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덕이는 가난한 동네 사리촌에서 할머니와 살다가 일찍 죽었다. 

부연이는 고귀한 신녀가문 진씨 집안에 큰 딸로 태어나, 귀하게 살다가 아버지와 외삼촌 손에 죽임을 당했다. 물에 빠졌는데, 다행히 살아서, 가난한 할머니의 손녀 무덕이가 되어 자랐다. 

영이는 별을 보는 아버지의 귀한 딸로 살다가 환혼인이 되어 폭주하는 아버지가 가문의 사람들을 도륙하다가 결국에 죽임을 당하는 걸 목격한다. 아버지의 폭주는 알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원수로 삼아 잘못된 사람을 따라 살수가 되어 꽃처럼 목을 떨어뜨린다고 낙수,라는 별명을 얻는다.

부연이로 태어났으나, 무덕이로 십년을 산 이 소녀는, 낙수라는 별명을 얻은 영이가 죽음을 앞에 두고 환혼하는 순간 그 영혼을 잡아 자신의 몸에 가둔다. 무술을 하는 강한 낙수는 눈 먼 약한 몸에 들어가 다른 존재가 된다. 

내가 아는 무덕이는 부연이의 얼굴을 하고, 가난한 집의 눈먼 소녀 무덕이로 십년을 살다가, 이제 영이의 영혼을 잡아 가두면서 눈을 뜬 무덕이다. 보통은 강한 낙수의 영혼이 우세하고, 낙수의 영혼을 잡아두느라 부연이의 영혼은 잠깐씩 나타난다. 

부연이의 얼굴로 낙수의 영혼을 품고, 낙수의 태도로 살아가는 무덕이가 욱이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러다가 폭주했다. 욱이를 칼로 찌르고, 돌이 되어가는 몸을 던져 잠기던 무덕이는 뒤늦게 부연이임을 알아차린 신녀가문에 의해 건져졌다. 돌이 되어가는 몸을 고치면서 이제 무덕이는 낙수의 얼굴을 하게 되었다. 

좀 더 크고, 좀 더 강하던 낙수의 몸 대신에, 여전히 작고 약하지만 얼굴은 낙수의 얼굴이 되어 기억을 모두 잃고 살아났다. 

부연이의 얼굴로 자신을 낙수라고 생각했던 시즌 1의 무덕이는 이제 없다. 

이제 낙수의 얼굴로 스스로를 부연이라고 생각하는 시즌 2의 무덕이가 있다. 

관계는 달라지고, 이야기는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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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왜 이대남은 동네북이 되었나 -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대한민국 이대남 보고서
이선옥 지음 / 담담사무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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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여러 권을 뒤죽박죽 읽고 있다. 

마리 루티의 '가치있는 삶'(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536219)과 스티븐 E. 쿠닌의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7628702&start=slayer)을 시작했는데, 둘 중 어느 것도 빨리 읽어낼 수가 없는 와중에 받아서 읽었다. 가장 빠르게 끝냈다. 이미 많이, 메일링서비스로 읽었던 내용들인 데다가, 간결하게 쓰여진 글이다. 쉽게 읽히고 동의할 수 있다. 끝내고 다시 마리 루티와 스티븐 E. 쿠닌을 왔다갔다 하면서, 이미 마친 이 책에서 내가 아쉬웠던 건 뭘까, 생각했다. 

문과인 친구와 환경관련 수업을 같이 들을 때, 쿠닌같은 교수님이 수식을 칠판 가득 적어서 무언가를 설명했던 적이 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 화학식들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마지막까지 공대생이던 나는 와 멋진데,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문과였던 내 친구는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라고 했다. 설득을 할 생각이 있는 거야?라고 했던가. 

쿠닌도 마리 루티도 만족스럽지 않다. 과학의 언어도 감성의 언어도 어딘가에 걸려서 자꾸 멈춘다. 게다가 언어도 문화도 다르다. 

빠르게 걸리는 데 없이 읽은 이 책은 어떤가. 언어의 차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글이 가지는 어떤 입장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 '나'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 매번 설득에 실패하면서 내가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좀 더 자신을 드러내고, 정직하게 말해야 소통도 설득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의 민주주의거든'(https://blog.aladin.co.kr/hahayo/8968440)을 읽고 옮겨 놓은 문구대로, 합리나 논리만으로는 설득하기 어렵다. 그럼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어렵네. 

이 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하는 설득의 노력이다. 20대 남성의 대변인이라고 불린다면 아마도, 그 말하는 방법이 남성적인 것이기 때문일 거다.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지 생각하는 나는, 합리와 논리 대신 연민과 슬픔에 대해 말하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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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2-17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번에 여러 책 읽는 재미와 기쁨이 큰듯 해요^^

별족 2022-12-18 07:48   좋아요 2 | URL
이런 것들을 비교하게도 되고^^
 
[eBook] 가상의 불량소녀 -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93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93
이익상 지음 / 더플래닛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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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들을 읽고 있다. 동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은 오래 전의 이야기들이다. 

