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붕대 감기 : 소설, 향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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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없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친구들과 하는 밴드에서 아는 언니가 권했다. 1년도 더 전에 권한 책을 다 늦게 읽었다. 그 밴드 성격도 있고, 이 책이 '페미니즘'을 표방한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서평도 보고 역시 그런 건가, 거부감을 키웠던 것도 같다. 나는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를 읽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고(https://blog.aladin.co.kr/hahayo/10914180), 강화길의 '괜찮은 사람'(https://blog.aladin.co.kr/hahayo/9957536)도 좋게 읽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코멘트 없이 읽지 않다가, 나중에 읽은 거다. 그러고는 이 소설이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것이 지금 페미니스트들에게 호감이 생길 만한 건가, 갸우뚱 했다. 역시, 작가가 비혼과 탈코르셋에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악평이 있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소설의 형태로 들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한다. 과격한 20대, 결혼한 40대, 멀찌감치 물러선 아마도 50대, 성에 대한 태도도, 결혼에 대한 태도도, 화장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과연 연대는 어디에 있는가. 이 모두가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나도 아마 하고 싶었었는데, 이렇게 다른데 '페미니즘'으로 묶을 필요가 있을까,가 지금의 나다. 페미니즘으로 묶는다고 해서 어떤 페미니스트의 적개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말이 아니라 삶이, 이렇게 다른데도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는 자체가 연대일 수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굳이 더 '페미니즘'이라고 이름붙일 필요가 있을까,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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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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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를 다른 형태로 건너 들으면서 한 생각은 '이야, 참 신이 못 되 처먹었구나'였다. 

묵자를 읽으면서는 차별없는 사랑이란 말에 사람이 과연 그러할 수 있는가에 의심을 가졌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999324)


이야기가 지나치게 결벽적이라서 놀란다. 

어쩌다 한국인,을 읽은 뒤라서 서양인들이 어떤 이야기 속에서 사는지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이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멀어서 꿈 속에 죽은 딸이 나타나 이야기하는데 비명을 지르면서 잠을 깨는구나. 이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딸을 맡기면서 자신보다 더 잘 보살피기를 기대하는구나. 자신 안의 어둠을 보는 데 두려움이 많아서, 책임질 타인을 원하는구나. 

예전에 봉제인형살인사건을 읽을 때도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935205) 거기 퍼 놓은 건 '착한 사람은 없다는 것, 아직 지나치게 몰아붙여 지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이야'라는 거였는데, 나는 '사람을 그렇게 몰아붙이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거다. 

서양인들에게는 분명한 선과 악이 있고, 시험에 들게 하는 신 아래에서 항상 선을 택하기를 원하는 이야기 가운데 사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사고가 일어나고 그 다음, 구조받은 다음에도 계속되는 이야기 가운데, 얼마나 결벽적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 불쌍하네. 그래서 그렇게 자꾸 극단적이 되나, 싶었다. 살아남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어쩌면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야?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화자가 되지 못하는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 질 타인을 결국 찾아낸 건가,라는 생각을 하는 지경이었다. 

자신 안의 어둠을 볼 수 없어서, 타인에게 관대해질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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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쩌다 한국인 - 대한민국 사춘기 심리학
허태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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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다가 만나서 책을 찾아 읽었다. 듣는 것과 읽는 것은 무언가 달라서, 책을 읽을 때 더 많은 논리를 원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쫓던 대한민국이 더 이상 쫓을 길 없이 새로 길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 과연 선진국인가, 미국인은 왜 그 많은 총기난사사건 와중에도 총기소유 금지를 하지 않는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하는 서양의 이야기들 가운데, 서양의 학자들이 분석한 심리학이나 사회학이, 제시한 해결책이 내 자신의 성향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반발하는 와중에 만났다. 유튜브도 책도 재미있었다. 

책이 나온 시점 탓인지, 책은 결국 한국인이 이러한 태도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개선할 점들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 읽어서 정말 그러한가 물러선다. 

높은 주체성, 때문에 준법정신이 약한 한국인. 

높은 가족확장성 때문에 사회를 가족처럼 인식하는 한국인, 

높은 관계주의 때문에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인, 

높은 심정중심주의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한국인, 

높은 복합유연성 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원하는 하나를 선택하고도 다른 하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 

높은 불확실성 회피 때문에 스펙에 집착하는 한국인, 에 대해 말한다. 

