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투정하는 아이를 겨우 재워놓고 책을 들었다. 원색의 화려한 표지로 포장한 다른 책과 달리 하얀색 표지가 유난히 눈길을 끌던 책이었다. 오른쪽 위 귀퉁이에 작게 씌여진 <Q&A>. 여러 상징적인 문양과 인물, 그림들이 어우러져 영어 알파벳 Q와 A를 이루고 있었다. 감각적이면서 깔끔하다.


더구나 소설의 배경이 바로 인도, 인디아다. 여행자유화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인도의 풍습이나 유물, 유적을 다룬 책은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그에 비해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은 보기 드물다. 게다가 순식간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노란색 띠지의 문장!  “나는 체포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믿기지 않았다. 살인이나 폭행, 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아니라 TV퀴즈쇼에서 우승했다고 사람을 체포하는 나라가 요즘 세상에 어디 있겠어. 지금이 19세기나 20세기도 아닌데 말이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파리도서전 독자상과 남아프리카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걸 보면 저자가 책 속에서 풀어놓은 얘기가 전혀 황당한 내용이 아니라는 건 분명한데....그래도, 왠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왜지?


이 책은 주인공이 경찰에 의해 체포되면서 시작한다. 자신이 왜 체포됐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는 주인공에게 취조관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뭔 놈의 이름이 이래? 온갖 종교를 뒤섞어놓았군.”하며 대뜸 짜증부터 낸다. 그리고 그가 체포된 이유가 뭔지 알려준다. 토머스가 TV퀴즈쇼에 출연해서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속임수를 썼기 때문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빈민가에 살면서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웨이터가 박사도 풀기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모두 알아맞힐 수 없다는 거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퀴즈쇼 제작진과 취조관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토머스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굶주린 몸에 가해진 가혹한 고문으로 토머스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갈 즈음, 한 여인이 나타난다. 자신을 토머스의 변호사 스미타라고 소개한 그녀는 그가 퀴즈쇼의 모든 답을 어떻게 맞혔는지 알아내기 위해 토마스의 삶을 하나하나 추적해나간다.


이후의 소설은 토머스의 과거가 회상처럼 떠오르고 곧이어 그와 관련된 퀴즈쇼 문제가 연결되면서 진행된다. 예를들어 토머스와 친구 살림은 배우 아르만 알리가 출연한 영화를 자주 보러 갔는데 살림은 아르만을 좋아한 나머지 그의 대사를 외우다시피 했다. 그때 출제된 문제는 아르만 알리와 프리야 카푸르가 처음으로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는 무엇인가...였다. 토머스는 당연히 이 문제의 정답을 맞혔고 1000루피를 벌었다.


이렇게 퀴즈쇼에 출제된 열 세 개의 문제는 토마스의 삶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 두 개가 아니라 모든 문제가....우연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거 아닌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라고, 우연이 연이어 계속 된다면 그건 필연이고 운명이란 생각이 든다.


각각의 문제마다 보여지는 토마스의 삶이 때로 놀랍고 엽기적인 일,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계속 되는데도 지겹거나 뻔한 스토리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옥죄는 가난에서 벗어날 가망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낙천적이고 정직한 그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저자 비카스 스와루프의 이야기 풀어내는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데뷔작이니...굉장하다.


열 여덟살의 청년 토마스의 삶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인도의 숨겨진 면을 들여다본 듯하다. 타지마할 같은 유적지 몇 개와 뿌리깊은 신분제도 외에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극심한 빈부격차,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생활....등 이 책으로 인해 인도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형부근무 때문에 온가족이 인도에 살고 있는 언니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얘기 끝에 물었다. “근데 언니, 10억 루피가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나 되지?” “...왜?” “그냥 궁금해서...읽고 있는 책에 그런 대목이 나와서...” 언니가 알려준 방법으로 환율을 조회해봤다. 그랬더니 인도 10억 루피는 약 60,635,000원이었다. 꽤 큰 돈이다.


