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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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이는 아마도 쉰을 넘지 않았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가 여든은 되어 보였다. 우리는 그가 친절하고 조용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가난의 냄새-그의 두 칸짜리 셋집에는 아마 욕실도 없었을 것이다-가 났기 때문에, 그가 가을과 긴긴 겨울 동안 누덕누덕 깁고 닳아서 반들거리는 푸른색 양복(그가 가진 다른 하나의 양복은 봄여름용이었다)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얕잡아 보았다. - p23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철저하게 논의하던 주제들 중 한가지일 뿐이었다. 세속적인 관심사도 있었고 그런 것들이 수백만년 뒤에나 올 지구의 종말이라든가 그 당시 생각으로는 지구의 종말보다 나중에 올 것 같았던 우리 자신의 죽음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였다.-p71

나는, 내가 젊었을 때 나이 든 사람들을 어떻게 보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경멸했었는지, 기억한다. 그런 기억들이 있어서, 나는 나의 아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또 조금이나마 상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그 시기를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놀랐다. 긴 인생에서 짧은 시기, 그러나, 자신의 죽음이 지구의 종말보다 나중에 올 것 같았던 시기, 낡은 것들을 경멸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하던 시기, 그러면서, 세상과 자기 사이에 자리를 찾아가는 시기. 외롭고 쓸쓸하고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시기. 

마음 속에 자신의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소년의 우정이, 자기 땅을 그대로 사랑하고 자부하는 소년의 마음이, 결국 뿌리뽑혀 괴로운 어른의 마음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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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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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님이, 동양의 고전을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선생님이 받아들인 각각의 이론들을 원문의 일부를 읽고 설명했다.여러 날을 조금씩 읽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자백가가 출현했던 당시 중국의 통치형태가 대부 이상은 관계로, 이하는 법으로 다스렸다고 말하면서, 유가가 대부이상의 통치수단을 전 인민에게 확장하는 방식의 이념이었다면, 법가는 그 반대방식이었다고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에서, 금융범죄를 저지른 최고경영자의 재판과 병치시켜 이민자의 경범죄 재판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가졌던 그 불편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법이 가장 강경하게 작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인가,하고 생각했다. 지금과 제자백가시대의 차이라면, 모두 그걸 알고 수용했다는 거고, 지금은 표면적으로는 그게 아니지만, 실상은 그러하다는 것인가,라고도 생각했다. 


사람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래! 법대로 해, 법대로'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건 사람 사이의 관계는 끝장내겠다는 말이 아니냐고 되물은 적이 있다. 법은, 가장 나중의 일이고 예외없이 작동하는 법은 쉽지 않다. 예외없는 원칙의 집행을 요구하는 주장을 들을 때면 언제나 양영순의 짤-지하철? 문이 닫히고, 문에 끼인 신체는 절단된다(엘리베이터였던가?)-을 떠올리는 나는, 유가의 태도에 더욱 공감한다. 

모두가 왕의 권력을 나눠 가진 시대에, 강경한 법을 누가 집행하는가,는 법을 집행하는 자, 만드는 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킨다. 법은 필요하지만, 가장 마지막 수단이고, 세상이 바뀌면 바꿀 수 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무엇이 더 중요한 세상인지는 모르겠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권력에 따르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언제나 위를 선망하는 세상의 심리는 그대로 그 영향을 받는다.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 그게 민주주의에서 내가 할 일이라는데 그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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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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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혜가 주연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2011)라는 드라마가 있다.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한 여자주인공이, 실제 결혼하게 된다는 그 줄거리 소개에, 그래 거짓말 하고 싶은 때가 있지,라고 보기 시작했었다. 드라마가 시작하고, 여자 주인공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은 나의 공감이나 기대와는 달랐다. 내가 결혼했다고 거짓말하고 싶었던 순간은, 주변에 친구들이 결혼해서 부모가 결혼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세상 모든 친절들에 혹시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내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성적인 가능성이 열린 채로 긴장감 가득한 관계들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던 거지. 


꾸역꾸역 읽었다. 이해할 수 있던 것도, 무언가 공감했던 것도 아니면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야 싶어서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모르겠다. 

사랑으로 내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사랑과 우정을 과연 구분할 수 있는지 의심하는 지경이라서, 책 속에 가득 찬 성적인 것들이 의아했다.  

동성애 삼각관계에 끼어서 자살한 친구의 기억을 가진 여자가, 양성애자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거부당한 기억이 있는 여자가, 아예 극단적인 관계맺기만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엄마는 그 남자친구가 양성애자,인 걸 어떻게 알았대? 

결혼한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 관계맺기를 위해서인데, 책 속의 결혼은 좁게 둘만의 관계로 축소되고-단기임대로 남편이나 아내를 빌리고, 그게 직업인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런데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첩보원처럼 자신의 정체를 모르게 한다는 것은- 성적인 묘사들이 그득하다. 화자가 여성이라서였을까, 그 성적인 묘사들도, 마음이 비어버린 건조하고 이상한 묘사들이다.너무 많은 걸 말하고 싶어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의 결혼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결혼한 두 사람의 존재를 너무 지워버린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깊고, 이해하기 힘든, 복잡하고, 이상한,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라서, 설명하지 못하는 판단을 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기이한 제도 안에서도 기이한 사랑으로 자신을 돌본다. 

