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이문영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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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을 딸'을 다시 읽으면서 그 속에 역사가의 정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역사가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했는가 하는 점을 씁니다. 하지만 조사원은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을 쫓지요."-p132


역사에 대해 말하는 것에도 의아한 마음이 되었다. 


"역사학자는 펜을 들기 전에 심리학을 좀 배워야겠는걸."

"그렇게 하도록 해도 그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에게 흥미를 갖는 이는 역사 따위를 쓰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거나, 정신과 의사가 되거나, 치안판사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되거나 또는 점쟁이가 되겠지요. 인간에 대해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역사를 쓰려는 동경심 따위는 갖지 않습니다. 역사는 장난감 병정과 같으니까요."-p244


소설 책 속의 역사가는 아마도 위서를 만들어 거짓을 진실인 척 꾸며내는 사람들인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는 사람들인 걸까? 내가 생각하는 역사가,는 진리는 시간의 딸, 속의 역사가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가는 사실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그것들로 씨실과 날실을 짜서 과거의 이야기들 가운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역사는 장난감 병정이 아니고,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거울과도 같다. 

초록불님 블로그(http://orumi.egloos.com/)로 알고있는 이문영님의 '하룻밤에 읽는 한국고대사'를 읽었다. 역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소설가가 쓰는 고대사는 비어버린 기록의 틈들 가운데, 그래도 살아남은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크게 남아 있지 않은 고구려사가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만화 바람의 나라,-기억하는 장면은 해명과 어린 무휼이 이야기나누는 장면이다- 때문이구나. 역사란 이야기가, 현실에 경각심을 줄 수 있도록 역사를 가리지도 비틀지도 않아야 한다. 가리지도 비틀지도 않아도 해석이 달라진다는 게 역사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이야기들 가운데, 무언가 인간에 대한 어떤 생각은 권력에 대한 어떤 생각은 위태로움과 번영에 대한 경각심은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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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10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제 페이퍼 오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댓글 읽고 수정할 수 있었어요.
별족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별족 2022-02-11 05:5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Book] 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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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247759) 처음 읽을 때처럼 긴박하게 읽지는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래도 다시 읽으면서는 영국과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같은 생각을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서 정말로 그러한가, -역사가라고 해도 증거없이 쓸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같은- 질문하면서 읽었다. 


계유정난,처럼 비유되었지만, 실상은 광해군인 건가 싶었다. 읽으면서 많이 찾아봤는데, 광해군이 꽤나 오래 왕이었어서 놀랐다.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찾아 읽어볼까 싶다. 


다시 읽으면서는, 뒤에 붙은 짧은 단편이 새삼스러웠다. 범죄라는 게 얼마나 정의하기 어려운가, 처벌하기 어려운가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이면서도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는 사람은 백치라고 보아 틀림없습니다."
"플리먼은 백치가 아닐세. 그것은 내가 보증하네." 경감이 끼어들었다. "매우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나이일세. 그것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네."
"내가 말씀드린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백치란 무책임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백치는 무책임의 대표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열 두 사람은 모두 30대의 남자들이었는데 꼭 한 사람만 아주 무책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곧 ‘저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 P38

"결국 악인이라는 것도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럼,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오겠습니다. 이제 통증은 없지요?" - P45

만일 형사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해들은 이야기다. 특히 전해들은 증거는 더욱 질색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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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을 위한 저승길 여정 문화와 역사를 담다 29
임승범 지음 / 민속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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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령군 우범곤 총기난사사건편https://www.youtube.com/watch?v=EpAuJq_5n00,을 보는데, 짧게 만가를 읽어주었다. 아직 꽃 상여를 지고, 만가를 부르며 망자를 보내던 시기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총기난사사건을 묘사한 다음 가족 중 딱 한 명 말 못하는 아버지만 남기고 할머니와 손자들이 모두 죽은 집 할머니의 만가였다. 만가를 부르는 사람은 장례의 분위기, 죽음의 정황을 듣고, 그 사람을 위한 만가를 부른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죽음 가운데 손자들과 함께 떠나는 할머니의 먼 길에 부르는 그 노래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부르는, 흩어져 사라진 만가는 구할래야 구할 수 없지만, 공통적으로 불려진다는 이 노래는 채록되어 남아 있어서 읽을 수 있었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아직 불려질 것이다.

문화를 짝짓기 춤으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만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평생에 몇 안 되는 문화공연이 이렇게 죽음 앞에 있었구나, 생각했다. 이 노래들 가운데, 사람들의 믿음이, 삶이 지탱되고 있다. 

