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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좋은 엄마 -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의 육아 강연집
도널드 위니코트 지음, 김건종 옮김 / 펜연필독약 / 2022년 4월
평점 :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라, 오래 걸려서 읽었다. 대상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고, 주제는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바로 당신을 통해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들이다. 격렬한 육아의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나간, 나의 어머니의 어떤 태도들 가운데, 어머니의 태도를 연마한 엄마인 나는, 특정한 대상이 아닌 보편의 대중적 어머니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서 조심스럽게 말들을 고르는 이 학자의 말들이 한계가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해서 포스트잇을 잔뜩 붙였다.
말미에 스스로 라디오를 통한 대중교육이 가지는 한계를 언급한다.
똑같은 아이도 없고, 똑같은 엄마도 없고, 똑같은 상황도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는 그 모든 다른 상황 가운데서, 내가 내 자신으로 아이와 관계맺으면서 부모가 된다.
동화가 없었다면 '사악한 새엄마'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간혹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동화나 무서운 만화가 이토록 보편적 공감을 얻는 것은 어른과 아이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동화는 진실하고, 두렵고,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을 포착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동시에 두렵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요. 인간 본성의 받아들일 수 없는 측면의 일부가 이렇듯 대중화된 신화 안에 결정으로 맺힙니다. 그렇다면 새엄마 신화 안엔 무엇이 결정으로 맺혀 있는 걸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증오와 공포 뿐 아니라 사랑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입니다-p25
이 첫번째 단계는 부모의 태도에 달려 있으며, 아빠는 이러한 태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참여합니다. 이후 두 단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뒤의 두 단계는 언어와 연관되어 있지만 첫 단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엄마가, 그리고 곧 엄마와 아빠 둘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시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부모는 조심성 있게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주로 이는 부모의 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부모의 행동 양식 전체에 정신적 태도가 반영될 때 아기는 안전함을 느끼고 엄마의 자신감을 젖을 삼키듯 흡수합니다. 이 모든 과정 내내 부모는 "안 돼"라고 말하는데, 그들이 '안 돼"라고 말하는 대상은 세상입니다. 부모는 "안 돼요. 저리 가세요. 우리에게서 떨어지세요. 우리는 무언가를 보살피고 있고, 어떤 것도 벽을 넘어 침입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만약 부모가 겁을 먹고 두려워하면 뭔가가 벽을 넘어 침입하고, 아기는 상처를 입습니다. 마치 끔찍한 소음이 벽을 뚫고 들어와 아기에게 견딜 수 없이 날카로운 감각을 일으키는 것처럼요. 공습이 있었을 때 아기들은 폭탄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즉시 거기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p70~71
엄마 아빠는 차츰 아이를 현실에, 또 현실을 아이에게 소개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금지입니다.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라고 말씀드려서 여러분은 반가우시겠죠? 금지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의 기초는 "그래"입니다. "안 돼"에 기반해서 길러지는 아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 엄마는 아이에게 수많은 위험 상황을 가르치는 것만이 안전을 위한 길이라고 느끼는 거겠죠. 그러나 그런 식으로 세상을 알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대다수 아이들은 다른 방법을 씁니다. 유아의 세계는 확장하는데 이는 대상 자체의 숫자가 증가할 뿐 아니라 엄마가 "그래"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들이 늘어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유아의 발달은 엄마가 금지하는 것보다는 엄마가 허용하는 것과 더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는 배경을 이루고, 그 위에 "안 돼"가 추가됩니다. "그래"만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다 이룰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주로 어떤 노선을 따라서 발달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아기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의심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아기들이 다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은 적어도 잠깐 동안은 엄마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아기들은 엄마가 허락한 물건이나 음식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사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의 커다란 "그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엄마가 결코 아기를 실망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래"인 것입니다. 엄마는 전체 과업을 큰 실수 없이 해 나갑니다. 이는 아주 커다란 무언의 "그래"이며, 이는 세상에서 유아의 삶에 확고한 기반이 됩니다.-p72~73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안 돼"라는 말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항상 부드러운 물건만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돌멩이와 막대기와 단단한 마룻바닥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안기는 것만큼이나 저리 가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p75
제가 계속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린아이들의 이러한 발달은 부모가 제공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면 충분히 만족스럽게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와의 생생한 관계인데요. 그 안에서 아이는 살아 있는 신뢰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부모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p105
다들 아시겠지만, 엄청난 감정들이 거기 관여돼 있고, 사실 어린아이들은 우리보다 결코 더 적게 느끼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 어른이 초기 유년기에 속하는 강렬한 경험들에 계속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운이 좋은 거겠죠. 어린아이들은 최대치의 강도로 세상을 느낄 뿐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실제 사물로부터 주의를 돌릴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다루고 밀쳐내는 개인적인 방법을 구축할 시간이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 같은 일이 일어날 때 그걸 예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이는 아이에게 아주 큰 차이를 만듭니다.-p109
