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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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교실 안에는 할리퀸로맨스가 돌아다녔다. 통통한 얼굴의 단발머리 친구와 세팅한 앞머리의 친구가 열광적인 독자였는데, 매번 다른 이야기책이 끊임없이 솟아나왔다. 나는 열성적인 독자인 적 없이 가끔 이야기를 들었었다. 나는 약간 남성적인 타입이었던 거다. 

대학교를 다닐 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했었고, '포르노에 도전한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3926-라는 책이 나왔을 때 샀었다.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검열을 반대하는 쪽이어서, 포르노를 반대하는 논리가 잔인한 게임을 하면 모방범죄가 일어난다와 얼마나 다른 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이미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에서 저 책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닌가,라고도-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아직 채널을 가지고 싸울 때, 남편은 내가 보는 드라마를 옆에서 보면서 비웃었다. 입을 헤 벌리고 잘 생긴 남자 배우가 여자에게 오글거리는 대사를 날리는 걸 구경하는 내게, 저게 말이 되냐,라고 비웃는데, 뭔가 확 생경해지면서 더 볼 수가 없었다. 

결혼한 여자 둘이서 여자들은 로맨스로 판타지를 키우고, 남자들을 들들 볶고, 남자들은 포르노로 판타지를 키워서 여자들을 들들 볶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결국은 판타지일 뿐이다.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기대한다면 현실에서 이성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기는 어렵다. 

포르노,를 보는 남자가 여자의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아크로바틱한 체위를 원한다면 현실계 여자는 화가 날 테고, 그 남자가 포르노의 뭔가 범죄적 설정을 흉내내려고 하다가는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마찬가지로 로맨스,를 보는 여자가 남자에게 완벽한 외모에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도, 여자의 기분을 알아채는 섬세한 공감과 재빠른 눈치를 원한다면 현실계 남자는 억압이라고 느낄 거다. 

남자와 여자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늘 생각하지만, 로맨스 소설을 읽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뒤엉켜서 일반화하게 된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그 전에 빌려 읽은 책은 봉신연의와 서유기, 홍루몽의 다이제스트판이었다. 나열한 순서대로 읽었는데, 서유기까지 완전 재밌었는데, 홍루몽은 뭐야 싶었다. 그래서, 중국 6대 기서를 다이제스트라도 읽어보자던 마음이 사그라들고, 다른 책을 찾다가 고른 책이다. 로맨스,가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고도 아주 평이 좋은 로맨스라면 무슨 이유인지 궁금한 데다가, 읽기 시작해서는 이게 드라마화되어서는 내가 골랐구나 싶었다. 책을 읽고, 드라마 짤도 봤는데, 나는 로맨스가 강화시키는 여성의 환상에 대해서 생각했다. 시점은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진행되지만, 작가가 만든 남자는 여성화되어 있다. 오랜 첫사랑이지만, 여자가 말하기 전까지는 다가가지 않는 남자다. 아픈 가족사와 트라우마 때문에 사랑을 두려워하지만 결국 여자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위협적이지 않은 오래 묵은 순정. 결국 내가 받아들이는 순간 가능한 로맨스, 문제적 남자가 변모하고 결국 해피엔딩. 여자의 환상으로 직조한 로맨스의 세계에서 사랑받는 여자의 전능함이나, 사랑 자체의 전능함은 이런 것이다. 

현실에서 문제되는 그 많은 나쁜 연애는 이 환상 위에서 가능하다. 

