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과의 만남] 작가 조정래

 

“민족주의 매도는 정신무장 해체 의도”

입력: 2006년 06월 26일 18:46:24 : 1 : 0
 
소설가 조정래씨(왼쪽)와 문학평론가 한만수 교수가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맞은편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상훈기자

 

“인간처럼 교활하고도 슬기로운 짐승은 없다.”

문학으로 한국현대사를 재구성한 작가 조정래씨(64)는 세상사에 대해 대체로 낙관적이다. 인간은 지옥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지옥에서 스스로를 구출할 수 있는 숨통을 찾아왔다고 믿는다.

과거사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인간에겐 본래 잔혹성이 있고 게다가 전쟁 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면서 “가해자는 사과하고 피해자는 용서해야 하는데, 사과와 용서 없이는 인류가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일대에서 한만수 교수가 묻고 조씨가 답했다. 한교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2003) 등을 낸 바 있다.

-‘또’ 50권 분량의 글을 쓰신다는데.

“대하소설은 손 놨다. 부처님이 ‘탐욕이 너를 망칠 것’이라고 경고하셨던가. 그래도 하루에 원고지 25장씩 쓴다. 최근 장편 두 종을 탈고했다. 그리고 일기에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라고 썼다. 50권짜리는 아동·청소년 대상의 전기문학이다. 한평생 글만 써온 작가의 언어와 감각으로 손자 세대를 위해 서비스 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통일 이전에는 말하기 힘든 문제들에 대해 본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통일문학작품들을 유고로 남긴 다음, 통일 후 공개토록 할 생각이다.”

-선생의 작품들도 다양한 장르의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졌다. 문자 텍스트의 지배적 우월성을 주장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이 모든 문화장르의 작품을 주문생산하는 미국식 문화카르텔 속에서 문학과 독서의 가치가 빛을 잃는 듯하다.

“문명의 이기는 다 장단점, 공헌과 폐해를 지니고 있다. 국제적 자본이 인간 삶에 대해 중세적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명백한 폐해다. 하지만 창조성에의 사명감을 지닌 작가라면 자본에 끝내 동원되지 않을 것이다. 문화산업의 융성은 시대와 감각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수용해야 한다.”

-축구의 민족주의 경향이 강조·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월드컵 때만 외국인 노동자·약자·빈자도 ‘우리’가 됐다가 자본의 배분에서는 다시 ‘내남’으로 갈라진다는 점이다.

“나도 한국전은 새벽 4시 경기까지 봤다. 애국주의 차원은 아니고 공동체의식의 발현이다. 하지만 돈이 스포츠를 지배한다든가, 스포츠 행사가 상업화 일변도로 가는 것은 반대한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의 경우 양심적 지식인들의 본격적인 문제제기로 시정단계에 들어섰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한 징표다. 강대국은 그런 문제를 시정하는 데 월등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민족과 민족주의를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여기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월드컵이 민족주의의 내부적 차별을 4년 주기로 뭉크러뜨리는 대목은 께름칙하다.

“히틀러식 민족주의가 공격적·파괴적이었다면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방어적·건설적이다. 제국주의의 영토침략보다 더욱 악랄해진 제국적 자본의 지구적 지배에 대해 약소국이 스스로를 보존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방어적 민족주의밖에는 없어 보인다. 또 우리의 민족주의는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의 매개라는 점에서도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는 문화적 맥락과 성격이 다르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주장은 서구의 논리에 불과한가.

“현재 민족주의를 매도하는 것 자체가 약소국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시키려는 강대국의 논리다. 유고 연방의 해체과정에서 벌어진 민족·종교간 내전 등 비극도 원래 딴 살림을 하던 것을 한 국가 안에 몰아넣었던 옛 소련에 원죄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베트남은 수천년간 중국 침략을 받고도 고유의 언어·풍습을 지켜냈다. 거기엔 중국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서울대 강연에서 학생들의 사회참여의식의 퇴조를 비판했다. 사회정의 실현의 실패가 누적되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냉소적·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닐지.

“모든 사람이 역사·사회의식을 갖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혁명도 사회구성원의 1%가 행동하고 10%가 침묵으로 동의하면 성공한다. 일제시대 약 2천5백만명 인구 중 무기 들고 싸운 사람은 10만명 미만이다. 한국에 와 있던 일본인은 80만명이었고, 친일파는 1백50만명이었다. 그 결과는 36년간 징용·징병 등으로 4백만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비겁이 국가와 민족을 망쳤고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 지식인이라면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 그게 그를 키워준 사회에 대한 봉사다.”

-대부분 ‘나는 안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무리 속에서 개인주의의 욕구는 늘 있다. 그래서 1%만 나오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지옥 속에서도 정의·올바름·인간적인 것을 보존하려는 슬기를 지녔다. 돈이 곧 ‘신’이 된 시대인데, 인간은 세상을 망쳐놓고 재구성해왔다. 시대가 변할 뿐 역사정신은 유전인자처럼 이어진다.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 게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이다. 나는 인간을 신뢰한다.”

