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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 제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43
김이윤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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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밤, 창밖으로 농구공 튕기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온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조차 마음 놓고 나눌 수 없어 안타까운 아이들이 온몸으로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만 같다.

소설의 주인공 여여는 늘 씩씩하고 당찬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여여의 엄마는 미혼모이면서 여권 신문의 사진작가로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사람, 장애인, 여성을 배려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키우며 악착같이 일하던 여여의 엄마는 자궁암에 걸려 말기암 선고를 받고 시골로 요양을 간다.
엄마의 투병으로 인해 여여는 자신에게 닥친 두려움과 맞서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익힌다. 요양차 간 시골에서 만난 무 할머니가 알려준 민간요법으로 엄마의 병을 떨쳐내려고 애쓰고, 아빠 없이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투정부리며 엄마를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용서를 빌기도 한다. 자신의 삶 중에서 5년이라도 엄마에게 줄 수 있게 해달라고 절실한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부엌 바닥에 엎드려 티베트 승려처럼 무릎이 얼얼할 정도로 오체투지를 해서라도 엄마의 병을 낫게 하고 싶다. 하지만 여여의 엄마는 결국 돌아가시고, 슬프고 어렵지만 여여는 차차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문화센터 드럼반에서 만난 학교 선배 시리우스는 여여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여여는 시리우스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두렵지만 자신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행동한다. 시리우스와 함께 드럼을 연습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시리우스가 공원에서 주었던 하트 모양의 계수나무 잎을 소중히 간직하기도 한다. 혼자서는 절대 탈 수 없던 외발자전거도 시리우스의 도움으로 제법 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항상 여여의 외발자전거를 잡아줄 수는 없는 법. 시리우스와의 풋풋한 사랑도 끝이 나고, 여여는 시리우스가 준 계수나무 잎뿐만 아니라 다른 식물의 잎도 하트 모양이라는 진실을 깨닫는다. 시리우스와의 만남은 여여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였고, 이를 통해 여여는 한 뼘 더 자라게 된다.

17년 동안 잊고 지냈던 여여 삶의 한 축, 아빠를 만나는 일은 설레면서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왼손잡이인 아버지를 닮고 싶어 왼손으로 젓가락질 연습을 하고, 우연히라도 아빠와 마주치고 싶은 마음에 아빠가 사는 동네까지 버스를 타고 간 적도 몇 번이다. 여여는 단짝 친구인 세미와 함께 청소년 경제 강좌에서 대기업 이사인 아빠를 만나고 멘토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엄마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던 여여는 아빠와 함께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엄마에 대한 원망이나 미안함은 강 위에 종이배를 띄워 보내듯 조금씩 시간에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점차 깨닫는다. 외발자전거를 탈 때 휘청거리다가 뚝 떨어져도 자전거를 끝까지 놓지 않은 것처럼 여여는 아무리 세게 넘어지더라도 자신의 삶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농구공이 골 망 사이로 힘겹게 빠져나오듯 아이들도 자신만의 두려움을 각자 온몸으로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힘들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봄 향기에 취하는 밤, 농구장을 경쾌하게 뛰어다니는 그들의 거친 숨소리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이 담겨 있는 듯하다. (중2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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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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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의 첫번째 소설 '연을 쫓는 아이'가 아프가니스탄 남자들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채 자신의 삶을 인내하면서 살아간 아름다운 두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열다섯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45살 먹은 아버지뻘 되는 라시드와 강제 결혼을 하고, 일곱번 가까이 유산을 하면서 무참하게 남편의 폭력을 감내하며 살아낸 마리암의 인생은 그저 애처롭다고 하기엔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 당시 그런 질곡의 인생을 살아온 여인이 마리암 혼자였겠는가? 

신식 교육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 타리크와의 사랑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라일라. 그녀에게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하드에 참전했다가 죽어버린 두 오빠에게 늘 머물러있었고, 그녀가 사랑했던 타리크도 파키스탄으로 떠나버린다. 그녀의 부모도 카불을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옮기던 중 무차별로 떨어진 폭탄에 목숨을 잃고 만다. 라시드의 계략에 빠져 60살도 넘은 그와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을 읽으며 인간의 끝없는 탐욕 앞에 순수했던 라일라의 사랑과 미래가 무참히 깨지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아무도 라일라를 지켜줄 수 없는 그 상황을 만든 건 누구란 말인가? 

