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 서른 살 빈털터리 대학원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공부법 25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효진 옮김 / 걷는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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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통계청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현황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분기별 월평균 도서구입비’인데요. 전국 단위 집계가 시작된 2003년 1분기 이후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럼 평균독서량은 어느 정도일까요?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으로 한 달에 책 한 권도 채 못 읽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더 놀라운 것은 이것조차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기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갑갑해지면서 의문이 들더군요. 포털사이트나 온라인상에 운영되고 있는 독서 동호회가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도 넘는데 왜 이렇게 책 읽는 사람이 적은 걸까. 스마트폰, 태블릿 pc 사용인구가 많아지면서 책에 대한 관심이나 독서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 짐작은 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더 원론적인 그런 이유가 있을 것 같거든요.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저자가 사이토 다카시라는 점에서 호감이 갔습니다. 예전에 그의 <고전 시작>을 읽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전을 읽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 ‘고전력’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고전 읽기의 필요성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참이어서 그 글을 보는 순간 ‘아하, 이거구나’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런 그가 독서법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니 그냥 넘길 수가 없더군요.

 

‘나 역시 독서가 사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저자는 우리의 삶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바꿔주는 것은 독서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십대 미혼모와 마약으로 감옥에 드나들던 오프라 윈프리가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방송인으로 불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으며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가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꼽은 것이 모두 책, 독서라고 말이지요. 그런 다음 책을 읽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요.

 

초반부터 시종일관 책을 읽는 것, 독서의 필요성, 중요성을 몇 번이고 강조한 저자는 책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만화를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만화를 읽고 어떤 점이 나에게 인상적인지,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지 말할 수 있다면 의미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108쪽)’는 대목은 만화를 즐겨 읽는 저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구요. ‘읽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 바로 책을 손에 넣어야 독서로 이어진다(113쪽)’는 구절은 책을 수시로, 충동적으로 구입하면서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저의 양심에 면죄부를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서른 살 빈털터리 대학원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공부법’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독서의 기술 10’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책을 고를 때 표지와 목차를 살펴보는 것이나 여러 권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동시병행 독서법’,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라 때로 필요한 부분을 취합선택해서 읽는 ‘발췌독서’, 소리 내어 읽는 ‘음독’,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거나 혼자가 아닌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명과 함께 독서하는 등 대부분은 예전부터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비판적 책읽기라고 해서 독서의 최종단계로 통하는 ‘깊은 통찰을 얻게 하는 질문 독서’는 제게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어서 저의 독서법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부담감을 느낀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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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5-06-2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 9.2권도 믿기 어려워 보여요. 그보다 훨씬 적을 거 같아요. ㅎㅎ

몽당연필 2015-06-21 23:04   좋아요 0 | URL
헉, 그렇다면, 저것보다 더 적을 거라는 말씀?
왠지 급우울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낭만인생 2015-06-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년에 단 한권도 읽지 않죠. 대신 읽는 사람은 일년에 수백권을 읽어내니 평균적으로 한 두 권이 되지 않을까요?
사이토 다카시는 명료하고 깔끈함 문장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리뷰가 참 좋습니다.

몽당연필 2015-06-30 10:4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것조차 평균치였네요
왠지 씁쓸한데요 ^^;;

몽당연필 2015-06-30 10:45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에 힘이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
 
끄덕끄덕 세계사 2 : 중세에서 근대로 - 술술 읽히고 착착 정리되는 끄덕끄덕 세계사 2
서경석 지음 / 아카넷주니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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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세계사> 두 번째 책이 출간됐네요. 저자는 첫 번째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역사란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 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때문에 역사를 어려운 학문이라고 단정짓지 말고 ‘이야기이자 문학’으로 생각하라고. 읽은지 시간이 좀 흘러서 정확한 문구는 아니지만 ‘역사를 옛이야기 듣듯이 쉽게 다가가라’는 의미였는데요. 읽는 순간 마음에 와 닿더군요. 역사를 일단 지식으로, 암기해야 하는 학문으로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왠지 공부가 하기 싫어지죠. 그치만 옛이야기는 다릅니다. 똑같은 얘기지만 듣고듣고 또 들어도 매번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잖아요.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역사는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의 ‘상식’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마련인데요. 이쯤되면 <끄덕끄덕 세계사>의 두 번째 이야기가 왠지 기대가 되지 않으세요?

