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역설 - 한자는 중국을 이렇게 지배했다
김근 지음 / 삼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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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의 관심이 흐르는 데로 내 자신이 언어의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했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247760

그러다가, 페미니스트가 문제삼는 그 많은 것들이 서양문명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

다른 언어, 가운데 다른 생각들이 다른 방식으로 정렬되고 있는 게 아닌가.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은 다르고, 서양문명에서 문제삼는 그 많은 것들이 동양문명에 과연 있는가 의심했다. 

걸어다니는 어원사전을 읽고(https://blog.aladin.co.kr/hahayo/12321381) 표의문자의 세계에 대해 읽어보자고 책을 골랐다. 우리말 어원사전(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4877307)을 먼저 골랐는데, 이건 말들의 어원과 들어온 시기같은 것들이다.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과연 그 단어가 있었을지 참조할 목적으로 보는 책 같았다. 그래도 우리 말 많은 단어의 가장 큰 지분은 한자어이고, 그래서 다시 이 책을 골랐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분이 거의 중요한 부분들을 인용해놓았다. 표의문자인 한자가 이미 그 안에 중의적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극단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는 동양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말한다. 문자가 이미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다.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태도, 결국 원처럼 연결되는 끝과 끝에 대한 태도를 읽는다. 거대한 중국, 거대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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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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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숨,이 좋았다고 했다. 

나는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을 고를 것이다.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상태였고, 말에 글이 더해지는 상황 다음에 글에 이미지가 영상이 더해지는 미래가 병치되는 것이 신기했다. SNS로 기록하는 일상 다음은 책 속의 묘사처럼 모든 영상을 촬영하고 업로드하는 근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쟁의 상황이라면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하듯이 개개인의 영상을 돌려볼 수 있는 미래에 자신의 조작된 기억을 마주하는 것과 처음 문자가 들어 온 아프리카의 상황은 놀랍게 연결되었다. 그러다가, 테드 창의 어떤 면모는 제1세계 지금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상황 가운데의 미래일 수 있다는 회의도 조금은 들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처럼도 보이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았다. 아이 대신 반려견을 기르는 세태 다음에,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미래를 상상한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서비스가 끝나가는 가상의 공간, 가상의 존재들이 자라고 저항하는 상황까지도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지 못하고도 좋아하는 이야기는 처음 실린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이야기 속의 성적 판타지가 부끄러워서 뭔가 물러서게 된다. 우화같기도 한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있고, 이야기를 감싸는 큰 이야기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다. 그 안에 작은 이야기는 시간을 거스르는 연금술사의 문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돈에 대한 이야기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결국 우리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 가운데, 내가 물러서는 이야기는 이런 거다. 젊은 날의 자신을 만나 부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남자를 보고, 그 아내가 그 문을 지나 자신을 알기 전 젊은 남편을 만나고 정부가 된다. 남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남편은 아닌 그 젊은 남자와의 서툰 사랑 가운데 여자는 자신을 처음 안았던 남편의 능숙함을 가르친다. 젊은 남자는 나이 든 여자와의 사랑 가운데 능숙해지고, 다시 만나게 되는, 같지만 다른 여자에게 사랑의 기쁨을 선사한다. 여자들끼리 이야기할 때, 하는 이야기들, 자신의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면 좋겠는지 말하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나는 상대가 좀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아서 나를 좀 리드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던 때 말이다. 바람둥이는 싫은데, 능숙했으면 좋겠어,는 도대체 뭐람. 불가능한 바램들 가운데 이야기는 나이든 아내가 시간의 문을 지나 젊은 날의 남편을 가르치고, 잘 배운 남편이 젊은 아내에게 기쁨을 주는 방식으로 도덕적 문제를 회피한다. 그런데, 과연 도덕적 문제가 없는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시간이 어긋나 자책하는 마음은 없을 지 몰라도, 이야기의 명랑함 뒤에 나이 든 아내는 나이 든 남편을 배신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남자들에게도 이런 종류의 환상이나 바램이 존재하는가 싶어 신기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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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샤인 - 제시카 소설 데뷔작
제시카 정 지음, 박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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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빌려 읽으니 이런 책들도 빌려 읽는다. 그러고는 가차없이 이런 식으로. 


내내 한 생각은 왜 레이첼의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하는 걸까. 지원하기로 하고 이주까지 했으면서 왜 그렇게 통제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레이첼에 이입할 사람이 아니니까. 중학생인 딸이 케이팝스타를 꿈꾸면서 기획사에 들어간다면, 나는 혼자 보낼 거 같다.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가 그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레이첼의 어머니는 언제나 모호한 태도로 언제나 모호하게 행동한다. 모두를 가질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걸 용납하지도 않는다. 


너무 한심한 이야기들이라 겨우 겨우 읽었다. 아이가 부모를 이해하려고 지어내는 이야기들은 다 좀 한심하고, 레이첼이라는 주인공 여자애가 매력이 없었다. 로맨스로 읽기에도 부족하고, 아마도 서양에서 먹힌다면 가혹한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세계가 궁금해서인가 싶다. 

시류에 영합하려는 듯한 시도로 '여자에게 가혹한' 따위의 묘사들은 뭐지? 싶다. 

아름다운 얼굴과 멋진 청춘의 몸매,를 전시하며 가짜 사랑을 판다. 연예계,라는 게 그렇지 않나? 

그 판타지 안에서 열매를 취하면서, 비판은 거부한다는 건 모순이지 않나. 

여자들이 여자들끼리 따돌리는 상황에 대한 묘사도 그런 생각이 든다. 