마리암이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왔다면 라일라는 달랐다. 처음부터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라시드에게서 돈을 조금씩 훔쳐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다시 끌려와 너무나도 처참한 죄값을 치르지만) 그에게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기도 한다.(전쟁의 상황에서 아무 의미 없어졌을지라도) 타리크의 딸인 아지자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녀의 삶을 망가뜨려버린 라시드의 아들인 잘마이도 받아들여야 한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처음 한 남자의 아내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라시드의 무자비한 폭력으로부터 라일라가 마리암을 구해주는 것을 계기로 이 두 여인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처음으로 마리암은 자신의 질곡 많은 인생 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 같은 상황 속에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 라일라, 아무 조건 없이 그녀에게 웃음을 던지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되찾게 해준 어린 아지자.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라일라, 아지자를 위해서 결국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라일라를 목졸려 죽이려는 라시드를 삽으로 내리쳐 죽이고는 라일라를 위해서 도망가지 않는다. 탈레반에게 잡혀서 법정에 서서도 차분하다. 처형장인 가지경기장으로 가는 도중에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는다. 어린 탈레반은 죽음 앞에서 떨고 있는 마리암에게 '죽음 앞에서 두려운 것은 전혀 창피할 것이 없다'는 위로의 말을 듣기도 한다. '라일라의 웃음 소리, 그녀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던 풍경, 아지자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마리암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마리암이 사랑했던 그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충만한 만족을 느끼며 평화롭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마리암의 숭고한 희생으로 얻은 가족과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을 꾸려나가던 라일라가 갑자기 카불로 돌아가겠다고 타리크에게 말하는 장면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의 삶을 그리도 모질게 끌고 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니!!! 그녀의 부모가 살아서 꿈꾸던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평화로운 카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마리암이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지켜주려고 했던 것은 고작 한 가족의 평화로움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녀는 다시 카불로 돌아가야만 했다. 

라일라는 풀들이 나풀거리고  버드나무 가지가 소리를 내는 굴 다만 오두막에서 소녀 마리암의 꿈과 안타까움을 만나고 온다. 어린 마리암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했던 월트 디즈니의 '피노키오'를 남겨서라도 마리암의 아버지 잘릴이 딸에게 용서를 빌고자 했던 마음.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어린 마리암을 들이지 못했던 과거를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있다. 마리암은 이런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죽음의 길로 갔으니 라일라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마리암은 그녀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포기했으므로.

라일라와 타리크는 카불로 돌아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해진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한때 아지자를 눈물을 흘리며 맡길 수밖에 없던 고아원에 가서 그들의 나라를 살리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무너진 건물을 다시 보수한다. 고아원 원장이었던 자만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들에게 하페즈의 가잘을 통해 이야기한다. 

   요셉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헛간은 장미꽃밭으로 바뀔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고 홍수가 닥치면 

   노아가 태풍의 눈 속에서 너희들을 안내할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라일라는 새로 태어날 아기의 태동(하나의 물결)을 느끼고, 새 생명의 이름을 지으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자신을 위해서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마리암이 바랐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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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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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 그 속에서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 그리고 아세프의 잔혹함. 아미르가 소랍을 통해 자신의 지난 '죄'를 속죄하려고 애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미르가 "천번이라도 소랍을 위해 연을 쫓아가서" 지난 날 하산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용서 받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탈레반'이 된 아세프가 아미르와 일방적으로 싸우는 그 부분부터 소랍이 자살을 시도하는 부분까지 긴장감있게 읽었다. 이슬람 문화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속에서 살아간 숱한 안타까운 영혼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잔인하게 희생된 안타까운 사람들.    

폐허가 되어버린 조국의 모습을 보는 아미르의 마음이 얼마나 쓰렸을까? 자신의 집을 지척에 두고도 자신이 몇십년을 사용하던 방에도 들어가볼 수 없는 안타까움. 전쟁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 중에서 가장 추악하고 잔인하다.  

아미르가 소랍을 위해서 끊어진 연을 주워오기 위해서 뛰어가는 모습, 아세프의 강철 놋쇠 장갑으로 사정없이 얻어 맞으면서도 이제서야 자신의 괴로운 '죄값'을 치른다고 생각하던 아미르.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열두 살 그 때, 하산이 아세프에게 치욕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괴로움.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읽어봐야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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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싱싱 사계절 1318 문고 59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사계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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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싱싱”을 다 읽고 났을 때의 첫 느낌은 차가운 얼음물을 마시고 난 뒤의 시리도록 차가운 청량감이었다. 아, 이토록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감성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니! 몇년만에 차오원쉬엔 작품을 다시 만난 감동은 처음부터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잔잔히 퍼져나가는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예전에 “빨간 기와”를 다 읽은 다음, 서점에서 “까만 기와”를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을 때의 설렘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야풍차’에서 얼바옌즈는 가난으로 지쳐 살아가지만, 영혼만은 살아 꿈틀대는 씩씩한 소년이다. 얼바옌즈는 어른들도 올라가기 힘든 태풍 속에서 흔들리는 풍차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풍차의 남은 돛을 내리려고 하다가 바람에 먼 곳으로 떨어지고 만다. 말라 죽어가는 새싹을 살리기 위해 물을 대주던 풍차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얼바옌즈의 순수한 의지. 소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정없이 땅에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겠지만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용기와 패기를 갖고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겠는가! 거칠지만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삶. 소년은 그렇게 크는 것이다.