 

두 번째, 2권에서는 ‘중세와 근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잠깐 ‘중세’와 ‘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뭔지 알아보면,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노예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로 나누는데 그것이 곧 ‘고대, 중세, 근대’라는 시대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고로, <끄덕끄덕 세계사> 2권에서는 노예가 있는 ‘중세’와 노예가 존재하지 않는 ‘근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거지요.

 

 

아무리 화려한 꽃도 때가 되면 초라하게 지듯이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집니다. 한때 찬란하고 빛나는 꽃을 피운 제국들이 멸망하기 시작하는데요. 그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훈 족입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 유목민족인 훈 족이 서쪽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용맹한 훈 족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서고트족이 살던 곳을 떠나 로마로 들어가면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벌어지는데요. 이로 인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은 전혀 다른,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가난한 상인이었던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고 완전한 창조주이자 유일한 최고신인 알라를 믿고 숭배하는 종교를 창시하는데요. 바로 이슬람교입니다. 이슬람제국은 신의 대리인, 마호메드의 후계자인 ‘칼리프’를 위시하여 주변으로 영토를 점차 확장해나가 서유럽까지 북상하는데요. 카를 마르텔이 이를 막아냅니다. 유럽이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변화를 맞을 때 중국과 동아시아도 혼란을 겪습니다. 위,촉,오 삼국을 진나라가 통일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수나라에 의해 멸망하는데요. 이후 수나라는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고 당나라가 들어섭니다.

 

 

영화를 보면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번갈아서 보여주는 ‘교차편집’ 기법으로 진행되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 책도 그렇습니다. 동일한 시기에 동양과 서양에서 일어난 변화를 함께 수록해놓고 있는데요. 동양과 서양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다고 해서 완전히 별개의 역사를 가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세워진 하나의 조각을 쓰러뜨리면 잇따라 다른 조각들이 차례로 쓰러지게 되는 도미노처럼 말이지요.

 

 

책의 주된 독자층이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해서인지 그림이나 사진을 본문 곳곳에 수록해놓아서 지루하지 않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불상으로 불리는 중국의 러산 대불이나 이슬람 건축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장식이 돋보이는 비비하눔 사원은 컬러사진을 두 페이지에 걸쳐 있어서 그 규모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울산성 전투도’도 일부 수록되어 있는데요. 우리 군이 일본군에 의해 첩첩이 포위된 모습을 보니 어찌나 안타깝고 슬프던지... 만약 조선이 7년간의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땠을까, 지금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생각해보곤 했습니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에 있으며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같은 민족 간에 총구를 겨누는 전쟁을 겪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2015년 6월, 현재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반만년을 흐르는 동안 우리는 세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겪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테구요. 오늘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과거를 살아간 이들의 모습과 삶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하는 것. 지나온 역사 속에서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다짐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비단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이웃한 주변의 나라, 세계의 역사로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중세와 근대에 이어 <끄덕끄덕 세계사> 3권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의 세계를 다룰 예정이라고 하는데 급격한 변화를 겪은 세계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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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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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란 작가를 알게 된 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책을 통해서였는데요. 벌써 몇 년이 지났네요. 어린 시절 동화로 읽었던 백설공주. 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제목이 인상적인 책이어서 끌리더군요. '백설공주‘가 의미하는 것도 궁금했구요. 오랫동안 타지에 살던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여형사. 실마리가 조금씩 풀릴 때마다 감춰져있던 비밀과 오랜 증오가 드러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독일의 타우누스 지방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한 ‘타우누스 시리즈’라고 하더군요. 이전에 출간된 시리즈가 세 권 있고 <백설공주>는 네 번째라는 거예요. 매력적인 주인공도, 저자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방석도 마음에 들어서 시리즈를 하나하나 모으곤 했는데요. 모든 작품을 미처 다 만나기도 전에 새로운 작품이 출간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타우누스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 바로 <산 자와 죽은 자>입니다.

막 동이 튼 겨울날 아침,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던 노부인이 갑자기 맥없이 쓰러집니다. 마침 근처를 조깅하던 여자가 노부인을 발견하는데요. 80미터 떨어진 곳에서 소음기를 단 총으로 단번에 저격을 성공한 범인은 이미 현장을 유유히 벗어난 뒤였습니다. 조용한 마을에 난데없이 벌어진 사건은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도 불러오게 됩니다. 바로 피아인데요. 크리스토프와 비밀리에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그녀는 오붓하게 남미로 떠나기 위해 휴가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사건현장이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로 불려나오게 되는데요. 범죄에 사용된 무기나 방식이 철저한 사전준비와 계획에 의한 것이라 직감한 피아는 피해자와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조사합니다. 혹시 피해자에게 원한을 품고 있거나 적은 없었는지 알아보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조차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거지요.

