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그 머리 없는 사람의 목구멍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몸은 성이 하(夏)요, 이름은 경(耕)이올시다.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저는 여자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경이 또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하시려오?"

경진이 이유를 설명하자 하경이 말했다. 

"내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여기서 기다린 것이오. 그대는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이 몸이 빨리 돌아와 전해줄 테니 그대는 절대 여자국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오."

그렇게 말하면서 하경은 두 손으로 창과 방패를 들고 위세를 부렸다. 경진은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가만히 삭이면서 물었다. 

"이 몸이 여자국으로 가서 그들과 장부국을 결혼시키면 한쪽은 없던 남편이 생기고 한쪽은 없던 부인이 생기니, 이 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으리오? 그런데 귀하는 어째서 이렇게 굳이 오셔서 이 몸을 막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경은 이 말을 듣더니 매우 화난 듯이 목구멍에서 그렁그렁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남녀를 맺어준다는 것은 애초부터 당치도 않은 무슨 천제인가 하는 작자가 만든 것이오. 애초에 혼돈이 처음 나뉘었을 때, 하늘에서는 회의를 열어 인간을 만드는 기준을 논의했소. 우리 당(黨)에서는 사람을 만들되 평등하게 하고 남녀를 구분해서 갖가지 폐단이 생기는 일은 절대 만들지 말자고 주장했지요. 그렇지만 천제가 말을 듣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세상에는 남녀가 있어야 사랑이 있고 사랑이 우주에 넘쳐야 세계라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그놈의 사랑의 감정이 외로움으로 변하여, 남자는 여자를 못 구하고 여자는 남자를 못 구해서 우울해하다가 병이 나서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지경이 되었단 말입니다. 남자는 마음에 안 드는 여자를 맞아들이고 여자도 마음에 안 차는 남자에게 시집가서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다가 죽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오! 또 남자는 이미 아내가 있고 여자도 이미 남편이 있는데도 돌연 또 다른 남자나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몰래 정을 통하는 일도 많지 않습니까? 아내 말고도 아내가 있고 남편 이외에 또 남편이 있으니 서로 질투하고 죽이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가정이 생기면 자유롭게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가정을 지키느라 희생되는지, 연생에 얼마나 많은 책임이 가정으로 인해 더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정의 맛은 처음에는 달지만 나중에는 쓰고, 부부의 맛은 처음에는 진하지만 나중에는 옅어지지요. 만약에 남녀의 구분이 없다면 부부관계도 없고 모든 근심이나 알력이나 고통도 전부 사라지니 어찌 오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를 낳지 못해서 대가 끊기는 것이 걱정일 따름이오. 이제 우리는 혁명을 해서 이전의 구법을 모두 없애고 우리 방법으로 바꾸려 하오. 아이를 낳는 일 또한 남녀가 결합할 필요 없이 혼자서 할 수 있소. 우리가 여러 번 해봐서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단 말이오. 천상에 여기씨(女岐氏)라는 여신이 계시오. 그 분은 남편 없이 아들 아홉을 낳았으니, 바로 우리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표본이라 할 수 있소. 우리는 여기씨를 초대해서 이 방법을 하계에 전파하려고 여자국을 세웠고, 고심 끝에 왕맹을 고립시켜 남자들이 애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장부국을 세워 긴 세월이 흘러 효과를 보았지요. 이 방법과 생각을 온 천하에 전파하여 인류의 근심, 알력, 고통을 없애서 우리의 방법과 생각이 좋은지, 아니면 당치도 않은 엉터리 천제의 옛날 방식이 좋은지 보게 하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그들을 결합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우리 정책에 반기를 들고 우리 계획을 망치려 하니 어찌 용서할 수 있겠소? 빨리 이곳을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말을 마치자 그는 다시 창과 방패를 흔들며 위용을 과시했다. 