로맨스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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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그랬어 203호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지음 / 고래가그랬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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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열심히 보는데, 고정코너로 아이들의 토론 코너가 있다. 토론주제가 있고 아이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건데, 보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거 아이들도 생각하고 재미있네 하고 보게 된다. 그런데, 203호도 204호도 뭔가 어른이 같이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203호 토론 주제를 보고 큰 애랑 이야기하면서 '오호 흑역사를 그렇게까지 박제하다니!'라면서 웃었다. 203호의 토론 주제는 '어린이는 초보자?'라는 거였고, 요근래 자주 쓰이는 합성어들이 어린이를 초보자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는 거였다. 서로 다른 의견이 오가는 그런 토론이 아니라, 모두 다 '기분나빠'인 어린이들의 이야기였다. 요린이, 겜린이, 캠린이, 처럼 무언가를 처음해서 잘 못하는 초보자 초심자를 의미하기 위해 만든 합성어들이 '어린이를 초보자'라는 의미로 쓰면서 혐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리다,는 말이 그런 의미가 있는 걸 알고, 중2인 큰 애와 이야기를 했다. 중2인 딸도 펀게시판 같은 데서 '요린이,라는 말은 혐오표현이니 쓰지 말자'는 글을 보고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이 들었었다고 했거든.  훈민정음을 배우면서 '어리다'는 말이 '미숙하다'나 '어리석다'라는 뜻이 있는 걸 알고 놀랐다면서, 그 책속의 토론자 어린이들도 배우고 난 뒤에는 자신의 말들이 박제되어 남은 걸 흑역사라고 생각할 거라면서 웃었다. 나는 미숙하다,는 말이 왜 기분나쁜지도 잘 모르겠어서, 처음 하면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 어리다,가 그 뜻인 게 어린이가 그 뜻인 게 왜 기분나쁜 건지 잘 모르겠더라. 

언어라는 게, 가지는 어떤 함의들이 있고, 계속 의미나 뉘앙스도 변화하고. 그 토론을 읽고 혹시 몰라서 기분나쁜지도 물었다. 초등학생 아들과 아들친구에게도 '요린이란 말 기분 나뻐? 초딩은?' 아들은 '초딩은 안 나쁜데 젠민이는 기분 나뻐'라는 답을 들었다. 도대체 '젠민이'는 뭐라니. 아, 언어가 나고 자라고 사라지는 건 얼마나 순식간인지. 처음에는 이상한 말이었다가, 그냥 그런 말이 되었다가 모두가 쓰는 말이 되면 또 다음 세대는 다른 말을 만드는 건가?  

미숙하다는 게 그렇게 기분나쁜 일일까. 204호 독자엽서에도 '어린이는 초보자가 아니'라고 자기 친구는 게임레벨이 다이아라는 엽서가 있더라. 어린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일반성을 개개인이 가지는 특수성으로 반박하는 것은, 무언가 대화가 엇나가게 하고 있다. 기분이 나쁜가? 기분이 나빠야 할까? 어린이,이기 때문에 용서받는 그 많은 실수들을 생각해본 적은 없을까? 옛 말씀에 너무 이르게 성공하는 건 복이 아니라고도 했고, 어렸을 때는 배우고 익히는 건 당연한 건데 말이다. 

204호를 보고 있자니, 큰 애는 또 누구의 흑역사가 박제되었냐고 물었는데 204호의 토론주제는 '훈육은 필요한가'였고, 이번에도 역시 무언가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또 토론 중간에 앉아서 뭔가 토론의 흐름을 바로잡고 싶었다. 주제가 너무 광범위하거나 이상해서 재미없는 말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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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는 이제
[eBook]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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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은 오랫동안 인간이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정신이며, 정신이 바로 인간의 정수라고 생각해왔다. 그리스철학들과 서양의 의학들과 서양의 종교가 그러하다.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영혼에 대해 논하는 서양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재생산하는 여성을 두려워하면서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끊임없이 위치지웠다. 그런 방식으로 제3세계의 사람들을 또 위치지웠다. 서양의 방식으로 남성의 방식으로 위계지워지는 가운데, 여성은, 자연은, 제3세계는, 대상이 되고 식민지가 되었다. 나는 이걸 페미니스트의 언설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다음에는 제1세계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저작을 떠났고, 지금은 모든 서양인의 저작들을 버렸다. 

