악한 마음이 생겨날지 모른다. 그럴 때, 예수님을 떠올리면, 죄를 짓게 되는 그 순간이 몹시도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이쯤은 괜찮겠지, 이건 아무도 안 보는 거니까 괜찮아, 하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는 나에게도 많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그다지 없을 때에는 그것이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작은 죄를 지어도, 곧 후회를 하게 된다. 마음속에서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죄를 짓지 않고 살려 노력하지만,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럴 때, 예수님은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고 이끄신다. 후회하고, 곧 잘못했다, 하면, 받아주시곤 한다. 그러면서, 죄 짓는 숫자는 점점 더 줄어만 간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은 이런 의미였던 것이다. 내가 지을 수 있는 큰 죄를 미리 막아주시는 예수님. 그렇게 함으로서 천국으로 나를 이끄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착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아니라면, 나는 아마 이미 수많은 유혹 속에서 흔들렸을 것이다. 쉬운 길, 편한 길만 가도록, 나를 내버려 두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이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고, 아주 큰 불행에서 지금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에 들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어떤 증명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나는 또 어떤 죄를 짓게 될지 모른다. 그것이 순간적인 욕심일 수도 있고, 순간적인 충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을 떠올린다면, 적어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예수님은 나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내가 되어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살 길이다.




18. 예수님이 채워주신다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을 때마다 성경을 본다. 그리곤 구절들을 음미해 본다. 예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에 주목해 본다. 내가 만약에 정말로 유명해지고 정말로 돈을 많이 번다 해도, 나는 결국 죽는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지금 알고 있기에, 나는 지금의 삶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이 즐겁고, 그럼으로써 나의 목마름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유명해지고, 돈이 벌리길 바라기보다는 지금 나의 삶, 지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껴본다. 그리고 죽은 후의 삶에 천국이 있다지금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의 상급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상급이 이 세상에 나눠진 부와 빈곤이라는 계급차이를 의미하는 상급은 아닐 것이다. 상급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는 천국이라면, 그 세상은 이미 천국이 아닐 테니까. 누구나가 행복한 세상, 고통이 없는 세상, 기쁨과 환희만이 가득한 세상이 천국일까천국에도, 때로는 슬픔이 있지는 않을까.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천국이란 곳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천국의 꿈이 있기에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 , 물론내 글이 널리널리 알려지길 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감동을 하고 기쁨을 느끼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어떤 수단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그래서 함께 천국을 갈 수 있는 그런 마음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예수님이 하시는 사랑이 나의 글에 온전히 전해져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심란할 때, 힘들 때, 예수님을 찾는 것처럼삶에 힘들고 지칠 때,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길 바란다. 사람으로는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오직 예수님만이 채워준다. 예수님께는 마음껏 기대어도 된다. 예수님께 기댄다고 예수님께서는 나를 부담스러워하거나 나를 밀쳐내지 않는다. 예수님께 투덜댄다고 내게 뭐라 하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그저 믿으라고만 말씀하실 뿐이다. 주 하나님을 믿으라고. 아무것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어느 저녁, 나는 예수님한테로 또 나의 마음을 탈출시킨다. 예수님은, 이미 나의 맘 알고, 나의 내일을 준비하고 계실 거다. 그걸 믿고, 오늘 나의 소박한 글을 내보낸다. 내 마음의 조그만 조각들이 조립되어, 하나의 삶을 완성시켜 나가려고 준비 중이다.





19. “도와주세요라는 기도

 

누군가가 하나님은 사소한 것에는 간섭하지 않으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무런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사소한 일에 "간섭이 아니라 "관여를 하신다.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이 길을 갈 수 있게 그때그때 도와주시는 것이다. 내게 일어난 많은 일들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것, 책을 보는 것, 모두 내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이 아니었다. 뭔가의 이끌림에 의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 하나님의 도움이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힘들 때도 슬플 때도 우울할 때도 외로울 때도 있다. 가끔은, 이 길이 맞나, 내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하는 내 마음 속의 기도는 오직 하나다. "도와주세요!”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그 마음속의 "은밀한기도를 들어주시고는 도움의 손길을 뻗치신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우연한 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옥이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다, 이보다 더 불행한 삶은 없다, 하고 느끼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지금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힘든 일을 할 때조차 행복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무엇을 해도 항상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그것이 미래의 나를 위한 연단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좋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것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나 자신을 가다듬는 데 힘써야 하는데,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보이기 위한 내 모습에 치중하게 됨을 느낀다보이기 위한 모습보다는 실제 내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또 어떤 힘든 일이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 내 글을 보러 오는 대부분의 분들은 좋은 생각을 가지고 보시겠지만, 가끔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글을 보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분들을 사랑하지 못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분들도 사랑하시며, 그분들께도 반드시 좋은 길을 열어주실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하나님께 "도와주세요!”라며 기도를 한다. 나를 위한 기도이지만, 그 기도 속에는 다른 분들을 위한 기도도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을 거라 나는 믿는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마태복음 6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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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고상한 예수님

