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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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내용이 생소한 ‘과테말라 내전’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그 쪽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가다보니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주인공인 15살 소녀 가브리엘라, ‘나무 소녀’에게 점점 빠져 들어갔다. 15살인 그녀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들이, 그에 비해 너무나도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버린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것만 같았다.  

  가브리엘라가 어른이 되는 의식인 ‘킨세아녜라’중에 나타난 군인이 호르헤 오빠를 잡아가는 대목을 읽을 때만 해도, 가브리엘라처럼 호르헤가 어딘가에서 살아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병으로 몸이 안 좋던 가브리엘라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동생들을 자식처럼 잘 돌봐주라고 가브리엘라에게 부탁하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마누엘 선생님과 같이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던 아이들이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가는 걸 눈 앞에서 지켜보게 되고, 가브리엘라의 삶의 터전이자 근원인 고향 마을이 무조리 불타버린 것을 온 몸으로 확인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지 멍해졌다.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무수한 총알에 죽고 무참히 마을이 불타는 순간, 막냇동생이 “엄마! 엄마! 엄마!”하고 가브리엘라를 애타게 찾았을 것을 생각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잠시 책을 덮어두고 마음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한참 어리광을 부릴 알리시아 또래인 네 살바기 딸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어린 아이들이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전쟁에서 무참히 죽어가야만 했다니. 도대체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리도 무참히 죽어가야만 했던 것인지 씁쓸하기만 했다. 나 자신이 사회의 일정 부분을 이끌어가야 할 어른으로서 너무나도 큰 책임감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읍내의 학살’에 나오는 그 생생한 죽음의 현장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군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치를 떨게 했다. 그 극악무도한 죽음의 현장을 15살 어린 나이에 나무 위에서 혼자 지켜봐야만 했을 가브리엘라가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 현장에서 같이 죽지 못하고 혼자 살아 남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브리엘라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절대 비겁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어느 누구도 너를 ‘겁쟁이’라고 욕할 수 없을 거라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잃고, 삶의 희망이었던 알리시아마저 잃어버린 뒤 가브리엘라는 혼자 만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만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몸도 마음도 편안히 둘 수 없었던 그녀가 그 누구도 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견뎌나가는 부분은 마음을 안타깝게만 했다. 하지만 자연에서 태어나 나무를 벗하며 살아온 가브리엘라는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에서도 스스로 삶의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희망을 꿈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잃고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간신히 다시 찾은 막내 동생인 알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하나뿐인 혈육인 언니에게조차 말문을 닫아버린다. 이런 알리시아에게 가브리엘라는 ‘무서운 것이 있다고 피해 달아나면 안되고 무서운 현실에 당당히 맞서야 나무소녀가 될 수 있다고. 그러려면 먼저 말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준다. 사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가브리엘라 자신에게도 해 주고픈 말이었을 것이다.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않고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한 가브리엘라는 자연 속에서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언젠가는 과테말라로 돌아가, 어린 시절 그 곳에 남겨 두고 온 아름다움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이미 내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같을 것이다. 언젠가 과테말라로 돌아가 마리오라는 이름의 특별한 선생님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서 학살에 대해 알릴 것이고, 돌아가서 우리 민족의 노래를 찾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노래, 한밤 내 영혼이 고요하게 가라앉을 때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그 노래를.


  이 책을 다 읽고, 전쟁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가브리엘라 또래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소녀의 생생한 증언들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고 치욕적인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지 반드시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지금 이렇게 편안히 살아가는 남아있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 역시 한국 전쟁이라는 크나큰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나무소녀의 증언 못지 않은 죽음의 현장이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학살’의 흔적 또한 남아 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을 후세에게 알릴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인류의 큰 재앙인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져서 자연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동화되어 결국은 ‘나무’(자연)으로부터 해답을 찾아내는 나무소녀의 삶은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삶의 해법을 우리도 찾아가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재생용지를 사용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나의 제자들과도 이 책을 읽으며 나무소녀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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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2006-07-0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진샘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님의 글을 통해 다시 느끼고 갑니다.

수진샘 2006-07-27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읽기에 그리 편하지 않은 이 긴 글을 읽어주신 그 자체가 고맙기만 합니다. 이 책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