스스로 괴롭다는 나래이션을 토하면서, 어지러운 선택을 하는, 자기 안에 질문에 답하지 않는 주인공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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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딜레마 - 원자력 르네상스의 미래
김명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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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원회의 시민참여단 숙의결과가 나왔다. 

신고리 5,6 건설재개, 원전 축소 권고다.  

애초에 공론화위원회로 공을 넘긴 것이 잘못이고,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 거라는 분개도 보인다. 

나는, 공론화위원회,라는 형식이 있어 다행이다, 싶다.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도, 수긍이 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다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특별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많이 기대를 져버렸었다. 임기 말 한미 FTA에 대한 실망은 둘째치고, 원자력에 대해서는 특히 태도변화가 컸었다. 

재작년 말 쯤, 정부의 입장,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폐기물처분장으로 격렬한 갈등이 불거졌을 당시 환경부장관이었던 분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안보에 대한 위정자들의 관점을 이해할 마음이 없었다. 좁은 국토에서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에너지 믹스며, 70년대 오일 쇼크에 대해 듣지만, 안보가 무언지 정말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계를 꾸리고, 살림을 하면서 겨우, 안보가 집에 쌀을 들여놓는 거 같은 거라고 이해했다. 바닷길이 막혔을 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같은 거. 원자력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한달치를 비축할 수 있어요, 같은 거. 

부피의 문제, 공급의 문제, 자원의 문제. 정권을 잡기 전까지 반대자의 입장이었다가, 위정자가 되는 순간 다시 생각하게 되는 문제.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전원이라는 거다. 책임자가 되었을 때, 고려할 다른 문제들로 이전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서 이런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와 의견이 다른 결정을 했더라도,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고민을 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내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설명했어도 내가 이해할 맘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대통령이나 산자부장관이, 탈핵입장을 천명하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가스관의 미래를 천명했음에도, 시민참여단의 숙의결과가 재개인 것도 좋다. 숙의결과가 재개지만 다시, 줄여가자고 말하는 것도 좋다. 에너지의 문제가 삶의 문제, 우리 삶의 낭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비율을 유지하면서도 축소할 수 있을 만큼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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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10-2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치, 행정(정부)를 고려할 때,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신고리 5,6 건설재개, 원전 축소 이외의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별족 2017-10-21 15:34   좋아요 0 | URL
축소권고는 공론화위원회의 논의범주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마립간 2017-10-21 15:41   좋아요 0 | URL
제 직장 동료는 신고리 5,6 건설 재개도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범주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보다 기본적으로 전문가의 의견과 여론의 의견이 어떤 범주에 어떤 비율로 작용해냐의 문제인데,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정부의 책임을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여론으로 넘기는 역활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이 정부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별족 2017-10-23 14:53   좋아요 0 | URL
그 동료분은 공론화위원회 자체에 회의적인 게 아닌가요?

마립간 2017-10-23 15:2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도 (전문가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자료가 없기 때문에 판단 보류입니다.

전문가의 입장이 더 반영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국민 여론이 더 반영되어야 하는지. 과학기술 분야와 인문 사회분야의 균형도 결정하기 어렵고, 과학기술 분야라고 해도 각 위원이 원자력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아직 미연구 분야이기 때문에,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해서 특히 폐기물 재처리에 관해서는 전문가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렵죠. ;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별족 2017-10-24 08:58   좋아요 0 | URL
4대강 이슈 때, 동료랑 논쟁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저도 비전문가인 채로 반대하고 있었거든요.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할 수 없다던 동료와 이야기했었죠. 전문가가 아닌 채로도, 논쟁의 와중에 구경하면서, 판단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마립간 2017-10-24 11:44   좋아요 0 | URL
저는 (예를 들면 지난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을 강의하는) 수학강의가 떠올랐습니다. 비전문가가 강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할 수 있지만, 강의의 내용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4대강 개발이나 원자력 발전소 설치가 극도의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하냐, 아니면 일반인의 상식 수준에서 판단 할 수 있느냐겠죠.

‘원전 축소‘와 ‘4대강 개발‘의 차이를 저는 모르겠군요. 왜 원전 축소는 공론화위원회의 범위를 넘었다고 생각하시죠?

별족 2017-10-24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목적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범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주제를 좁게 잡은 이유가 있는데 주제를 벗어난 권고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마립간 2017-10-24 19:33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을 생각해봤습니다만.

