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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의 꿈꾸는 집 - 제6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08
정옥 지음, 정지윤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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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전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고른 책 치고는 괜찮았다. 어느 순간 나도 진진이 되어 이모의 꿈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모에게 작은 목소리로 살짝 말한 진진의 꿈은 무엇일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꿈은 무엇일까? 그냥 바닥에 베개를 베고 엎드려서 동화책 읽는 것이 소박한 나의 꿈이 아닐까 싶다. 이모의 꿈꾸는 집에 있다는 그런 멋있는 서재를 갖고 싶어졌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이모, 이모는 꿈이 뭐예요?"
이모는 퐁을 우물 속으로 던지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내 꿈? 나는 어른인데?"
"어른들도 꿈이 있잖아요. 꿈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모는 성큼성큼 다가와 진진의 눈앞에 쪼그려 앉더니 진진을 빤히 쳐다봤다. 빨간 안경 속 이모의 눈은 콩알만큼 작아 보였다.
"흐응, 이젠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지? 너도 꽤 똑똑해졌구나."
그러고는 진진에게만 들리도록 조그맣게 속살거렸다.
"꿈꾸는 집, 이 집이 바로 내 꿈이야."
"이 집이 이모의 꿈이라고요?"
"그럼, 내 꿈은 이 세상 재미있는 책들을 모두 불러 모아서 함께 노는 거야. 낄낄대며 웃는 재미, 콩닥콩닥 가슴 뛰는 재미, 두근두근 설레는 재미, 눈물 나게 가슴 아린 재미, 궁금한 것들을 알게 되는 재미,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상상하는 재미...... 재미있는 책들만 올 수 있는 집, 꿈꾸는 아이들만 올 수 있는 집, 이 집이 내 꿈이야." (151쪽~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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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봉을 찾아라!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작은도서관 32
김선정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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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무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겠다고 생각하던 최기봉 선생님.
몇 년 전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기 싫어서 항상 내 앞에 벽을 겹겹이 쌓곤 했다. 아이들이 좀 더 다가올 것 같으면 내 약한 마음이 들킬까봐 미리 피해버리곤 했다. 나의 마음을 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 마음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나의 여린 마음에 마구 상처를 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베풀줄 안다고 조금씩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줘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힘들고 괴롭고 때로는 외로운 교사의 모습도 솔직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교사로서 나의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 2월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늘 후련하다고 생각하던 최기봉 선생님이 이번에는 빈 교실을 보며, 몹시 아쉬워하는 장면이 계속 생각난다.
아이들이 없는 교실은 너무나 쓸쓸하다. 가끔 혼자 교실을 정리하고 교실문을 잠글 때면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아이들이 앉았던 의자에도 눈길을 줘 보고, 책 상 속에 아무렇게 넣어둔 과자 봉지, 사탕 껍질을 꺼내서 버려주면서 아이가 생글생글 웃던 예쁜 얼굴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녀석들이 없으면 이렇게 보고 싶은 것을.
다행인지는 몰라도 2월에는 늘 헤어진 아이들 생각으로 아쉽고 쓸쓸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후련하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리 나쁜 교사는 아니었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매년 2월에는 한해 살이 교사 생활이 서글프기조차 했다. 1년 동안 정들었던 녀석들과 헤어져 다른 아이들과 또 정붙이고 산다는 것이 힘들어서 매년 3월이 더욱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학교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차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이나 복도에서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조금만 남들을 배려하면 좋을텐데 싶다가도  아이들을 말리는 것도 힘들 즈음이면 힘이 쫙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떡볶이도 먹고, 수다도 떨고, 같이 하하호호 웃다보면 이런 것이 '선생'을 하는 진정한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최기봉 선생님이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학교 생활이 즐거워지듯이.  

하지만 오늘도 교실에서 버젓이 거울을 보며 예쁘게 화장을 하는 여학생과 실랑이를 한참이나 했고, 지각한 놈이 남아서 청소를 하지 않겠다고 어찌나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지 달래서 청소 시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남아 있는 지각한 다른 아이와 함께 빗자루를 들고 교실을 같이 쓸면서 정리를 하고 말았다.  

 그저 조금씩 아이들이 좋아지려니 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만 쉽지는 않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이들이 스스로 배워가도록 지치지 않고 기다려주어야하는데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가르칠 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한 교사로서 아이들과 오래 가기 위해서는 절대 빨리 지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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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전쟁 생각하는 책이 좋아 5
게리 D. 슈미트 지음, 김영선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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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드럼, 소녀&위험한 파이"의 느낌과 약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번역을 한 사람이 같았다. ㅋㅋㅋ 글에서도 사람의 느낌이 나는 걸까? 무척 두꺼운 책이었는데 읽다보니 뒷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끝까지 읽지 않을 수가 없다. ^^ 이 책이 가진 힘이다.  

주인공이 세잌스피어 책을 읽으며 책과 관련된 경험을 하게 되는 것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오묘하게 연결되는 고리들이 참 재미있다.  

