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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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년 전 미술관 강좌에서 이런 얘길 들었다. “정물화나 인물화 같은 그림을 좀 더 유심히 보세요. 얼핏 사소하게 보이는 사물이나 배경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엔 수많은 상징과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림 속에 숨은 여러 의미들을 하나씩 찾아내다보면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더해질 겁니다.” 화가가 단순히 자기 앞에 있는 인물이나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란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모두 이어서 붙이지 않으면 전체를 알 수 없는 지그소 퍼즐처럼 그림에도 수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특별히 미술이나 그림 관련책을 찾아 읽어본다거나 주변 화랑의 전시회에 가는 노력도 하지 않은채  잊혀졌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란 부제가 붙은 <베르메르의 모자>. 표지엔 붉은 옷에 모자를 쓴 입고 남자의 뒷모습과 그 앞에 마주 앉은 여인의 그림이 있다. 부제의 의미대로라면 이 그림에 17세기 동서문명의 교류를 찾을 수 있다는건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었다. 제목에 있는 ‘모자’가 힌트인가?....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으로 시작한 이 책은 저자가 자전거여행 중에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가까운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게 된다. 다음날 아침 주인아주머니가 건네 준 엽서에 담긴 장소를 찾은 저자는 그곳에서 우연히 베르메르가 묻힌 곳을 찾게 된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어느날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델프트와 베르메르. 그 후로 저자는 베르메르의 흔적들을 찾아나선다. 그의 그림 속에 숨겨진 17세기의 역사와 문화를.




베르메르의 그림이 17세기 델프트에서의 삶을 그대로 가져온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림은 사진처럼 ‘찍힌’ 것이 아니라 아주 신중하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29쪽.




책에서 저자는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볼 때  어떤 것들을 주의깊게 봐야하는지 끊임없이 얘기한다. 그림에서 시간이나 장소의 흔적이 보이는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그림 속에 보이는 사물들을 창문 뒤에 있는 소도구쯤으로 여기지 말고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왜’라는 의문을 가지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들이 곧 17세기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평생토록 델프트를 떠나본 적이 없는 베르메르가 그린 유일한 풍경화 <델프트의 풍경>에서는 당시 북유럽에 몰아닥친 한파로 인해 네덜란드가 청어잡이에 성공할 수 있었고 VOC라 불리는 동인도 회사의 존재, 네덜란드의 번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표지그림인 <장교와 웃는 소녀>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보다 장교가 쓴 화려한 모자는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비버 펠트모자로 그 모자에 쓰이는 비버 가죽은 유럽인과 북미원주민의 교역에 통해 이뤄졌으며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고 한다. 또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이란 그림에서는 여인의 모습보다 침대 위에 놓인 터키카펫과 중국 접시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당시 화가들은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에 중국자기를 그려 넣었는데 그 중국 접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델프트의 가정에 들어오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베르메르. 그의 그림은 정말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전하고 있었다. 17세기 유럽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당시 유행했던 물건과 그들의 사치를 위해 전쟁이 벌어져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고문장면은 정말 끔찍하고 잔인했다), 담배와 아편중독으로 인해 중국은 서서히 병들어 갔으며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노예가 되어 유럽으로 들어와 물건처럼 거래가 됐다.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얕아선지 이 책의 흐름을 매끄럽게 따라가지 못했다. 책에 수록된 부분 지도외에 다이어리에 있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손으로 짚어가며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본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예술서인가 역사서인가’ 이 책은 예술서가 아니다. 역사서 역시 아니다. 역사와 예술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은 역사의 흐름 위에 있을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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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7-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재밌겠네요. 저 시기 네덜란드쪽의 정물화나 그림들은 사물 하나하나가 상징이라고 하는 얘길 많이 하더라구요. 근데 그거 하나 하나 짚으면서 그림을 보거나 미술책들 보면 머리 아파요? ㅎㅎ 근데 이거 그림을 통해 당시 교류사를 본다니 꽤 흥미로울 듯...
알라딘에서는 역시 이렇게 내가 모르던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최고라니까요? ^^
요즘 날 너무 덥죠? 몽당연필님도 더위먹지 마시고 쉬엄 쉬엄 건강하세요.

