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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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년 전 미술관 강좌에서 이런 얘길 들었다. “정물화나 인물화 같은 그림을 좀 더 유심히 보세요. 얼핏 사소하게 보이는 사물이나 배경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엔 수많은 상징과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림 속에 숨은 여러 의미들을 하나씩 찾아내다보면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더해질 겁니다.” 화가가 단순히 자기 앞에 있는 인물이나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란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모두 이어서 붙이지 않으면 전체를 알 수 없는 지그소 퍼즐처럼 그림에도 수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특별히 미술이나 그림 관련책을 찾아 읽어본다거나 주변 화랑의 전시회에 가는 노력도 하지 않은채  잊혀졌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란 부제가 붙은 <베르메르의 모자>. 표지엔 붉은 옷에 모자를 쓴 입고 남자의 뒷모습과 그 앞에 마주 앉은 여인의 그림이 있다. 부제의 의미대로라면 이 그림에 17세기 동서문명의 교류를 찾을 수 있다는건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었다. 제목에 있는 ‘모자’가 힌트인가?....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으로 시작한 이 책은 저자가 자전거여행 중에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가까운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게 된다. 다음날 아침 주인아주머니가 건네 준 엽서에 담긴 장소를 찾은 저자는 그곳에서 우연히 베르메르가 묻힌 곳을 찾게 된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어느날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델프트와 베르메르. 그 후로 저자는 베르메르의 흔적들을 찾아나선다. 그의 그림 속에 숨겨진 17세기의 역사와 문화를.




베르메르의 그림이 17세기 델프트에서의 삶을 그대로 가져온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림은 사진처럼 ‘찍힌’ 것이 아니라 아주 신중하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29쪽.




책에서 저자는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볼 때  어떤 것들을 주의깊게 봐야하는지 끊임없이 얘기한다. 그림에서 시간이나 장소의 흔적이 보이는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그림 속에 보이는 사물들을 창문 뒤에 있는 소도구쯤으로 여기지 말고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왜’라는 의문을 가지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들이 곧 17세기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평생토록 델프트를 떠나본 적이 없는 베르메르가 그린 유일한 풍경화 <델프트의 풍경>에서는 당시 북유럽에 몰아닥친 한파로 인해 네덜란드가 청어잡이에 성공할 수 있었고 VOC라 불리는 동인도 회사의 존재, 네덜란드의 번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표지그림인 <장교와 웃는 소녀>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보다 장교가 쓴 화려한 모자는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비버 펠트모자로 그 모자에 쓰이는 비버 가죽은 유럽인과 북미원주민의 교역에 통해 이뤄졌으며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고 한다. 또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이란 그림에서는 여인의 모습보다 침대 위에 놓인 터키카펫과 중국 접시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당시 화가들은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에 중국자기를 그려 넣었는데 그 중국 접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델프트의 가정에 들어오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베르메르. 그의 그림은 정말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전하고 있었다. 17세기 유럽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당시 유행했던 물건과 그들의 사치를 위해 전쟁이 벌어져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고문장면은 정말 끔찍하고 잔인했다), 담배와 아편중독으로 인해 중국은 서서히 병들어 갔으며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노예가 되어 유럽으로 들어와 물건처럼 거래가 됐다.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얕아선지 이 책의 흐름을 매끄럽게 따라가지 못했다. 책에 수록된 부분 지도외에 다이어리에 있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손으로 짚어가며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본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예술서인가 역사서인가’ 이 책은 예술서가 아니다. 역사서 역시 아니다. 역사와 예술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은 역사의 흐름 위에 있을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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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7-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재밌겠네요. 저 시기 네덜란드쪽의 정물화나 그림들은 사물 하나하나가 상징이라고 하는 얘길 많이 하더라구요. 근데 그거 하나 하나 짚으면서 그림을 보거나 미술책들 보면 머리 아파요? ㅎㅎ 근데 이거 그림을 통해 당시 교류사를 본다니 꽤 흥미로울 듯...
알라딘에서는 역시 이렇게 내가 모르던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최고라니까요? ^^
요즘 날 너무 덥죠? 몽당연필님도 더위먹지 마시고 쉬엄 쉬엄 건강하세요.

몽당연필 2008-07-2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람돌이님은 역시 알고 계셨네요.
그림 속에 숨은 상징들을 짚으면서 보는 거, 정말 재미있습니다. 쏠쏠하다는 표현이 딱이겠네요. 책에 소개된 그림의 크기를 좀 더 크게 하거나 부분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줬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