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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왕들의 비밀 ㅣ 동화 보물창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이현숙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E.L. 코닉스버그의 "퀴즈 왕들의 비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한두 가지 있었다.
퀴즈 대회에서 결국 우승을 하고 난 뒤에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올린스키 선생님에게 줄리안의 아버지가 해준 말씀.
"오랫동안 아주 열심히 준비했고 줄곧 긴장된 상태였지요. 승리 하나하나는 모두 다음 승리를 위한 준비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제 다음이 없는 거죠. 선생님, 어쨌거나 이제까지의 여행을 즐기셨나요?"
"네, 아주 만족스러워요. 우승컵 하나하나 모두 다요. 바다 위에서 줄리안이 그랬던 것처럼요."
"이제 닻을 내리셔야지요, 선생님. 돌아보세요. 이 항구의 경치를 즐기세요. 멈추는 순간도 아주 짧답니다."
올 한 해 무척 열심히 했던 순간도 있었고, 아이들 덕에 토론대회에서 '우승'도 했는데 올린스키 선생님과 같은 '상실감'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1년을 아주 숨가쁘게 왔는데 뭔가 많이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크다. 난 어디에 닻을 내리고 어떤 경치를 즐겨야 하는 걸까? 멈추는 순간은 아주 짧은데... 이렇듯 1년도 다 지나가 버리고...
이 책은 동화책이지만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리고 무척 부러운 부분도 많았다. 주인공 4명 노아, 나디아, 에탄, 줄리안은 토요일마다 실링턴 저택(줄리안의 집)에서 다과회(차 마시는 시간)를 갖는다. 그들은 그 곳에서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이를 테면 자기 안에 꼭꼭 숨겨져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말해도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
"만약에 말이야, 다시 살고 싶은 날을 딱 하루만 고르라면 그게 언제야, 그리고 이유는 뭐야?"
다시 살고 싶은 날은 언제인가. 나디아, 노아, 줄리안이 모두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 다과회 했던 날 있지. 바로 그 날이야. 그 때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난 다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영혼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나도 당황하지 않고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아, 나는 다시 살고 싶은 날이 언제일까?
내 마음 안에 꼭꼭 간직했던 말을 꺼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편안함은 언제쯤 느낄 수 있게 될까?
아니, 나는 왜 어디서도 내 안의 말들을 점점 더 꼭꼭 숨겨놓은 채
자연스럽게 꺼내지 못하는 것일까?
매주 토요일이면 4명의 아이들이 '영혼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모인다는 그것이 가장 부러웠다. 어떤 말을 해도 받아줄 수 있는 그런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 내가 꿈꾸었던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매주 토요일 오후 4시가 되면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마음 속 이야기까지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그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나도 언제 어디서 만나도 항상 편안한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1년을 마무리하면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코닉스버그의 책은 처음에 지루하다 못해 너무나 잘 안 읽힌다.
그런데 점점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 속에 저절로 폭 빠져서
감동이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시공을 초월해서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작가이다. ^^
어떤 계기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올 해의 끝자락을 코닉스버그와 함께 해서 너무나 풍요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