몽당연필 2008-07-2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람돌이님은 역시 알고 계셨네요.
그림 속에 숨은 상징들을 짚으면서 보는 거, 정말 재미있습니다. 쏠쏠하다는 표현이 딱이겠네요. 책에 소개된 그림의 크기를 좀 더 크게 하거나 부분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줬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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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늦은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음악과 함께 생활한다. 달콤한 잠을 깨우는 자명종의 음악을 비롯해 전화와 휴대폰의 벨소리, 초인종, 냉장고나 세탁기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에서부터 라디오나 쇼핑상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까지 우리는 그야말로 음악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음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난 음악에 재능이 없을 뿐 아니라 음악분야 전공자도 아니기 때문에 음악은 그저 듣고 즐길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음악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 삶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를 통해 나 자신이 음악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얼마나 무심하게 여겨왔는지 알 수 있었다.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 음악(Music)과 사랑(Philia)의 합성어로 ‘음악사랑’이란 의미인 이 책은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뇌와 음악에 무슨 관계가 있겠어? 하고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에게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니, 무슨 그렇게 섭한 말씀을...인간의 뇌와 음악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요. 인간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음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얼마나 큰데요....




음악 애호가이자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는 그동안 만났던 환자들의 사연과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조목조목 예를 들어가면서 얘기하고 있다.




어느날 번개를 맞고 쓰러진 이후로 갑자기 음악과 사랑에 빠져버린 40대 초반의 의사. 그는 원래 느긋하고 가족적이며 음악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번개를 맞으면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음악에 사로잡혔으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연주와 작곡에 몰입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특정한 음악만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음악발작 환자도 있었고(수술후 특정음악에 의한 발작은 사라졌다) 어떤 음악의 특정 부분이 며칠동안 계속 머릿속에서 울리는 ‘뇌벌레’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또 윌리엄스 증후군이라고 해서 지능지수는 낮은데 탁월한 음악성을 보이는 사람, 만화에서나 존재한다고 여겼던 절대음감의 사람, 어린 시절 앓았던 수막염을 계기로 한번 들었던 음은 절대 잊지 않는 사람, 특정한 음정을 들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음정과 연관된 맛을 혀로 느끼는 사람, 헤르페스 뇌염에 감염되어 기억이 오직 7초 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음악가...등 책에서 뇌에 생긴 이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음악에 대한 이해가 극도로 달라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리 읽어도 생소한 뇌에 관련된 용어와 평소엔 듣도 보도 못한 질병들은 책을  몰입해서 읽어나가는데 다소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측두엽 간질이니 발작, 투렛증후군이 어쩌구...하는 대목이 나오면 “아이고 머리야” 머리를 싸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책장을 덮을 때까지 수시로 앞쪽을 뒤적였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음악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아직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다 읽고 나니 왠지 뿌듯하다. 늘상 듣는 음악이 얼마나 큰 힘과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고 나니 음악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음악이 있다. 외항선원이셨던 친정아버지가 휴가로 집에 오시면 매일 아침마다 틀었던 음악이 있다. 오디오 볼륨을 한껏 올려 틀었던 그 음악은 그야말로 기상나팔이었다. 귀에 쩌렁쩌렁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을 피하기 위해 이부자리로 파고들었지만 그래도 그 소리는 따라왔고 우리는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앞부분만 조금 들었기에 난 그 음악의 제목도 몰랐다. 그러다 대학 2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겨울, 학교의 음악감상실에서 그 음악을 다시 만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왠지 익숙한 느낌에 이어 다가온 건 감동이고 그리움이었다. 어린 시절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그 음악에 매료되어 뒤늦은 눈물을 흘렸다. 그건 바로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 아버진 우리에게 새롭게 맞은 아침의 기분 좋은 느낌을 전하고 싶으셨던 건 아니었을까.

 

 

 

사소한 뱀꼬리 하나 : 책의 띠지도 진화한다. 띠지는 그냥 둘러진 게 아니라 책 표지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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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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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에 <Wilde>란 영화를 케이블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시작부분을 놓쳐서 영화의 제목이나 어떤 내용인지 몰랐지만 매력적인 배우 주드 로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보고 있었다. 주드 로와 또 한명의 주인공, 그들의 명연기에 몰입해서 영화를 계속 보다보니 그들의 이야기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간혹 동화 운운 하는 대사가 들리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알게 됐다. 왠지 야릇한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영화, 그건 다름아닌 오스카 와일드의 사랑과 절망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아일랜드 출신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 그의 환상동화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를 통해 <행복한 왕자>를 읽은 이후 그의 작품을 만나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 오스카 와일드와의 만남, 정말 오랜만이다. 거의 30년만인 셈인가?




검은색의 표지가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책 <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이 책에는 <별아이> <헌신적인 친구> <나이팅게일과 장미> <어부와 그의 영혼> <유별난 로켓 불꽃> <왕녀의 생일> <이기적인 거인> <젊은 왕> <행복한 왕자> 이렇게 모두 9편의 동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 아는 동화는 <나이팅게일과 장미> <행복한 왕자> <이기적인 거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처음 만나는 작품인 듯하다.




