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용어사전
나카야마 겐 지음, 박양순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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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제일 어려웠던 과목은 ‘국민윤리’였다. 철학이나 사상관련 단원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철학’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고 사는데 이런 게 대체 왜 필요하냐고. 항의를 하고 싶었다. 어렵사리 간신히 이해했다 싶어도 돌아서면 헛갈리고 잊어버렸고 결국엔 포기사태까지 이르렀다. 간혹 철학입문서나 개론서, 서영철학의 역사를 서술해놓은 책를 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죽을 때까지 피해다닐 수는 없는 법. 인간의 사소한 행동이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내 수준에 맞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선택한 책이 <사고의 용어사전>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제일 먼저 철학에 대한 개념부터 언급한다. 프랑스 사상가인 질 들뢰즈의 말을 빌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행위’이며 철학하는 행위는 낡은 개념들을 위해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왠지 알듯하면서도 퍼뜩 와닿지 않았다.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꽉 막히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일단 나아가자. 앞으로. 저자도 부추기지 않은가. 철학의 역사라는 장난감 속에서 금속병정이나 곰인형을 꺼내듯 여러 가지 개념을 끄집어내고 파헤쳐보자며. 모두 일어나라. 나갈 차례’라고.




책의 출발점은 ‘놀이’였다. 저자는 그리스 시대엔 놀이가 신적인 영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통로라 하여 중요한 행위로 여겼는데 근대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놀이’와 ‘일’이 갈라졌다는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가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이듯 ‘놀이’의 중요성과 유희를 강조한다. 그다음 ‘차갑다’ ‘뜨겁다’.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이라고 여기던 ‘차가움과 뜨거움’도 역시 철학의 중요한 주제인데 피부감각만이 아니라 공간에서 이뤄지는 물질운동으로도 ‘뜨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며 마르크스는 ‘뜨거움’을 생산과 투쟁으로 연관지어 논하기도 했다. 또 ‘낯설게하기’에서는 평소 익숙하던 것이 갑자기 낯선 느낌으로 다가올 때 그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는데 나도 얼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새학기라 아이가 학교에서 쓰는 온갖 소지품에 이름을 쓰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아이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글자를 제대로 쓰고 있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의식이나 이데올로기, 개념, 기분, 경험, 현상 등 철학에 있어서의 기본 개념과 용어 100개를 골라 하나의 용어마다 일상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쓰면 되는지 어떻게 사고를 확장해나가면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책의 구성이 사전형식이라 어디서부터 읽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저자는 될 수 있으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라고 권한다. 처음에 만난 용어가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서로 연결되면서 마음이나 사고가 확산되고 나중에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눈 먼 사람이 낯선 길을 가듯 더듬거리며 읽은 내겐 아직 머나먼 길이다.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다 읽었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역시나 어렵다. 만만하게 볼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철학적 사고, 행위가 나와 내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여기서 그치고 말지만 다음에 또한번 이 책을 만날 땐 지금보다 한걸음 앞선 곳에서 출발할 수 있으리라. ‘일어나자. 나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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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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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학창시절의 역사는 점수를 올리기 위한 과목 중의 하나였을 뿐. 내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역대 왕들이 펼친 이름도 서로 비슷비슷한 정책이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암기하는 것만도 벅찼다. 당연히 재미란 것도 못 느꼈다. “왜?”라는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 비로소 역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관심있는 전시회에 가거나 강좌를 듣고 답사를 다녀오고 책을 읽으면서 역사는 단순히 지난 과거의 기록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어느 시대든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이 역사의 흐름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 후론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날 때마다 설렜다. <조일전쟁>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조일전쟁’이라고 주장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책장을 불과 몇 장 넘기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책 내용이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련만 그건 결코 아니었다. 이걸 왜 책으로 만들었나 싶을만큼 어이가 없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등신 같은 임금 선조’, ‘애새끼라도 오기가 있으면’, ‘개 같은 서인들’, ‘전형적인 등신이자 우유부단의 대명사 인조’...이런 식의 표현이 수시로 툭툭 튀어나왔다. 저자가 뱉어내는 표현이 지적수준을 의심케 할 정도로 너무 지나쳐서 내가 정말 한 권의 책을 읽는 게 맞는지, 아니면 인터넷의 개인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읽고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야, 정말 나무가 아깝구나...란 생각이 들어 책을 읽다가도 몇 번이다 덮어버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생명을 띤 유기체나 다름없어서 한 단면만을 봐서는 안된다는 걸 알기에 끝까지 읽어나갔다. 먼저 저자는 7년이나 이어진 전쟁기간이나 규모, 엄청난 피해상황을 볼 때 6.25에 버금가는 전쟁을 그저 ‘왜란’이라고 칭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조선과 일본의 전쟁, ‘조일전쟁’이라 불러야함에도 지금까지 ‘임진왜란’이라 일컫고 있는 건 당시 전쟁을 책임져야하는 이들이 전쟁의 진상은 고스란히 덮어둔 채 책임 회피한 거라는 것이다.




