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가 있었다. 오랜 코로나 상황으로 막내가 입학하고 3학년이 되고서야 처음 하는 운동회다. 엄마도 구경을 오라,고는 했지만 도시락도 없고, 정말 구경이다. 운동장 뒤쪽에서 펜스에 기대서 하는 구경. 

운동장의 고무마감을 걷어내서, 운동장에는 뛰는 아이들로 모래바람이 일었다. 

점심도 먹고 나간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계주를 구경한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뉜 점수판이 큼직하게 정면에 보인다. 맞춘 듯 50점 차에, 계주가 끝나고도 이긴 팀에 50점을 준다. 

6학년 아들은 청팀이고, 3학년 딸은 백팀이라 어디를 응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구경에, 계주가 끝난 운동장에 행사 사회자가 아이들을 불러서는 막춤을 추게 하고, 마구 점수를 준다. 아, 비슷한 점수의 원인을 알게 된다. 저렇게 했어. 

아들은 반에서 '거 MC 양반 점수 좀 똑바로 주시오!'라고 항의하다가, 씨알도 안 먹히니까 친구들이랑 욕을 한 아이 하나가 급식시간에 담임선생님한테 '네가 젠민이냐?'라는 말을 듣고는 울었다고, 걔가 우는 거 처음 봤다고 말했다. 

나도 억울하겠어. 계주 이긴 거보다, 단체 줄다리기 이긴 것보다, 사회자 눈에 띄게 막춤을 춘 점수가 더 높은 게 왜 억울하지 억울하지 않겠어? 라고 말한다. 

어린이집 운동회 기억도 났다. 코로나 이전에 큰 아이 운동회에서 아이들도 뛰고, 부모들도 뛰었는데, 그 때 사회자가 아이들이 승패에 분하지 않도록 한다면서 점수를 부모 점수만 넣었다. 나는 내가 아이라면 죽게 뛰었는데, 점수가 없는 게 더 분할 거 같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데, 왜 아이가 이긴 건 점수도 안 넣고, 엄마가 이긴 것, 아빠가 이긴 것만 점수에 넣지 싶어 읭~ 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기고 지는 것으로 아이가 울지 않게 하겠다,라고, 운동회를 레크레이션으로 만드는 사회자를 초청한다. 그게 좋은가? 만약 누구보다 잘 달리는 아이라면, 청팀과 백팀이 나뉘었는데, 운동회인데, 그게 억울하지 않은가? 운동회에서 운동 잘하는 친구가 주인공이 되는 게, 시험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장기자랑에서 춤 잘 추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문제인가? 열패감을 아예 느끼지 않게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게 가능한가?

이미 아이들은 프로듀스 101같은 프로에서 잔혹한 경쟁을 보고 아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좀 더 고리타분한 운동회를 고지식한 운동회가 나는 좀 더 좋다. 

레크레이션,은 잠깐이고, 뛰고 달리는 게 좀 더 중요한 그런 운동회, 사회자가 어색해도, 점수가 계주에 백점정도 걸리고, 춤은 아무리 잘 춰도 응원점수로, 한 종목 이기는 것에도 못 미치는 정도로, 나는 그 정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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