우연히 세잌스피어의 연극에 출연하게 되면서 창피한 타이즈를 입게 되어 고민했는데 오히려 같은 반 친구들이 자신의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감동을 받은 장면. 연극 공연 뒤에 유명한 야구 선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고 친절한 버스 기사의 도움(홀딩이 야구 선수의 사인을 받으러 가면서 야구공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알고 자신의 야구공까지 내주는 그 센스있는 버스기사 ㅋㅋㅋㅋ)까지 받아가면서 야구 선수에게 갔는데 야구 선수가  분홍색 타이즈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홀딩에게 사인을 해주지 않는다. 그러자 방금 전에 홀딩의 연극을 보고 난 뒤, 바로 야구 선수의 사인 볼을 받은 친구는 기꺼이 야구 선수에게 그 사인 볼을 반납해버린다. 역시 멋진 친구이다. 자신의 친구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유명한 선수의 사인볼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건설회사의 비밀을 여자 친구가 훔쳐갔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이 참 재미있었다. 히피 누나가 집을 나갔는데 돌아올 수 있도록 애를 쓰는 홀딩의 마음. 감동적이다. 누나의 빈 곳을 가슴 아프게 느꼈던 홀딩이 누나와 감동의 재회를 하는 부분. 누나가 없는 황량한 "완벽한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뒷부분 캠핑하는 장면까지 이 책은 일화 하나하나가 참 사랑스럽다. 때로는 독자들에게 한없이 버릇 없는(?) 주인공의 우스꽝스러운 말투까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짓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한다.  

그 와중에도 베트남에서 피난 온 마이티를 이해하고 보호하는 친구들. 남편을 베트남 전쟁에서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베트남 아이인 마이티와 극적인 화해를 하는 비지오 선생님의 모습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음식들을 잔뜩 짊어지고, 주인공이 낡은 배낭을 메고 가며 흘렸던 숟가락까지 모두 다시 주워서 산속 캠프장까지 찾아온 비지오 선생님. 비에 쫄딱 맞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스튜를 끓어주었던 인정 많은 아줌마를 연상케 하던 비지오 선생님도 못 잊을 캐릭터이다.  

얼떨결에 알라딘 리뷰를 이어 이어 보다가 연이 닿게 되어 읽은 책이었는데 참 재미있고, 감동 깊게 읽었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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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왕들의 비밀 동화 보물창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이현숙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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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 코닉스버그의 "퀴즈 왕들의 비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한두 가지 있었다.
 

퀴즈 대회에서 결국 우승을 하고 난 뒤에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올린스키 선생님에게 줄리안의 아버지가 해준 말씀.

 

  "오랫동안 아주 열심히 준비했고 줄곧 긴장된 상태였지요. 승리 하나하나는 모두 다음 승리를 위한 준비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제 다음이 없는 거죠. 선생님, 어쨌거나 이제까지의 여행을 즐기셨나요?"

  "네, 아주 만족스러워요. 우승컵 하나하나 모두 다요. 바다 위에서 줄리안이 그랬던 것처럼요."

  "이제 닻을 내리셔야지요, 선생님. 돌아보세요. 이 항구의 경치를 즐기세요. 멈추는 순간도 아주 짧답니다."

 

  올 한 해 무척 열심히 했던 순간도 있었고, 아이들 덕에 토론대회에서 '우승'도 했는데 올린스키 선생님과 같은 '상실감'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1년을 아주 숨가쁘게 왔는데 뭔가 많이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크다. 난 어디에 닻을 내리고 어떤 경치를 즐겨야 하는 걸까? 멈추는 순간은 아주 짧은데... 이렇듯 1년도 다 지나가 버리고...

 

  이 책은 동화책이지만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리고 무척 부러운 부분도 많았다. 주인공 4명 노아, 나디아, 에탄, 줄리안은 토요일마다 실링턴 저택(줄리안의 집)에서 다과회(차 마시는 시간)를 갖는다. 그들은 그 곳에서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이를 테면 자기 안에 꼭꼭 숨겨져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말해도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

 

  "만약에 말이야, 다시 살고 싶은 날을 딱 하루만 고르라면 그게 언제야, 그리고 이유는 뭐야?"

 

  다시 살고 싶은 날은 언제인가. 나디아, 노아, 줄리안이 모두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 다과회 했던 날 있지. 바로 그 날이야. 그 때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난 다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영혼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나도 당황하지 않고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아, 나는 다시 살고 싶은 날이 언제일까?

  내 마음 안에 꼭꼭 간직했던 말을 꺼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편안함은 언제쯤 느낄 수 있게 될까?

  아니, 나는 왜 어디서도 내 안의 말들을 점점 더 꼭꼭 숨겨놓은 채

자연스럽게 꺼내지 못하는 것일까?

  매주 토요일이면 4명의 아이들이 '영혼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모인다는 그것이 가장 부러웠다. 어떤 말을 해도 받아줄 수 있는 그런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 내가 꿈꾸었던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매주 토요일 오후 4시가 되면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마음 속 이야기까지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그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나도 언제 어디서 만나도 항상 편안한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1년을 마무리하면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코닉스버그의 책은 처음에 지루하다 못해 너무나 잘 안 읽힌다.

