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센트 1 ㅣ Medusa Collection 7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천천히 위로위로 가지를 뻗는다. 숨을 죽여라.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이성까지도 깨워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 저 암흑의 지옥으로 엄청난 공포에 삼켜지게 될 것이니...
히말라야 산맥 탐험에 나선 아이크 일행은 매서운 폭풍을 만나 동굴로 몸을 피한다. 동굴 속의 만다라를 살펴보던 아이크는 바싹 말라버린 시체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 거기엔 온몸 가득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영어로, 그것도 거꾸로. ‘사탄은. 존재한다’고. 어느 순간 일행 중 한명이 사라지자 그를 찾기 위해 아이크 일행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만 누군가에 의해 모두 순식간에 살해되어 처참한 시체가 되어 버린다.
언어학자이자 수녀인 앨리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나병 환자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념으로 마을 사람들과 사진 촬영을 하던 그녀는 한 소녀에게서 알 수 없는 얘기를 듣는다. 원로 지미 샤코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굶주린 신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앨리 대신으로. 착각이나 미신 같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녀는 곧 소녀에게서 선물로 받은 목걸이가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거란 군인의 말에 일순 혼란에 빠진다.
한편 보스니아의 몰리 캠프에서는 내전 당시 대량학살이 벌어진 지역에서 질소의 농도가 과다하게 배출되는 걸 포착한다. 이에 브랜치는 동료와 함께 문제의 현장에 탐사를 나가서 근접비행을 시도하다가 갑자기 추락한다. 그리고 헬리콥터에 함께 탑승했던 동료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브랜치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아이크, 앨리, 브랜치. 이 세 명의 주인공이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처음엔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사건들이 아이크와 브랜치가 만나고 앨리와 브랜치, 아이크와 앨리, 또 다른 이들이 합류하면서 서로 연결되고 눈덩이처럼 커진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와 배경도 어마어마하다. 바로 우리의 땅속. 저 깊은 곳에 존재하는 지하동굴 속에 현생인류와 반대의 진화과정을 거친 ‘헤이들’이 존재한다니! 흉측한 모습에 비해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는 그들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끔찍하게 고문하는가 하면 인육을 먹기도 한다. 지하동굴을 탐색나갔던 군인 25만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정부와 기업의 관심은 오로지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깊은 지하세계였다. 그곳에 새로운 나라,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는데...
책은 끓는 냄비를 연상시켰다. 냄비 밑바닥에서 물이 보글보글 막 끓어오르려는 찰라 불을 꺼버리는 것처럼 소설은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갑자기 다른 인물과 사건으로 튀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스토리 전환 때문에 몰입하기가 힘들어서 초반엔 꽤나 애를 먹었다. 그러다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대형타를 터트린다. 틀림없이 불이 꺼진 상태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계속 조금씩 끓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여기저기 널려있던 냄비가 한꺼번에 부글부글 끓어넘치기 시작한다. 숨가쁘게 몰아가는 속도, 따라가자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갑작스런 전개는 앞을 돌아볼 여력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땅 속 깊은 곳에 지옥이 존재한다. 자신들만의 문명과 역사를 가지고 생존을 거듭해온 그들. 기이한 모습만큼 포악하고 잔인하기 이를데없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저자는 탐사대를 땅 속 깊은 곳으로 이끌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난 이상하게도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을 훔쳐본 느낌이다. ‘사탄은 존재한다’. 무엇이 사탄인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는 지옥의 깊은 구렁텅이, 공포의 세계로 빠져버릴지 모른다. 쉬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