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잘 쓰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가 닿으면 좋겠다. 

상대에게 잘 가 닿고, 또 그 글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런데,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삶의 면면들이 너무 복잡해서, 글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쉬이 전해지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쓰려고 하다가 너무 내 자신이 드러나서 숨고 싶으면, 또 글은 모호해진다. 

글은 나다.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고, 거기에는 나의 어리석음, 나의 한심함, 나의 편협함이 드러난다. 


책 속에서, 이옥과 김려는 글을 쓴다. 서로의 글을 찬탄하며 읽었을 둘은, 자신의 글을 문제삼는 왕 앞에서 자신의 글을 바꾸라는 명을 듣는다. 하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글은 나니까. 다른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배신하는 일이다. 안 써도 되겠지만,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글을 쓰지 않으면 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쌓여서 또 그대로 내 자신을 잃을 것만 같다.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기 위해 쓴 그 오랜 글들이, 아름답고 선량한 글들이, 긴 세월을 건너, 깊은 우정을 통해 지금 나에게 와서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아한 관찰주의자 - 눈으로 차이를 만든다
에이미 E. 허먼 지음, 문희경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소설의 독자라면, 셜록홈즈의 팬이라면 관심있을 만한 주제다. 

작가의 영업-14년간 강의했다거나, 효과가 탁월하다-이나, 관찰에 대한 과장된 찬사-당신을 부자로 만들고 , 직업적 성취를 도와줄 것이며-에 대한 거부감, 스멀스멀 기어오는 내가 이걸 모르지 않아-보이지않는 고릴라도 안다고-라는 반발심, 이게 다 서양화구나-도대체 쓸데없는 잔 배경을 많이도 그렸네, 너무 가득 채웠어, 피로해, 우와 이놈의 기독교도들-그래 나는 기독교에 편견이 있다- 그림조차 교조적이구나- 라는 거리감까지 어떻게든 이겨내고 끝까지 읽었다.


나쁜 인상들, 잔가지를 치워놓고 보면 좋은 내용이고 좋은 책이다. 

모든 좋은 책들이 그러하듯이 실천한다면 더 좋을 내용이다.

관찰이 소통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관찰을 잘 하고, 그걸 타인과 소통하는 것, '아프로 아메리칸'은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에요, 흑인이라고 말해도 되요'라는 대목은 해방감이 들었고, 자신의 유모와 아들 사진에 온갖 해석을 붙이는 심지어 '엄마와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쉽지 않은 상황들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려준다. 


늘, 사건현장을 관찰해야 하는 전문가들에게 '관찰하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작가의 거만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게 그림을 매개로 하고 있어서, 환기가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문가들도 자신의 편견이 관찰을 방해해서, 실상을 오독하게 하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해결점을 찾지 못해서, 오히려 상황을 단순화 시키려고 보이는 것도 못 본체 하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직업적 상황에서의 교육은 그래서 한계가 생기고, 미술이라는 접근이 도움이 되는 거다. 


그림도판이 들어가서 종이질이 좋은데, 실제로 훈련을 하기에는 글들이 방해한다. 텍스트로 구성된 책이랑, 그림도판만 훈련하기 좋게 편집한 트레이닝 북을 따로 만들었어도 좋았을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의 정반대의 행복 - 너를 만나 시작된 어쿠스틱 라이프
난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나의 삶이 나를 어디로 떠밀고 갔는지, 나란 존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지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아버지와 논쟁하던 젊은 딸에게 아버지가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새삼스럽게 알아차린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아이들이 젊은 날의 나처럼 말할 때 아버지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도 없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또 무얼 해도, 겪어보기 전까지, 깨닫기 힘든 일이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아이를 책임지고 돌보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 중 특히 엄마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경험이다. 나와 의견이 달라, 내가 싸우던 부모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경험이다. 부모와 다르다,로 정체성을 형성하던 자신이, 부모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아직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들,과 멀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아이가 없던 나, 하나였던 나, 둘이었던 나, 셋인 나,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아이가 없던 나,는 하나였던 나를 좀 더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셋인 나를 이해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을 알지만, 또 지금의 문화에서 그런 이야기는 협소하다는 걸 아니까, 나는 입을 닫는다. 게다가, 상대가 어떤 상황일지 알지 못하니, 그 어떤 삶에 대해서도 말하기 어렵다. 나는 첫 아이를 많이 기다렸다. 기다리는 날들이 얼마나 슬펐었는지, 내 자신을 스스로가 얼마나 비하했는지 기억하고 있어서, 아이가 주는 행복을 크게 말할 수가 없다. 아이가 있고, 없고는 내 의지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이게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의 나에게 너무 슬픈 말이다. 그런데도, 가끔 지금의 문화에서 여성의 착취나 억압으로 출산이나 육아에 대한 말들이 넘칠 때면 공연히 내 자신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으로 불쌍히 여겨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나의 행복을 큰 소리로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래서, 이 당당한 책을 골라서 읽었다. 