구분할 수 없는 정신과 몸을 구분하면서, 자연과 문명을 구분하면서, 아마도 서양인들은 자신의 말이 자신의 행위와 불일치하는 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서양인에게 동양인은 아마도 모두 여성,일 것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 동양의 철학 가운데 살아가는 동양사회에서, 서양의 페미니스트가 문제삼는 그 많은 말들은 가끔 엇나가고 잘못된 곳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무살에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한 나는, 직장에 들어와 다른 풍경들을 만났다. 지나치게 남초인 직장에서 소수자를 통합시키기 위한 어떤 태도와 나의 불편이 충돌하기도 하고, 에코페미니즘을 읽고 1세계 페미니스트들의 어떤 태도에 경계하는 마음 가운데, 내가 직장에서 말하는 어떤 태도는 머그잔을 씻는 대신 종이컵을 쓰는 걸 부추겼다는 생각을 한다. 라이크어 버진,을 부르는 마돈나에게 성적 해방감을 느끼던 나는, 한국 현대사 산책에서 70년대 기생관광을 반대하는 여성페미니스트의 말에 울었다. 

" 중앙정보부는 반대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려고 이우정과 몇몇 대표자들을 잡아들인 적도 있었으나, 이우정은 ”난 절대 못쓴다. 가난해도 좋다. 세탁기 안 쓰고 손으로 빨아도 좋다. 우리 나라 딸들을 팔아서 부자되는 것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끝내 각서를 쓰지 않았다.-p66,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2권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강준만 저."

성적인 해방과 사회적 성취를 말하는 1세계 페미니스트의 말들이 가지는 모순에 더해서, 지금 내가 누리는 어떤 편리가 무엇을 치른 댓가인지 알아차린다. 추상적이던 말들이 '손으로 빨아도 좋으니' 때문에 얼마나 실감나는지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명쾌하지 못해 부끄러웠다. 자연을 약탈한 대가로 누린 편리,라는 말이 가지는 추상성은 손으로 빨래를 한다,는 말에 몸을 가진다. 나는 내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되었다. 내 말들이 얼마나 내 수고를 원하는 것인지 생각한다. 말 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증명해야 하는 말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명쾌해지지 않는 순간들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삶들 가운데, 나는 좀 더 흐릿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모순들이 충돌하는 삶을 살아내면서 지금 내가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것의 위험을 피하지 않았고, 두려움 가운데 지금까지 그래도 살아왔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편협함을 깨달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세상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만들기 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거라고도 생각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와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즐겁다, 는 걸 알고 있다. 나에게 맞장구만 쳐주는 친구만 가득하다면, 간신만 곁에 두는 왕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자기 문제에 사로잡혀 자아가 가득찼던 스무살의 내가, 이제 자아는 없다고 생각하는 마흔여섯의 내가 되어 아이들을 키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이 있어야 한다면, 인간에 대한 존중이고, 그 존중은 열려있는 가운데, 친구로 대할 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거라고 믿는다. 

회사 이러닝사이트에서 전자책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보고 젊은 여성들이 열광한 책이라 궁금했지만, 절대 사서 보고 싶지는 않았던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만 진입하라는 굳이 보고 나쁜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으면서도 책을 펼쳤다. 생각이 다른 타자를 좀비취급하던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https://blog.aladin.co.kr/hahayo/10914180)의 작가같은 태도가, 나의 서평에 결국에는 '공부를 더 하세요'라는 댓을 달았던 누군가의 태도가 책 전체에 넘친다. 나의 말이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대의 말은 다 무시해야 한다는 기이한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자기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박할 사람이라면 아예 말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내가 한때나마 사랑했던 나의 페미니즘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보고 있다. 우리는 왜 대화하는가? 삶은 없이 말들이 넘치는 서양 철학자들처럼, 논점없는 추상성 가운데 적대만이 남는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읽지 말라고, 읽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왜 이러는 거냐고 아마도 말할 거 같다. 삶 자체가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https://blog.aladin.co.kr/hahayo/10586243) 어쩌면 다른 세상에 사는 나와 당신은 결국 대화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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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 일송북 중국 6대 기서 시리즈 2
허중림 지음, 서지원 엮음 / 일송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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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산책을 하는데, 이 북으로 빌려서 읽었다. 