제목에 ‘동화’란 단어가 들어있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던 기존의 동화와는 많이 다르다. 밝고 아름다우면서 희망을 심어주고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를 담은 게 아니라 내용의 깊이나 전개방식이 무척 강렬하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성인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것 같다.




예를 들어 제일 처음 나오는 <별아이>는 오직 외모에 치중하는 이기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어느날 별아이는  자신의 친모가 찾아오자 그녀에게 ‘거지에다가 못생기고 누더기 차림’이라며 ‘구역질 나는 그 얼굴 보기 싫다’면서 쫓아버린다. 그런데 그 여인이 떠난 후 별아이의 모습이 징그럽고 못생기 얼굴로 변해버린다. 엄마를 쫓아버린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란 걸 깨달은 별아이는 엄마를 찾아나선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동화패턴과 흡사하다. 하지만 결말이 다소 섬뜩하다. 그동안 오만한 행동을 일삼았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왕이 되어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자의 최후치고는 가혹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 나이팅게일이 교수의 딸을 향한 청년의 사랑을 이루어 줄 빨간 장미를 피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나이팅게일의 희생으로 얻은 빨간 장미를 들고 청년은 서둘러 교수의 집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교수의 딸은 보석이 꽃보다 훨씬 값나간다며 자신을 외면하자 화가 난 그는 빨간 장미를 길가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사랑이란 정말 어리석은 것이라고 중얼거리는데 나이팅게일의 목숨과 맞바꾼 빨간 장미가 마차 바퀴에 짓밟히는 대목에 마음이 아팠고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좀 더 가까이 와, 작은 새야. 그러지 않으면 날이 밝기 전에 장미꽃을 다 피워내지 못할거야.”

나이팅게일은 가슴을 가시에 더욱 바짝 갖다 댔고, 결국 가시가 나이팅게일의 심장을 찔렀다. 그러자 타는 듯 격렬한 고통이 나이팅게일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고통이 쓰라리면 쓰라릴수록 나이팅게일의 노래는 더욱 격정으로 치달았다. 나이팅게일은 죽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 무덤 속에서 결코 잠들지 않는 사랑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름다운 장미는 동녘 하늘에서 피어난 듯 지난 핏빛으로 물들었다.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꽃잎은 선명한 진홍빛이었고 꽃의 심장부 역시 루비처럼 붉었다. - 77쪽.




이 외에도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주를 위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난쟁이의 슬픔이 담긴 <왕녀의 생일>, 아름다운 인어와의 사랑을 위해 마녀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리는 <어부와 그의 영혼>, 언제나 잘난척하는 로켓불꽃이 진흙탕 속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허영에 가득한 모습을 일삼는 <유별난 로켓불꽃>, 아이들이 쫓겨난 정원에 언제나 추운 겨울만 계속되다가 아이들에 찾아오고 나서야 다시 아름다운 정원으로 변한다는 <이기적인 거인>, 아름답고 진귀하며 값비싼 것이면 무엇이든 마음을 빼앗기는 <젊은 왕>, 어린 시절 제비와 왕자의 사랑과 우정에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행복한 왕자>. 이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다양하고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맹목적으로 아름다움을 쫓는가하면 허무에 빠져 깊은 한숨을 쉬고 사람들의 어두운 구석을 예리하고 포착해서 꼬집는 오스카 와일드와의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건 바로 삽화가 아닐까 싶다. 본문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네 명의 전문 그림작가가 그린 독특하고 개성적인 일러스트는 동화의 깊이를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물론 처음엔 헉, 하고 놀랄 정도로 섬뜩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몇 번 반복해서 보니 오스카 와일드 동화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만에 다시 만난 오스카 와일드, 역시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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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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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난다. 대학 신입생때 첫 전공수업시간의 강의 주제는 바로 ‘생물이란 무엇인가’였다. 생물이란 무엇인가.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며 생물만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교수님은 두 시간동안 열심히 말씀하셨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그때의 강의 내용 중 기억에 남아있는 건 거의 없다. 명색이 생물학도라면 이건 꼭 알아야한다고 하셨는데...중요한 골자는 모조리 홀랑 까먹고 그나마 남아있는 건 ‘생장, 생식, 진화, 자극에 대한 반응’...생물의 특성임과 동시에 생물과 무생물을 차이점이다. 또 생물이 지니고 있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선 아직도 많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할뿐....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 이 책을 들고 신입생 때의 일을 떠올렸다. 흩어진 지그소퍼즐, 그 낱낱의 내부엔 인간과 나비, 개구리 같은 생물과 DNA 사슬이 들어있다. 이것들을 모두 짜 맞추면 어떤 모양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격적인 얘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뉴욕 맨허튼이 등장한다. 혼잡한 도심 풍경,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의 모습을 한번 휘휘 돌아보고 카메라로 줌인 하듯 시선을 옮긴 곳은 바로 록펠러 대학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의학자 노구치 히데요의 업적과 그에 대한 미국에서의 평가를 서술하고 있다. 사실 노구치 히데요에 대해선 만화책(그것도 끝까지 보지 못했다 ㅠㅠ)으로 읽은 게 전부여서 그가 일본의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인 줄 몰랐다. 저자가 초점을 맞춘 것은 그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아니다. 노구치 히데요의 연구 진행 방식이 어떠했는지, 질병의 발병원인인 병원체를 추출하고 증명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수를 범하기 쉬운지 얘기하고 있다. 전자현미경이 발명과 함께 바이러스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짓는 기준에 혼란이 일고 있다고 말한다.




