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니네 학교에 임꺽정 있나? 그럼 빌려와.” 언니가 말했다. 여고 때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언니의 부탁으로 그때부터 학교에서 임꺽정을 날랐다. 언니가 먼저 읽고 반납하기 전에 내가 읽었다. 그렇게 임꺽정을 만났건만 입시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하고 시댁의 책장에서 <임꺽정>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오랜만에 동기동창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하지만 아직 우리 집으로 옮겨오지도 못했는데 사계절출판사에서 임꺽정 개정판이 출간되는 바람에 난 망설였다. 아예 새롭게 장만하고 싶어서. 모두 10권이니 한꺼번에 구입하기엔 가격이 만만찮아서 마땅한 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고미숙의 임꺽정이 출간된 게 아닌가.




갑자기 고민이 몇 배로 불어났다. 대체 뭐부터 읽어야지? 원문인 <임꺽정>을 읽고 고미숙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읽는 게 제대로 된 순서겠지만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뭐가 좋을지 이쪽저쪽 재어보다가 고미숙의 <임꺽정>을 먼저 선택했다. 여행가기 전에 안내서부터 챙겨보는 건 필수니까. 그렇지 않나?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이 책에서 <임꺽정>을 ‘경제’, ‘공부’, ‘우정’, ‘사랑과 성’, ‘여성’, ‘사상’, ‘조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임꺽정은 ‘노는 남자’다!’라고 고미숙은 제일 먼저 말한다. 그것도 아버지에 처자식까지 있는. 이것만보면 임꺽정은 그야말로 몹쓸 남자다. 마누라가 자식만 데리고 보따리 싸서 도망(어쩌면 자식까지 팽개치고)가도 나쁜 @이라고 손가락질 못할 판이다. 근데 이상하다. 같이 어울려 잘만 사는 게 아닌가. 꺽정이의 이런 떳떳함,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요즘으로 치면 친척범위에 속하지도 않는 ‘사돈의 팔촌’에 객식구까지 한데 어울려서 복작거리며 사는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유쾌하다. 정해진 직업이나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정해진 틀이 없을 뿐 배울 건 다 배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치를 배우고 말타는 법을 배우고 활쏘기, 표창던지기, 하다못해 돌팔매까지 배우고 익혀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 대단하지 않은가. 뭐든 하나에 꽂히면 일단 밀어붙이는 그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선 큰일날 일이지만 부모의 허락도 필요없다. 니 내 좋나? 좋다! 오케! 렛츠고!! 꺽정이와 그의 무리들에게 미적지근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뭐든지 화끈하고 화통하다.

 

저자는 서두에 자신은 백수팔자를 타고 났다고 말한다. 그래설까. 친구와 밥과 말에 낚여서 의뢰받은 강연을 위해 <임꺽정>을 세 번 연거푸 읽고 저자 자신이 곧 임꺽정이 되어 풀어내기 시작한다. 임꺽정은 의적도, 저항의 화신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고. 그저 제 갈 길을 간 것 뿐이라고. 무엇하나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강연장에 앉아있는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소시민과 백수, ‘마이너’들에게 좀 더 힘을 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기분이다. 




<임꺽정>과 함께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는 저자처럼 나도 여름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덕분에 <임꺽정>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임꺽정, 그의 패거리들을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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