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박물관 산책 -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와 함께하는
이희수 지음 / 푸른숲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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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유일하게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꽃보다 시리즈'이다. 배낭여행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던 때라 평균연령이 70세를 훌쩍 넘긴, 인생의 황혼기 할배들이 유럽과 대만, 스페인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건 획기적인 일이었다. 열정이 가득한 젊은이에 비해 그들은 역한 체력으로 인해 걸음도 느리고 때문에 많은 곳을 여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젊은이보다 풍부하고 넓은 삶의 경험과 식견을 갖추고 있어서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고 유연하게 포용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꽃할배들이 터키를 갈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나라, 터키. 어마어마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터키를 보게 될거란 사실에 흥분했는데... 얼마 후 현지의 상황이 좋지 않아 여행지가 그리스로 변경되어서(방송은 만족스럽긴 했으나)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최근에 출간된 <터키 박물관 산책>을 통해 전세계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나라, 터키의 박물관들을 문화인류학자인 이희수 교수의 설명과 함께 느긋하게 둘러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에는 모두 17곳의 박물관이 소개되어 있는데 지나온 과거 인류의 역사와 문화, 예술, 삶..등을 한데 담고 있는 곳이 ‘박물관’이니만큼 각각의 박물관들은 모두 저마다의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아름다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박물관 몇 곳을 꼽아보면 가장 먼저 소개된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이다. 세계 5대 고고학 박물관으로 꼽히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자그마치 100만점이 넘는다. 방대한 유물을 소장한 곳이라 기념비적인 것들이 눈에 띄었는데 세계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인 ‘카네시 조약 점토판’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오랫동안 소모전을 벌이던 이집트와 히타이트 제국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기록으로 남긴 것이 ‘카네시 조약 점토판’인데 제삼국의 침략시 공동방어, 전쟁포로 보상과 포로 송환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등의 조약내용들을 보면 도무지 고대의 것이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불교의 문양, 부처의 말씀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알고 있는 연꽃이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에 조각되어 있다니, 놀라웠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성 소피아 박물관]은 또 어떤가. 높이가 자그마치 56미터에 이르는 돔형의 중앙 홀에 그 어떤 지지대나 기둥이 없다니 실로 경이로웠다.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박물관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의 아픈 역사의 궤적도 담고 있었다. 916년은 교회로 사용되다가 이후 481년은 모스크로, 그 이후부터 박물관으로 개방되었다고 하는데 의외인 것은 이슬람에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호메트 2세는 인물성화를 파괴하지 않고 흰색 천을 덮어두는 정도로 그쳤다고 한다. 당시 성 소피아 성당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이 전시된 [톱카프 궁전 박물관],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오스만투르크의 이스탄불의 시대가 열리는 대사건을 재현해놓은 [1453 파노라마 박물관],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우는 순간부터 “구석기 시대의 특징은....”, “문명의 발생지로 말할 것 같으면....”이라고 지겹게 들었던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등 터키는 한마디로 나라 전체가, 도시 곳곳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거대한 박물관이었다.

 

몇 달 전부터 위대한 저서, 서양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외뒷세이아>를 시작으로 자그마치 12년에 걸친 대장정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다. 모르고 지나쳤던 인류의 위대한 고전을 이제야 제대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었지만 12년 후의 나이를 생각하면 과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일단 시작하고 나니 때론 일상에 지쳐서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후회는 없다. 꽃할배도 해냈는데 나도 해낼 수 있을거라는 일종의 근거없는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모임에 가보니 일부의 회원들은 터키를 여행하는 자금을 매달 조금씩 모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류의 역사, 문화의 현장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라는데...<터키 박물관 산책>을 보고 나니 갑자기 나도 함께 떠나고 싶어진다. 사진이 아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터키는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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