친정엄마는 나만 보면 늘 ‘책 자꾸 읽어서 뭐하냐. 퀴즈 프로그램 나가서 상금 좀 받으면 얼마나 좋냐’...고 핀잔을 주신다. 이담에 또 재촉하면 그땐 퀴즈쇼에서 우승한 것 때문에 체포된 토마스의 얘길 해드려야겠다. 그럼 단념하시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이 참 깔끔하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손에 들고 읽어도 될 정도로 크기도 아담하다. 제목은 또 어떤가. 마치 초등학생이 쓴 듯 서툰 글씨로 ‘뒤적뒤적 끼적끼적’이라 적혀있다. ‘뒤적뒤적 끼적끼적’이란 말의 느낌과 표지가 전달하는 분위기만 보면 전혀 부담없어 보인다. 그런데 부제를 보아하니 ‘김탁환의 독서열전.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대한 기록’이라 되어있다. 소설가 김탁환의 책은 이 ‘뒤적뒤적 끼적끼적’이 처음이라 그의 영혼을 뜨겁게 달군 100권의 책이 과연 어떤 책일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표지를 넘겨 가장 먼저 차례부터 훑어봤다. 목적은 내가 읽은 책은 몇 권이나 될까...궁금해서였다. 소설가와 아줌마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와 나는 같은 또래(사실은 동갑)가 아닌가. 나도 어렸을 때부터 책 꽤 많이 읽은 편이니 은근히 기대가 됐다. 그.런.데...세상에 이럴수가. 최소한 양손 열손가락 정도는 채우겠지 했는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초토화, 완전전멸에 가까운 기록으로 급좌절모드에 빠져버렸다. 그럼 그렇지. 김탁환이 누구야. 21세기 한국 문학을 이끄는 소설가잖아. 그러니 책읽는 수준도 천지차이지...안그래?




책은 10개의 작은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이여 인생이여, 너희 얼굴 참 곱구나’에서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시작으로 김탁환은 말문을 연다. 그에게 오스터의 책은 힘들 때마다 기댈수 있는 언덕이었고 새로운 길에 들어설 때마다 깃발처럼 나부끼는 책이라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도 항상 <빵굽는 타자기>를 정독시킨다고 한다.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기에 몰두했을 때 그에게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문장과 이야기라도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란 걸 깨달았다는 거였다. 노먼 F.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으며 지나온 시절을 뒤돌아보고,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마흔을 앞두고 다시 읽으면서 가장의 처절한 고독을 느꼈다고 한다. 또 그가 한국문단에 발을 들여놓을 즈음 읽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통해 대하소설 작가의 지침을 배울 수 있었으며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쓴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을 빌어 ‘책이란 만인의 대학’이라며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을 꼭 만들어라’고 강조한다.




예술과 문학, 역사, 인문, 과학....다방면의 책을 두루 읽고 자신의 영혼에 녹여낸 그는 ‘비일상적인 일상들’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을 얘기하면서 삶이 때론 한없이 가벼울 수도 있다며 ‘무거우면 안돼. 가볍게, 남쪽으로 튀어!’라고 유머스런 조언을 한다. 그리고 의외의  책, 아니 만화 <음주가무연구소>. <노다메 칸타빌레>의 작가 니노미야 토모코의 만화인 <음주가무연구소>는 술에 취하다못해 술이 사람을 먹는 지경에 이른 이들의 온갖 추태가 총집합된 책이다. 읽으면서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나와 달리 김탁환은 그 책에서 연민을 느꼈다고 한다. ‘취하지 않고 이 각박한 세상 어찌 살아가리’하며 이태백의 시를 읊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김탁환의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은 단순한 기록 이상이었다. 이 책을 부적삼아 가까이에 두고서 뭐라도 뒤적이고 사소한 거라도 끼적이고 싶어진다. 그가 느꼈던 감(感)과 동(動)했던 순간들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희망을 갖자고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다. 읽었던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음을, 읽어야 할 책이 많기에 삶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고. 오히려 행복하다고. 참, 임진왜란을 다룬 책을 개작할 계획이라고 했던데, 그 책은 출간됐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지음, 최인자 외 옮김 / 해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이제야 만났다. 사실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그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구입하고 아직 읽지도 못했을 때 주위에서 엄청난 얘기들을 쏟아냈다. ‘세상에, 따옴표가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줄줄줄이라니까.’ ‘읽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지.’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이런 상황이라 그의 책을 읽는다는 건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의 책을 부지런히 사들였다.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불리는 <도플갱어>와 <동굴>은 물론이거니와 <눈먼 자들의 도시>를 뒤이은 <눈뜬 자들의 도시>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까지 구입했다. 왜? 그 작가에 관해 알기 위해선 적어도 3~5개의 작품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는? 안타깝고 죄송스럽게도 처음 책장에 꽂았던 자리에 아직도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왜냐면 겁이 나서.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낼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수도원의 비망록>은 왠지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알려진 그의 책보다 저작연도가 훨씬 앞선 것이었고 무엇보다 내게 용기를 줬던 건 ‘주제 사라마구의 유일한 러브 스토리’라는 거였다. 제목까지 ‘비망록(備忘錄)’ 아닌가. 옳지. 바로 이거야. 이 작품으로 주제 사라마구를 하나씩 알아가면 돼. 그동안 기다리길 잘했지. 오호...정말 그럴까?