‘열한 번째 붉은 천’에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외뿔 소를 몰며 죽을 힘을 다해 달렸던 곰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 나타나 있다. 외뿔 소를 사오던 날 길들여지지 않은 소가 날뛰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물에 빠진 한 아이의 목숨을 잃고 만다. 바로 그날 곰보 할아버지는 소의 한쪽 뿔을 잘라 버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도 알아주지 않은 채 세상과 점점 고립되어 살아갈 지라도, 죽어가는 아이를 반드시 살려놓고야 말겠다는 곰보 할아버지의 집념.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은 죽게 되었지만 자신이 살려놓아야 할 어린 생명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곧은 마음. 세상은 이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안녕, 싱싱’에서의 싱싱도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야성 그대로의 순수함이 가득한 어린 아이이다. 여지청으로 싱싱의 집에 머물게 된 야 누나는 싱싱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겁이 많고 나약하기만 한 야 누나가 날이 갈수록 야위어가자 싱싱은 달빛 호수에 가서 황금 잉어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오직 자신을 인정해주었던 야 누나를 위해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꼭 황금 잉어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끝까지 버텨낸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입술을 깨물며 꽁꽁 얼어서 곱은 손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싱싱은 황금 잉어를 결국 잡고야 만다. 야 누나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싱싱은 슬픈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야 누나와 함께한 아름답고 순수한 시절이 그의 가슴에 평생 남아 그의 삶을 빛나게 해줄 것이다. 하늘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뜻하는 ‘싱싱’ 처럼.



마지막 작품 ‘흰 사슴을 찾아서’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추위와 배고픔, 무서움에 떨면서도 끝내 이겨낸 아이들의 처절한 사투가 그려져 있다. 새하얀 사슴을 찾아 나섰던 다예, 쉐야, 린와, 션션은 무너져 내린 눈 더미 때문에 오두막에 갇히고 만다. 네 아이들은 깜깜한 암흑 세계에 갇혀 다시는 살아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 쌓여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네 아이들은 가장 삶과 동떨어진 이 암흑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린와는 말린 고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혹한 배고픔 속에서 혼자 몰래 먹어 버리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담요를 혼자 덮고 있으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페인트 통을 과일 통조림으로 알고 혼자 몰래 먹으려다 페인트인 것을 알고 뱉어내며 괴로워한다. 이런 린와의 이기적인 마음도 어쩌면 가장 솔직한 아이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진짜 배 통조림을 발견한 다예도 혼자 먹고 싶은 마음에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언젠가 마주쳤던 ‘맑고 순수하고 선량함이 가득 담긴 위의 눈동자’를 떠올리고는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결국 모두 다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순간, 다예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배 통조림을 다 같이 나눠먹으며 함께 하는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된다. 이런 다예를 보며 린와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만약 이 통조림이 자신에게 왔다면 혼자 먹으려고 했을 것이 아닌가?’ 린와는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온 몸이 차갑게 얼어가던 션션이 자신의 아버지가 일부러 린와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고 린와에게 사과를 청하고, 린와는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린와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션션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다.

죽음과 암흑을 상징하던 눈 속에 파묻힌 오두막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이 오해했던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용서와 화해의 공간이 되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희망과 밝음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삶의 희망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결국 자신들의 힘만으로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눈더미 밖으로 빠져 나온다.



매번 아이들을 혼내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아이들을 불완전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소설에서처럼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고 아이들이 선생인 나보다 훨씬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시험 성적이 올랐는데도 집에 가서 말할 사람이 없다는 아이의 글을 읽으며,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혼나는 학생과가 싫다며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우리 반 꼴찌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너희들도 성장의 고통을 겪으며 치열하게 살고 있거늘, 어른인 우리들은 힘들고 외로웠던 그 시절을 어느새 잊고서 너희들을 더욱 힘들게만 했구나.’

