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는 이제
[eBook]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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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은 오랫동안 인간이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정신이며, 정신이 바로 인간의 정수라고 생각해왔다. 그리스철학들과 서양의 의학들과 서양의 종교가 그러하다.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영혼에 대해 논하는 서양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재생산하는 여성을 두려워하면서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끊임없이 위치지웠다. 그런 방식으로 제3세계의 사람들을 또 위치지웠다. 서양의 방식으로 남성의 방식으로 위계지워지는 가운데, 여성은, 자연은, 제3세계는, 대상이 되고 식민지가 되었다. 나는 이걸 페미니스트의 언설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다음에는 제1세계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저작을 떠났고, 지금은 모든 서양인의 저작들을 버렸다. 

구분할 수 없는 정신과 몸을 구분하면서, 자연과 문명을 구분하면서, 아마도 서양인들은 자신의 말이 자신의 행위와 불일치하는 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서양인에게 동양인은 아마도 모두 여성,일 것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 동양의 철학 가운데 살아가는 동양사회에서, 서양의 페미니스트가 문제삼는 그 많은 말들은 가끔 엇나가고 잘못된 곳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무살에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한 나는, 직장에 들어와 다른 풍경들을 만났다. 지나치게 남초인 직장에서 소수자를 통합시키기 위한 어떤 태도와 나의 불편이 충돌하기도 하고, 에코페미니즘을 읽고 1세계 페미니스트들의 어떤 태도에 경계하는 마음 가운데, 내가 직장에서 말하는 어떤 태도는 머그잔을 씻는 대신 종이컵을 쓰는 걸 부추겼다는 생각을 한다. 라이크어 버진,을 부르는 마돈나에게 성적 해방감을 느끼던 나는, 한국 현대사 산책에서 70년대 기생관광을 반대하는 여성페미니스트의 말에 울었다. 

" 중앙정보부는 반대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려고 이우정과 몇몇 대표자들을 잡아들인 적도 있었으나, 이우정은 ”난 절대 못쓴다. 가난해도 좋다. 세탁기 안 쓰고 손으로 빨아도 좋다. 우리 나라 딸들을 팔아서 부자되는 것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끝내 각서를 쓰지 않았다.-p66,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2권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강준만 저."

성적인 해방과 사회적 성취를 말하는 1세계 페미니스트의 말들이 가지는 모순에 더해서, 지금 내가 누리는 어떤 편리가 무엇을 치른 댓가인지 알아차린다. 추상적이던 말들이 '손으로 빨아도 좋으니' 때문에 얼마나 실감나는지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명쾌하지 못해 부끄러웠다. 자연을 약탈한 대가로 누린 편리,라는 말이 가지는 추상성은 손으로 빨래를 한다,는 말에 몸을 가진다. 나는 내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되었다. 내 말들이 얼마나 내 수고를 원하는 것인지 생각한다. 말 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증명해야 하는 말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명쾌해지지 않는 순간들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삶들 가운데, 나는 좀 더 흐릿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모순들이 충돌하는 삶을 살아내면서 지금 내가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것의 위험을 피하지 않았고, 두려움 가운데 지금까지 그래도 살아왔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편협함을 깨달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세상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만들기 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거라고도 생각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와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즐겁다, 는 걸 알고 있다. 나에게 맞장구만 쳐주는 친구만 가득하다면, 간신만 곁에 두는 왕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자기 문제에 사로잡혀 자아가 가득찼던 스무살의 내가, 이제 자아는 없다고 생각하는 마흔여섯의 내가 되어 아이들을 키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이 있어야 한다면, 인간에 대한 존중이고, 그 존중은 열려있는 가운데, 친구로 대할 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거라고 믿는다. 

회사 이러닝사이트에서 전자책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보고 젊은 여성들이 열광한 책이라 궁금했지만, 절대 사서 보고 싶지는 않았던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만 진입하라는 굳이 보고 나쁜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으면서도 책을 펼쳤다. 생각이 다른 타자를 좀비취급하던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https://blog.aladin.co.kr/trackback/hahayo/10914180)의 작가같은 태도가, 나의 서평에 결국에는 '공부를 더 하세요'라는 댓을 달았던 누군가의 태도가 책 전체에 넘친다. 나의 말이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대의 말은 다 무시해야 한다는 기이한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자기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박할 사람이라면 아예 말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내가 한때나마 사랑했던 나의 페미니즘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보고 있다. 우리는 왜 대화하는가? 삶은 없이 말들이 넘치는 서양 철학자들처럼, 논점없는 추상성 가운데 적대만이 남는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읽지 말라고, 읽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왜 이러는 거냐고 아마도 말할 거 같다. 삶 자체가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https://blog.aladin.co.kr/hahayo/10586243) 어쩌면 다른 세상에 사는 나와 당신은 결국 대화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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