사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미 전쟁의 징후가 있었지만 조정은 그걸 무시했고 막상 일본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을땐 한 나라의 임금이 제일 먼저 도망쳤다는 것, 의병과 영웅 이순신의 활약이 돋보였던 사건이라는 역사적 큰 줄기는 학창시절 배웠듯(내가 기억하기에) 변함이 없다. 저자는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 서 계획적인 왜곡과 오류가 있다며 하나하나 짚어가기 시작한다. 1592년에 일어난 전쟁의 시작에서 전개상황, 반격, 끝을 맺을 때까지 일어난 일과 어떤 배와 어떤 무기가 사용되었고 조선과 일본, 명의 입장은 어떠했으며 어떤 왜곡이 있었는지, 또 우리가 영웅으로 알고 있는 이순신은 그저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했으며 그의 해전기록은 물론 거북선 역시 별 볼 일 없는 배였다고 말한다.




솔직히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역사가 모두 진실만을 말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역사는 그것을 서술하는 자의 사관이나 시선이 녹아드는 것이기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과거의 일을 100% 완벽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관련서적이나 자료를 기초로 한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는 건 정말이지 힘들었다. 이 책으로 역사의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우리 역사의 왜곡과 오류를 논하기 전에 먼저 역사를 논하고 독자들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부터 수정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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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스캔들
박은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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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딜 가나 <선덕여왕> 얘기다. 텔레비전을 보질 않으니 드라마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예전 박물관강좌에서 들었던 강의내용으로 어림짐작할 뿐이다. <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스캔들>이란 책을 봤을 때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드라마 <선덕여왕> 속 여인들의 도발적 연애담!’이라는 띠지의 문구였다. 그 옛날 신라시대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도발’이란 단어를 쓴 걸까?




책은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신라 왕실 계보 및 등장인물 관계도’를 싣고 있는데 대부분의 인물들이 여기저기 서로 얽혀 있어서 단번에 이해가 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계보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신라를 뒤흔든 왕실의 스캔들’, ‘신라를 뒤흔든 꽃미남들의 스캔들’, ‘신라를 뒤흔든 아내들의 스캔들’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도 실로 충격적이었다.




당시 신라에는 색공만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가문이 있었다. 그들을 ‘색공지신’이라고 불렀는데 지위가 높은 남자들에게 색공을 많이 할수록 많은 권력과 높은 지위를 보장받았다고 한다. 남편이 있는 여자나 아내가 있는 남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출신이 낮은 남자는 높은 신분의 여자에게 색공을 하거나 혼인을 해서 지위를 높였다. 요즘 한창 입에 오르내리는 미실이 할머니인 옥진, 딸 묘도에 이어 법흥왕을 모시게 된 것도 바로 미실이 색공을 하는 가문에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왕에게 색공을 하여 지위를 높임과 동시에 권력을 휘두르던 미실은 진지왕을 폐위시키는데 당시 그녀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다.




이외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여자를 탐하거나 동성애, 왕이 되는 성골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배 다른 남매나 아버지가 다른 남매간의 근친혼은 비일비재해서 누나를 아내로 맞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폐위된 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이 왕실의 혈통을 잇기 위해 언니의 남편들을 빼앗기까지 했다는데 이는 단순한 남녀의 결합차원이 아니었다고 한다. 선덕여왕이 즉위할 당시 나이가 쉰 가량이었으니 임신은 불가능했을 게 분명하다는 것. 즉, 정치적으로 진지왕의 아들로 왕위를 이을 서열이 되는 용수와 용춘을 경계하기 위한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거라고 말한다.