질투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질투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들은 질투를 느끼고 조절할 수도 있었던 시기에 충분히 화내고. 질투하고, 공격성을 드러낼 뚜렷한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그들도 질투하는 시기를 지나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질투가 마음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질투의 진짜 이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질투를 하는 잘못된 이유가 끊임없이 전면으로 나서고 현재 이 질투가 정당하다고 자꾸 주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왜곡을 방지하는 방법은 아이를 어릴 때부터 충분히 잘 보살펴 적절한 순간에 질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건강하다면 질투는 경쟁심과 야망으로 바뀝니다. -p112~113
엄마가 되는 일이 왜 짜증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텐데요.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눌린 분노는 그 분노 뒤에 존재하는 사랑을 손상시킵니다. 우리가 욕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순간에 분노를 말로 모아 표현하고 나면, 하던 일을 새롭게 다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저는 엄마들이 자신의 쓰라린 분노에 가 닿을 수 있을 때 위로받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뭐, 대부분의 엄마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저는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는 수많은 이유의 목록을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들, 그러면서도 사랑 이외의 다른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엄마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p130 ~p131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건 환경 덕분입니다. 적절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면 아이의 개인적 성장은 일어날 수 없으며, 일어나더라도 왜곡될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똑같은 아이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 각각의 요구에 구체적으로 부응해야 합니다. 이는 누구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그 아이를 알아야 하며, 돌봄은 배운 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생생한 관계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 곁에서 든든하게 함께하고, 일관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경직되지 않은 생생하고 인간적인 안정감을 아이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관계 속의 안전감이 아이를 성정시키며, 아이는 안전감을 흡수하고 모방할 수 있습니다.- p154~155
건강한 아이들은 사람들이 계속 통제해주기를 바랍니다. 단 그 규율은 아이가 사랑하고, 증오하고, 거부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물리적 통제는 소용이 없으며, 두려움이 순응을 위한 좋은 동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늘 사람들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아이와 청소년들을 어른스러운 책임감으로 이끌어줍니다. 특히 새로운 세대의 어린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책임감 말입니다. -p158~159
저는 그 두려움이 흔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있어야 하며, 그렇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물론 아기를 갖는 것과 자기 삶의 다른 부분을 상당한 정도로 분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꼭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한 모든 환상들이 여기 며여듭니다. 어린 시절 엄마아빠 놀이를 할 때 떠올렸던 환상과 관념 속의 환상들 모두요. 사랑과 증오 그리고 공격성이 다정함과 다양한 비율로 섞이고 또 환상 속의 그 모든 것들과 뒤엉키지요.- p171
사실 아이의 타고난 도덕성은 날것의 공포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아이에게는 오로지 진실되고 진짜인 것만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실제 감사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예의로 감사하다고 말하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p187~188
중요한 것은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일이 아주 흥미롭고도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 삶이라는 것이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롭고 설레는 도전을 맞이하는 일의 긴 연속이라는 사실은 아이 입장에서 끔찍하게 두려운 일입니다. -p199
그러나 아이가 움츠러들 때, 완벽하게 좋은 엄마인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제가 대충 이야기하고 넘어가기를 원하지는 않으실 텐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엄마들은 두 층위에서 행동합니다. 한 층위에서(겉층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엄마들은 단 한 가지를 바랍니다. 아이가 성장하여 울타리를 벗어나고, 학교에 가고, 세상과 마주하기를 바라죠. 또 다른 층위에서, 아마 더 깊은 층위일 텐데, 실제 의식하진 못하지만 엄마들은 아이를 놓아줄 생각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논리가 그리 통하지 않는 그 깊은 층위에서 엄마는 이 가장 소중한 대상을,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엄마는 아이가 자라서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걸 즐길 때보다, 아이가 자신에게 의지할 때 더 쉽게 스스로를 엄마라고 느낍니다. 아이는 이를 아주 쉽게 감지합니다. -p199~200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 이러한 일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성장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항상 꿀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이는 종종 씁쓸한 일입니다.-p206
모든 것을 책에서 찾아보거나 방송으로 들어야 한다면, 옳은 일을 할 때조차 항상 너무 늦을 것입니다. 올바른 행동은 그 순간 즉각적으로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순간에 행동하기 위해서 행동은 직관적으로, 흔히 말하듯 본능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이후에야 문제에 대해 마음 써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고,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했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했고, 그로부터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무슨 행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p23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