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휘~유우....”




<흰옷을 입은 여인> 이 한 권의 책을 숨가쁘게 읽고 나자 그동안 줄곧 참아왔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약 800페이지 정도의 두툼하고 묵직한 책은 책을 손에 들고 읽는 것 자체부터 버거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숨돌릴 틈이 없었다는데 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엔 표지에 붉은 글씨로 적힌 ‘코난 도일과 찰스 디킨스가 극찬한 서양문학사 최고의 추리소설!’이라는 대목을 그저 홍보나 광고의 일부라고만 여겼다. 그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어떤 책과 비교하면서 그것과 버금가는 뛰어난 책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읽었다가 씁쓸하게 책장을 덮은 책이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이 책도 그런 책일거란 생각에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의외였다. 대단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건 정말 대박이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흰옷을 입은 여인> 이 책의 저자는 윌리엄 윌키 콜린스.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는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순식간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작품이길래...? 궁금하지 않은가!




7월의 마지막날, 월터 하트라이트가 뜨겁고 지루했던 여름의 막바지를 돌아보며 책은 시작한다.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악의 상태,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을 때 월터는 친구를 통해 리머리지 가의 자매에게 수채화를 가르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리머리지 가로 떠나기 전날 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우연히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난다. 온통 흰색의 옷을 입은 것에서부터 대화나 행동도 왠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리머리지 가에서 로라와 마리안에게 수채화를 가르치게 된 그는 두 자매 중에서 아름다운 로라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이미 로라에게는 약혼자가 있을 뿐 아니라 곧 결혼도 하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월터는 리머리지 가를 떠난다.




한편 로라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약혼자인 퍼시벌 경에게 털어놓는다. 로라의 고백에 약혼을 파기하리라 예상했던 퍼시벌 경은 오히려 로라와의 결혼을 서두르고 로라는 월터를 향한 사랑을 애써 접는다. 하지만 로라와의 결혼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목적이라던 퍼시벌 경은 결혼 후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다. 퍼시벌 경의 친구라는 포스코 백작의 등장으로 인해 로라와 마리안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급기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월터는 로라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무덤을 찾는다. 로라의 무덤 앞에서 망연자실한 그의 눈 앞에 로라가 나타난다. 그리고 함께 있던 마리안을 통해 소름끼칠 정도로 엄청난 얘기를 전해 듣는다. 로라의 결혼 뒤에 숨겨진 잔인한 음모와 치밀한 범죄를 알게 된 월터는 마리안과 함께 복수를 계획하는데....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3부로 나뉜 구성에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이 사건과 관련된 부분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끊어진 사건의 고리들을 이어주기도 하고 복잡하게 뒤엉킨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주변인물은 결코 엑스트라가 아니다. 저마다 중요한 퍼즐 조각을 쥐고 있는 주요인물이었다. 또 본문 중에 언급되는 신분이나 계급, 재산과 복잡한 유산상속 방식, 혼인 약정 등의 요소들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고 낯설었지만 그것 역시 책의 흐름과 사건해결에 빠져서는 안되는 장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나가는 인물인 월터와 마리안이 그 복잡한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면서 사건을 풀어나간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과 탄탄한 구성, 흡인력 있는 이야기 흐름, 마치 눈에 보일 듯 표현된 세심한 묘사.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도저히 19세기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 그의 다른 작품은 없을까?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나자마자 난 그의 이름이 새겨진 또다른 책을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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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예언자 1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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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옅은 초록빛을 띤 배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얼굴, 그 속에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오드 토머스. 죽음을 보고, 죽은 사람을 보며 죽음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주인공 오드는 죽음을 예견하지만 평소엔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예술적인 달걀요리와 매혹적인 팬케이크를 만드는 요리사가 직업이다. 페니란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고 일터로  돌아온 그는 식당으로 들어오는 바다흐를 목격한다. 실체는 없지만 검은 잉크처럼 불투명한 존재인 바다흐는 곧바로 죽음과 이어진다. 벌이 꿀을 찾아다니듯 죽음을 빨아먹는 그들은 평범한 죽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폭력과 공포, 죽음과 비명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곳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바다흐들이 한 남자의 주위에 무리지어 다니는 걸 본 오드는 불길한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곧 엄청난 재앙이 남부 캘리포니아의 피코문도 마을에 휘몰아치리란 것을 직감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던 오드는 로버트슨이란 남자의 뒤를 밟고 그의 집에 잠입한다. 로버트슨의 집에서 오드는 시간의 흐름이 부분적으로 역행하는 어둠으로 가득찬 방을 목격하는데 그 곳에는 연쇄살인이나 테러 같은 대량학살의 주범인 사람의 자료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반면에 로버트슨의 이름이 적힌 파일엔 8월 15일이란 날짜가 어떤 기록도 없는 빈 공백으로 남아있는 걸 보고 그 날이 바로 끔찍한 대량살육이 벌어질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오드가 잠깐 머무는 곳마다 로버트슨이 나타난다. 마치 오드가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는 걸 눈치챘다는 걸 경고라도 하듯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끔찍한 파괴와 대량살육을 막기 위해 오드는 숨가쁘게 뛰어 다니지만 곧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오드의 목을 조여 오는데....