-북핵 문제로 시끄럽다.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공갈협박을 관두고 핵을 포기해야 한다. 미국은 윽박지르기와 ‘악의 축’ 등 국가모독을 삼가야 한다. 북한이 벼랑 끝에서 하는 말들에 대해 나라 전체가 들썩거리는 모습도 아름답지 않다. 남남갈등과 관련,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6·15선언의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는 도태된다. 큰 일 하는데 사소한 일로 트집잡지 말아야 한다.”

-‘퍼주기’는 이적행위이고, 그럴 쌀이 있으면 남한의 결식아동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논리다. ‘퍼주기’란 남쪽 체제가 더 낫다는 걸 북한인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리는 계기다. 지난 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다. 북측의 ‘미녀응원단’ 단원들은 분단된 사회에서 북한식 교육을 제대로 받은 열성당원들이다. 그런데 사흘만에 남측 사람들과 ‘감정이 통했다.’ 헤어질 땐 울고 즉석 앙코르공연도 했다. 그게 통일의 모태이자 뿌리이다. 5,000년 역사의 동질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지금 북한을 돕는 것이다. 반(反)통일은 민족적 범죄이다. 물론 군량미로의 전용을 용납해선 안 된다.”

-통일 비용 때문에 통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도 드세다.

“월남식 무력통일, 독일식 흡수통일, 제3의 평화통일 방안이 있겠다. 앞의 두 가지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난 60년간 갈라진 채 살아왔는데 20년쯤 더 그렇게 못 살겠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북측이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진정성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개성공단’을 더 많이 만들어 남북이 윈윈 성장을 하면 북한사람들은 남쪽에 와서 살라 해도 그냥 그쪽에서 살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분석도 있는데. 노근리 사건 등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미국의 태도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미선·효순 촛불시위는 축적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우리 국민은 대등하게 협력하는 우방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저항은 반미가 아니라 비미(批美)다. 양민학살과 관련, 인간에겐 잔혹성이 있다. 게다가 전쟁처럼 인간의 증오심이 폭발할 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 다음으로 슬라브민족을 혐오해 소련군 포로에게는 풀로 빵을 만들어 굶겨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과와 용서 없이 인류사는 지탱하지 못한다. 미 정부가 양민학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진심으로 용서해야 한다.”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이 많았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만 엉망이다. 내 역할은 그걸 감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믿을 건 시민단체뿐이다. 시민단체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서구 시민단체가 50~60년간 해온 일을 우리가 10년 사이에 해내느라 파생된 것이다. 시민단체가 권력에 대한 감시를 통해 성숙한 시민사회를 앞당기는 역할을 잘 해내리라 본다. 나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믿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수진샘 2006-07-0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훈형 블로그에 갔다가... "나무소녀"를 읽으며 생각해볼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사회의 1%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지... -.-
 
 전출처 : 프레이야 > 이쁜 순수우리말 시어

* 까치노을 - 풍랑이 일 때 솟아오르는 하얀 물거품

* 구슬눈물 - 구슬처럼 둥글게 맺힌 눈물

* 다소니 - 사랑하는 사람

* 다손말 - 사랑하여 하는 말

* 명주바람 - 부드럽고 화창한 바람

* 미리내 - 은하수

* 발편잠 - 마음 놓고 편안히 자는 잠

* 보득솔 - 작달막하고 가지 많은 어린 나무

* 살싸하다 - 맵고 아리다

* 싸울아비 - 무사

* 작달비 - 굵고 거세게 내리는 비

* 장어구름 - 모양이 길고 빛깔이 몹시 검은 구름

* 할림비치 - 눈흘기기를 잘 하는 사람

* 희나리 - 채 마르지 아니한 생나무 장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내용이 생소한 ‘과테말라 내전’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그 쪽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가다보니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주인공인 15살 소녀 가브리엘라, ‘나무 소녀’에게 점점 빠져 들어갔다. 15살인 그녀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들이, 그에 비해 너무나도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버린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것만 같았다.  