까운 사람의 죽음 후에 낭송되는 노래를 통해, 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 길의 험난함은 삶의 어떤 면에 빚지고 있는지 듣는다. 공간에 퍼지는 목소리를 통해 어떤 가상의 공간, 죽음 이후의 여정을 듣는다. 가까운 사람이 가고 있고, 내가 언젠가 가게 될 그 길에 대해 들으면서 공동체의 어떤 기준들이 가치들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도 같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922625 https://blog.aladin.co.kr/hahayo/10022361)


첫 번째 인용은 커다란 인식의 용광로 안에서 종교들이 다퉜던 하나의 장면인 것 같아 신기해서 적어놓는다. 

1923년 손진태가 함남 함흥에서 채록한 무가 ‘창세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무속의 역사 인식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선신 미륵이 세상을 다스릴 때에는 사람 살기가 좋았는데, 악신 석가가 거짓과 음모로 선신 미륵을 마침내 이긴 후에는 살기가 흉흉해졌다는 것이다. - P133

이런 무속의 현실적 실태를 감안하면, 모든 망자는 성현군자 또는 선인이라기 보다는, 정확한 표현으로는 비악인이다. 어찌보면 모든 망인은 험하고 힘든 세상을 한평생 살아 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무속에서는 인간의 선악이 지니는 편차에 대하여 크게 분별심을 내지 않는다. "사람은 거기서 거기이고, 또한 그것이 사람이다."라는 인간관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 P141

결국 삶이란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에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여건을 수용하고 극복하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삶을 재미있게 즐기라는 지침이다. 세왕은 바로 그런 사실을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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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5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5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주)안온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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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을 남편이 열심히 볼 때 옆에서 잠깐 보고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용엄마가 정벌한 종족의 무녀에게 '그럼 내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냐'고 조롱당하는 장면이다. 나는 자비를 베풀어 너를 살려줬는데, 왜 너는 나를 저주하느냐는 용엄마의 말에, 무녀는 내 일족을 말살했는데, 나를 살려줬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고마워해야 하는가, 당신을 축복해야 하는가, 되묻는 장면이다. 생존을 걸고 싸울 때 헛된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내가 그런 세상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목숨 자체를 빼앗지는 않는 평화의 시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녀석 맛있겠다,를 읽고서도(https://blog.aladin.co.kr/hahayo/5025827) 나는, 생존을 위한 선택의 순간, 불가피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썼다. 

알라딘에서 위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584510내가 말하려던 건 뭐였을까, 생각했다. 나는 면전에서 나의 잘못을 말해 주는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터넷 공간처럼 물성이 없는 공간에서 위악만큼 위선도 좋아보이지는 않는다고도 썼다. 친구의 권유로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를 읽고 마더 테레사나 히틀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종이 한 장도 차이가 안 나는 거라는 대목을 읽었다. 그렇겠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반발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공감의 말들만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라서,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몇몇 꼭지에서 공감하지 못했고, 그런 말들만 아마 남기고 싶다. 게다가 요 근래, 이런 자신을 드러내고 쓰는 책들의 어떤 포지션이 계속 거슬렸어서 그 연장선 상에서 보게 된다. 아마도 스스로 무해하거나, 꽤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글들이다. 스스로가 드러나는 글을 쓰면서 지질하고 약해 빠졌고,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비참한 마음을 내비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글이라는 건, 말이라는 건 위험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서 나름 일관성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타인의 눈에 위선이나 위악으로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이 그 사람의 선택이나 행동과 충돌했기 때문인 거다. 말이나 글,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많은 노력은 바람직한 게 맞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책 속의 그 에피소드-가식에 대하여-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그 다음, 그 다음 글들에 드러난 작가의 어떤 모습에서 다른 인상을 받는다. 

내 맘에 든 글은 '축구와 집주인', '나만을 믿을 수는 없어서'

내 맘에 안 든 꼭지는 '조상혐오를 멈춰주세요', 'D가 웃으면 나도 좋아' 다. 

착하고 좋아보이려고 쓴 글이겠지만, 제사 지내는 어떤 마음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 있다. 

매일 새롭게 혐오표현이라고 낙인찍히는 말들의 오랜 역사성을 무시한다. 

김솔통,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내 말은 가벼우니 반박하지 말라는 말처럼 보여서 또 그러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지만 반론은 사절입니다, 같은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책이라는 일방적인 소통에 더해지는 감상이겠지. 

공감의 댓글이 잔뜩 달린 타인의 SNS에 대한 반박글인 여행에 정답이 어딨어,라는 글처럼 나도, 공감이 잔뜩 달린 책에 조금은 다른 의견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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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1-19 10: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식 없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의문입니다. 사람이란 내 자신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법이니까요 어떤 일을 직접 경험하거나 책으로 간접 경험한 후에야(것도 아주 마음을 오롯이 연 상태에서)비로소 나도 이런면이 남들보기엔 가식적이었겠구나 하고 조금씩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별족 2022-01-19 11:28   좋아요 3 | URL
제 자신이 엉망진창,인 걸 저는 알고 있어서, 너무 강경한 태도에 자꾸 물러서게 되는 거 같아요. 참 이 글은 미미님 보라고 쓴 글인데요. https://blog.aladin.co.kr/hahayo/13265780

미미 2022-01-19 11:40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지난번에 읽었어요. 저를 향한 글 같더라구요ㅋ 그 글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았는데 이거 쓰면서 저는 별족님생각했어요 https://blog.aladin.co.kr/759250108/13266814 여러지점에서 저랑 생각이 다르시지만 배울점도 많은것 같아요.

