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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마음 치료 - 상처를 힘으로 바꾸는 놀이 치료 심리학
정혜자 지음 / 교양인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건강검진과 관련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떤 병을 앓았으며 예방접종은 빠트리지 않고 있는지, 지병이나 알러지는 없는지, 어떤 가족력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거였는데, 거기에 이런 항목도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매일 우울하다’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아이들이 질문의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의문도 들었지만 그보다 충격이 컸다. 요즘 아이들의 심리나 마음자리가 무척 불안하구나, 정신건강이 위태롭구나...는 생각을 했다.
‘상처를 힘으로 바꾸는 놀이치료 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은 <어린이 마음 치료> 이 책의 저자는 국내 어린이 놀이 치료의 개척자이자 수많은 놀이 치료사를 길러낸 정혜자 선생님이다. 자폐아와 일반 어린이를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연구한 30년간의 경험이 이 책 한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외로웠기에 아이들의 아픈 마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저자는 아이들에게 놀이와 놀이치료가 얼마나 중요하고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감싸주고 쓰다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9장에 걸쳐 세세하고 꼼꼼하게 알려주고 있다.
먼저 책을 읽는 놀이치료사나 학부모가 놀이치료란 무엇인지, 놀아주는 것과 놀이치료는 어떻게 다른지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여러 치료 방법 중에 놀이치료가 가장 근본적이고 권장하는 이유는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과정에 가장 자연스럽게 몸에 밴 생활리듬이 바로 놀이라는 것, 단순히 놀아주는 것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놀이치료의 차이는 어린이가 속마음을 여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다음 어린이의 발달과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임신했을 때부터 출산, 출산후 부모의 양육방식과 태도, 엄마와의 애착형성, 동생의 출생에 따라 아이들이 어떤 심리 변화를 겪고 어떤 상황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지, 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육아상식을 비롯해 외동아이들의 사회적 관계 발달 미숙에 대해서도 짚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놀이치료에 대한 것은 저자가 실제 놀이치료를 담당했던 아이들의 예를 들어 어떻게 치료해 나갔는지 알려주고 있는데 쉬운 문장임에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건강이나 질병관련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몸이 심각하게 나쁜 것처럼 느껴지듯이 매사례마다 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남같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뒤늦게 태어난 동생에게 송두리째 뺏긴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성장을 거부했고, 엄마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학업의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면서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졌으며 보호자의 지나치게 엄격한 가르침 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아이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겹쳐보여서 마음자리가 불편했다. 잠깐씩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르며 되새기는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했다.
아이들을 기르다보면 수시로 간이 철렁 내려앉고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내가 화가 났거나 짜증이 날 때 툭툭 내뱉는 말들을 아이가 그대로 따라할 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 안타까워서 내가 관연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을 품기도 한다.
흔히 간(肝)을 ‘소리없는 장기’ ‘침묵의 장기’라고 한다. 몸에서 느껴지는 자각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치료하기 힘든 단계에 접어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인데 아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아우울증이나 자폐증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앓거나 부모의 무관심, 지나친 기대로 인해 빛을 잃어가는 아이들은 제때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아이의 문제는 곧 어른의 문제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DNA, 유전인자만 물려받는 게 아니다. 부모의 성격과 성품,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능력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내 아이가 예전과 전혀 다른 버릇이나 행동, 반응을 보일 때 “너 요즘 왜 그래?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하고 다그치기 전에 부모 자신을 돌아봐야한다. 그렇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면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에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끝끝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놀이’. 정말 어렵다. 특히 내겐 더 어렵게 다가왔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 매는데 놀이로 아이의 마음을 치료한다는 건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에선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이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책에 언급한 설명과 사례가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하고 놀이치료라고 따라한다는 건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내가 아이에게 많이 부족했구나, 무심했구나...싶을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들어주고 들어주는 것. 지금의 내겐 아이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는듯하다. 그리고 이 책을 눈과 손에 닿는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자주 꺼내보는 것. 우선 이것부터 실천해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