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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사춘기 시절의 기억이나 체험, 경험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 어떤 경험 혹은 기억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겠지. 그런데 그게 만약 성적인 경험이라면 어떻게 될까.
주인공은 열다섯 살의 소년 미하엘. 그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간염으로 인해 심한 구토를 한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난처하고 당황한 미하엘을 마침 우연히 길 가던 여인이 도와준다. 감사의 인사를 하라는 엄마의 말에 미하엘은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꽃다발을 들고서. 무작정 기다리다가 그녀, 한나와 다시 만난다. 미하엘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한나. 무심한 듯 보이는 동작, 몸에 배인 자연스러운 몸놀림에 미하엘은 순식간에 매료된다. 어린 소년, 한창 사춘기의 몸살을 겪는 미하엘에게 한나와의 두 번째 만남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후 미하엘은 다시 한나의 집을 찾고 서로에게 이끌린 듯 둘은 관계를 갖는다. 스물 한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의 만남은 계속되고 어느 날인가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그날부터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있기’가 그들 만남의 의식이 된다. 부활절 연휴엔 여행을 떠나서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어느샌가 미하엘은 한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곧이어 한나가 사라져버린다.
언제부터인가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나를 따라다니기를 멈추었다. 그녀는 기차가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면 뒤쪽에 처지는 도시처럼 뒤에 남았다. 그 도시는 그대로 있다. 우리의 등 뒤 어디에선가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서 그 도시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는가. - 94쪽.
한나가 떠난뒤 미하엘은 그녀를 찾기 위해 도시를 방황한다. 한나와의 기억으로 인해 심한 상실감과 굴욕을 느낀 미하엘은 점차 오만하고 차가운 성격으로 변해간다. 그런 어느날 세미나의 일환으로 참석한 법정에서 미하엘은 한나를 만나게 된다. 그것도 과거 나치수용소에서 여자감시원으로 있을 때의 사건으로 피고석에 자리한 모습으로. 재판이 계속되면서 당시 함께 일했던 감시원들의 증언과 한나의 행동을 통해 미하엘은 그녀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한나가 그 사실을 밝히면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완강히 거부하고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결국 한나는 종신형을 받고 미하엘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하엘은 책을 읽는다. 테이프에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낸다. 그것이 바로 한나에게 이야기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으므로...
나는 사실 한나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한나에게 한 손가락질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다. - 182쪽.
열 다섯 살의 소년과 서른 여섯 살의 여인이 관계를 갖는다...처음 느낌은 너무 싫다...였다. 하지만 책은 그런 원색적인 걸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남녀간의 사랑과 나치의 시대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자리잡은 인간의 자존심과 약점의 문제(237쪽)를 책은 담아내고 있었다. 쉽게 읽혀지지만 다분히 철학적인 사색과 질문들로 인해 책을 읽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았다. 가슴 밑바닥에 뭔가 묵직한 게 남았는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