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즘 - 남자들에 갇힌 여자
정해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페미니즘을 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0년대 학번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봇물처럼 터지던 그 세례를 어찌 피하겠는가. 처음 만났을 때 해방의 기분을 만끽하다가, 언제부터인가 답답함을 느꼈다. 더이상 불평하고 싶지 않아,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래 무얼 읽어도 감흥이 없었다.

이제 다시 만날 때가 되었는지 이 책의 인상이 나쁘지 않다. 현상에 대해 울분을 토하면서 어느 순간 부딪치던 벽들에 이제 그런 울분을 토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 하는 회의가 들고 있었는데, 나의 문제가 무언지 알겠다. 나는 언어에 갇혀서 설명하려 하다가 결국 언어에 미혹당했었구나.

나름대로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의 나이를 알고 싶어하는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궁금증이 무엇때문인지-당장, 나는 그 사람의 호칭, 말의 태도를 결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왜 동료 여직원의 '언니'란 부름에 기분이 상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다가 알게 되었다. 호칭과 말의 태도를 정하지 못해서 생기던 이상한 거리들을 결국은 살면서 내내 피할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결국은 역시 나를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구속할 말들이기는 하다. 나는 여전히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나이를 묻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하고, 또 나는 여전히 나보다 어린 여자동료에게 이상한 존대말로 불편을 줄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역시 모르는 것보다 나았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차별당한다' 말고는 몰랐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그런 얘기들로 책 한 권이 될까, 지루하지 않을까, 했지만, 읽으면서 그리 길다고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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