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고의 용어사전
나카야마 겐 지음, 박양순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평점 :
학창시절 제일 어려웠던 과목은 ‘국민윤리’였다. 철학이나 사상관련 단원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철학’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고 사는데 이런 게 대체 왜 필요하냐고. 항의를 하고 싶었다. 어렵사리 간신히 이해했다 싶어도 돌아서면 헛갈리고 잊어버렸고 결국엔 포기사태까지 이르렀다. 간혹 철학입문서나 개론서, 서영철학의 역사를 서술해놓은 책를 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죽을 때까지 피해다닐 수는 없는 법. 인간의 사소한 행동이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내 수준에 맞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선택한 책이 <사고의 용어사전>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제일 먼저 철학에 대한 개념부터 언급한다. 프랑스 사상가인 질 들뢰즈의 말을 빌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행위’이며 철학하는 행위는 낡은 개념들을 위해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왠지 알듯하면서도 퍼뜩 와닿지 않았다.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꽉 막히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일단 나아가자. 앞으로. 저자도 부추기지 않은가. 철학의 역사라는 장난감 속에서 금속병정이나 곰인형을 꺼내듯 여러 가지 개념을 끄집어내고 파헤쳐보자며. 모두 일어나라. 나갈 차례’라고.
책의 출발점은 ‘놀이’였다. 저자는 그리스 시대엔 놀이가 신적인 영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통로라 하여 중요한 행위로 여겼는데 근대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놀이’와 ‘일’이 갈라졌다는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가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이듯 ‘놀이’의 중요성과 유희를 강조한다. 그다음 ‘차갑다’ ‘뜨겁다’.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이라고 여기던 ‘차가움과 뜨거움’도 역시 철학의 중요한 주제인데 피부감각만이 아니라 공간에서 이뤄지는 물질운동으로도 ‘뜨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며 마르크스는 ‘뜨거움’을 생산과 투쟁으로 연관지어 논하기도 했다. 또 ‘낯설게하기’에서는 평소 익숙하던 것이 갑자기 낯선 느낌으로 다가올 때 그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는데 나도 얼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새학기라 아이가 학교에서 쓰는 온갖 소지품에 이름을 쓰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아이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글자를 제대로 쓰고 있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의식이나 이데올로기, 개념, 기분, 경험, 현상 등 철학에 있어서의 기본 개념과 용어 100개를 골라 하나의 용어마다 일상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쓰면 되는지 어떻게 사고를 확장해나가면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책의 구성이 사전형식이라 어디서부터 읽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저자는 될 수 있으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라고 권한다. 처음에 만난 용어가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서로 연결되면서 마음이나 사고가 확산되고 나중에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눈 먼 사람이 낯선 길을 가듯 더듬거리며 읽은 내겐 아직 머나먼 길이다.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다 읽었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역시나 어렵다. 만만하게 볼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철학적 사고, 행위가 나와 내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여기서 그치고 말지만 다음에 또한번 이 책을 만날 땐 지금보다 한걸음 앞선 곳에서 출발할 수 있으리라. ‘일어나자. 나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