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 - 싸우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만족스럽게 대화하기 위한 9가지 원칙
이언 레슬리 지음, 엄윤미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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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사무실에 사달라고 하고, 내가 빌려 읽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라-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그러니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둬야 한다-,나 상대에게도 체면이란 게 있다,는 이야기. 서로 다른 우주를 가진 상대를 인정하고, 궁금해하면서 진실하게 대화하라는 이야기. 그래야 겨우 조금이나마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게 책 한권에 가득찬다. 성공한 이야기도 실패한 이야기도 그 안에 있다. 

뭐 몰라서 못하나, 싶은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확신에 차서 상대를 몰아붙이지는 않는가 생각하면서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내가 말만 많고 행동은 굼뜨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갈등상황에서 내가 어땠는지 또 생각했다. 결국 실패한 설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레딧에 있다는 'Change my view'라는 포럼(https://www.reddit.com/r/changemyview/)과 서양의 교육받고 산업화된 민주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인지 썼다는 '세계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은 누구인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3478318&start=slayer)라는 책이 궁금해서 검색도 했다.-번역된 책은 없는 거 같다-. 

반납해야 하는 책이라서 포스트잇을 떼어내면서 옮겨 적는다. 


감정은 이성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그게 감정이 감정인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끼라고 가르치려 하는가? 우리가 이성적인 설득의 힘을 과신하는 것과 갈은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복잡한 진짜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p169~170

 

힘의 역학관계에서 불리한 편에 서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을 잘 읽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눌 때 관계의 상황을 읽어낸다. 심리적 통찰을 영향력으로 바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p192(넬슨 만델라가 빌욘을 만나는 장면에 보탠 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위험하다. 폴리스 솔루션스의 강사 마이크 오닐은 멤피스에서 만난 교육생들에게 현직 경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료 경찰관들이 수갑을 찬 용의자를 친구나 가족 앞에서 구타하는 경우를 보았다고. 이는 잘못된 행동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이다. 체포 현장에서 모욕을 주는 것은 '당신의 동료를 죽일 수도 있는' 행동이다. 강의실에 무거운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용의자들은 모욕당한 것을 잊지 않는다. 몇 년 후에라도 경찰에게-어느 경찰관에게라도- 되갚아줄 기회를 찾는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패턴이다. -p199

 

그러나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는 정확한 정보를 안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이익을 바로 얻지 못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쪽의 신념을 표출하는 것은 즉각적인 이익을 준다. 소속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옳은 편에 서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쓴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온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그 신념을 공유해온 사람들을 잃게 되는 일이다. -p236

 

리스트는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고객에게 사과를 한다면 그들이 우버를 다시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버 경영진을 설득하려면 사과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 제시해야 했다.-p258

이건,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서구식으로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떤 것이라서 남겨놓는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이런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국가와 조직의 경영자가 위원회가 내리는 어떤 판단에 그건 아니지 않냐고 말만 해서는 아무 것도, 아무도 듣질 않아서 그런 다는 걸, 나도 알고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협상을 지켜볼 관중도 없을 것이었다. 뢰드-라르센은 워싱턴 평화 회의에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 때문에 대화가 양극화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국에서 지켜보는 관객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압박이 있었다.-p269-270

 

우리는 질서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유를 추구한다. 우리가 양편 중 어느 한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갈 때 문제가 생긴다. 질서가 지나치게 강한 사회는 숨 막히고 억압적인 곳이 된다. 일관성이 없는 사회는 불안하고 생경한 곳이 된다. 정신 건강의 문제는 질서를 너무 강하게 추구(강박증)하거나 카오스를 추구(정신분열증)할 때 생긴다. - p279~280

 

의견 대립이 유혈 스포츠가 될 필요는 없지만, 피를 전혀 묻히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모든 공공의 논의가 디너파티에서의 대화처럼 매끄럽게만 흘러간다면, 고통스러운 비명과 분노의 외침은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끔은 어떤 규칙을 어기고 있는지, 누구의 감수성을 다치게 하는지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고 논쟁에 뛰어들어야 할 때가 있다. - p340

 

정중함은 표피적인 것이나 겉치레가 아니다. 공통의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칼 턴불의 실험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자유롭게 대화가 흐르도록 열어주는 것이다. 언어학자 로빈 레이코프는 정중하게 행동하는 세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강요하지 말 것. 선택지를 줄 것. 상대방을 기분좋게 할 것. 나는 이 가이드라인의 간결함이 마음에 든다. -p350

 

핵심원칙

먼저, 유대를 만들라.

