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독서 - 21세기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하다!
사이토 미나코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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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서는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끔, 그걸 잊는다.

책을 많이 읽는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된 마냥, 많이 읽고 싶어 조바심에 동동거리기도 한다.


화유기,의 책장수가 학대받는 아이들을 유혹했듯이, 책은 현실을 눈감게 하는 도피처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듯, 책을 읽고 있는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다. 

정조가 문체반정으로 어떤 책을 금했듯이, 나도 가끔 그러고 싶다. 

말들이 시끄러운 것처럼, 책들도 시끄럽다. 


나는, 책에 대해 품평해주는 직업따위 아니니, 내 취향대로 나의 호기심을 따라 책을 고른다. 가끔 끔찍한 책을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베스트셀러는 피한다. 

'그래서, 제가 읽어보았습니다'인 이 책의 저자는, 본인인 채로, 책을 팔려는 태도가 아니라, 정탐하는 태도로 일본의 베스트셀러들을 리뷰한다.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한국의 베스트셀러라서, 생각보다 많은 책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나 '오체불만족'이나, '새역사교과서'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나 '냉정과 열정사이'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나, '철도원'도. 

내가 우와,하며 즐겁게 읽은 '영원의 아이'(텐도 아라타)도 예외없는 혹평을 뒤집어 썼고-나도 다시 읽으면 조금 느낌이 다를까?-, 책장에 꽂힌 '모방범'에도 좋은 평은 아니다.

'새역사교과서'를 의외로 재미나게 읽었다며 반론하는 '옳은'책들을 '늦다, 고리타분하다, 어둡다,'라고 평한다. 

서평집을 읽고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지 않다니, 생경한 경험이다. 

나만 그렇게 삐딱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있자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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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천자문 -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
김성동 쓰고 지음 / 청년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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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아이들과 국화차를 나눠 마신다. 핀란드의 휘게처럼, 이야기를 꽃피우고 싶었으나, 아이들은 티비를 보다가, 달려와 원샷하고 다시 티비 앞으로 간다. 

이게 고정된 시간이라서, 저녁마다, 이 책을 펼쳐서 여덟자씩 세 번 썼다. 천자문 앞에 자기 이름 석자를 박아넣은 이 책은, 두쪽에 걸쳐 저자가 붓으로 쓴 여덟자를 맨 위에 네 글자씩 펼쳐 넣고, 아래 두 쪽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훈음은 그저 읽고, 세번씩 썼다. 처음 썼던 때처럼, 지금도 검을현누를황, 다음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끝까지 쓰기는 했다. '17년 7월에 시작해서, '18년 1월에 마쳤다. 

천자문이 어린이가 배우는 첫 글자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다. 

천지와 우주와 계절과 세계의 중심인 천자의 나라에 대한 말들이다. 다른 책들, 다른 이야기를 모른다면, 아예 모를 이야기들도 있다. 아이들의 배움이 빈 터에 쌓이는 것은 아니니, 첫 책으로 의문을 만들어놓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래 두쪽에는  천자문의 여덟자와 연관되기도 상관없기도 한 이야기들이 씌여 있다. 가장 많이 남은 인상은, 천천히 스러지는 구한말 선비의 마지막이다. 자신이 천자문을 배울 때, 역사의 격랑 속에 가족사가 드러난다. 조선의 선비인 할아버지는, 앞세운 아들과 사라지는 나라와 단절되는 문화 속에서 손자를 가르치고 있다. 쓸쓸하고 황량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풍경들이다. 

거스를 수 없는 명을 받고 밤이 새도록 써내려간 천 글자의 이야기는 그런 풍경으로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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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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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고 느낀 나의 불편함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다시 읽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읽다가 때려치웠다.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초반에는 해리엇,이 나같아서- 결혼해서 아들 둘, 딸 둘을 낳겠어,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불편했고, 벤이 태어난 다음에는 벤이라는 존재의 묘사가 허황해서 계속 읽기가 힘들었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도 엄마가 그런 식으로 통제하지 않았어도 그런 짓을 저질렀겠는가, 싶었던 나는 원초적인 무엇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벤의 존재를 여전히 인정할 수가 없다. 

심상정,의 난 네편이야,를 읽고 만난 황색노조-기업별 노조가 어쩔 수 없이 어용이 될 수밖에 없다며 어용노조와 같은 의미로 쓰는-란 표현을 만나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찾은 서양인의 '황색'이미지를 여기서도 만나고, 이 묘사는 황인종, 에 대한 혐오가 드러나는 것인가, 하는 연결에 또 불편해한다. 결국 끝까지 읽지 않기로 했다. 