뭣 하나 뚜렷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또 다시 사건이 일어납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주방에서 손녀와 쿠키를 만들고 있던 노부인의 머리에 부엌 창문으로 날아든 총알이 박힙니다.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한 집안이 삽시간에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고 사건현장에 출동한 피아는 이번 사건 역시 동일범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요. 범인은 대체 무엇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걸까? 갑작스레 죽음을 맞게 된 피해자간에 어떤 공통요인이 있는 것일까? ‘스나이퍼’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숨겨진 비밀과 단서를 찾아 하나하나 연결하며 읽어나가면서 역시 넬레 노이하우스! 감탄을 했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호흡이 척척 맞는 최강의 콤비 그 자체였구요. 딴엔 프로파일러라며 깐족대고 밉상인 행동을 일삼는 네프와 강력반 수사팀간의 밀당도 소설의 재미를 주는 요소로 한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야기, 스토리가 가진 힘이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욕망과 그늘, 그로 인해 벌어지는 슬픔과 아픔은 인간을 어떻게, 얼마나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단순히 킬링타임용의 유희거리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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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박물관 산책 -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와 함께하는
이희수 지음 / 푸른숲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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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유일하게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꽃보다 시리즈'이다. 배낭여행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던 때라 평균연령이 70세를 훌쩍 넘긴, 인생의 황혼기 할배들이 유럽과 대만, 스페인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건 획기적인 일이었다. 열정이 가득한 젊은이에 비해 그들은 역한 체력으로 인해 걸음도 느리고 때문에 많은 곳을 여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젊은이보다 풍부하고 넓은 삶의 경험과 식견을 갖추고 있어서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고 유연하게 포용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꽃할배들이 터키를 갈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나라, 터키. 어마어마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터키를 보게 될거란 사실에 흥분했는데... 얼마 후 현지의 상황이 좋지 않아 여행지가 그리스로 변경되어서(방송은 만족스럽긴 했으나)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최근에 출간된 <터키 박물관 산책>을 통해 전세계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나라, 터키의 박물관들을 문화인류학자인 이희수 교수의 설명과 함께 느긋하게 둘러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에는 모두 17곳의 박물관이 소개되어 있는데 지나온 과거 인류의 역사와 문화, 예술, 삶..등을 한데 담고 있는 곳이 ‘박물관’이니만큼 각각의 박물관들은 모두 저마다의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아름다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박물관 몇 곳을 꼽아보면 가장 먼저 소개된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이다. 세계 5대 고고학 박물관으로 꼽히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자그마치 100만점이 넘는다. 방대한 유물을 소장한 곳이라 기념비적인 것들이 눈에 띄었는데 세계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인 ‘카네시 조약 점토판’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오랫동안 소모전을 벌이던 이집트와 히타이트 제국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기록으로 남긴 것이 ‘카네시 조약 점토판’인데 제삼국의 침략시 공동방어, 전쟁포로 보상과 포로 송환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등의 조약내용들을 보면 도무지 고대의 것이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불교의 문양, 부처의 말씀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알고 있는 연꽃이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에 조각되어 있다니, 놀라웠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성 소피아 박물관]은 또 어떤가. 높이가 자그마치 56미터에 이르는 돔형의 중앙 홀에 그 어떤 지지대나 기둥이 없다니 실로 경이로웠다.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박물관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의 아픈 역사의 궤적도 담고 있었다. 916년은 교회로 사용되다가 이후 481년은 모스크로, 그 이후부터 박물관으로 개방되었다고 하는데 의외인 것은 이슬람에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호메트 2세는 인물성화를 파괴하지 않고 흰색 천을 덮어두는 정도로 그쳤다고 한다. 당시 성 소피아 성당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이 전시된 [톱카프 궁전 박물관],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오스만투르크의 이스탄불의 시대가 열리는 대사건을 재현해놓은 [1453 파노라마 박물관],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우는 순간부터 “구석기 시대의 특징은....”, “문명의 발생지로 말할 것 같으면....”이라고 지겹게 들었던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등 터키는 한마디로 나라 전체가, 도시 곳곳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거대한 박물관이었다.