그 다음 저자의 눈길이 머문 곳은 어떤 고난과 비웃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히 성실하게 연구에 몰두한 과학자들 ‘이름없는 영웅’을 소개한다. 20세기 들어 생명과학은 화려한 꽃을 피우기에 이르렀는데 그 서막은 바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이 장식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엄청난 발견을 한 공적을 인정받아 왓슨과 크릭은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런데 그 DNA가 유전자란 걸  왓슨이나 크릭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오즈월드 에이버리.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예순을 넘긴 나이까지 연구실을 떠나지 않고 직접 시험관을 흔들고 유리 피펫을 조작했다. 그런 에이버리를 존경한 연구원들을 비롯한 록펠러 대학 사람들은 ‘에이버리에게 노벨상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과학 역사상 가장 부당한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왓슨과 크릭은 에이버리의 무등을 탄 버릇없는 손자에 불과하다(52쪽)’며 언짢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결국은 에이버리가 옳았고 머스키는 틀렸다. 에이버리를 끝까지 견디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아마 시종일과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자신의 손 안에서 흔들리는 시험과 내부에서 진동하던 DNA 용액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 51쪽.




에이버리처럼 자신의 피땀어린 연구 성과를 어이없이 도둑맞은 과학자가 또 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철저하게 귀납적인 접근으로 DNA의 구조에 다가가던 그녀는 왓슨과 크릭에게 DNA의 X선 사진을 도둑맞는다. 게다가 그녀를 독립된 연구원이 아닌 ‘조수’로 언급한 책도 출간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 어떤 분야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을 최우선으로 할 것 같은 과학자, 그들의 영광스런 업적 이면에 이런 비리와 은폐, 조작, 음모가 숨어있을 줄이야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책에서는 또 일본 대학에서의 연구실 환경이 썩 좋지 않다는 것(어쩐지 일본에 유학간 친구가 1년 후에 스위스로 떠났는데 혹시..???)과 지그소 퍼즐과 관련해서 잃어버린 조각의 모양을 알아내는 방법, 특히 광우병의 발병 원인인 프리온 단백질에 관한 대목은 광우병소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요즘이라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마지막, 책이 끝나갈 즈음 나왔다.




역시 우리는 뭔가 중대한 착오를 했거나 뭔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중대한 착오란 단적으로 말하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미천한 인식이다. 그리고 간과했던 것은 ‘시간’이라는 단어였다. - 227쪽.




생명과 시간. 저자는 말한다. 생명이란 텔레비전 같은 기계가 아니라고. 그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착오였다고. 수정란이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행진하기 시작하는 우리의 생명에 전진만 있을뿐 후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번 접히면 다시는 펼칠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 235쪽.




DNA의 존재를 찾아 생물의 신비와 미스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안내서 같은 이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는 내내 내 귓가에 맴돌았던 말이 있다. “@@야. 발 닦고 자라!” 수업시간에 졸고 앉아 있는 내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땐 좀 창피한 걸로 그쳤는데 이제야 후회를 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그랬으면 이 책 읽으면서 쩔쩔 매는 일이 없었을텐데....싶었다.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저자는 어린 소년시절부터 품어왔던 모양이다. 에필로그에 담겨있는 어린 시절의 얘기를 읽고 나니 저자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가 된다. 생명의 소중함, 존귀함을 아는 그이기에 더욱.




