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앞둔 어느 날, '룸바'를 배우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황군을 꼬드겨 역삼동에 있던 댄스홀을 찾았다. 댄스교사의 설명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그곳을 나왔어야 했다. 이유인즉 힐을 신을 수 없다는 것. 5센티 정도의 힐을 신고 서있을 수도 없는 내가 춤을 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무슨 얼빵신이 강림하셨는지, 아니면 이사도라신이 내리신 건지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맨발로 춤을 출 수는 없나요?"
황당하셨겠지만 그 예쁜 등을 더 곧추세우는 일로 일단 마음을 가라앉힌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고 춤을 배울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맨발은 위험하니까 발레슈즈를 신고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아~ 그러니까 나는 신체장애 판정을 댄스홀에서 받은 셈이었다.  

여튼, 선생님은 내게 더 큰 장애가 있음을 그때는 몰랐으리라. 나는 몸치였다. 
그리하여 황군과 나는 토요일이면 두려움과 설레임을 반반씩 섞어 댄스홀에 갔고, 나올 때는 자괴감과 피로를 얻어 돌아왔다. 처음에는 처음이니까, 좀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럴 수 있으니까, 더 시간이 흘러서는 뭐 선수하려는 것도 아닌데, 마지막에는 때려치워!가 됐지만, 지금도 그 시절의 일을 복기하면 유쾌하기만 하다. 그때 춤은 제대로 출 수 없었지만 춤곡(서양 고전 음악에서 춤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은 참 많이 들었었고, 음악을 귀가 아니라 온 몸으로 듣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말이다. 깨달음을 멀고도 가깝다.  

 

 

 

 

 

 

 

  

그리고, 오랜만에 춤과 관련된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 [춤의 유혹]은 라틴댄스에서 왈츠 그리고 궁정댄스에 이르기까지 흔히 사교춤이라 불리는 커플댄스를 소개하는 책이다. 물론 방법론은 아니고, 춤의 역사적 배경이라든지, 그 시절 사람들의 욕망이라든지, 그러니까 춤의 미시사 정도라고 보면 무리가 없겠다. 이 책의 형식이 교본이었다면 오히려 내게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니, 나는 이 책에 스텝 밟는 과정을 도식화한 발바닥 그림이 실려있지 않음에 감사했다.    

이 책에는 보기만 해도 설레고, 상상하면 더 끔찍하게 황홀한 여러 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신대륙의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의 춤인 산테리아와 캉동블레,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파생된 삼바, 살사, 탱고, 집시들의 춤에서 흘러나온 플라멩코 등은 단순한 여흥으로서의 춤을 넘어선다. 이 춤들은 박해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인 언어로서의 힘을 가질 수 없었을 때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몸부림이 실려있다. 몸으로라도 표현해야만 하는 절박함과, 반복되는 고통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오기들의 총합, 그리고 그 탈출구로서의 춤.
책을 읽는 동안 가슴 어디쯤이 무거웠던 까닭은, 여전히 어디선가 탕탕거리는 그들의 발구름이 존재할 것 같아서였고, 끝없이 반복될 것 같은 힘을 가진 자들의 영원한 타락이 눈에 밟혀서였다.  

그럼에도, 보란 듯이, 모든 살육의 기억들은 축제로 거듭나있다.
그렇다고 축제가 말 그대로 축제인 시절에 암울한 과거를 들이대며 같이 울어보자, 이 축제들의 의미를 바로 세우자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어쩌면 그것 역시 폭력일 것이다. 살을 부비고, 타인을 끌어안고, 플로어를 빙빙 도는 즐거움과 위안, 그 한없이 가벼운 유희를 뺏을 권리 또한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브라질에서, 쿠바에서, 스페인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축제들은 그 기원이 어찌되었건, 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입에 담지 못할 폐해들이 무엇이건, 나같은 소시민에게는 꿈에 그리는 일탈이다. 염치없지만 속세는 그렇다고 그래서 나 또한 그렇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어디 먼 이국땅까지 원정을 갈 수는 없지만, 이 밤, 금요일의 이 밤, 누구 나와 함께 춤이나 추실라우? 쉘 위 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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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1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서툴더라도 열심히 배우시면, 멋진 룸바를 추는 굿바이님이 되실거라고 믿습니다.^^
이사도라신에서 살짝 웃었습니다.ㅎㅎ

굿바이 2010-11-21 23:39   좋아요 0 | URL
이런 위로와 격려는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룸바는 포기했습니다. 엉엉~
 
레드 - R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블루문특급이후,당신은제오라버니이고,오라버니의미소는,영화의완성도따윈잊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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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11-1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우리 형인데!

굿바이 2010-11-12 23:43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우린 그런 사이였군요 ^^

웽스북스 2010-11-1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생의 비밀이다!!!

굿바이 2010-11-12 23:44   좋아요 0 | URL
공개된 비밀은 비밀이 아니란다!!!!ㅋㅋㅋ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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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문학 예방>이라는 에세이의 한 대목은 이렇다.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닌 이상, 문학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다......그는 자기가 뜻하는 바를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해 진실을 비틀고 풍자할 수는 있어도, 자기 마음의 풍경을 곡해할 수는 없다." 