경진이 듣고 생각해보니 그가 입만 열면 천제에게 반대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태진부인이 말한 천상의 흉악한 혁명분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섣불리 대적하기보다 얼른 돌아가서 상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354~356, 산해경, 예태일, 전발평 편저, 서경호, 김영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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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좋은 엄마 -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의 육아 강연집
도널드 위니코트 지음, 김건종 옮김 / 펜연필독약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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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라, 오래 걸려서 읽었다. 대상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고, 주제는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바로 당신을 통해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들이다. 격렬한 육아의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나간, 나의 어머니의 어떤 태도들 가운데, 어머니의 태도를 연마한 엄마인 나는, 특정한 대상이 아닌 보편의 대중적 어머니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서 조심스럽게 말들을 고르는 이 학자의 말들이 한계가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해서 포스트잇을 잔뜩 붙였다. 

말미에 스스로 라디오를 통한 대중교육이 가지는 한계를 언급한다. 

똑같은 아이도 없고, 똑같은 엄마도 없고, 똑같은 상황도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는 그 모든 다른 상황 가운데서, 내가 내 자신으로 아이와 관계맺으면서 부모가 된다.  


동화가 없었다면 '사악한 새엄마'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간혹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동화나 무서운 만화가 이토록 보편적 공감을 얻는 것은 어른과 아이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동화는 진실하고, 두렵고,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을 포착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동시에 두렵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요. 인간 본성의 받아들일 수 없는 측면의 일부가 이렇듯 대중화된 신화 안에 결정으로 맺힙니다. 그렇다면 새엄마 신화 안엔 무엇이 결정으로 맺혀 있는 걸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증오와 공포 뿐 아니라 사랑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입니다-p25


이 첫번째 단계는 부모의 태도에 달려 있으며, 아빠는 이러한 태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참여합니다. 이후 두 단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뒤의 두 단계는 언어와 연관되어 있지만 첫 단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엄마가, 그리고 곧 엄마와 아빠 둘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시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부모는 조심성 있게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주로 이는 부모의 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부모의 행동 양식 전체에 정신적 태도가 반영될 때 아기는 안전함을 느끼고 엄마의 자신감을 젖을 삼키듯 흡수합니다. 이 모든 과정 내내 부모는 "안 돼"라고 말하는데, 그들이 '안 돼"라고 말하는 대상은 세상입니다. 부모는 "안 돼요. 저리 가세요. 우리에게서 떨어지세요. 우리는 무언가를 보살피고 있고, 어떤 것도 벽을 넘어 침입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만약 부모가 겁을 먹고 두려워하면 뭔가가 벽을 넘어 침입하고, 아기는 상처를 입습니다. 마치 끔찍한 소음이 벽을 뚫고 들어와 아기에게 견딜 수 없이 날카로운 감각을 일으키는 것처럼요. 공습이 있었을 때 아기들은 폭탄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즉시 거기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p70~71


엄마 아빠는 차츰 아이를 현실에, 또 현실을 아이에게 소개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금지입니다.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라고 말씀드려서 여러분은 반가우시겠죠? 금지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의 기초는 "그래"입니다. "안 돼"에 기반해서 길러지는 아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 엄마는 아이에게 수많은 위험 상황을 가르치는 것만이 안전을 위한 길이라고 느끼는 거겠죠. 그러나 그런 식으로 세상을 알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대다수 아이들은 다른 방법을 씁니다. 유아의 세계는 확장하는데 이는 대상 자체의 숫자가 증가할 뿐 아니라 엄마가 "그래"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들이 늘어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유아의 발달은 엄마가 금지하는 것보다는 엄마가 허용하는 것과 더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는 배경을 이루고, 그 위에 "안 돼"가 추가됩니다. "그래"만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다 이룰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주로 어떤 노선을 따라서 발달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아기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의심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아기들이 다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은 적어도 잠깐 동안은 엄마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아기들은 엄마가 허락한 물건이나 음식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사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의 커다란 "그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엄마가 결코 아기를 실망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래"인 것입니다. 엄마는 전체 과업을 큰 실수 없이 해 나갑니다. 이는 아주 커다란 무언의 "그래"이며, 이는 세상에서 유아의 삶에 확고한 기반이 됩니다.-p72~73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안 돼"라는 말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항상 부드러운 물건만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돌멩이와 막대기와 단단한 마룻바닥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안기는 것만큼이나 저리 가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p75