 

 

*고상하다 :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

 

나는 그다지 고상한 사람은 아니다. 세속적이며, 욕심도 있고, 때로는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입히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아주 최소한의 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다지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다. 나 자신을 돌보다가 지쳐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이전에는, 내게 별의별 사건이 다 일어났는데,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부활하신 사건은 내게 그런 평화를 선물하시려고 일어난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평화스러울 때, 나를 더 단련하고 그리고 더 단단해지기 위한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다시 또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을극복함 힘을 기르라는 뜻이라고그렇게 알고 준비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읽고 있는 최고경영자 예수한 장 한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의미들이 다가오고, 그것들을 묵상한다. 내가 고상해지고 싶어서. 성경에 나오는 고상한 요구들이 이 책에 나온다.

 

- 아브라함의 요구 : 당신을 따르도록 도와 주십시오.

- 모세의 요구 : 당신의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 다윗의 요구 : 나로 하여금 우리 백성들을 위협하는 골리앗을 쓰러뜨리도록 도와주십시오

- 에스더 : 나로 하여금 이 백성들을 구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 솔로몬 : 저에게 이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 이사야 : 당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정결한 입술을 주십시오.

- 베드로 : 당신의 양들을 먹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 예수 : 저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도록 도와 주십시오.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모두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달라 하지 않았다는 것. 백성을 위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것. 고상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누군가를 위하는 척 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것. 그게 고상한 것 아닌가. 그래서 나도 고상한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나의 결심을 도와 줄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 자신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조금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이 나의 고백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하겠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건 뭔가 할 일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것이 나만을 위한 삶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나님께서 이루어가는 세상에, 나도 동참할 것이다. 고상한 것을 구하신 예수님처럼, 나도 고상한 것을  구해 본다.

 

당신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0. 사랑합니다, 그것 뿐예요

 

내가 갖고 있는 자원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이 자원이 사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큰 자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건강하다. 비실비실 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픈 곳이 거의 없다. 하나도 안 아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건강한 편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그것만큼 큰 자산이 있을까. 그럼으로 인해, 나의 강점들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가 있다. 시간이 내게 주어지면, 책을 읽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쓴다예수님에 대해 쓰는 이유. 잘 모르겠다. 그냥 쓰고 싶다. 엔도르핀이 마구 돌아서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쓰고 싶다.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쓰고 싶어지면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쓰고, 쓰고 싶어지면 밤에 좀 더 늦게 자더라도 쓰게 된다. 책을 읽고 싶어지면, 잠을 일찍 깨게 되고, 책을 읽다보면, 벌써 잘 시간이 지난다. 건강이 나를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찬송을 부른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그것 뿐예요.




 11. 이상하게 보이지만 때로는 알 수 없는 힘이 하나님께 이끌기도 한다

 

내가 가는 지금 이 길이 과연 맞는 것일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운명이라고 느껴지는가.

 

나는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는다. 처음부터 그것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아주 "불행"하다고 느꼈던 순간에는 그것이 계획의 일부라고 믿지 않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했다. 정말, 당신이 있는 것이냐고. 있으면, 증거를 대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퇴근시간은 2시간 남짓 남은 시간인데, 비가 오다니. 그때 난, 무슨 이유에서인지 만약 이 비를 그치지 않는다면, 당신이 있는 걸 믿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폭탄선언을 했다. 당신을 다시는 절대 믿지 않겠다는, 그야말로 굳은 결심이었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그때, 퇴근하니 비가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아 그때. 만약 비가 내리고 있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작 비 가지고 그런 서원을 한다는 것이 우스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가끔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이 하나님께로 이끌기도 한다. 만약 그때 그 서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한 것이라며, 왜 나 같은 놈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냐며 여전히 세상에 대한 원망을 뿜어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어려움에 처한 나를 버려두지 않으셨고, 그렇게 믿음을 가지게 된 이후에, 지금까지, 아주 조금씩이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 나는 운명처럼, 글을 쓰고 있으며, 늦은 공부도 조금씩 하고 있다. 과거에 써 놓았던 글들을 다시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며, 그리고 내가 쓸 글들, 내가 써나갈 미래에 희망을 본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이 길을 가게 하신다. 나는 이 길을 걸어갈 용기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길을 걷게 할 용기를 주신다. 예수님께서 베푼 사랑이 오늘날의 나에게 희망을 준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절망에 빠져 있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그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면서.