얼어죽은 모나리자(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66),를 처음 읽었고, 보석반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64), 파금(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54), 다음에 읽었다. 

화자가 남자인 이 소설은, 알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여기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과거나 미래가 없는 여자와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고 마친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말들이 새삼스럽다. 사건이랄 것이 과연 있나 싶은데 화자가 그 시대의 남자라서 은근하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처음 그 여자를 본 날, 다음에 전해 들은 풍문, 그리고, 밤 산책에서 마주치는 여자의 묘사들은 시대상에 비추어 불량한 모습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다시 만나기를 원하고 이야기나눈다. 과거나 미래는 없이, 현재만을 살 뿐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의 팔을 끼고 가는 걸로 이야기는 마친다. 남자의 말들을 듣는 나는, 여자가 알 수 없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남자의 입장에서 하는 건조한 묘사 가운데, 남자가 안 되었다고 연민하게 된다. 

제목이 '불량소녀'가 아니고 '가상의 불량소녀'인 이유는 이게 모두 남자의 관점에서 그려지기 때문이고, 작가조차 여자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는 걸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화에서 드러나는 여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나는, 그러면서도 미래가 없고, 이런저런 남자들과 얕은 관계만을 반복하는 그녀가 과연 지금을 충실히 살고 있는가, 의심한다. 지금, 여기를 산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오는 말인 거 같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1406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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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통화하는데, 친구가 "똑같이 사랑도, 지원도 못 할 거면서 왜 셋씩이나 낳는 거야!"라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야, 어떻게 똑같이 사랑한다니?"라고 반문한다. 

친구는 삼형제 중 둘째인 자신의 남편이, 가족과 송사 중인 그 연예인 같다면서 한참을 이야기한 다음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똑같이 사랑할 수가 없어. 그리고, 큰 아이라고 그게 좋겠어. 상황마다 사정마다 다 달라. 나는 첫 아이한테 주는 건 다 사랑인 줄 알고 줬던 그 사랑이 미안했다고, 내어놓으면 깨질 무엇인 것처럼 참 이것저것 못 하게 했다고 말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둘째한테는 첫째보다 관대해진 게 있다고. 그리고 셋째는 또 셋째대로 태도가 다르다고 내 자신을 항변한다.

둘째는 위로도 아래로도 형제가 있다. 전적이지 않은 부모의 사랑을 짧게 독점한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엄마를 빼앗긴 기분이 되니 첫째를 살피라는 조언도 참 많으니 그 사랑은 첫째와 나눠가지는, 첫째와는 다른 사랑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랑인 데도, 셋째가 태어나는 순간 다시 변한다. 막내인 셋째가 가지는 그래도 끝까지 말해보자,는 태도가 둘째에게 없다. 

가족과 송사 중인 연예인 덕에, 나도 내가 집에서 어떤지 내 자신을 관찰했다. 딸 셋에 막내가 아들인 집에 둘째인 나는 엄마랑 있으면 엄마한테 찰싹 붙어서 엄마 심부름을 한다. 언니는 방에서 충분히 늘어져 있다가, 엄마가 차린 밥을 먹고, 나나 동생이 있다면 부러 부엌에는 가지 않는다. 셋째는 적당히 적당한 수준, 에 내가 엄마가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면, 동생은 자기가 뭔가 하고 엄마에게 청하는 능동적인 방식이다. 이런다고 해서 내가 엄마 말에 꼼짝 못하고 엄마 말만 듣는 건 아니고, 나는 항상 '스스로를 보호하라'파 이기 때문에 내가 억울할 때까지 하지는 않으니까, 그 연예인처럼 가족과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그만큼 돈이 없지. 

엄마는 내가 졸업하고 취업했을 때 월급을 주면 잘 저축했다 주겠다고 하셨었다. 그렇지만, 나는 흥,하고는 내가 가졌고, 결혼도 내 맘대로 내가 정해서는 내가 원할 때 했다. 

나는 약간 관심의 바깥인 둘째인 걸 좋아한다. 부모에게 억울하기 보다, 부모는 부모, 나는 나,의 태도가 있고, 큰 기대도 큰 실망도 없는 기대 밖의 존재인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지금껏 살아가는 것이 맘에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일방이 아니다.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고, 관계가 잘못 되었다면 바로잡기 위해 변해야 한다. 나는 잘못이 없고 상대가 변해야 한다,나 상대는 잘못이 없고 나만 변해야 한다,라는 관계는 없다.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면서, 마음 속에 억울함을 키우면서, 나 아닌 존재들에게 기대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다. 관계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두고, 상대도 그 자신이 가장 우선임을 잊지 말고, 오직 내 마음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모도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사람이 달라지면 관계도 달라진다. 세상에 똑같은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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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장자 내편 동양고전 슬기바다 15
장자 지음, 오현중 옮김 / 홍익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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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내려받고는 100일 가까이 걸려서 읽었다. 토막난 글들이고, 이해하기 힘들 글들이라 공연히 줄 친 부분만 많다. 다 읽고 난 책의 정조는 쓸쓸하고 외롭다. 얼마나 험악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애썼던지, 그 마음들을 보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들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가운데, 전쟁이 벌어지고, 미워하고 미움받는 가운데 죽고 사는 사람들을 본다. 춘추전국시대, 멀찍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남긴 말들이다. 살아갈수록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우매한 것인가? 아니면 나 홀로 우매하고 남들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30%