소년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알에 미세한 구멍을 내서 안을 들여다보자고 결심했다....나는 준비한 바늘과 핀셋을 사용해 조심스럽게 네모난 모양으로 구멍을 만들었다. 그런데....안에는 배에 노른자를 품은 작은 도마뱀 새끼가 어울리지 않게 큰 머리를 동그랗게 웅크리고는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순간, 나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듯한 기분이 들어 바로 뚜껑을 닫으려고 했다. 나는 곧 내가 저지른 짓이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한번 외부의 공기에 닿아버린 도마뱀 새끼는 서서히 썩어들었고 형태가 녹아 내렸다.

이 경험은 오랜 동안 괴로운 기억이 되어 내 안에 앙금으로 남았다. 분명 이 경험은 경이로웠다. 그래서 이렇게 생물학자가 된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내 의식에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 235~246쪽.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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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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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에 물들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두 권의 책 표지를 물들인 매혹적이고도 강렬한 色. 이 세상에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활활 타오를 듯 붉지만 그냥 빨강이 아니고 파도가 넘실대는 깊은 바다처럼 푸르지만 그냥 파랑이 아닌 어떤 色. 이 색깔의 이름이 도대체 뭘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나의 무식이 안타까웠다. 이 色이 담고 있는 얘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책날개를 보니 저자인 아라이는 중국 서북부의 티베트족 자치구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色에 물들다>는 저자의 첫 장편소설인 동시에 중국의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티베트 고유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의 작품에 티베트는 물론 중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티베트 소설이 문학상 수상작품이라니!!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붉은색 표지를 서둘러 넘기고 만난 첫대목에서 하얀 눈이 와락 안겨온다.




‘눈이 내린 새벽이었다.’...로 시작한 이 소설의 배경은 티벳과 중국(한족)의 접경지대다. 이 곳의 최고권력자이자 영주인 ‘투스’는 중국(한족) 황제의 책봉을 받는데 소설은 마이치 투스의 둘째 아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둘째 아들이 평범하지 않다. 마이치 투스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아이를 갖는 바람에 ‘바보’로 태어난다. 가족을 비롯한 누구나 ‘바보’로 알고 ‘바보’로 대하지만 정작 ‘나’의 행동이나 얘기 속에선 그걸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자에게 세습되는 ‘투스’란 자리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간에 피를 흘리지 않도록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분위기다.




자신들을 배신한 왕뻐 투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한족의 황특파원을 데려오면서 신식무기로 무장한 마이치 투스는 왕뻐 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황특파원이 두고 간 양귀비 씨앗을 심고 수확해 마이치 투스는 큰 부를 축적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투스들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잘려나간 사람의 머리에서 양귀비 씨앗이 싹을 트고 자라는 대목에선 소름이 끼쳤다.




온 들판을 붉게 물들이면서 사람들을 혼란시켰던 양귀비의 씨앗은 새와 바람을 타고 다른 투스들의 영지에서도 싹을 틔운다. 마이치 투스가 거둬들인 어마어마한 은돈의 유혹에 빠진 투스들이 너도나도 양귀비 씨앗을 심을 때 마이치 투스는 반대로 곡식을 심고 풍작을 거둔다. 양귀비 씨앗을 구하러 왔던 투스들이 이번엔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이치 투스를 찾으면서 양귀비로 붉게 타올랐던 대지가 식량전쟁으로 또다시 흔들리게 된다. 이에 마이치 투스는 북쪽과 남쪽 변경에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를 지어 두 아들을 보내는데...




‘나는 바보다’ 책에선 이런 대목이 심심찮게 나온다. 바보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실수를 해도 ‘바보라서 그렇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글자도 모르는 바보라서 하고 싶은 얘기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그는 100% 완전한 바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리를 볶아서 그 냄새로 오랫동안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불러오고 그들에게 한웅큼씩 건네주는 모습은 바보라고 할 수 없었다. 마이치 투스 집안의 집사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도련님이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고 롱꽁 투스 역시 “멍청한 척 하지 말아요. 당신은 소문 자자한 그 바보가 아니에요. 마이치 집안 둘째 아들이 바보가 아니거나, 당신이 마이치 집안 둘째 아들이 아니거나.....”란 말을 한다. 무엇이 바보고 무엇이 똑똑한 걸까.




티베트인 작가 아라이의 이름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 <色에 물들다>. 달라이 라마와 흰색의 나라로 불려지는 나라, 티베트. 그곳의 신화와 전설, 문화를 비롯해 그들이 지나온 역사 속의 아픔과 슬픔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티베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좀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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