제가 계속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린아이들의 이러한 발달은 부모가 제공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면 충분히 만족스럽게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와의 생생한 관계인데요. 그 안에서 아이는 살아 있는 신뢰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부모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p105


다들 아시겠지만, 엄청난 감정들이 거기 관여돼 있고, 사실 어린아이들은 우리보다 결코 더 적게 느끼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 어른이 초기 유년기에 속하는 강렬한 경험들에 계속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운이 좋은 거겠죠. 어린아이들은 최대치의 강도로 세상을 느낄 뿐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실제 사물로부터 주의를 돌릴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다루고 밀쳐내는 개인적인 방법을 구축할 시간이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 같은 일이 일어날 때 그걸 예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이는 아이에게 아주 큰 차이를 만듭니다.-p109 


질투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질투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들은 질투를 느끼고 조절할 수도 있었던 시기에 충분히 화내고. 질투하고, 공격성을 드러낼 뚜렷한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그들도 질투하는 시기를 지나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질투가 마음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질투의 진짜 이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질투를 하는 잘못된 이유가 끊임없이 전면으로 나서고 현재 이 질투가 정당하다고 자꾸 주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왜곡을 방지하는 방법은 아이를 어릴 때부터 충분히 잘 보살펴 적절한 순간에 질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건강하다면 질투는 경쟁심과 야망으로 바뀝니다. -p112~113


엄마가 되는 일이 왜 짜증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텐데요.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눌린 분노는 그 분노 뒤에 존재하는 사랑을 손상시킵니다. 우리가 욕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순간에 분노를 말로 모아 표현하고 나면, 하던 일을 새롭게 다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저는 엄마들이 자신의 쓰라린 분노에 가 닿을 수 있을 때 위로받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뭐, 대부분의 엄마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저는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는 수많은 이유의 목록을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들, 그러면서도 사랑 이외의 다른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엄마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p130 ~p131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건 환경 덕분입니다. 적절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면 아이의 개인적 성장은 일어날 수 없으며, 일어나더라도 왜곡될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똑같은 아이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 각각의 요구에 구체적으로 부응해야 합니다. 이는 누구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그 아이를 알아야 하며, 돌봄은 배운 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생생한 관계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 곁에서 든든하게 함께하고, 일관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경직되지 않은 생생하고 인간적인 안정감을 아이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관계 속의 안전감이 아이를 성정시키며, 아이는 안전감을 흡수하고 모방할 수 있습니다.- p154~155


건강한 아이들은 사람들이 계속 통제해주기를 바랍니다. 단 그 규율은 아이가 사랑하고, 증오하고, 거부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물리적 통제는 소용이 없으며, 두려움이 순응을 위한 좋은 동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늘 사람들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아이와 청소년들을 어른스러운 책임감으로 이끌어줍니다. 특히 새로운 세대의 어린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책임감 말입니다. -p158~159


저는 그 두려움이 흔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있어야 하며, 그렇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물론 아기를 갖는 것과 자기 삶의 다른 부분을 상당한 정도로 분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꼭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한 모든 환상들이 여기 며여듭니다. 어린 시절 엄마아빠 놀이를 할 때 떠올렸던 환상과 관념 속의 환상들 모두요. 사랑과 증오 그리고 공격성이 다정함과 다양한 비율로 섞이고 또 환상 속의 그 모든 것들과 뒤엉키지요.- p171


사실 아이의 타고난 도덕성은 날것의 공포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아이에게는 오로지 진실되고 진짜인 것만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실제 감사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예의로 감사하다고 말하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p187~188


중요한 것은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일이 아주 흥미롭고도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 삶이라는 것이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롭고 설레는 도전을 맞이하는 일의 긴 연속이라는 사실은 아이 입장에서 끔찍하게 두려운 일입니다. -p199