사람의 말은 새끼 새의 울음소리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정말로 구분이 있을까? 구분이 없을까?-31%


길은 사람들이 걸어다니면서 생겨난 것이고, 사물의 명칭은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서 이루어진 것이다. 가능한 이유로부터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 이유로부터 가능하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부터 그러하고, 그러하지 않은 이유로부터 그러하지 않다. 어째서 그러한가? 그러한 원인으로 인해 그러하다. 어째서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하지 않은 원인으로 인해 그러하지 않다. 어째서 가능한가? 가능한 원인으로 인해 가능하다. 어째서 가능하지 않은가? 가능하지 않은 원인으로 인해 가능하지 않다. 만물에는 본래 그러한 측면이 있고, 본래 가능한 측면이 있으니, (항상) 그러하지 않은 만물이란 없고, (항상) 가능하지 않은 만물이란 없다. - 33%


만일 이렇게 모든 사람이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사실 성취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게 된다. 따라서 남에게 과시하는 것은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들 뿐이니 성인은 이를 버리고자 한다. 성인은 (자신의 견해를 사용하여) 사람들이게 과시하지 않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상태 속에 자신의 생각을 맡겨둔다. 이를 '텅 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지혜를 따른다'고 말한다. - 36%


성인은 묵묵히 마음속에 품지만, 사람들은 변론을 일삼으며 서로 드러내기에 급급하다. 따라서 변론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38%


우리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을 가지고 한계가 없는 것을 쫓으려고 한다면 위태로울 것이다. 그런데도 앎을 억지로 쫓아가면 결국 위태로워질 뿐이다. 선을 행하며 명성을 가까이 하지 말고, 악을 행하며 형벌을 가까이하지 말라. 선악을 떠난 중간의 상태를 기준으로 삼으면 신체를 잘 보호할 수 있고 타고난 본성을 보전할 수 있으며 부모를 제대로 봉양할 수 있고 천수를 누리며 살 수 있다. - 46%


덕은 명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지모는 다툼 속에서 생겨난다. 명성이란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지모는 사람들이 서로 다툴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흉기와 같으니, 이를 사용하여 뜻을 실행해서는 안 된다.- 51%


진정한 도는 오직 빈 곳에만 모일 수 있는 법이다. 고요히 마음을 비우는 것을 바로 마음의 제계라고 한다. -55%


너의 말이 사람들에게 통하면 계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멈추도록 하여라. 융통성 없이 스스로 남들에게 벽을 쌓지 말고, 괜히 분노의 마음을 가지지 마라.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말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따라 행동한다는 원칙만 생각하면 거의 문제가 없을 것이다.-55%


말이란 것은 바람이나 물결과 같으니, 말이 전해질 때는 반드시 더해지고 빠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람이나 물결은 쉽게 요동치기 마련이니, 더해지고 빠지는 것이 생겨나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분노가 생겨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교묘하고 치우친 말 때문입니다.-59%


누군가를 심하게 질책하며 몰아세우면 듣는 사람은 반항심이 생기며 보복할 마음을 갖게 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 59%


상대방의 성질을 거스르게 되면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본래 타고난 것이라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 타고난 성질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므로 그것을 따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 62%


너와 나 모두 만물의 하나인데 어찌 이러한 '쓸모'를 가지고 만물을 비교하려 하는가? 게다가 너는 곧 죽어 없어질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내가 쓸모없음을 추구한 것에 대해 이해하겠는가? -63%


"서로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만큼이나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로 같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면, 만물은 모두 하나일 수 있다. 그분은 이러한 점을 이해하고 있으므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을 따르지 않고 마음을 조화로운 덕의 경지에 둔다. 만물의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빠뜨림 없이 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잘린 발을 보아도 그저 한 줌의 흙이 빠져나간 것처럼 여길 것이다. - 68%


일이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편안하게 운명을 따르는 것은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네.-70%


모든 것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일찍 죽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고, 오래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81%


스승이시여! 만물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 않고, 은혜가 온 세상에 퍼져도 스스로 인자하다고 여기지 않는구나! 아득히 먼 옛날보다 더 오래 이어져 왔으면서도 스스로 오래되었다고 여기지 않고, 천지를 품고 만물을 빚어내지만, 스스로 재주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자네가 머물고자 하는 도의 경지라네. -90%


명예의 주인이 되지 말며, 계략의 창고가 되지 말며,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며, 지모를 사용하려 들지 말라. 무궁한 도를 체득하고, 아무런 조짐이 없이 적막한 경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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