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지음, 최인자 외 옮김 / 해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이제야 만났다. 사실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그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구입하고 아직 읽지도 못했을 때 주위에서 엄청난 얘기들을 쏟아냈다. ‘세상에, 따옴표가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줄줄줄이라니까.’ ‘읽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지.’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이런 상황이라 그의 책을 읽는다는 건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의 책을 부지런히 사들였다.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불리는 <도플갱어>와 <동굴>은 물론이거니와 <눈먼 자들의 도시>를 뒤이은 <눈뜬 자들의 도시>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까지 구입했다. 왜? 그 작가에 관해 알기 위해선 적어도 3~5개의 작품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는? 안타깝고 죄송스럽게도 처음 책장에 꽂았던 자리에 아직도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왜냐면 겁이 나서.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낼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수도원의 비망록>은 왠지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알려진 그의 책보다 저작연도가 훨씬 앞선 것이었고 무엇보다 내게 용기를 줬던 건 ‘주제 사라마구의 유일한 러브 스토리’라는 거였다. 제목까지 ‘비망록(備忘錄)’ 아닌가. 옳지. 바로 이거야. 이 작품으로 주제 사라마구를 하나씩 알아가면 돼. 그동안 기다리길 잘했지. 오호...정말 그럴까?




책은 포르투갈의 군주인 주앙 5세가 마리아 아나 왕비의 침실을 방문할 거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혼한지 2년이 되도록 왕비가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거였다. 왕자의 탄생을 학수고대하는 왕실로 봐선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때에 왕을 알현한 프란시스쿠 수도회의 안토니우 수도사는 이런 얘길 한다. 마프라 마을에 수도원을 하나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면 폐하의 뒤를 이을 자식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거라고. 다만 그 수도원은 반드시 프란시스쿠 수도회의 종단에서 운영해야만 한다고. 어찌보면 황당무계한 얘기가 아닐 수 없지만 왕은 흔쾌히 약속하고 그걸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왕비는 드디어 임신을 하고 본격적으로 수도원 짓는 작업에 들어간다. 군주인 주앙 5세가 계획한 수도원을 짓기 위해 엄청난 인원이 마프라로 모여든다. 백성들 각자의 사정이나 여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그리고 이 책의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발타자르와 블리문다!! 발타자르는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마녀재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블리문다를 만나 그들은 서로에게 이끌리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런데 블리문다는 음식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사람들의 몸 안에 있는 것, 땅 밑에 있는 것들을 보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런 능력 때문에 블리문다는 아침마다 일어나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눈을 감고 빵부터 먹는다. 블리문다의 그런 사연을 알게 된 발타자르, 그들은 함께 집을 떠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기계인 파사롤라를 만드는 바르톨로메우 로렌수 신부를 만난다. 파사롤라가 제대로 작동해서 하늘을 날려면 꼭 필요한 게 있었다. 바로 하늘을 꼭 날아오르겠다는 ‘인간의 의지’였는데 블리문다가 그 인간의 의지를 모으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힘겹게 책을 다 읽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유일한 러브 스토리라고 하지만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거기다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문장, 따옴표 없는 대화체를 드디어 실감했다. 줄줄 이어지는 문장이라 한 페이지에 한번 정도 단락이 나누어지는 게 너무나 반가웠다. 밤에 책을 읽다 그대로 엎드려서 잠든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도 내가 과연 저자인 주제 사라마구가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사랑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알고 있는걸까. 인간의 의지란 정말 어떤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블리문다가 인간의 의지를 찾아 힘든 길을 떠났듯 나역시 힘든 독서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읽었다는 것. 만세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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