문화,는 여자들의 영역이고, 여자들의 오랜 문화 안에서 여자들이 만드는 억압들이다. 문화,라는 추상은 결국 사람들이 만드는 거고, 레이첼이 추미나를 비방하는 그 모든 말들은 업계 밖의 사람들이 하는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업계의 판타지 속에서 이력을 쌓아, 부를 일구고도 여전히 업계의 판타지를 이런 한심한 소설로 써서 파는 작가가 뭐지 싶다. 

가짜 사랑을 팔고 있으면서, 그것에 따르는 댓가는 하나도 치르지 않는 것, 그건 과연 합리적이기는 한가. 도대체 데뷔를 앞둔 연습생 주제에 톱스타 남자와 연애도 하면서, 나에게는 케이팝밖에 없다는 모순투성이 태도인 주인공에게 이입이나 할 수 있냐고. 사랑과 직업적 성취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시기, 혹은 상황에서 두 개 다 가능한 양 말하는 어린애의 쓸데없이 긴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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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안온한 날들 - 당신에게 건네는 60편의 사랑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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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이 구멍났다고 쩔쩔 매는 친구에게 잊어,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아무도 널 안 봐. 아무도 날 안 봐도 나는 아니까 신경이 쓰인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 게 자의식이지. 


첫번째 에피의 할아버지 이야기에 눈물이 찔끔 나다가, 전화로 통화한 어머니와의 대화 묘사에 갸웃한다. 사람들이 말을 이렇게 문어체로 하나 싶어서. 


그래도 꾸여꾸역 연애한 이야기를 읽는데, 와 나쁜 놈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일방적인 결별을 당한 것처럼 묘사하는데, 여자인 내가 읽기에는 이상한 남자다. '이제 더는 사랑하지 않네'라고 말하면서도 여자가 떠나지 않기를 기대하다니 이상한 거 아닌가. 자신만만한 미혼의 여자라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자와 왜 계속 만나겠는가. 헤어지자,는 말은 아니지만, 과연 여자가 떠났다고 그게 여자의 일방적인 결별인가. 자신의 연애사가 한참이나 있어서, 소금에 대한 이야기나 다시 만나 술집을 전전하는 이야기나 다 구질구질하다. 작가,라고 자기 이름 옆에 붙이기 위해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인 서사를 쓴다. 못 봐주겠다. 

 

결국 화장실에서 쓰러진 노점상 아주머니가 응급실에 실려온 에피소드에서 두 아들들을 묘사하는 대목에 정말 너무한 걸 싶어가지고 반납했다. 소설도 아니고, 자신의 직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다니 너무 무례한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앞으로 만날 일 없는 그래서 안전하게 생각해서 하소연했을 그 아이들에게 이입한 다음, 아 이 의사 정말 너무하잖아, 싶어서 그만 읽기로 했다. 이 의사와 절대로 어떤 일로도 만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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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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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공식 PREP'을 읽었다. 읽고 참 좋은 책이라고 서평을 써야지, 생각하고는 쓰지를 못하고 있다. 좋은 책을 읽었으니, 잘 써야 할 텐데, 싶어서 쓰질 못하고 있는 거다. 

잘 쓰고 싶어서 책을 읽고는 도대체 독자인 나는 왜 읽는지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책이나 읽자 그러고는 이북도서관에서 책들을 골라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못하게 되었습니다'와 '상관없는 거 아닌가'이다. 그러고는 좋은 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 

아무 할 말도 없으면서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때도 있는데, 지금 살아오고 말들이 쌓였지만 꾹 참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내가 책을 쓴다면 제목은 '모두 다 변명'일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대개는 '내가 한 선택들에 대한 이유'들이라는 걸 자각한다. 자각할 때마다, 그걸 왜 상대가 들어야 하지, 생각하는 거다. 그럼 쓸 이유는 없네, 싶다. 

나는 추상적인 글,에 박하다. 이유를 숨겨놓은 글들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내 자신을 그렇게 드러낼 마음이 없으니 책은 못 쓰겠다, 싶다. 실상은 그걸 누가 알고 싶겠어, 하는 거지. 독자인 내가 이렇게 박하니 못 쓰는 거지. 

어떤 글이라도, 자기 삶에서 비롯된 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글은 의심한다. 장기하의 글은 장기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배경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자유직업을 가진 미혼의 남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글이다. 살아가는 데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태도는 좋은 태도다. 그렇지만 내가 그걸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지. 육체와 시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렇게 산 사람은 저렇게 사는 삶을 아예 모른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는 저렇게 사는 사람은 무슨 생각인가 궁금한 거고. 누구에게도 격렬하게 싸움을 거는 게 아니니까, 장기하의 '상관없는 게 아닌가'라는 태도가 살아가는 데 낫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책을 낼 때는 좀 달라도 되지 않는가. 좀 더 깊이 숨겨놓은 마음이어도 좀 더 스스로에 단단한 고집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만, 글이란 위험하고,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박제되어 결국 나를 옭아매기 때문에, 글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휘청휘청하다가 결국 어떤 글이라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태도로 맺고 만다. 글은 닫혀버리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삶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글을 삶에 일치시키는 방법은 그것 뿐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상황-'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처럼-, 살다보니 이렇게 되어 버린 걸 열심히 변명하기에는 무의미한 말들이라 그럴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어렸을 때 생각한 것처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시시각각의 선택이라기 보다, 장기하 말대로 파도타기 같은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자면 결국 이렇게 살아버린 자신의 삶을 변명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런 감각을 이야기로 남기는 사람은 아마도 스스로가 소외된다고 느껴서, 더 말하고 싶은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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