책은 포르투갈의 군주인 주앙 5세가 마리아 아나 왕비의 침실을 방문할 거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혼한지 2년이 되도록 왕비가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거였다. 왕자의 탄생을 학수고대하는 왕실로 봐선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때에 왕을 알현한 프란시스쿠 수도회의 안토니우 수도사는 이런 얘길 한다. 마프라 마을에 수도원을 하나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면 폐하의 뒤를 이을 자식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거라고. 다만 그 수도원은 반드시 프란시스쿠 수도회의 종단에서 운영해야만 한다고. 어찌보면 황당무계한 얘기가 아닐 수 없지만 왕은 흔쾌히 약속하고 그걸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왕비는 드디어 임신을 하고 본격적으로 수도원 짓는 작업에 들어간다. 군주인 주앙 5세가 계획한 수도원을 짓기 위해 엄청난 인원이 마프라로 모여든다. 백성들 각자의 사정이나 여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그리고 이 책의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발타자르와 블리문다!! 발타자르는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마녀재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블리문다를 만나 그들은 서로에게 이끌리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런데 블리문다는 음식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사람들의 몸 안에 있는 것, 땅 밑에 있는 것들을 보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런 능력 때문에 블리문다는 아침마다 일어나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눈을 감고 빵부터 먹는다. 블리문다의 그런 사연을 알게 된 발타자르, 그들은 함께 집을 떠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기계인 파사롤라를 만드는 바르톨로메우 로렌수 신부를 만난다. 파사롤라가 제대로 작동해서 하늘을 날려면 꼭 필요한 게 있었다. 바로 하늘을 꼭 날아오르겠다는 ‘인간의 의지’였는데 블리문다가 그 인간의 의지를 모으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힘겹게 책을 다 읽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유일한 러브 스토리라고 하지만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거기다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문장, 따옴표 없는 대화체를 드디어 실감했다. 줄줄 이어지는 문장이라 한 페이지에 한번 정도 단락이 나누어지는 게 너무나 반가웠다. 밤에 책을 읽다 그대로 엎드려서 잠든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도 내가 과연 저자인 주제 사라마구가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사랑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알고 있는걸까. 인간의 의지란 정말 어떤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블리문다가 인간의 의지를 찾아 힘든 길을 떠났듯 나역시 힘든 독서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읽었다는 것. 만세다 만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석 달린 오즈의 마법사 - 오즈의 마법사 깊이 읽기
L. 프랭크 바움 원작,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마이클 패트릭 히언 주석, 공경희 / 북폴리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땐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몸집이나 두뇌, 경험 모든 면에서 아이는 불리했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동지팥죽을 몇 그릇씩 먹었다. 그런데 막상 까치발을 하면서까지 되고 싶었던 어른, 그것도 부모가 되고 보니 이젠 어린 시절이 그립다. 순수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타임머신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없는 지금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때는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얼마전 주석을 곁들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번엔 <오즈의 마법사>를 만났다. 연두와 초록빛 표지에 반짝반짝  금빛 테두리가 둘러져있는 책, 그것도 상세한 주석을 덧붙여서 보통 책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에 약 500쪽의 두툼한 책으로. 주석? 아이들 동화가 재밌으면 됐지 뭐하러 주석까지 달아서 숨은 뜻이며 의미같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냐고 여길지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불어온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오두막집채로 휘말려 도로시가 겁 많은 사자와 허수아비, 나무꾼을 만나 여러 신나는 모험을 벌인다는 <오즈의 마법사>는 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한 흥미와 가치가 있다. 하지만 궁금해진다. 백 년 전, 그것도 미국을 배경으로 쓰여진 동화가 지금까지도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학자들에게 연구 대상이 된다는 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무엇 때문일까. <오즈의 마법사>의 무엇이 이토록 오래토록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오즈의 마법사> 원작 출간 100주년 기념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저자의 간단한 인사말이 자리잡는 곳이 100쪽이 넘는 분량으로 묵직해졌다. 저자인 바움이 <오즈의 마법사>를 어떻게 쓰게 됐는지, 삽화를 넣은 덴슬로우와 함께 작업해나간 과정과 영화나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설명해놓아서 <오즈의 마법사>가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란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본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문을 읽는 게 아니라 본문을 읽어나가는 도중 주석을 읽는 게 사실 번거로울 수도 있다. 게다가 그 분량이 때론 본문보다 몇 배나 많은 부분도 있어서 흐름을 놓치지 않을까 살짝 우려되긴 했지만 주석달린 앨리스를 읽으면서 익숙해져서 그런지 걱정했던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아주 사소한 것, 숨겨진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주석이 달려 있어서 새로운 면을 보게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평소 잘 알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얘기들, 누가 첫사랑이었다더라 하는 식의 숨겨진 비밀들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보는 재미이다. 원작의 초판에 수록된 일러스트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책을 손에 쥐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수록된 그림을 보는 거였는데 등장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잘 살린 올컬러 그림과 사진들, 공연에 사용된 포스터들을 보고 있자니 시간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동화는 아이들만 보는 거라고? 천만의 말씀. 성인들도 동화를 읽어야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순수함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에 매료된 아이에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꼭!!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북소녀 2009-02-2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축하해요~^^