12. 예수님에게로

 

2천여 년 전에 우리에게로 오신 예수님. 사소한 것 하나로 시작된 예수님의 섬세함은 오늘날, 우리에게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가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사소한 것 하나가 예수님을 찾게 만들며, 사소한 것 하나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도 한다사소한 어떤 것에서 비로소 시작이 되며, 사소한 어떤 것으로 비로소 마무리가 된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 사소한 것 하나를 놓치면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흐름을 파악하면서 천천히 읽을 필요가 있다. 속독으로 읽으면 내용이 별로 들어오는 것이 없다. , 더디더라도 천천히 읽는 것이 좋다. 천천히 읽기에, 구약은 조금 부담스럽다. 신약성경의 예수님을 먼저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적어도 나는 그랬으니. 신약성경을 읽다보니, 벌써 이렇게 많이 읽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읽은 적이 많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그냥, 그날그날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성경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읽으니, , 이건 이런 얘기였구나, 하는 부분이 보인다. 사소한 것들을 놓치면 성경을 곡해할 수도 있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성경을 읽는 재미는 사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행적,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베드로의 회개,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어 쓰시는지를 볼 수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뜻깊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성경을 온전히 읽으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 내가 아닌 아무것도 아니었던 삶이, 내가 있으므로 이제는 의미 있는 삶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오늘 또 하루,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13. 나를 채우시는 예수님

 

사실, 내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별다른 목적은 없다. 다만, 내가 적적할 때 예수님을 얘기함으로서 내가 위로받고,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간에 예수님은 헌신적이었으며, 눈치를 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하셨다. 그 삶을 내게 적용시키니, 일하는 게 행복하고, 책 보는 게 행복하고, 공부하는 게 행복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억지로 일을 할 때는, 항상 불행하다고 느끼고, 집에 와서도, 그 불행의 여파가 계속되었지만, 이제는 삶 자체를 즐기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고, 어디에 가서든, 항상, 즐겁게 뭔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팔이 아플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잠시 잠깐! 일 뿐. 아픔도 오래지 않아 지나가곤 한다.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는 방식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 우리 모두가 볼 수 있게 오신다고 하셨다. 이미 예수님은 태어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셨기 때문에,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의 모습을 살아서는 못 만날 수도 있다.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시는 순간은 불행한 종말이 아니라, 행복한 축복의 시간이다.

 

사람에게 기대어선 채우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에게 기대는 순간, 실망하는 부분이 생길 것이고, 그 실망은 나를 힘겹게 한다. 애인이든, 부부이든, 친구든,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채워주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간에 나는 언제나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우울해질 때, 내가 불행해질 때, 예수님을 찾는다. 예수님께서는 내 마음을 언제나 돌보아 주시기 때문이다.




14.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오해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늘 친절할 것이고, 인성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인성이 뛰어나지 않으며,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이유가 행복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회에서 위안을 얻고 싶었다. 내가 친절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못 났다고 탓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이 좋았다. 예수님을 알아가게 되면 될수록, 예수님은 못나고 어리석은 나를 철저하게 돌보신다. 사람들에게 기대고,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았던 때에는, 항상 뭔가가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채우지 못했고, 결국은 불행한 삶 속으로 나를 내몰았었다.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들은 항상 친절한 사람들도 때론 있다.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는 아마도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친절하다. 그 친절한 예수님은 성경에 있고, 내 마음에도 있다. 때로는 예수님을 얘기하는 많은 책들에도 있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 알수록 예수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지금 이 글을 보고,  한번 당해 봐라, 하고어떤 이상한 계획을 세우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그들의 이상한 계획에 휘말려서 당할지도 모르고, 만약 그래서 뭔가의 계획에 당한다면, 당한 뒤에는 그들을 욕하고 미워하고 저주할지도 모른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도 사랑하지만, 그렇게 이상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 나쁜 짓을 저지르는 범죄자들도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 예수님의 사랑이 언젠가는 그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예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왜 범죄 하는 사람들을 벌하지 않느냐고 따질 이유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저주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주기 위해 오셨다. 그 사랑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내가 어떤 사람이든, 예수님은 사랑하신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과, 또 보지 않는그들도. 나는 사랑을 잘 모르는 하나의 사람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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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삶은 내게 감당할 만한 정도의 고통만 줄 테니까.