 

몇 달 전부터 위대한 저서, 서양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외뒷세이아>를 시작으로 자그마치 12년에 걸친 대장정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다. 모르고 지나쳤던 인류의 위대한 고전을 이제야 제대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었지만 12년 후의 나이를 생각하면 과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일단 시작하고 나니 때론 일상에 지쳐서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후회는 없다. 꽃할배도 해냈는데 나도 해낼 수 있을거라는 일종의 근거없는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모임에 가보니 일부의 회원들은 터키를 여행하는 자금을 매달 조금씩 모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류의 역사, 문화의 현장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라는데...<터키 박물관 산책>을 보고 나니 갑자기 나도 함께 떠나고 싶어진다. 사진이 아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터키는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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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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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테스,란 영화가 개봉됐을 때의 일들이 생각난다. 화제는 단연 테스 역을 맡은 나스타샤 킨스키였다. 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과 붉은 입술의 테스가 자신에게 건네는 빨간 딸기를 손으로 짚으며 두려움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모습은 보는 이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다만 영화가 연령제한이 있어서 영화 관람을 하진 못했고 아쉬움을 책으로 덜어냈다. 순수한 여인 테스가 상반되는 두 남자, 알렉과 에인젤과의 사랑과 운명으로 방황하고 불합리한 인습과 편견으로 멍들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연령제한 영화를 당당하게 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봐야할 영화로 <테스>를 꼽았지만 나와 영화 <테스>는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소설 속 테스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사진 몇 장만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지금도 상상에 머물러 있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란 소설이 막 출간됐을 때 띠지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헐리우드 최고 기대작’이라는 문구가 있긴 했지만 그저그런 흔한 소설일거라고 생각했다.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것까지? 해서 그냥 무심히 넘겼는데 우연히 지인에게서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가 다름아닌 <테스>의 토머스 하디라는 말을 들었다. 토머스 하디 작품이라고?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이번에야말로 원작소설도, 영화도 놓치지 않으리라.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여러 면에서 <테스>를 떠올리게 했다. 순수한 여인 더버빌가의 테스에게 알렉과 에인젤이 있었다면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 에버딘에게는 가브리엘 오크와 윌리엄 볼드우드, 프랭크 트로이라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테스가 가난으로 모진 운명의 직격탄을 맞은데 비해 밧세바는 숙부에게 물려받은 땅과 농장이 있으며 테스가 순응하는 성격이라면 밧세바는 당당한 면모를 보여준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지성과 미모에 당당한 매력까지 갖춘 밧세바가 자신에게 맞는 남성상, 배우자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이다. 밧세바를 본 순간부터 매료되어 사랑을 맹세하는 가브리엘은 그녀의 주변에 머물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농장을 소유한 부유한 윌리엄은 밧세바가 장난스레 보낸 편지가 계기가 되어 밧세바에게 호감을 표시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밧세바가 이상형으로 생각한 남자가 자신의 삶과 재산을 모두 맡길 수 있는 강한 남자여서일까? 밧세바는 거칠지만 적극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위험한 매력의 소유자 프랭크에게 사로잡히고 그와 결혼을 감행한다. 하지만 ‘신혼의 달콤함은 유효기간이 고작 3개월’이란 말이 있듯이 밧세바와 프랭크의 결혼생활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파국을 맞이하고 마는데...

 

소설은 19세기 영국이 배경이다. <테스>에서처럼 엄격한 윤리관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던 시기의 작품이라 지금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밧세바가 가브리엘과 윌리엄과 프랭크와 서로 얽히면서 자신의 짝, 반려자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남자가 여러 유형의 남자들을 대표하는 격이랄까. 여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소극적인 남자와 부유하고 예의범절이 몸에 배었지만 여자를 끄는 매력이 살짝 부족한 남자와 매사에 자기 멋대로인 상남자 포스를 물씬 풍기는 남자. 이 세 유형의 남자(혹은 여자)가 실제로 주변에 있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덮으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토마스 하디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랑과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나라? 어떤 남자든지 남자에게 기대려하지 말고 여자 스스로 능력을 갖추어 주체성을 찾아라? 사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건 오로지 독자인 내게 남겨진 몫이니까. 그나저나 영화 개봉일이 언제일까?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 할텐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삶의 모습, 풍광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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