힘겨운 삶을 살고 있지만 결코 쉽게 포기하지도 않고, 삶을 힘차게 헤쳐나가는 이 소설 속의 소년들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오래 잊고 지냈던 그 시절, 잘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고 어설프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 순간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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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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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중학생 아이들과 좌충우돌 지내다 보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15살 준호, 정아, 승주를 보면서 새삼 우리 아이들이 겪게 될 성장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 당시에는 절실하게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는 흔들리지 말라고 너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고 있으니 삶은 이렇듯 잘 잊혀지나 보다. 절대 못 잊을 것 같은 그 기억들도 다 잊혀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동안 가정의 말 못할 사연들로 인해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 하던 몇몇 안타까웠던 아이들이 떠오른 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쳐주고 혼내는 입장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먼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곤 했다. 그러면서 항상 나만 상처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고입 원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여학생 한 명을 안타깝게 유예시키면서 뭔가가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 오빠와 함께 셋이서 살아가며 모든 살림을 도맡아서 하던 그 아이는 버거운 삶의 짐을 어쩌지 못하고 집을 나가고 말았다. 몇 번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자리를 잘 잡지 못했다. 학기 초 독서 공책에 책을 읽고 난 느낌을 빼곡히 써 놓기도 하고, 청소 시간에도 모두들 대충 하고 가려고 하는 와중에도 구석구석 쌓여있는 먼지까지 말끔하게 쓸어주어서 항상 어른스러웠던 그 아이. 아이들과의 소소한 감정 싸움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그 아이가 어느 순간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방 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집에라도 한 번 찾아가 보았을 것을. 어쩌다 학교에 나왔을 때 같이 떡볶이라도 먹으며 수다라도 왕창 떨어볼 것을. 뒤늦은 후회와 안타까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이의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적응을 잘 해 보라고 힘 빠지는 이야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행방 불명’을 듣고 나서도 출석부에 무단 결석 처리밖에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고, 기어이 유예 처리를 하고 출석부 그 아이 이름에 빨간 줄을 그을 때는 비통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 아이가 혹시 잘못 되었다면 도저히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바쁜 생활 속에서도 가끔씩 그 아이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와중에도 한 해가 시작되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42명의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 생각이 거의 잊혀질 무렵 우연히 모교를 찾아온 그 아이의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그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잘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아이는 또 다른 공간에서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아이 오빠의 손을 잡아주면서 꼭 안부 좀 전해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는지 아냐고 잘 지낸다니 너무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장의 아픔으로 인한 그 아이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간절히 바랬다. 준호와 정아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 것처럼.

    친구인 규환이의 부탁으로 중요한 사명을 띠고 여행을 시작하게 된 준호. 어린 시절 아련히 떠나버린 아버지를 아직 잊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재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떠나버렸다. 아버지를 잊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믿음은 서서히 흐려지기만 한다. 1980년 광주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죽어갔을 지도 모르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시인인 준호의 아버지. 밤에 악몽에 시달려 무서워 아버지의 서재를 찾아가면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주던 따사로운 목소리. 내가 준호였어도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정신질환자인 아버지로부터 매일 맞고 쫓기는 삶에 지친, 그리고 아버지의 학대를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싶은 정아. 자식들을 위해서 그저 남편으로부터 맞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정아는 이런 엄마를 떠나고 싶다. 이해하고도 남는다. 속옷 차림으로 미친 개 '루즈벨트'와 아버지로부터 쫓기다가 얼떨결에 여행에 동참하게 된 정아는 얼마나 그 처절한 현실로 다시 돌아가기 싫었을까? 그렇게라도 간절히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버림 받은 준호와 버림 받고 싶은 정아는 엉뚱한 여행을 통해 서로의 아픔에 대해서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남의 아픔이라고 해서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깨달음도 가슴에 새기면서. 준호, 정아, 승주는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바다 속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 반 그 아이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떠나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리도 그 아이를 참을 수 없게 했을까? 또 그 아이의 ‘고래’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쯤,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정신없고 시끄러워도 끝날 시간이 되면 나만 애타게 기다리는, 이제는 너무나 정이 들어버린 우리 반 42명의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 아이들이 있기에 내 삶이 빛나는 것 아닐까? 며칠 전 출장을 간 사이 청소를 엉망으로 해서 어떻게 혼낼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가끔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줄 때도 많으며, 아프다고 조퇴를 하더니 곧장 집을 나가서 40여일 동안 애를 태우다 돌아온 아이도 있었지만 그들은 성장의 고통으로 흔들리고 있는 아직은 감싸줘야 할 영혼들 아닌가? 아직은 어설프기에 더욱 순수한 영혼들. 이들이 흔들릴 때 옆에서 위로가 되어주고 즐거울 때 함께 웃어주며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정신없고 엉뚱한 여행을 한 것처럼 천진난만하고 시끌벅적한 아이들과 유쾌한 동행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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