내가 유튜브에서 보고 재밌었던 건, 한 중 일 삼국을 비교해서 주체성과 집단의식을 보여주는 것, 미래를 보는 낙천성에 대한 거였는데, 책에는 그런 부분이 잘 안 보였다. 

준법정신, 이라는 게 필요하지만 과연 법이 전부인가? 법에는 취지가 있고, 취지가 지켜진다면, 세상의 변화를 법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법이 과연 지켜져야 하는가? 관계주의 때문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 도덕적으로 결벽적인데, 다른 나라의 방식대로 법제화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한국인은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판단해서,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건데, 그걸 법이나 시스템으로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겠는가? 권력을 가졌다면 생각하지 않는 말 잘 듣는 국민을 아마도 원하겠지만, 권력이 없는 처지에 이런 개개인. 준법정신은 별로 없지만 세상 전체를 가족으로 생각해서, 타인의 아이도 자신의 아이처럼 보호하려 들고 때로는 잔소리하려 들고, 주변 사람들의 관계가 중요해서 평판이 어그러질 행동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과 사는 편이 훨씬 더 좋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이 뭐라던 상관없는 사람들보다, 자기 가족과 가족아닌 사람의 경계가 뚜렷한 사람보다, 법이라서 그저 지키는 사람들보다, 왜 그 법이 생겼는지 의문을 품고 반발하는 가운데,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거다. 

높은 복합유연성 때문에 아마도 세계 어디보다 좋은 의료보험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하고, 증거 없이 믿지 않으려는 마음은 아마도 정말 계급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 거다. 저자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의 중산층, 정의와 한국의 중산층 정의가 다르다고 그런 물질적인 기준들만 가진 태도가 열등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게 차라리 낫지 않은가, 라고 생각한다.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우월감을 입증하는 수단이 되는 나라라니, 문화적 소양이라는 것이 계급적 지표라니, 부끄러운 노릇이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한국인,이라서 다행인 날들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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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마음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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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밤길을 걷다가 맞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 남자는 때리던 남자를 말리고 여자를 구해준다. 훌륭하다. 그러나 다음 장면은 끔찍해진다. 여자는 이제 그 남자를 따라다닌다. 멀리서 지켜보고 악착같이 쫓는다. 이제 그 남자는 여자를 때린다. 그 남자는 다른 남자가 그 여자를 자신으로부터 구하는 순간 안도의 미소를 지으면서 영상은 마친다. 그 영상을 여기 걸고 싶었는데 찾지를 못했다. 그 영상을 보고 기분이 많이 나빴다. 이 영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 영상은 사회에 무슨 쓸모가 있고, 어떤 도움이 되는가. 재밌잖아. 심장이 쫄깃하고 무서웠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대답했던 적이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영상 생각이 났다. 나는 이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연민에 대한 인용들은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했을 법한 말들이고, 연민에 따르는 책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어떤 태도는 그 영상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만약 작용한다면,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책 속에 여성들의 묘사가 싫었다. 이렇게 저 자세라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화자인 남자의 변명으로 가득찬 서사가 싫었다. 

그러고도 내가 끝까지 나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이런 책을 쓰고, 이런 말을 하고 얻는 '지식인'이란 평판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동양에서의 '지식인'과 서양에서의 '지식인'은 다른가. 아니면, 내가 팽배한 주체성,으로 쉬운 정치를 위해 '자신 없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유의미한 말에 반발하는 것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신경이 더 많은 양의 모르핀을 찾게 되는 것처럼 감정은 더 많은 연민을 원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옆에서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원하게 되죠. 언젠가는 '안 돼'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마련입니다. 그 거절 때문에 환자가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은 사람보다도 자신을 더 증오하게 될지라도 그렇게 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래요. 소위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의사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판사나 법 집행관, 전당포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연민에 굴복한다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연민이라는 거, 아주 위험한 겁니다! 이번 경우에도 당신의 나약함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보십시오!"-p235


나는 이 세상에서 나쁜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사악함이나 잔인함이 아닌 나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p246