 

나는 항상 허덕이며 살았던 것 같다. 돈이 언제 사라지고 내 생활에 지장이 올까봐,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돈은 어느 정도까지는 있어야지, 마음 졸이며 살지 않게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 자신이 여유를 가지지 않는 한, 늘 허덕이게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이고, 그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삶은 분명 내게 감당할 만한 정도의 고통만 줄 테니까

매일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해 본다. 매일 글을 쓰겠다는 다짐. 어느 순간까지는 이게 지켜졌던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삶에 지쳐서, 또 앞날의 희망이 막막해서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써나가기로 결심했다. 매일 매일이 사색의 연속이 되었을 때, 내 삶도 지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테니까. 허덕이며 살던 시간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오늘을 관조하며 살아보기로 한다. 정말로 행복한 인생은 내 자신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이루어질 테니까.

오늘 나의 작은 결심이 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삶이란 정말 모르게 왔다가 모르게 가는 것일 테니까.




03. 무엇이든 항상 끝이 있기에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무엇이든 항상 끝이 있기에 시작할 수 있는 거 같다. 끝이 없다면 시작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나지 않을까.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의미없는 삶을 사는 건, 그 허황된 꿈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끝이 없이 헛발질을 하다가 결국 지쳐서 죽거나 나가 떨어지거나, 포기하거나다. 그런 인생은 허무하다.

무언가 끝이 있다는 것은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 목표가 실현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끝이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사람도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지금 현재에 더욱 더 충실할 수 있는 것이고, 언젠가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고난을 인내하고 있다

나의 지금 이 순간의 괴로움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루를 좀더 알차게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순간순간 괴로운 순간들도 있고, 즐거운 순간들도 있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열심히 살아간다

언젠간 끝날 것을 아므로, 나는 지금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작해야지. 모두, 시작합시다. 끝을 보고 희망을 품고 그렇게 시작합시다. 나는 그렇게 끝의 희망을 보고 시작하기로 한다.




04. 돈을 벌기 위해 행복을 포기한다면, 과연 의미가 있는 삶일까?

 

요즘 나는 성공이란 뭘까.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에 푸욱 빠져 있다. 그래서 골든룰이라는 책도 봤는데, 결국 성공은 실천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다소는 뻔한 결론에 도달했다. 언제나 생각해왔던, 성공을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해 본다. 과연, 성공하기 위해서 "행복"이란 것을 포기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과연 진정한 성공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성공의 의미를 두고 있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대부분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런데 저 말. 성공은 다만 행복의 한 요소는 될 수 있다는 말. 뼈저리게 가슴에 사무치는 말이다. 성공은 행복의 한 요소일 뿐이다.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행복의 한 요소인 물질적 풍요가 따라온다.

 

돈이 많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하루하루 돈이라는 사슬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돈은 많은데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른다면? 돈은 많이 있는데, 이걸 어디다 써야 할 지 몰라, 그냥 이자만 마냥 불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과연, 그런 삶이 행복할 것인가. 또한, 그런 삶이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보탬이 될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면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행복의 팁이 하나 생긴다. 그 돈을 현명하고 가치 있게 쓰기 위해선, 돈을 벌고자 계획했던 순간부터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먼저 세워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행복은 돈만 쌓아두는 삶은 아닐 것이다. 그 돈이 가치 있게 쓰일 때, 행복은 같이 따라온다. 이 행복을 위해 나는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행복하기 위한 꿈을 꾼다.




05. 로망을 사랑하는 로망

 

문득, 나의 로망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신문을 보고, 글을 쓰다가, 책을 보고 가끔 산책을 하는 것. 그러다가 돈에 여유가 생기면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로망일까. 아니면, 그저 상상력에 의해 길러진 환상일 뿐일까.

그러고 보면, 나의 로망에는 누군가와의 만남은 없다. 만날 사람도 없지만, 만남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꼭 고립되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름대로, 최소한의 인간관계는 하고 있으니까.

 

내가 꿈꾸는 로망이 손쉽게 생겨난다면 그 로망이 쉽게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붙잡기 위해 아등바등 최선을 다해 본다. 나의 로망은 언젠가 내가 쓴 글을 영어로 내가 직접 작문하는 것. 이게 나의 가장 큰 로망이다. 이루기 힘들 것 같아서, 로망이라 하고, 그 로망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키워간다.