자목련 2009-02-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님, 저두 축하드려요. 넘 멋져요.^^*

몽당연필 2009-02-2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뒷북소녀님, 자목련님. ^^

순오기 2009-02-25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님, 이주의 리뷰에 잘 올라오는 거 같아요. 축하합니다!
나는 일년에 딱 하나 뽑히던데~ 게다가 넘보지도 못할 분야의 리뷰가 많더군요.
책나눔하면서 님의 리뷰 찾아 땡스투 하는 센스도 발휘했어요.^^

몽당연필 2009-02-2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순오기님.
알라딘 이주의 리뷰는 처음이에요. 그래서 넘 기뻐요. ^^

emhy311 2009-02-28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 합니다. 좋은서평 이네요.

몽당연필 2009-03-0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emhy311님.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20세기 최고의 걸작 SF로 추앙받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핑크빛 띠지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 그런 영화가 있었나? 본 기억이 없다. 궁금한 마음에 검색해봤더니 국내엔 1993년에 개봉한 영화였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았는데 몇 장의 스틸컷을 보니 온통 침침하고 어두운 장면이어서 순간 놀랐다. 넌 대체 뭘 담고 있는 거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이 책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최후의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지구. 극심한 방사능낙진으로 인해 생명체가 살아남기 힘든 행성으로 변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민행성으로 떠나고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매일 아침마다 역한 냄새가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외출할 땐 방진복을 입어야하며 아기를 낳으려면 ‘정상인’이라는 판정을 받아야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 동물들이 온전할리 없다. 지구의 모든 숲에서 올빼미가 모습을 감추는 걸 시작으로 거의 모든 동물이 멸종되고 만다. 어쩌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진짜 동물은 희소성 때문에 엄청난 가격을 호가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진짜 동물을 갖기를 염원한다. 살아있는 동물을 기르는  것이 자신의 능력과 재력, 인간성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경찰서 소속 현상금 사냥꾼인데 그의 소원은 다름아닌 진짜 동물을 기르는 거였다. 안드로이드를 은퇴시켜서 받는 몸값을 모으면 자신이 원하는 동물을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던 차에 그의 선배였던 데이브가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받아 입원하면서 그의 일거리까지 맡아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 사냥에 돌입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릭이 처리해야할 상대인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거의 흡사해서 구별하기조차 힘들다는 최신형 ‘넥서스-6 안드로이드’란 거였다. 지능으로만 보자면 ‘특수자’로 분류된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는 ‘넥서스-6 안드로이드’. 그들은 이주행성인 화성에서 인간 대신 힘든 노동을 도맡아하다가 몇 명이 무리지어 지구로 도망쳐 나온 거였다. 릭은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를 통해 인간과 안드로이드와의 감별을 시도하지만 그 중엔 가짜 기억이 이식된 안드로이드도 있어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그런 릭을 넥서스-6 안드로이드인 레이첼이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또 한명의 주인공인 존 이지도어. 그는 정신능력이 최소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특수자’로 분류되어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닭대가리’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줄곧 혼자 지내던 아파트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이 건물에 나 말고 누가 있다’고 생각한 이지도어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그 누군가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 아니 그녀는 바로 지구로 도망쳐온 안드로이드였다. 이지도어는 새로운 입주자가 안드로이드란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시간적 배경이 현재의 시점과 가까워선지 본문의 내용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지는 않다. 감정전환기란 기계로 사람의 기분을 조작하는 대목도 어찌보면 현재와 비슷하다. 음악만 보더라도 ‘우울할 때 듣는 음악’ ‘슬플 때 듣는 음악’ ‘집중할 때 도움을 주는 음악’...처럼 여러 가지로 구분해놓은 음반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란 질문엔 선뜻 답할 수가 없었다. 감정이입하는 능력이 얼마나 잘 발달되었는지에 따라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장면도 의문스러웠다. 틀림없는 인간, 그것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간임에도 그의 행동을 보면 결코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은가. 정답이 없다면 해답을 찾자. 과연 무엇이 해답이 될 것인가.




필립 K.딕.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표지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그는 여전히 답이 없다. 책속 미래의 지구에서 울려퍼지던 화성이주  홍보 문구가 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떠날 것입니까, 퇴보할 것입니까? 선택은 당신의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