<살인예언자>의 저자는 호러 미스터리 작가로 알려진 딘 쿤츠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숨은 기괴함과 어둠, 공포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 책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특히 초반의 내용은 정돈되지 않고 이리저리 튀는 공 같아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30페이지를 넘어서면서 주인공인 오드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부터는 속도가 붙어서 500페이지 가까운 책이 순식간에 휘리릭 넘어갔다.




‘오드 토머스의 첫 번째 이야기’란 문구에 나와있듯 죽음을 예견하는 오드 토머스의 이야기는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설까. 책을 읽고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이 남았다. 오드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잔뜩 뒤틀린 부모와의 관계, 죽음을 보는 그의 능력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경찰 서장인 포터의 협력을 얻게 됐는지, 또 간혹 나타나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흘리게 하는 앨비스의 유령은 오드에게 어떤 의미인지...궁금했다. 알고 싶으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건가...여름이 가기전에 오드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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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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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니는 내 죽었다캐도 오지마라!!”




친정자매 중에 성격이 유난히 불같은 언니가 있다. 그 불의 원조격인 또 다른 불, 친정엄마가 간혹 외나무 다리에서 부딪힌다. 화르륵 화르르륵.... 한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히 맞서서 활활 타오르던 불의 전투는 항상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 다시는 이 집 대문 넘나봐라.” “오냐, 그래. 니는 내 죽었다캐도 오지마라!!”




친정엄마와 언니, 그 둘의 접전을 곁에서 만류하거나 나중에 전해 들으면 항상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족끼리 언제나 사랑하며 지내면 정말 좋겠지만 때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걸까. 그것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책은 열 살인 소년, 나 가즈시의 서술로 진행된다. 또각또각...... 깊은밤 어머니가 손톱을 깎는다. 아이에겐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고 호통을 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매일밤 또각또각 손톱을 깎고 발톱을 깎는다. 마치 누구에게 들으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1970년 봄, 이혼한 어머니와 가즈시가 사는 집에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바로 어머니의 아버지이자 가즈시의 외할아버지 ‘짱구영감’이었다. 오래전에 가족들 곁을 떠나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선 좁은 집 방의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는다. 어머니는 그런 짱구영감을 반가워하지도, 구박이나 괴롭힘도 아닌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인다.




그들이 서로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어머니가 앓아서 누워버린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떠는 어머니. 그 며칠 뒤 느닷없이 짱구영감이 사라진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도록 짱구영감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어머니가 찾으러 나서려던 찰라, 짱구영감이 집에 들어선다.  양손에 들고 있는 새빨간 양동이엔 피조개가 가득했다. 온종일 짱구영감이 뻘에서 캔 피조개를 먹고 어머니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지만 그에 비해 짱구영감은 점점 더 쪼그라들더니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그때 이미 짱구영감의 몸은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태였는데....




“죽으면 안돼요.....” 말투는 결코 다정하지 않았다....그때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직, 아직 조금만 더.......다음 순간,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짱구영감이 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다. “알고 있다.” - 119~120쪽.




엄마와 아들, 그 둘만의 조용한 일상이 짱구영감의 등장으로 인해 일어나는 크고 작은 파문을 담은 소설 <저녁놀 지는 마을>. 저자 유모토 가즈미는 이 책에서 가족에 대해 말한다. 어느 누구보다 서로를 믿고 사랑했기에 미움은 더 깊어지고 서로의 가슴에 맺힌 상처를 멍에처럼 품고 살아가는 가족. 그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사랑과 미움, 이해와 용서, 삶과 죽음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이고 어떤 존재인지 독자로 하여금 돌아보게 한다.




무척이나 얇은 책이었다. 두께가 1센티미터나 될까?...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동은 실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가 아니라 봄날의 가랑비 같았다.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가즈시 가족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짧막한 이야기지만 울림과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 책이었다. 붉게 타오르며 서쪽으로 저무는 태양을 향해 어깨에 양동이를 지고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 짱구영감의 뒤로 길게 늘어진 표지의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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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1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쉽게 화해가 되고 용서가 될까요? 난 너무 의심스러워요.
 
샘터 2008.7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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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오란색 표지, 커다란 보랏빛 우산을 받쳐든 아이. 노랑은 봄의 색깔이라 여겼는데 여름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네요.




깊은 밤 잠든 아내의 항문 괄약근에서 나는 소리를 ‘존재의 나팔소리’ ‘해맑은 소프라노’라고 얘기하는 박범신님의 글에 참으로 호탕하고 멋진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방귀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의 일부라고만 여겼는데 그걸 “나, 여기 살아있소!”하고 말하는 존재의 나팔에 비유하실 줄이야...!!




