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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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돈이 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던 선배가 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 마시는 것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난한 철거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분통을 터뜨리는 그 선배의 모습이 집에 돌아온 후에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가슴이 아팠고, 다음 세대에는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일기장에 어설프게나마 적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직장을 갖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그저 학생일 때 느끼는 ‘남녀차별’과 결혼 후 육아와 직장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느끼는 여자로서 ‘삶의 무게’는 너무나도 차이가 크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홍승우의 만화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고 있다. 엄마 뱃 속에서부터 사회의 차별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딸들, 직장에서 똑같이 일하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시댁의 눈치만 봐야하는 며느리들, 결혼 후 남편의 삶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아내들의 모습을 보며 바로 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다. 특히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와 달라고 하는 며느리에게 한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애한테 무슨 일을 또 시켜?’ 이 말은 너무나도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다. 이 말을 듣고 이 세상의 어느 며느리가 부아가 나지 않겠는가? 작가가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자의 입장을 이리도 명쾌하게 대변할 수 있는지 감탄을 금치 않았다. 이것도 ‘남녀차별’적인 발언일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의 삶도 그리 순탄치 않다. 유승하의 ‘새봄 나비’에서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어떻게든 아들을 되찾아 다른 엄마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뇌성마비 장애인인 주인공에게 사회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저, 말이죠. 다른 장애인들처럼 그냥 조용히 사세요.’일 뿐인 것이다. 결국 이 주인공에게서 모든 ‘희망’과 ‘행복’을 빼앗고 죽음으로 내몰은 우리는 이런 ‘차별’조차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남들처럼 두 다리로 평범하게 걷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을 만나러 학교에 가서도 아들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 하는 ‘엄마’의 마음을 우리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이 책에서는 요즘 점점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받는 모습도  극명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일본 등 선진국에서 약소국가의 민족이라고 차별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을 꾸리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보다 약한 외국인을 그저 돈이 없다고, 우리와 다르다고 천대하고 멸시하며 인간적으로 못할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고도의 경제 성장 속에서 어쩌면 정작 중요한 것을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최호철의 ‘코리아 판타지’에서 주인공이 ‘나도 피부 검은 친구들이 차별 받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 순간, 내가 차별 당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걸 몰랐어.’라고 말하는 부분은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차별 당할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사는 것이다.
  특히 한 몽골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하다가 정신이상자가 되어 몽골로 돌아갈 때 미처 가지고 가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샀던 선물을 돌려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의 글을 읽으며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우리 사회는 낯선 외국인 노동자와 ‘상표도 떼지 않은 빨간 여아용 운동화와 아주 고급스러운 여성용 운동화, 그리고 움직이며 짖어대는 장난감 강아지’ 조차 나누지 못할 만큼 인색하고 배려심이 없었던가? 김해성 목사의 마지막 글은 그런 의미에서 가슴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선물도 하나 없이 빈 손으로 돌아온 아빠를 바라보는 어린 딸과, 큰 돈을 벌어 오겠다고 떠났지만 결국은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온 병든 남편을 맞는 부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떻게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작지만 소중한 이 선물을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내가 대학 시절 막연하게 느꼈던 ‘다음 세대에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우리 사회에서 현실화되기까지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어린 학생들이 읽으며 어려서부터 주변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모습을 보며 ‘옳지 못하다’고 말할 줄 알고 실천하는 참된 삶을 산다면 우리 사회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누군가를 ‘남’이라고 규정짓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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