가장 놀라운 건 ‘마복자’라는 풍습이었다. 이건 오직 신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습으로 임신한 여인과 몸을 합한 남자가 그 자식을 자신의 자식으로 삼는 것인데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예로운 일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때문에 임신한 여성은 되도록 높은 신분의 남자의 총애를 입으려고 갖은 치장을 다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든든한 후원자를 갖게 되고 마복자를 많이 거느린 남자 역시 자신의 지지기반을 보다 굳건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성(性)을 신국의 도(道)라 하여 섬겼던 신라인들. 그들의 성풍속도를 들여다보면서 이게 과연 진실일까 궁금해진다. 신라인이 쓴 신라의 역사서 <화랑세기>를 기초로 했다니 분명 터무니없는 얘기를 늘어놓은 건 아닐텐데 지금의 시각으로 보기엔 신라인들의 모습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 역사의 일부다. 낯설다는 이유로 거부하기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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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신화
아침나무 지음 / 삼양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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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우리나라의 신화 중에 어떤 걸 알고 계신가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린이 독서지도사 공부를 시작하는 첫 날, 동화부분 강의를 맡으신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우리 신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순간 강의실에 혼란의 물결이 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30명, 60개의 눈동자가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우리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셨던 걸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하셨다. 신화는 그리스로마신화만 있는 게 아니라고.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신화가 있다고 하시며 단군신화를 비롯해 고구려, 백제, 신라 각 나라의 건국신화(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알고 보니 그동안 옛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일은 내가 우리 신화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확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할 세계의 신화>를 만났을 때 예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후 틈틈이 신화관련 책을 읽어왔지만 전체적인 흐름이나 윤곽을 잡지 못하고 있던 차여서 ‘세계의 신화’를 담고 있다는 이 책이 정말 반가웠다. 그런데 책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 놀랐다. 이렇게 두꺼울 줄이야. 본문이 750여 쪽. 판형도 일반책보다 큰데다 무게 또한 상당하다. 외출할 때 결코 가져갈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이게 바로 신화가 지닌 무게가 아닐까 생각하니 왠지 책장을 넘기면서도 긴장이 됐다.




책의 시작은 신화가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는 믿음의 대상이자 종교와 같았고 그들의 생활까지도 지배했었다며 신화의 기원과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한다. 그리고 만난 것이 우리나라 신화. 먼저 신화의 내용에 따라 창세. 건국. 무속신화로 나뉜다는 설명과 함께 신화의 정형을 보여준 단군신화부터 출발해서 세상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환웅이 하늘로 돌아간 이후 벌어진 전쟁, 탁록대전에 대해 알려주고 그 외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오늘이, 바리데기 같은 무속신화도 짚어주고 있다. 그 옛날엔 우리의 영토가 한반도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과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계보도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후부터는 ‘서양의 신화(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페르시아 신화)’, ‘동양의 신화(중국 신화, 인도 신화, 일본 신화, 몽골 신화)’, ‘기타 신화(북미 신화, 중남미 신화, 아프리카 신화,  오세아니아 신화)’ 세 부분으로 나눠서 각 신화의 특징과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이집트 신화는 놀랍게도 그리스로마 신화를 이루는 신들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과 신들의 머리가 동물모양인 건 바로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에서 기인했다는 걸 알게 됐다. 신들도 죽음을 맞는다는 북유럽 신화는 다른 신화에 비해 다소 투박하고 거칠지만 웅장하고 서사적인 면이 강해서 동화나 판타지 소설, 게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외에 친언니가족들이 살고 있는 인도와 일본의 신화도 인상적이었다. 바로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수가 엄청나다는 점이다. 인도의 신은 자그마치 3억3천이 넘는데 그들의 근원을 따지면 하나의 신이 된다고 한다. 일본의 신은 800만에 이르는데 이자나기란 신이 황천에서 목욕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신들이 탄생한다고 한다. 




세계의 신들과 매일 조금씩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미 안면이 있는 신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신들도 많았다. 물론 이 책에 세계의 수많은 신화와 신들이 모두 수록되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의미 있는 책읽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다. 신의 이름에 오류가 있거나 본문의 내용과 수록된 그림의 설명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신화를 제일 앞에 구성한 점은 좋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해 분량이 절반 정도에 그쳤다. 우리 신화를 단순히 알려주는 차원에서 그친 게 아닌가 싶다.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듯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신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특히 단군신화 이후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원이나 내용이 아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화를 우리의 뿌리로 인식되려면 그 전환의 계기가 필요한데 그 점을 소홀히 한 것 같다. 좋은 예로 탁록대전이다. 그저 치우씨와 전쟁에 관해 얘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문의 ‘다시 보기’코너에서 그를 현재로 끌고 와서 월드컵 때 한국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 온 나라를 붉게 물들였던 그들의 상징인 치우천왕에 대해 소개하면 어떨까.