 

무언가를 꿈꾸기 시작하자 나는 비로소 행복해졌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이 결코 괴로움으로 가득한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무언가를 쓰기 위해 고민하는 괴로움이 즐거움이 되고,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괴로움이 또 즐거움이 된다.

 

나의 조그만 방에서 생겨난 행복은 로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나의 미래를 더 큰 나로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작은 로망부터 꿈꾸자구요. 그 로망을 향해  함께 나아가지요. 나는 이렇게 꿈꾸는 나를 비로소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절의 나까지도. 내가 지금 이룩한 로망과 앞으로 이룰 로망들을 같이 사랑한다. 그 로망이 있기에 나는 오늘 더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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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온다

기적이 기적을

불러올 떄까지

평범함이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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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정죄는 하지 않는다

 

가끔, 마구 글을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다. 태풍이 오고 있으므로, 예수님의 사랑과, 인간의 절실함과, 기적의 이루어짐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간단히 말해, 나는 누군가에게 죄가 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므로. 논리는 간단하다. 예수님이 누군가를 정죄하지 않으셨으므로, 나도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정죄한다는 것, 그것처럼 무섭고 끔찍한 일이 있는가. 때로는, TV에서 나오는 범죄자들이 알고 보면, 어이 없이, 오보인 경우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런 오보들이 사회의 이슈에 편승되어 밝혀지지 않고 묻히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오보를 진짜로 믿고 그를 정죄하기 시작한다.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정죄하는 사람들을 정죄할 이유도, 범죄자들을 정죄할 이유도 내게는 없다. 예수님의 뜻대로, 언젠가 이루어질 예수님의 천국에 내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들의 차이는 정죄를 하느냐 정죄를 하지 않느냐에 있을지도 모른다. 정죄를 하는 것과 정죄를 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은 다르다. 정죄를 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은 혹시 상처받을지도 모를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죄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일이다. 내게 피해를 주는, 피해를 줄지도 모를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 그것 자체가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정죄하지 않는 것. 언젠가는 그들도 예수님의 품으로 안기길 기대하는 것. 그들과 거리를 두되, 다만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나는 그들을 이 땅에서가 아닌, 저 아름다운 천국에서 만나길 바란다.




07. 예수님의 표현법

 

그러고 보면, 요즘 나오는 인문서들은 자기표현에 대한 것이 참 많다. 주로,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라는 내용이며, 나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남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그런 표현법을 알려주는 책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창시자는 예수님이라는 걸 혹시 아시는지. 예수님은 느끼는 방법을 알고 계셨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셨다. 남들도 똑같이 하도록 도우셨다. 예수님의 말씀(, 성경)을 보다보면 그런 표현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비록, 아직까진 서툴지만, 예수님에게서 이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만은 편안하다.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널리 펼쳐질 날을 기대해 본다.

 


 

08. 어리석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 중에 이런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나만이라고 불평하지 말라고. 왜 나만 이래야 돼. 그러지 말라고. 내가 조금 양보하고 내가 더 노력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는 기꺼이 쓰일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내 갈 길을 마련해 주시고 축복해주시길 기다리고 있노라고.

 

어느 날부터 내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된 것은 그 이유였다. 왜 나만 열심히 일해야 돼, 라고 불평하지 않고, 어떤 일에서든지 주어진 그곳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앞길을 예비해 놓으시고 이미 준비된 그 길을 가는 그냥 걷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냥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은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증명이 된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거나, 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기 전엔 항상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고,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냐며, 세상에 불평불만을 쏟아내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분명, 많이 발전했다. 그리고 내 앞길엔 예수님이 동행하시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고, 다시 걸어가면 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내가 좀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걷다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란 사람이 꼭 필요한 곳이 있겠지. 그곳에 사랑이 있든, 그곳에 안정된 직장이 있든, 그곳에 실현된 꿈이 있든.

 

하나님은 나의 미래를 예비해놓고 계셨고, 또 앞으로도 예비해 놓으실 것임을 믿는다. 나는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때론, 꽃구경도 하고, 나무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고, 때로는 뜨거운 아스팔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도 하면서. 그 길은 조금 땀이 나긴 하겠지만,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길. 그리고 육체는 힘들어도 마음은 편안한 길이다. 신통한 다이어리는 눈물겹지만 편안한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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