  그런데 점점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 속에 저절로 폭 빠져서

  감동이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시공을 초월해서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작가이다. ^^

  어떤 계기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올 해의 끝자락을 코닉스버그와 함께 해서 너무나 풍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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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1-0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가 강추하는데, 주변 엄마들은 읽기 어려워 하더라고요.
뭐가 어떻게 되는 관계인지 알기까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있지만, 인내를 보상하고도 남을 감동이 있다는 걸 읽은 사람은 알지요.^^
좋은 책으로 한 해 마무리 하셨으니 행복하시겠어요. 저는 '고령화 가족'으로 마무리했는데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새기기에 좋았어요. 새해에도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하시기를...

수진샘 2011-01-0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반가운 댓글입니다. 같은 책의 감동을 공유한다는 건 참 가슴 떨리는 경험이에요. 이 책 참 좋았어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막 생기더라구요. 아이들과 같이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
 
불량한 자전거 여행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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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학을 했는데도 방황했던 꼴찌는 보란 듯이 수업 시작 전부터 책상 위에 납작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다.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기에 뒤로 나가라고 했더니 사물함에 엎드려 자다가 그것도 힘든지 쓰레기통 위에 기술적으로 앉아서 잠을 자고 있다. 첫날은 웃으면서 넘겼다. 하루 이틀 지나자 왠지 내 수업 시간에만 더욱 편하게 자는 것 같아 부화가 끓어서 불러다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는 그저 졸려서 자는 것뿐이란다.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할까?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는 안 하니까? 그래도 되는 걸까? 이 아이를 깨우려면 너무 많은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아무 것도 없어서 허무해진다. 정작 이 아이는 점심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복도를 날듯이 뛰어다니며 수업 시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교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학원에서 교과서 학습 활동 답을 그대로 베껴 와서 수업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줄줄 말하는 또 다른 아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뭔가 엄청나게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속상하다. 마음 둘 데가 없어서 헤매다가 이 상황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덜컥 해버렸다.

"아, 너무 답답하다.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진정한 배움이 가능한 것인가?"

잠깐 훌쩍 어디론가 떠나 쉬고 싶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에서 호진이가 부모가 이혼하려는 걸 듣고는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것처럼.


부모가 늘 입버릇처럼 인생을 거의 망친 것처럼 말하던 호진이 삼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형과 차별을 받으며 사춘기를 방황하다가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호진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실패한 인생의 전형이다. 하지만 호진이가 자전거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삼촌의 모습은 무기력하거나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끌려 다니는 아빠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자전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여행 가이드로서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땀을 흘리다 보면 각자 안고 있던 복잡한 고민을 잊게 되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렇게 삶의 어려운 시기를 거쳐 왔기에 남다른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달에 직장에서 잘리고 술 없이는 하루도 못 견디던 목영우씨, 이번 자전거 여행을 마지막으로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배병진씨, 아버지가 땀의 소중함을 배워 보라고 강제로 자전거 여행을 보내서 투덜거리던 대학생 박희진, 중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대안학교로 옮긴 배은영. 그리고 엄마가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학원을 세 군데씩 다니고 있지만 성적도 오르지 않고,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인해 이혼하려는 부모에게서 몰래 도망친 신호진.

호진이는 늘 엄마가 정해진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지쳐갔다. 엄마나 학원, 자신의 의견도 물어보지도 않은 채 이혼하려는 부모를 원망하곤 했다. 하지만 삶의 잘못된 매듭을 풀 수 있는 힘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걸 호진이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에 익숙한 호진이를 바꿔놓은 것은 자전거를 타며 흘리는 땀이었다. 대구를 가기 위해서는 벽처럼 우뚝 솟은 가지산을 넘어야 한다. 땀범벅으로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달리면서 호진이는 깨닫게 된다. 호진이가 싸우는 상대는 가지산도, 엄마도, 학원도 아니라는 것을. 모든 걸 잊은 채 끊임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자기가 싸우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점점 지쳐가는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수업 시간에 무력하게 있는 아이들을 보며 체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동안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개교기념일에는 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5시간 정도 근처 천마산에 같이 올라가 정상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기도 했다. 남들이 고작 아침에 10분 동안 책 읽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도 아침 독서 운동을 꿋꿋이 5년째 지속하고 있다.

우리 반에는 다른 반에 없는 나의 땀과 열정이 서린 300여권의 학급 문고. 그리고 그 책을 열심히 읽는 28명의 친구들과 나. 다른 이들이 몰라주더라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힘내기로 했다. 나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독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이들은 나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12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통해 호진이가 삼촌의 진면목을 알아 보았듯이 말이다. 또한 자전거 여행을 통해 땀 흘리며 아들을 만나러 부산까지 힘들게 올 호진이의 부모들도 결국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더 큰 바람이 있다면 나의 제자들과 호진이가 했던 자전거 여행을 같이 따라가고 싶다. 뙤양볕 아래에서 같이 땀 흘리고 힘들 때 투덜거리기도 하며 비도 맞으면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교실 안 책상 앞에서만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 몸을 움직여 흘리는 땀으로부터 배우는 공부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어른들이 먼저 깨우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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