한비야님!! 웃음이 너무나 맑고 시원한 분이죠. 재난이나 기아로 허덕이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라도 찾아가 웃음으로, 사랑으로 아픔을 함께 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번에 새롭게 알게 된 건 바로 천원의 위력이었습니다. 사실, 우린 천원, 2천원...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게 긴급구호 현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는 거였어요. 월드비전의 후원사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국수 고명삼아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는 노숙자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아름다운 <민들레 국숫집>의 이야기에서 가족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았답니다. “가족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가 아니라 사랑이 가족을 만드는 것이지요”. 사랑이 가족을 만든다...제 맘에 오래도록 남는 말이었구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희망을 찾아가는 노력을 그치면 안되겠구나...는 싶었어요.




짧막한 이야기 속에 많은 느낌과 생각을 담은 책, <샘터>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대학시절부터 해마다 정기구독을 연장하면서 보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은 후로 못 봤으니까 거의 10년쯤? 10년!! 그 긴 시간동안 지금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 샘터가 제겐 너무나 고맙습니다. 다시 만난 <샘터>의 곁에서 전 작은 행복을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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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마음 치료 - 상처를 힘으로 바꾸는 놀이 치료 심리학
정혜자 지음 / 교양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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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건강검진과 관련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떤 병을 앓았으며 예방접종은 빠트리지 않고 있는지, 지병이나 알러지는 없는지, 어떤 가족력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거였는데, 거기에 이런 항목도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매일 우울하다’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아이들이 질문의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의문도 들었지만 그보다 충격이 컸다. 요즘 아이들의 심리나 마음자리가 무척 불안하구나, 정신건강이 위태롭구나...는 생각을 했다.




‘상처를 힘으로 바꾸는 놀이치료 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은 <어린이 마음 치료> 이 책의 저자는 국내 어린이 놀이 치료의 개척자이자 수많은 놀이 치료사를 길러낸 정혜자 선생님이다. 자폐아와 일반 어린이를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연구한 30년간의 경험이 이 책 한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외로웠기에 아이들의 아픈 마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저자는 아이들에게 놀이와 놀이치료가 얼마나 중요하고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감싸주고 쓰다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9장에 걸쳐 세세하고 꼼꼼하게 알려주고 있다.




먼저 책을 읽는 놀이치료사나 학부모가 놀이치료란 무엇인지, 놀아주는 것과 놀이치료는 어떻게 다른지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여러 치료 방법 중에 놀이치료가 가장 근본적이고 권장하는 이유는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과정에 가장 자연스럽게 몸에 밴 생활리듬이 바로 놀이라는 것, 단순히 놀아주는 것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놀이치료의 차이는 어린이가 속마음을 여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다음 어린이의 발달과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임신했을 때부터 출산, 출산후 부모의 양육방식과 태도, 엄마와의 애착형성, 동생의 출생에 따라 아이들이 어떤 심리 변화를 겪고 어떤 상황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지, 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육아상식을 비롯해 외동아이들의 사회적 관계 발달 미숙에 대해서도 짚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놀이치료에 대한 것은 저자가 실제 놀이치료를 담당했던 아이들의 예를 들어 어떻게 치료해 나갔는지 알려주고 있는데 쉬운 문장임에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건강이나 질병관련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몸이 심각하게 나쁜 것처럼 느껴지듯이 매사례마다 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남같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뒤늦게 태어난 동생에게 송두리째 뺏긴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성장을 거부했고, 엄마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학업의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면서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졌으며 보호자의 지나치게 엄격한 가르침 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아이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겹쳐보여서 마음자리가 불편했다. 잠깐씩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르며 되새기는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했다.




아이들을 기르다보면 수시로 간이 철렁 내려앉고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내가 화가 났거나 짜증이 날 때 툭툭 내뱉는 말들을 아이가 그대로 따라할 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 안타까워서 내가 관연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을 품기도 한다.




흔히 간(肝)을 ‘소리없는 장기’ ‘침묵의 장기’라고 한다. 몸에서 느껴지는 자각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치료하기 힘든 단계에 접어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인데 아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아우울증이나 자폐증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앓거나 부모의 무관심, 지나친 기대로 인해 빛을 잃어가는 아이들은 제때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아이의 문제는 곧 어른의 문제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DNA, 유전인자만 물려받는 게 아니다. 부모의 성격과 성품,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능력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내 아이가 예전과 전혀 다른 버릇이나 행동, 반응을 보일 때 “너 요즘 왜 그래?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하고 다그치기 전에 부모 자신을 돌아봐야한다. 그렇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면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에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끝끝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놀이’. 정말 어렵다. 특히 내겐 더 어렵게 다가왔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 매는데 놀이로 아이의 마음을 치료한다는 건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에선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이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책에 언급한 설명과 사례가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하고 놀이치료라고 따라한다는 건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내가 아이에게 많이 부족했구나, 무심했구나...싶을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들어주고 들어주는 것.  지금의 내겐 아이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는듯하다. 그리고 이 책을 눈과 손에 닿는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자주 꺼내보는 것. 우선 이것부터 실천해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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