신화는 단순히 세상을 창조한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곳에 고인 물은 곧 썩기 마련이듯 신화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활에서, 문화에서, 삶에서 신화가 녹아들게 하려면 흘러가는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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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어도 두고두고 질리지 않을 이야기
    from 감똘나라님의 서재 2010-03-24 17:31 
    이 책은 <세계의 모든 신화>와 비교해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이 책은 세계의 모든 신화와 달리 구성이 창세부터 건국까지 진행되도록 하였으며 알기 쉽게 정리했다.  이 책은 세계의 모든 신화에 없는 우리 신화와 몽골신화,오세아니아 신화가 들어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신화를 잊어가는것 같아 아쉽다.하지만 이 책은 동남아시아 신화를 뺀 것이 아쉽다.하지만 중국신화나 일본신화를 더 쉽게 시간이 흐르듯 구성되었고 몽골신화의 경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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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 학교에 임꺽정 있나? 그럼 빌려와.” 언니가 말했다. 여고 때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언니의 부탁으로 그때부터 학교에서 임꺽정을 날랐다. 언니가 먼저 읽고 반납하기 전에 내가 읽었다. 그렇게 임꺽정을 만났건만 입시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하고 시댁의 책장에서 <임꺽정>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오랜만에 동기동창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하지만 아직 우리 집으로 옮겨오지도 못했는데 사계절출판사에서 임꺽정 개정판이 출간되는 바람에 난 망설였다. 아예 새롭게 장만하고 싶어서. 모두 10권이니 한꺼번에 구입하기엔 가격이 만만찮아서 마땅한 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고미숙의 임꺽정이 출간된 게 아닌가.




갑자기 고민이 몇 배로 불어났다. 대체 뭐부터 읽어야지? 원문인 <임꺽정>을 읽고 고미숙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읽는 게 제대로 된 순서겠지만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뭐가 좋을지 이쪽저쪽 재어보다가 고미숙의 <임꺽정>을 먼저 선택했다. 여행가기 전에 안내서부터 챙겨보는 건 필수니까. 그렇지 않나?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이 책에서 <임꺽정>을 ‘경제’, ‘공부’, ‘우정’, ‘사랑과 성’, ‘여성’, ‘사상’, ‘조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임꺽정은 ‘노는 남자’다!’라고 고미숙은 제일 먼저 말한다. 그것도 아버지에 처자식까지 있는. 이것만보면 임꺽정은 그야말로 몹쓸 남자다. 마누라가 자식만 데리고 보따리 싸서 도망(어쩌면 자식까지 팽개치고)가도 나쁜 @이라고 손가락질 못할 판이다. 근데 이상하다. 같이 어울려 잘만 사는 게 아닌가. 꺽정이의 이런 떳떳함,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요즘으로 치면 친척범위에 속하지도 않는 ‘사돈의 팔촌’에 객식구까지 한데 어울려서 복작거리며 사는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유쾌하다. 정해진 직업이나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정해진 틀이 없을 뿐 배울 건 다 배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치를 배우고 말타는 법을 배우고 활쏘기, 표창던지기, 하다못해 돌팔매까지 배우고 익혀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 대단하지 않은가. 뭐든 하나에 꽂히면 일단 밀어붙이는 그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선 큰일날 일이지만 부모의 허락도 필요없다. 니 내 좋나? 좋다! 오케! 렛츠고!! 꺽정이와 그의 무리들에게 미적지근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뭐든지 화끈하고 화통하다.

 

저자는 서두에 자신은 백수팔자를 타고 났다고 말한다. 그래설까. 친구와 밥과 말에 낚여서 의뢰받은 강연을 위해 <임꺽정>을 세 번 연거푸 읽고 저자 자신이 곧 임꺽정이 되어 풀어내기 시작한다. 임꺽정은 의적도, 저항의 화신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고. 그저 제 갈 길을 간 것 뿐이라고. 무엇하나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강연장에 앉아있는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소시민과 백수, ‘마이너’들에게 좀 더 힘을 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기분이다. 




<임꺽정>과 함께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는 저자처럼 나도 여름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덕분에 <임꺽정>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임꺽정, 그의 패거리들을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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