아마도, 작가는 아이가 없던 나에 가깝고, 아이가 없는 사람들과 가깝기 때문에, 이 새로운 경험들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함께 누렸던 즐거움-밤외출이나 거리낌없는 여행같은-을 더이상 함께 하지 못하지만,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기쁨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나는 작가보다 더 멀리 나아갔고, 이 기쁨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다시 슬그머니 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58, 우연히'(http://blog.aladin.co.kr/hahayo/5647883 ) 라는 추리소설이 생각났다. 

책 속에, 구체적인 게 아무 것도 없다.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다. 

역시 구체적인 게 아무 것도 없다. 

그 모든 이력이나 말들이 '구체성'을 띠고 있는 게 없다. 

책 속에 구체적인 게 없는 것은, 작가의 삶이 구체적이라면 유추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삶도 구체적이지 않으면, 에세이지만, 그 속에 이야기가 실재라는 걸 '믿을' 수가 없는 거다. 이 사람 자체가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드는 지경이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은 교훈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은 모두가 하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에세이라고 쓰는 사람이라면, 기자였던 사람이라면, 좀 더 사실의 구체성에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삶의 복잡한 면들을 쳐내고, 교훈을 주기 위해 단순화시킨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절대적 열세인데 이런 식의 글을 읽자니 화가 났다. 


세상을 볼 때는 밝은 면을 생각하지만, 밝은 면만을 왜곡한 안경을 끼고 보면 안 되는 거다. 

의심이 들 때는 물을 것을 생각하는데, 물어야 할 게 너무 많다.  


내가 이럴 줄 알았는데, 나는 왜 읽었을까. 

그러니까, 이걸 권한 사람이 팀장님이고, 내가 팀장님을 조금은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는 의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지금까지 살아있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을 신뢰할 수 있다. 


남편과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사서, 내가 먼저 읽은 책이라서, 남편에게 읽었는지 물었다. 

나는, 성희롱, 성폭력이 나쁜 일이고, 가깝고 아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는 면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부수는 무서운 일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어찌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성희롱,에는 더욱 입장을 정리할 수가 없다. 

가끔, 여자에게 '조심하라'고 할 게 아니라 남자에게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는 말도, '나의 불안을 네가 책임져라'라는 말처럼 들린다. '조심하라'라는 말은 억압처럼 들리지만, 듣고 있는 사람이 여성인데, 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싶은 거다.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요새는 그저, 전시할 뿐이기는 하지. 데이트폭력과 여성살해들을. 


책은, 스스로가 약한 존재-물리적으로-임을 자각하고 있는 여자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화자는 여자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모호하거나 뭐라고 부르기 애매한 수준이다. 친구가 공격당한 호숫가를 친구의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 가고 있다. 가면서, 친구의 남자친구가 덩치가 너무 커서 무섭고, 친구의 말들이 친구의 가해자가 친구의 남자친구임을 드러내지 않았나, 상황들을 계속 곱씹는다.[호수] 결혼할 남자가 사 둔 시골의 집을 찾아가다 차가 쳐박힌다. 시골의 집이 너무 외져서 마음에 들지 않고, 길을 잃고 들어간 촌동네는 공연히 괴괴하고, 남자의 어떤 행동은 무시무시하다.[] 

또 어떤 이야기가 있었더라. 여자의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꺼내어, 불안을 직조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지친다. 그럴 수 있다. 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육감이라고 부를 만한 불안이 커진다면 달아나야 한다. 그러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연쇄살인마라도 된 것처럼 상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소설이 끝까지 어떤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여성의 입장에서 불안에 이입하게만 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나는, 그저 이렇게 불안하면 결혼을 때려치워야지, 그게 싫으면 말을 해야지, 이런 식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남자들은 이입,을 할 수 있을까, 이입,을 했다고 해서, 여자들의 불안,을 안다고 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겁을 집어먹기 시작하면, 뭐가 무서울지는 나도 모르는데.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불안을 따라가지만, 하고 싶은 말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