별족 2022-01-19 11:46   좋아요 3 | URL
저는 이반 일리치,의 젠더, 를 재미나게 읽었어요.https://blog.aladin.co.kr/hahayo/13206446 저는 남성과 여성은 다르고,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법과 사회)과 여성이 지배하는 영역(이야기와 문화)이 다르다고도 생각해요.

미미 2022-01-19 11:54   좋아요 3 | URL
이반 일리치의 <젠더>궁금하네요. 저도 예전에는 남성과 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어요.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2의성>을 읽어보니 그건 그렇게 ‘규정‘되어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구분‘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남성중에도 그 ‘구분‘에 부합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이 상당 수 있고 여성 중에도 마찬가진데 이 규정은 그런것들을 설명해주지 못해요. 단순 이분법으로 자율성과 독창성은 희생당하고 여러 사회문제를 낳는다고 봐요.그걸 이해하고 바라보니 이전보다 명확하게 사회구조가 보이더라구요.물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있지만요. 별족님도 별족님이 믿고 계신대로 계속 공부하시고 저도 그러면서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별족 2022-01-19 13:11   좋아요 2 | URL
관심이 있으시다면, pc 기반으로 제 서재에서 서재태그 여성, 여성주의 관련 글들을 보셨으면 합니다.

미미 2022-01-19 13:18   좋아요 3 | URL
네~저 은근 별족님 글 찾아보고 있었어요. 계속 볼테니 별족님도 제 글 한번씩 보셨음해요.

별족 2022-01-19 17:17   좋아요 2 | URL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eBook] [세트] 옷소매 붉은 끝동 (총5권/완결)
강미강 지음 / 도서출판 청어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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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원작을 구해 읽었다. 드라마는 8화까지 재미나게 보다가, 9-10화는 망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아, 너무 오글거려서 가족들이랑은 못 보겠어, 가 되었다. 젊은 정조도 좋고 두 사람의 사랑도 좋은데, 지지부진한 망설임에 이런 저런 거짓을 붙이는 것이 답답하다. 게다가, 드라마는 현대 젊은 여성이라는 주시청층에 소구하기 위해서인지, 역사성을 무시한다. 로맨스물에 소거되는 가족관계나 조건들이 사라지는 인상을 여기서도 받는다. 절대적인 권력의 열세인데도, 끊임없이 거절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는 것은 뭐지,싶은 거다. 조선시대인데 마루방에서 세손이 자고-이게 나의 처음 불만 포인트였다, 한옥은 마루에서 사람을 재우지 않지 않을까?-, 늙은 왕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는 편전에 중전이 찾아가고, 궁의 비밀문 뒤로 궁녀들의 비밀결사가 왕의 살해를 모의한다. 이미 결혼한 젊은 왕세손의 사랑받지 못하는 중전은 극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나는 드라마의 이런 지나치게 현대적인 설정들이 거슬렸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른다. 왕은 궁녀를 사랑했지만,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이 무색하게, 책 속에서는 왕이 과연 궁녀를 사랑했을까 싶게 왕이다. 나는 그게 싫지는 않았다. 왕위를 버리고 사랑과 떠나는 이산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거니까. 

삶으로 나아가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속 궁녀가 로맨스 시청자의 기대와 달리 사랑하면서도 달려가지 않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존재가 매력적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또 같이 한다. 그래서 아마도 드라마를 만들면서, 책과는 다르게 기이한 설정들-궁녀의 비밀결사같은-을 대사만이 아니라 그림으로까지 길게도 넣었던 건가, 싶었다. 로맨스의 독자나 시청자가 남자를 사랑하기보다 친구와의 우정을 택하는 여자에게 이입할까.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이를 낳다가 죽을까봐 깊이 사랑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거절하는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렵지만 두렵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들을 잘 숨기기 위해 드라마 속 여자는 상대의 사랑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오만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드라마 속 여자가 오만해지는 동안, 드라마 속 남자는 무능해지고-여자랑 칼싸움하는데, 칼이 부러졌어!!!- 나는 조금씩 멀어져서 본방을 보기보다 재방을 보고, 재방, 삼방을 하기보다 딱 한 번, 너무 어이없는 장면에는 채널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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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1-01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지난 한 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족님 덕분에 여성주의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극단의 해결이 아닌 조화로운 방안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별족 2022-01-03 05: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