중화티비의 봉신연의를 드라마로 본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끊임없이 재창작되는 오래된 이야기가 궁금했다. 은나라의 마지막과 주나라의 처음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온갖 요괴들이 등장하고, 도교의 신선과 도사들, 부처님도 등장한다. 이야기의 시작이 신에 대한 경외심을 잃은 황제에서 출발하는 것은 상징적이고, 요괴들까지 두 나라의 흥망에 관여하고 있다는 설정에 계속 상상한다. 그 때 사회상은 어땠을까. 지금의 사회상이 어떤 소설에 투영되어 남을 때 어떨까. 그 때의 사회상에 묘사되는 요괴는 어떤 것들이었을까. 도사나 신선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어떤 존재들의 어떤 믿음들이 혼란 가운데, 이런 이야기로 만들어져 남았을까, 궁금했다. 나타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대목도 즐거웠고-나타지마동강세, 만화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봤었다-, 양전과 강태공의 이야기는 드라마에 어땠었나, 되짚어가기도 했다. 달기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다르네,라면서 읽었다. 수도 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거대한 이야기, 한 토막만을 들어내어도 이야기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 모른다고 해도 토막토막 과연 몰랐는가 싶은 이야기를 전투소설이나 요괴소설이나 가상역사소설로 읽는 거다. 

구구절절 한사람 한사람을 말하고 있지 않아서, 휘몰아치는 전개가 -어쩌면 그건 내가 다이제스트로 읽어서겠지만- 즐거웠다. 이렇게 긴 역사 가운데, 백년이라고 해도 그리 긴 이야기일까 싶기도 하고, 무에 그리 무거울까 싶기도 해서, 즐겁게 읽었다. 

국가, 거대한 제국인 중국의 종주국이 뒤바뀌기 위해서 벌어진 거대한 이야기에는 종교적 전복도 있을 테고, 무수한 이민족의 귀신들이 요괴의 형상으로 복종하는 모습이 있는 것도 같다. 이야기로도 이야기가 은유하는 현상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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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생각의 뿌리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 수호믈린스키의 인성 동화집
바실리 알렉산드로비치 수호믈린스키 지음, 박건웅 그림, 박미령 옮김 / 고인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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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데 딱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나는 인재시교,를 읽겠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371196) 

인재시교,에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어서, 인재시교가 언급하는 수호믈린스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우화를 좋아하는 나의 성정을 보태어, 교육학자라는 저자의 우화집을 골랐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받아본 책은 굳이 정의하자면, 공산주의자의 교육서다. 교육의 태도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는 그릇되다고 할 수 없으나, 사회로 확장한다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로는 받아들일 수 있으나, 사회를 세상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들과 집에 있는 날, 책 속의 한 대목을 읽어주었다. '열 살이면 노동할 수 있는 나이다'라고 씌여있다. 종일 밭을 메고 들어온 나의 엄마가 종일 놀 만큼 논 나에게 '이웃의 아이는 밥을 해놓고 엄마를 기다린다'고 푸념하던 순간과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열 살이면 노동할 수 있는 나이다'라는 우화집을 읽어주는 건 얼마나 다른가. 책 속의 이야기에 가지는 나의 거리감은 그런 것이다. 아이에게 노동의 의미나 가치를 가르쳐 주는 것은 중요하고,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종교적 색채가 없는 '공산주의자!!!'의 교육서 이기 때문에, 무신론자인 나에게 좋기도 했지만, 이미 너무 부유해서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이미 너무 풍요해져서, 그 풍요 가운데 너무 멀어져버린 자연의 변화, 삶의 근본적인 가치,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 같은 단순화시킨 이야기들이 그대로 와닿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그런 삶에 대한 태도가 내 안에 있지만, 이미 나조차도 노동과 많이 멀어져버렸고, 살기 보다 더 많이 보고 읽고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가진 태생적 선함이 있다는 믿음이 교육서로서는 가치가 있지만, 너무 두꺼운 이야기들을 계속 읽고 있으려니, 이 믿음이 확장하여 만들어진 사회를 또 상상하고 있으려니 좋아하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야기 자체로는 좋지만, 그게 믿음이 된 세상을 알고 있어서, 그 세상이 어떻게 병들었는지 또 알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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