  가브리엘라가 어른이 되는 의식인 ‘킨세아녜라’중에 나타난 군인이 호르헤 오빠를 잡아가는 대목을 읽을 때만 해도, 가브리엘라처럼 호르헤가 어딘가에서 살아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병으로 몸이 안 좋던 가브리엘라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동생들을 자식처럼 잘 돌봐주라고 가브리엘라에게 부탁하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마누엘 선생님과 같이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던 아이들이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가는 걸 눈 앞에서 지켜보게 되고, 가브리엘라의 삶의 터전이자 근원인 고향 마을이 무조리 불타버린 것을 온 몸으로 확인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지 멍해졌다.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무수한 총알에 죽고 무참히 마을이 불타는 순간, 막냇동생이 “엄마! 엄마! 엄마!”하고 가브리엘라를 애타게 찾았을 것을 생각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잠시 책을 덮어두고 마음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한참 어리광을 부릴 알리시아 또래인 네 살바기 딸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어린 아이들이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전쟁에서 무참히 죽어가야만 했다니. 도대체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리도 무참히 죽어가야만 했던 것인지 씁쓸하기만 했다. 나 자신이 사회의 일정 부분을 이끌어가야 할 어른으로서 너무나도 큰 책임감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읍내의 학살’에 나오는 그 생생한 죽음의 현장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군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치를 떨게 했다. 그 극악무도한 죽음의 현장을 15살 어린 나이에 나무 위에서 혼자 지켜봐야만 했을 가브리엘라가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 현장에서 같이 죽지 못하고 혼자 살아 남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브리엘라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절대 비겁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어느 누구도 너를 ‘겁쟁이’라고 욕할 수 없을 거라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잃고, 삶의 희망이었던 알리시아마저 잃어버린 뒤 가브리엘라는 혼자 만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만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몸도 마음도 편안히 둘 수 없었던 그녀가 그 누구도 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견뎌나가는 부분은 마음을 안타깝게만 했다. 하지만 자연에서 태어나 나무를 벗하며 살아온 가브리엘라는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에서도 스스로 삶의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희망을 꿈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잃고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간신히 다시 찾은 막내 동생인 알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하나뿐인 혈육인 언니에게조차 말문을 닫아버린다. 이런 알리시아에게 가브리엘라는 ‘무서운 것이 있다고 피해 달아나면 안되고 무서운 현실에 당당히 맞서야 나무소녀가 될 수 있다고. 그러려면 먼저 말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준다. 사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가브리엘라 자신에게도 해 주고픈 말이었을 것이다.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않고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한 가브리엘라는 자연 속에서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언젠가는 과테말라로 돌아가, 어린 시절 그 곳에 남겨 두고 온 아름다움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이미 내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같을 것이다. 언젠가 과테말라로 돌아가 마리오라는 이름의 특별한 선생님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서 학살에 대해 알릴 것이고, 돌아가서 우리 민족의 노래를 찾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노래, 한밤 내 영혼이 고요하게 가라앉을 때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그 노래를.


  이 책을 다 읽고, 전쟁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가브리엘라 또래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소녀의 생생한 증언들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고 치욕적인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지 반드시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지금 이렇게 편안히 살아가는 남아있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 역시 한국 전쟁이라는 크나큰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나무소녀의 증언 못지 않은 죽음의 현장이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학살’의 흔적 또한 남아 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을 후세에게 알릴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인류의 큰 재앙인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져서 자연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동화되어 결국은 ‘나무’(자연)으로부터 해답을 찾아내는 나무소녀의 삶은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삶의 해법을 우리도 찾아가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재생용지를 사용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나의 제자들과도 이 책을 읽으며 나무소녀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처럼 2006-07-0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진샘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님의 글을 통해 다시 느끼고 갑니다.

수진샘 2006-07-27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읽기에 그리 편하지 않은 이 긴 글을 읽어주신 그 자체가 고맙기만 합니다. 이 책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했어요.
 

“독서”라고 하면 이제 자신있다.

  내가 동구중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독서를 뽑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정말 열심히 책을 읽은 것 같다. 처음엔 그냥 국어 수업이 끝나고 한 10분, 20분 시간이 남을 때마다 국어선생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책들을 가져오셔서 우리에게 읽으라고 하셔서 그냥 심심하니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책의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내 꿈과 내 가치관과 내 삶이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 꿈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그냥 선생님이 되고 싶어!' 라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선생님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선생님은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또 나의 고민을 마음속에 숨겨 놓고 꺼내지 않는 버릇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내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국어선생님께서는 줄거리는 짧게 느낌은 길게를 강조하셨다. 그래서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나의 경험이나 생각을 주로 쓰게 되었다.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게 되었고 나의 감상문을 읽은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마음속에 고민을 쌓아 두는게 아니라, 책을 통해 나의 고민들을 날려 보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삶이 변화되었다.

  국어선생님과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쓰며 중학교 2년을 보내고 나는 고1이 되었다. 고1이 되어 느낀 것 도 정말 많이 있다. 내 친구는 한 달에 15만원씩 주고 논술을 배운다고 했다. 논술! 나도 걱정 많이 된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난 누구보다 독서의 위력을 알고 앞으로 독서를 하며 내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논술 실력도 늘 거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간접적 체험을 할 수 있었고 나의 삶을 바꿔놓은 신비한 책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머릿속에서 책속의 '현실'을 떠올리는 그 짜릿함을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카코와 도오루.

주인공 이름에 익숙해지는데도 꽤나 걸렸다.

이복형제인 이 두 명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여러 친구들의 심리 상태가 꽤나 흥미진진하게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도오루와 다카코가 같은 반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 친구들에 의해 보행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말문을 트고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부분에서 나까지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을 통해 가장 많이 얻은 소득이라면, 요즘 아이들의 연애관과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국가가 다르니 다른 점도 있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남녀 공학에서 이 정도의 이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방학때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되는데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다.

다카코, 미와코, 안나의 우정도 도오루와 시노부의 우정도 너무나 부러울 정도로 돈독했다. 특히 미국에 떨어져있으면서도 다카코와 도오루의 화해를 도와주는 안나의 역할이 꽤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약간의 추리 소설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안나의 남동생의 출현도 그렇고. 소설의 완성도보다는 사춘기에 겪을만한 여러 이성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이성교제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이들이 이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다시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당히 기분이 유쾌해지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