줄을 놓아주라.

체면을 세워주라

나의 이상한 점을 먼저 보라

호기심을 가지라

실수를 기회로 만들라.

대본에서 벗어나라.

제약 조건을 공유하라.

목적 없이 화내지 마라.

진심으로 행동하라.

 

* 좋다면서도 별을 하나 깎은 건, 서양인 저자의 최초의 최고의,라는 식의 어떤 말들이 서구식이라서. 재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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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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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드라마가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기도 하고, 유튜브에 작가가 강연하는 짤들도 많았어서 읽고 싶었다. 노조사무실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묘사가 우리나라가 아닌 거 같아서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토지'가 읽고 싶었다. SNS시대의 대하소설이라고 썼던 태고의 시간들(https://blog.aladin.co.kr/hahayo/11344352) 생각도 났다. 이야기가 태고의 시간들보다는 땅으로 당겨졌고, 좀 더 이야기의 출처는 한 사람이라는 줄기를 잃지 않지만, 역시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초반 영어를 쓰는 사람이 쓴 한국의 묘사는 단조롭고 이상했다. 석탄을 가져다 주는 아저씨를 '준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정말 이게 한국이라고?싶었다. 그렇게 뭔가 흠결을 찾겠다고 보는 게 아니니까, 계속 읽었지만, 역시 조금씩 묘사가 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을 묘사하는 게 너무 많아도 그렇지만, 너무 없어도 이야기에 몰입은 안 되니까.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라는 심사로 이야기를 따라갔다. 80년 가까이 되는 이야기를 두 권에 풀어낸다는 건, 토지를 읽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공백들이 있을 것인가.

충격적으로 떠나버리는 큰 아들의 결벽적인 태도나, 전시에 보여주는 고한수의 전능함은 기독교 때문일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호감을 가졌던 책 속의 묘사는 처음 김치장사를 하는 선자에 대한 것이었는데, 전시에 보여주는 고한수의 전능함은 선자의 강함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공동체에서 배척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직업적 선택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 

미국인들이 이야기의 어떤 면에 열광하는 건지 역시 알기 어려웠다. 자신들이 보기에 똑같은 존재들이 이렇게까지 감정의 골이 깊다는 것 때문일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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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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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저자의 책을 읽을 때, 계속 질문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정말 그래? 정말? 이게 주류라는데, 동의가 되지 않는 순간이 많았다. 국경이 사라진 세계 가운데, 거대한 도시들이 있고, 모두가 흐르는 하나의 방향은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조금씩 다른 부분들, 결코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돌출하는 순간들이 있다. 왜 그런가, 의문을 가지고 이런 책들을 읽는다. 

결국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해석들이다. 크다와 작다, 던지 친절하다와 무뚝뚝하다,던지 모두 비교대상 가운데 드러난다. 나는 안 그런데,라는 말은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하다. 이런 책을 읽는 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흐린 배경처럼 두기 위해서다. 나는 이런데, 왜 너는 저런 거야, 라고 이해하지 못 해서 답답할 때, 아 저 사람은 여자고 ESFP고, 서양인이고, 부모님이 이혼했고, 미혼이구나,라고 이해해주려고 읽는다. 다 그럴 수 있으니까, 받아들이기 위해서 읽는다. 수도 없이 묶일 수 있는 나라는 정체성의 범주 가운데, 드러나는 특질들일 수 있다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받아들이고 다시 대화하기 위해서 읽는다. 혹은 마구잡이로 들어온 어떤 해결책이 여기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서도 읽는다. 저기서는 작동했다는데, 여기서는 왜 작동하지 않는가. 동양과 서양의 비교도 아니고,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우리나라의 비교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더하여, 내가 한국여자라니 멋진데,라고도 생각한 거 같다. 