그러나 아이가 움츠러들 때, 완벽하게 좋은 엄마인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제가 대충 이야기하고 넘어가기를 원하지는 않으실 텐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엄마들은 두 층위에서 행동합니다. 한 층위에서(겉층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엄마들은 단 한 가지를 바랍니다. 아이가 성장하여 울타리를 벗어나고, 학교에 가고, 세상과 마주하기를 바라죠. 또 다른 층위에서, 아마 더 깊은 층위일 텐데, 실제 의식하진 못하지만 엄마들은 아이를 놓아줄 생각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논리가 그리 통하지 않는 그 깊은 층위에서 엄마는 이 가장 소중한 대상을,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엄마는 아이가 자라서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걸 즐길 때보다, 아이가 자신에게 의지할 때 더 쉽게 스스로를 엄마라고 느낍니다. 아이는 이를 아주 쉽게 감지합니다. -p199~200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 이러한 일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성장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항상 꿀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이는 종종 씁쓸한 일입니다.-p206


모든 것을 책에서 찾아보거나 방송으로 들어야 한다면, 옳은 일을 할 때조차 항상 너무 늦을 것입니다. 올바른 행동은 그 순간 즉각적으로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순간에 행동하기 위해서 행동은 직관적으로, 흔히 말하듯 본능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이후에야 문제에 대해 마음 써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고,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했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했고, 그로부터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무슨 행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p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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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0-16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되는 건 참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라~~ 기르는 일도 힘들지만 때가 이르렀을 때 잘 놓아주는 일은 더 힘든 거 같아요. 내 아이가 아니라 세상을 혼자 살아 갈 독립 된 인격이란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내가 충분히 좋은 엄마인지는 늘 숙제로군요.

별족 2022-10-19 13:37   좋아요 2 | URL
아이를 키울 때 자기자신의 양가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자기자신의 양가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뭔가 가혹하게 대처하는 거 같거든요.

추풍오장원 2022-10-19 0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요즘 나오는 아이들에 대한 책보다 훨씬 나은 책 같습니다...

별족 2022-10-19 13:39   좋아요 0 | URL
육아서,는 가끔 읽는 거라서^^, 뭔가 나쁜 인상이었다고 맞장구를 쳐드릴 기억이 없-_-:;;;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비바람이 몹시 부는 날, 숙소를 찾아 헤메다가 여관에 들어갔다. 방이 딱 하나 남았는데, 아래층에 굉장히 까다로운 손님이 들어갔으니 주의해달라는 말을 듣는다. 조용히 잠만 자고 나오겠다고 겨우 방을 구해서 들어가서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신발을 벗다가 떨어뜨린다. 깜짝 놀라서, 조심조심 다른 신발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나오는데, 눈이 퀭한 사람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면서 도대체 신발 한 짝은 언제 벗었느냐고 묻는 거다. 신발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는 다음 신발 한짝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라 잠들지 못했다는 아래층 손님이다. 


누구 잘못도 아닌 이야기, 그래서 우스운 이야기,다. 

의도와 결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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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23-04-0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네 브라운의 마음산책,을 읽다가 ˝이민자들과 시골에서 도시로 밀려 들어온 사람들이 비좁은 공동주택에 모여살던 20세기 초반에는 위층 사람이 저녁에 신발 벗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며, 만들어진 영어의 관용적 표현 ‘We‘re always waiting for the other shoe to drop.‘을 말한다. 브레네 브라운은 이 말을 언제나 나쁜 상황을 상상하는? 기대하는? 기다리는 심리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쓰지만, 나는 좀 다르게 들은 거 같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있었다. 오랜 코로나 상황으로 막내가 입학하고 3학년이 되고서야 처음 하는 운동회다. 엄마도 구경을 오라,고는 했지만 도시락도 없고, 정말 구경이다. 운동장 뒤쪽에서 펜스에 기대서 하는 구경. 

운동장의 고무마감을 걷어내서, 운동장에는 뛰는 아이들로 모래바람이 일었다. 

점심도 먹고 나간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계주를 구경한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뉜 점수판이 큼직하게 정면에 보인다. 맞춘 듯 50점 차에, 계주가 끝나고도 이긴 팀에 50점을 준다. 