예전에 ‘민노총‘에서 노동문제와 관련 없는 시국선언을 할 때, 그것이 주제를 벗어난 것인가,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애초의 목적을 벗어났다는 것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번 결정이 정부의 결정이라고 보는 것이죠. 암묵적인 공론화위원회의 목적이 신고리가 아니라 차후의 원전 축소 권고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별족 2017-10-25 11:10   좋아요 1 | URL
정부의 결정,을 거기 넣는다는 게, 공론화위원회를 퇴색시켰다고 생각하는 거죠. 노무현대통령이 많은 기대를 져버렸을 때, 저는 제가 바랐던 게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내 마음처럼 해주는 독재,였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내가 바라는 게, 민주주의라면, 나는, 내 마음과 다른 결정에 좀 더 열려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했구요.

지금의 공론화위원회에서 제가 좋았던 점은, 관심있는 사람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를 참 원없이 해봤어,라는 거 거든요. 사람들이 열심히 말하고 열심히 듣고, 성의껏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데, ‘신고리 5,6 공론화위원회‘에서 ‘원전축소‘라는 모호한 사족-제가 모호하다는 이유는, 비율을 유지하면서도 원전은 축소할 수 있거든요. 전체 소비를 줄여나간다거나,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구형원전을 연장하면서도 축소할 수도 있거든요, 지금 신규원전을 모두 지어도, 수요량예측이 이전 정부대로라면, 원전비율은 축소되는 거라서, 그 말은 해석의 결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이 붙어서, 사람들이 공론화위원회를 정부의 꼭둑각시였고, 무가치한 돈낭비였다고 생각하면 억울한 거죠.

마립간 2017-10-25 12:14   좋아요 0 | URL
지금의 공론화위원회에서 제가 좋았던 점은, 관심있는 사람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를 참 원없이 해봤어,라는 거 거든요. 사람들이 열심히 말하고 열심히 듣고, 성의껏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도 하고요. ; 이 부분에 관해서 제가 아는 것이 없어 별족 님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전체 소비를 줄여나간다거나 ; 겨울에 내복을 입고, 여름에 에어컨을 들지 않으면서 전력 소비를 줄인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 특히 한국 사람)의 욕망에 미뤄볼 때, 전력 수요량은 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줄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죠.
 
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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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때, 선배가 좌파가 나쁜 놈이 되면 이건 정말 나쁜 놈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좌파가 될 때 기존의 도덕률을 체제에 복무하는 것으로 거부하기 때문에, 좌파의 무언가 선량함이 탈색되고 나면 진공의 공간이 펼쳐진다고 했었던가. 

젊었을 때 좌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 젊었을 때는 좌파였다가 늙으면 우파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건 무엇 때문일까도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누가 옮겨놓은 '우파는 자기 양심하나 건사하면 건전하지만, 좌파는 타인의 양심까지 지켜야 건전하다'는 김규항의 글을 보았다. . 

젊은 아버지가 자신의 가족이 자신만큼 부지런하지 않다고 두드려팼던 기억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를 읽은 참인 나는 젊은이가 좌파가 되는 이유가 그러니까, 자신의 관점을 타인에게 실행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나, 이런 생각도 한다. 김규항의 말은 아마도 제도나 시스템을 통해 타인의 양심까지도 건전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말이겠지만, 제도나 시스템 이전에 인간에게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말에서 나의 양심뿐 아니라, 타인의 양심까지 지키겠다는 태도의 용맹함을, 젊음을, 보는 거다. 


그 전에 세 여자,를 마치고 마지막에 마음 깊은 곳에 남은 감상이 '야, 이 박헌영 나쁜 놈'이어서, 이걸 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 좌파니 우파니 도덕률이니 양심이니, 젊음이니,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된다. 1910년부터 90년까지 조선공산당의 역사와 함께 한 세 여자의 이야기를 덮으면서, 나의 감상이 이것 뿐이면 정말이지, 망한 독서가 아닌가, 그러는 거다. 


1권에는 1920년부터 39년까지 세여자가 만나고, 공산주의자가 되고, 혁명과 해방을 위해 움직이는 이야기들이다. 같은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만나고 사랑하는 이야기들이 상해와 모스크바까지 펼쳐진다. 2권에서는 세 여자의 1939년부터 1959년까지가 펼쳐진다. 박헌영이 감옥에 있는 동안 김단야와 소련에서 결혼한 주세죽은 김단야가 일본의 간첩으로 처형된 뒤에 중앙아시아 크질오르다에서 강제노역에 처해진다. 혁명가의 자녀 국가보육원에 다니는 딸이, 밀정혐의로 죽은 김단야나 밀정의 가족이 되어 강제노역형에 처해진 자신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딸 곁이 가지도 못한다. 그런데! 해방의 공간에 자유의 몸이 되어!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일정정도 지위까지 복권된! 박헌영은, 그녀의 청원이 소련을 거쳐 북으로 왔는데도 그녀를 방치한다! 심!지!어! 젊은 여비서와 결혼도 한다! 에이 나쁜 놈아!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해방의 희망을 견지했던 유일한 존재 조선공산당이 분단과 전쟁으로 남쪽에서는 뿌리뽑히고, 북쪽에서는 말하기도 민망한 세습왕조로 변질되어 버린 것과 겹쳐지는, 세 여자의 젊음과 늙음, 죽음이 허무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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