세계의 문화를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한 홉스테드에 따르면, 일본은 굉장히 남성적인 사회로 꼽힙니다. 반면에 한국은 여성적인 사회로 분류되는데요. 의외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실 줄 압니다.

홉스테드의 남성성-여성성 구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라 의사소통 방식에 가까운데요. 어떤 주장이나 의견이 좀 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쪽이 남성적, 대안을 좀 더 고려하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이 여성적이라고 규정되는 것이죠.

홉스테드는 다른 여러 요인을 분석하여 남성적 문화는 남녀의 성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사회, 즉 남자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거칠고 물질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반면, 여자는 보다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삶의 질에 관심을 두는 사회라고 정의했습니다. 여성적 문화는 사회적 남녀 역할이 중첩되는 사회, 즉 남성과 여성이 모두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삶의 질에 관심을 두는 사회라고 보았죠. -쎈 언니들의 나라 한국, 귀여운 소녀들의 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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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라비안 나이트 : 천일야화 - 천일야화 현대지성 클래식 8
작자 미상 지음, 르네 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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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을 읽어보려고 할 때, 아, 그 시대 왕가라는 건 연예인들이었네, 싶었다. 왕가의 결혼, 치정극, 불륜 막장극이 시경 속에 있었다. 사람들이 입으로 전해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나라들의 이야기가 노래로 남아 있었다. - 선강(https://namu.wiki/w/%EC%84%A0%EA%B0%95)의 이야기는 완전 파격적인 데다가 거의 초반에 등장해서 계속 읽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그러니까 문제집의 앞쪽만 푸는 나는 굉장히 여러 번 보게 되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이북으로 읽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나라의 그래도 살아남은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다. 나라도 가고, 사람도 가고, 왕가도 사라지고, 신분제도, 마법사도, 요정도 믿음의 자리에서 사라졌어도 이야기는 어찌나 힘이 센 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기억 속에서 마음 속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들이다.

가혹한 권력을 행사하는 배신당한 왕에게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고, 절묘하게 끊어놓는 이야기로 생을 연장하는 세헤라자데는 지금의 요령좋은 드라마작가 같다.

이야기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질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 이야기들 가운데, 무엇을 좋아하는 것일까. 우리가 알고 보고 좋아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형태로 내가 사라진 다음에도 살아남을까. 법이나 제도, 권력이나 국가, 그 아래 있는 듯 없는 듯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믿음으로 어디로 흐르는가, 그 모든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새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배신하고 복수하는 사람, 설명할 수 없는 힘들-요정과 마법-, 속이 빤히 보이는 잔꾀, 영리한 아이와 노예, 여자. 논리정연하지 않은 혼돈의 이야기들 가운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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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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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멀어진 관심이라, 잠깐 생각했는데, 백자평 중에 '누구는 페미니즘 책으로 읽겠지만, 내게는 안티페미니즘 책으로 읽혔다'(https://blog.aladin.co.kr/771186155/12808177) 는 걸 보고 궁금해서 읽었다. 


여기 저기 주워들은 게 많았어서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2131800) 동양의 사고가 그러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의 나라 이야기를 꽤나 성실히 듣는 와중에, 그리스의 이원론적 철학이 기독교의 결벽적인 신과 만나서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듣는다. 이야기들이라서 재미있다. 세상을 굴리는 하나의 축으로서 이야기가 남아서, 어떤 형상들을 만드는지 본다. 태어난 게 죄라니, 참 나, 그게 뭐야,라고 기독교에 대해 들었을 때 느꼈던 어린 날의 반발심이 되살아나는 믿음들이다. 태어난 게 죄고, 성교가 죄고, 야, 참 쓸모없는 믿음인데, 이런 믿음을 왜 만들었을까? 선과 악이 분명하고, 언제나 선을 택해야 하는 가혹한 신의 차별적인 사랑 아래서 차별적인 사랑을 받겠다는 거야? 이런 믿음을 가지고 어떵게 공동체를 꾸리고, 어떻게 아이를 낳고, 어떻게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어? 먹고 자고, 사랑하고 삶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이렇게까지 경멸하면서 어떻게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왜 서양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믿었을까?  그러면서, 도대체 저런 믿음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존속하는가, 의문을 가진다. 