6학년 아들은 청팀이고, 3학년 딸은 백팀이라 어디를 응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구경에, 계주가 끝난 운동장에 행사 사회자가 아이들을 불러서는 막춤을 추게 하고, 마구 점수를 준다. 아, 비슷한 점수의 원인을 알게 된다. 저렇게 했어. 

아들은 반에서 '거 MC 양반 점수 좀 똑바로 주시오!'라고 항의하다가, 씨알도 안 먹히니까 친구들이랑 욕을 한 아이 하나가 급식시간에 담임선생님한테 '네가 젠민이냐?'라는 말을 듣고는 울었다고, 걔가 우는 거 처음 봤다고 말했다. 

나도 억울하겠어. 계주 이긴 거보다, 단체 줄다리기 이긴 것보다, 사회자 눈에 띄게 막춤을 춘 점수가 더 높은 게 왜 억울하지 억울하지 않겠어? 라고 말한다. 

어린이집 운동회 기억도 났다. 코로나 이전에 큰 아이 운동회에서 아이들도 뛰고, 부모들도 뛰었는데, 그 때 사회자가 아이들이 승패에 분하지 않도록 한다면서 점수를 부모 점수만 넣었다. 나는 내가 아이라면 죽게 뛰었는데, 점수가 없는 게 더 분할 거 같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데, 왜 아이가 이긴 건 점수도 안 넣고, 엄마가 이긴 것, 아빠가 이긴 것만 점수에 넣지 싶어 읭~ 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기고 지는 것으로 아이가 울지 않게 하겠다,라고, 운동회를 레크레이션으로 만드는 사회자를 초청한다. 그게 좋은가? 만약 누구보다 잘 달리는 아이라면, 청팀과 백팀이 나뉘었는데, 운동회인데, 그게 억울하지 않은가? 운동회에서 운동 잘하는 친구가 주인공이 되는 게, 시험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장기자랑에서 춤 잘 추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문제인가? 열패감을 아예 느끼지 않게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게 가능한가?

이미 아이들은 프로듀스 101같은 프로에서 잔혹한 경쟁을 보고 아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좀 더 고리타분한 운동회를 고지식한 운동회가 나는 좀 더 좋다. 

레크레이션,은 잠깐이고, 뛰고 달리는 게 좀 더 중요한 그런 운동회, 사회자가 어색해도, 점수가 계주에 백점정도 걸리고, 춤은 아무리 잘 춰도 응원점수로, 한 종목 이기는 것에도 못 미치는 정도로, 나는 그 정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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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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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나는 안나가 되었나, 생각한다. 안나는 늙은 부모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태어난 예쁜 여자아이였고, 언제나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귀한 아이였다. 안나의 아버지는 지나치게 아이를 귀히 여겼다. 안나의 어머니는 무지하고, 무력하게 묘사된다. 벙어리에 발달장애?로 묘사되는 어머니는 안나를 임신했을 때조차 안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벼락치듯 출산한다. 책 속 묘사에서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아버지에 종속되었고, 어떤 면에서도 안나에게 영향력이 없는 듯 하다. 안나를 돌볼 힘이 부족했던가. 부모의 돌봄 가운데 자라서, 세상밖으로 나아갔을 때 안나의 욕망들은 제어되지 않았고, 안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운데 자라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거짓을 택한다. 작은 거짓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걸, 방치한다. 어린 안나의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남자, 안나는 계속 거짓을 선택하고 그 삶을 살아가다가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나는 과연 안나는 존재했을까 의심한다.  

수지가 주연한 안나,의 원작소설이라 궁금해서 받아 읽었다. 소설가의 추적 가운데, 안나의 삶은 소설적이고 이야기는 빠르게 읽힌다. 그런데, 나는, 안나의 이야기에 공감하지는 못한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호응하는 정도고 반면교사처럼 내 앞에 있다. 게다가 난 부모라서, 모든 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칠지 생각한다. 빈부의 차이를 그 가운데 너무 비교하면서 열패감에 빠지지 않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도록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 지 생각한다. 내 아이가 비교 가운데, 스스로의 중심을 툭 놓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단단한 중심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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