서양인의 믿음,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고-주토피아- 문명을 선, 야만을 악,으로 묘사하고,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호전적인 믿음들을 계속 보고 있는 기분이 되었다. 겨울왕국,을 보면서도, 만약 엘사가 폭주하지 않았다면, 과연 안나의 약혼녀는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의심하는 나는 본성도 물론 있지만,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역시 벤에 대한 묘사는 허황하다고 거부하고 있다. 

폭력에 반대하는 내 앞에서, '야, 지금 네 앞에서 네 가족이 맞고 있다고, 그런데도 폭력에 반대할 수 있어?'라고 극단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 같았다. 있어, 이미 있는데 어쩔 거냐고,라는 질문이 전제한 많은 것들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만,이라는 것이 악이 아니고, 나의 생명을 지키려는 노력이 항상 다른 존재의 생명을 빼앗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게 아닌데도, 그런 식으로 묘사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다른 사람들이 연결시킨 욕망에 대한 벌이라는 묘사 부분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식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공포의 존재,에 대한 묘사를 수용할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문명시대의 여성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낳아라, 인가? 

그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벤 같은 존재가 첫째가 아니라는 보장은?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질문은 뭐고, 의미는 뭘까?

오락물,이니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그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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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 개정판 신과 함께 개정판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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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의 시계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순간 훌쩍 큰 아이가 없다면, 나는 나의 늙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다른 아이 말고, 내 아이라서, 그런 실감이 더 확실히 닥치는 순간들이 있다. 아마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동급생의 그 묘사가, -'지구의 종말보다 나중에 올 것 같았던 우리 자신의 죽음보다'라는- 그렇게도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2011년에 구판을 사서는 재미있게 읽고 엄마, 아빠 보시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부모님이 죽음을 느끼는 거리가 내가 느끼는 거리보다 가까울 것 같아서, 실상 저런 사후를 믿는지, 혹은 저런 사후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는지 듣고 싶었지만, 아예 권하지 못했다. 죽음 뒤를 '재미'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죽음과의 거리가 먼 사람들이고, 그 거리와 속도를 아이를 통해 실감하던 차인 나는, 나의 부모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서 권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라면, 이야기처럼 들려줄 수 있는데, 네가 모르더라도, 너의 잘못은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고, 착하게 살라고 권했을 텐데, 부모님께는 정말 권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서 저지른 죄들을 심판받는 죽은 뒤의 재판,이 이성적인 믿음과는 별개로 원형처럼 흐르는 믿음이라는 것에, 안도한다. 

아직 보지못한 영화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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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편이야 - 세상을 바꾸는 이들과 함께해온 심상정 이야기
심상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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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입장은 '분업에 반대한다'는 거였다. 그러다가 양자오의 '맹자를 읽다'에서 맹자가 분업에 반대하는 농가를 반박하는 장면을 만났다. 농사를 짓기 위해 쟁기도 만드는가, 옷을 입기 위해 옷도 만드는가, 정치란 마음을 쓰는 일인데, 왜 정치가에게 그걸 요구하는가. 

여성인 내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 남성인 네가 양육이나 가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나에게 그래, 사람은 자기 삶의 최소한을 자기 손으로 꾸려야 한다는 의미였던 나는, 그 다음의 말들을 아직 찾지 못했다. 

여성인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남성인 남편이 양육을 하기는 하지만, 나도 남편도 회사에서의 성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이건 어쩌면 분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부분이 되버린 거다.


심상정의 난, 네 편이야,를 읽었다. 언니가 준 책이다. 여성정치인 심상정의 현재가 과거와 함께 빼곡하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나는, 성공한 여성들의 가족이 언제나 궁금했고, 이 책에서도 가정은 어찌 돌보고, 아이는 어찌 건사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여성의 성취에 언제나 따라붙는다는, 지극히 여성차별적이라는 그 질문을 다른 사람이 안 하면, 내가 할 판이다. 그게 나는 제일 궁금하니까- 


함께 운동했던 정치적 지향이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서른다섯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남편이 자신의 활동을 축소하고, 아내의 활동을 지지했다. 아내가 더 바빠지면서는 살림을 도맡았다.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돌보았다. 이 가정에서도 분업은 있다. 전형적인 성취를 위한 전형적인 분업이 아니라, 비전형적인 성취 가운데 비전형적인 분업이다. 

부르기 나름인 각자의 삶이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비전형적이기 때문에, 둘 다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전형적인 삶 속에서는 둘 중 누구도 '선택'처럼 보이지 않는다. 문화,란 그런 식으로 작동하니까. 

부르주아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하층계급 여성이 전일제 가사노동자가 된다. 아니면, 나를 키운 부모가 나의 아이도 키운다. 아니면, 전일제 보육시설이나, 기숙학교에 보낸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새로운 길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모두의 정답 따위는 없고, 그저 나름의 삶,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이 그 앞에 있다. 내 삶은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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