종교가 권력과 결탁했기 때문에, 차별하는 신의 그늘 아래로 너무 많이 들어와서 지금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 봉착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믿지 않는 자를 처단하던 신의 이름이 지금 작동할 수 없는 세계 가운데, 극단의 믿음들이 다시 창궐하는 건 이미 그 안에 품고 있는 이기심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논어 세번 찢다,를 읽었을 때 이런 대목을 만났다 '중국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은 사실 다‘구분‘을 말하고 있으나, 정치와 종교, 승려와 속인의 관계가 다르며 구조도 완전히 상반된다. 저들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합일이다. 즉 종교는 통일되었고 국가는 다원화되었다. 반대로 우리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다. 즉 국가는 통일되었고 종교는 다원회되었다. 만일 기어코 천일합일을 논해야 한다면, 그 역시 저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은 정치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저들의 전통은 종교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저들의 상태가 훨씬 더 원시적이다. -p248' https://blog.aladin.co.kr/hahayo/10881133) 

권력과 결탁한 종교의 강력한 힘 아래에서 광신은 작동하고, 마녀사냥과 탈레반이 등장한다. 스스로의 믿음의 기준에서 벗어난 자들을 처단할 수 있다는 생각은 권력과 결탁하여 힘을 발휘한다.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광신은 다시 작동한다. 

나의 믿음의 바탕이 저런 게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믿음의 이야기들은 저 믿음의 방식으로 보면 엉망진창이고, 비논리적이고, 관용적이다. 나는 나의 동양적 가치관의 토대를 좋아한다. 이런 태도들이 물론 서양에도 있다는 것도 안다. 이반 일리치를 만났을 때(https://blog.aladin.co.kr/hahayo/13206446), 행복의 경고 속의 할머니를 만났을 때, 서양에도 없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존재하는 데 아마도 권력과 결탁한 광신 가운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원론과 피라미드 식의 위계적인 사고 안에서 무능한 어떤 것으로 평가받았다고도 생각한다. 그 사회 안에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어떤 쓸모 가운데, 기독교에 식민주의에 여성학살에 동조자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고, 여성에게 성교나 출산의 의무를 지우지 않는 -아마도 성교 자체를 죄악시 하는 태도 때문에- 것 때문에 죽음의 위협을 회피하고자 하는 가운데, 여성들을 통해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는 묘사가 보였다. 


도덕적인 규제가 인간 본성을 거스를 때 필연적으로 위선이 나타난다. (80%)


동양에 대한 이야기는 짧고 피상적이다. 여아 살해와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지만 저자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니 딱 적당한 분량이다. 


좋은 말들을 많이 쓰고, 별 하나를 뺀 건, 이라영 님이 붙인 글에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여성혐오의 장면으로 언급하는 것은, 탈레반이나 기독교 원리주의, 공산주의에서 여성들의 자기치장 욕구를 어떻게 억압하는지에 대한 것들이다. 서양의 위계적인 사고 가운데, 화장을 하기보다 책을 읽어 지성을 드높이라던 여성주의자의 발언도 빠지지 않는다. 이게 지금의 탈코르셋에 대한 말들처럼 보여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는데, 이라영님은 오해한 거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여성혐오적인 여성주의자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존재하는 가운데,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쓸데없이 허황한 말들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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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3-01 1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 읽은 책과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별족님 주소링크 추가하실때 (작성시)우측에 있는 링크에 넣어 올리심 모바일에서도,PC에서도 바로연결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