나는 이와 같은 상상을 하면서 이상한 자기만족을 느꼈다는 것에 전혀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추진력은 바로 허영심이다. 특히 나약한 사람일수록 겉으로 용기 있고 결단력 있어 보이는 행동을 취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나는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내가 자존감이 강한 놈임을 보여줄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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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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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노동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연대와 이상에 대해 '말'하는 나라였다. 이제 소련이라는 나라는 없다. 인재시교를 읽다가 알게 된 수호믈린스키의 동화집을 읽고 서평을 썼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131611) 인재시교의 모든 교육적 조언에 동의하지만, 그 교육적 조언 바탕에 깔린 공산주의 동화의 세계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엄마로서 아이를 키울 때 가져야 하는 마음과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살아가야 할 때 마음이 같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가 가족의 기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빠에 비해 엄마인 내가 가족의 도덕률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부모가 되기 전에 가졌던 이상적인 조직,을 내가 만들 수 없었다. 왜 내가 동생에게 양보해야 해!라는 큰 아이의 항변에 설명의 말을 찾지 못하는 순간이나, 누나가 무섭게 말한다고 우는 동생에게 역시 할 말을 찾지 못한다. 때리지도 않고 욕도 안 하면 좋은 사이인 거라는 외부자의 조언을 듣기도 하고, 엄마로서 모두 중재하지 못하는 가운데, 형제 간의 서열이 좀 작동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조금은 돌보기를 기대하고, 너무 작은 다툼은 알아서 좀 해결했으면 하고도 바란다. 100대 0은 없는 책임 소재에 대해 엄마의 심판을 원할 때, 내가 늘 비판하던 양비론자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큰 아이의 '왜 동생을 돌봐야 하지'라는 억울은 당연하고, 작은 아이의 '왜 누나 말을 들어야 하지'라는 억울도 어쩌면 당연하다. 가족 내에서 조차 이상적이지 않다. 내가 행사하는 권력이 있고, 가족 내에 위계가 분명히 있다. 위계없는 조직, 동등한 권력을 가진 평등한 조직,을 나는 내 가족으로도 만들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남의 나라 이야기를 이렇게 나쁘게 계속 하지,가 되서 사실 좀 화가 났다. 아마도 언론에 실렸을 칼럼이었을 텐데, 너무 지나간 이야기기도 해서 지나간 이야기처럼도 들리고 정말 그러한가 계속 의심이 생겼다. 내 가족조차도 그렇게 만들지 못한, 그러니까 그런 이상적인 조직의 전망이 없는 나는, 그래 도대체 네가 사는 그 나라는 얼마나 평등하길래 그런 것이냐,-노르웨이를 검색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B%A5%B4%EC%9B%A8%EC%9D%B4 , 우선 왕정이네, 참 나, 민주주의 지수가 제일 높다는데, 뭐 그런다고 문제가 없겠어?-  라는 삐딱한 심사가 되는 거다. 저자는 소련에서 태어나서 자라 이상적인 국가의 상이 있는가, 생각한다. -막 위키에서 검색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B%85%B8%EC%9E%90 - 한국 국적을 가졌으니 우리나라 사람이기는 한데, 나고 자라서 이 땅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계속 다른 나라에 비해서 이 나라는 이상하다는 말을 자꾸 들으니 막 짜증이 났다. 소련이 정말 좋은 나라였어도 이미 사라졌으니, 국제 질서 상에서 그런 이상적인 태도는 유지할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동안에도 억압적이었고, 문제가 많았으니 유지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고도 있다. 내 자신이 가족 내 도덕률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면서 가끔 내가 아이들을 억압할까봐 근심하는 나는, 더 큰 조직이 수호믈린스키 동화 속의 이상적인 태도로 유지될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공산주의 동화를 들으면서 자란 어른이 어떤 태도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그렇게까지 나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이 정도 혼란도 이 정도 미친 놈도 없는 세상이 있는가, 싶은 거지. 미친 놈 한 둘을 들어, 여기가 군사화된 나라, 비민주적인 나라라고 부르는 게 맞나, 싶은 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민주주의'에 대한 의심도 솟구치는 중이기는 하다.  

내 가족도 이상적이지 않고, 위계나 권력 편중-지금의 나는 권력 편중이 어쩌면 헌신의 댓가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이 없는 조직이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없다. 게다가 책이 나왔던 2018년이 아니라 코로나19가 헤집어놓은 2021년에 보기에 우리나라는 꽤나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나라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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