작가의 글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정하면, 오웰은 녹록하지 않은 경험으로 얻은 마음의 풍경을 어떤 목적으로도 곡해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작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오웰도 <작가와 리바이어던>이라는 에세이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문단의 지식인들이 글을 쓰며 의식하는 이들은 대중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들이 속해있는 그룹, 시쳇말로 업계 종사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두려움을 접고,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의 책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해답의 반은 얻은 셈이다.  

그러나, 작가의 글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한계에 봉착한 독자로서 고백하자면, 그의 글이 사실이 아닌 어떤 풍경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에서 그의 말을 빌려오자면, 
"그렇다면 작가는 정파 우두머리들의 지시를 거부할 뿐 아니라 정치에 '대해'쓰는 것도 삼가야 한다는 뜻인가? 이 역시 결코 그렇지 않다. 원한다면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정치적인 글을 써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정규군의 측면에 있는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글을 쓰되 다만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의 위치를 주문하는 작가의 말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불편하다. 그것은 그가 강조한 두려움 없는 글쓰기, 마음의 풍경을 곡해하지 않는 글쓰기에 오히려 흠집을 남기는 일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딛고 있는 땅을 살피는 일이 힘겹고 심지어 불가능에 가깝다 할지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응시할 수 있을 때, 응시를 통해 깨달은 곤란한 진실들과 마주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발화할 수 있을 때, 적어도 작가가 말한 정치적인 글쓰기에 힘 혹은 진정성이 실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글이야말로 사후적 해석에만 머무르지 않는 글이 되리라 믿는다.  

언제나 그러하듯, 모든 어긋남은 어떤 의도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그러하기에 작가의 글과 내 마음이 어긋나는 자리에서 나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어긋나려고 한다. 그것은 작가의 시절과 또 다른 시절, 21세기의 무람없는 냉소주의자들의 행태가 눈에 밟혔던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별쭝맞은 트집을 잡는 것도 잠시다. 참으로 잠시다. 

"전체주의는 신앙의 시대보다는 정신분열의 시대를 약속한다." 는 문장은 오웰의 통찰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내 마음대로 선정한 조지 오웰의 경이로운 성찰이자, 전체주의에 대한 이 시대 최고의 폭로다. 이 문장은 오웰의 <1984>로 이어져 전체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구성원 자신들을 기만하는지 보여주는 모태가 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남은 답변이 있다면 감히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하리라 본다.  

누군가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어느 여인을 두고 매혹적이라 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선택과 유기를 두고 망설이는 일은 성가신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맞는 상황이라면, 망설임은 필요한 시간이고,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나름대로 현명하고 예의바른 태도의 여인을 가르켜 매혹적이라고 발화한 것이라면 나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유기할 것을 들고 애매함을 보이는 것은 매혹적일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간교한 행동일 뿐이다. 더 나아가 선택할 것을 들고 애매함을 보이는 것 역시 매혹적일 수 없다. 그저 어리석을 뿐이다. 따라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두고 보인 잠시나마 어정쩡했던 태도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어리석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그의 글을 곁에 두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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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8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0-11-08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대단한 리뷰에요. 오웰이 이걸 읽었더라면!
안 그래도 사려고 한 책인데 꼭 사야겠네요.

굿바이 2010-11-09 09:58   좋아요 0 | URL
책에 밑줄이 많아서, 보내드린다고 하기도 참 그렇고....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어요, 어느 대목은 고종석씨가 보이기도 하고^^

cyrus 2010-11-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대단한 리뷰에요. 오웰이 이걸 읽었더라면! 2
오웰은 작가이기 전에 인간이기에 수많은 에세이를 쓰다보면
자신의 문학적 초심과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내용을 쓸 수도 있고,
시대가 변화됨에 따라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문학관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웰의 글을 비판하는 내용, 잘 읽었습니다.
안 그래도 다시 읽으려고 한 책인데 꼭 다시 읽어야겠네요.

굿바이 2010-11-09 09:57   좋아요 0 | URL
이런 과찬을 연달아 듣다니, 민망해서...이를 어쩐답니까 ㅜ.ㅜ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허접하고, 뭐랄까, 애증이랄까요~
곁에 두고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부분은 다른 책들을 좀 찾아볼까 싶기도 하구요.

꽃도둑 2010-11-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 님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참으로 밀도 있게 쓰셨어요. 근데 읽다가 <작가와 리바이어던>의 인용구에서 잠시 멈추게 되네요.
오웰은 다른 작가에 대해 자신의 소견을 밝힌 글에서 '반드시 작가의 실제 얼굴이 아니라 그 작가가 가져야만 하는 얼굴을 보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는 작가가 가져야할 자세이자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다만 한 개인으로서,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정규군의 측면에 있는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는 정규군의 입맛에 맞추어진 혹은 정치에 대해 함구하는 것이 아닌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자신이 원한다면 글쓰기는 게릴라가 갖는 저항정신, 의협심,자유와 평등에 대한 의지로의 글쓰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이죠... 그리하여 그건 두려움 없는 글쓰기에서 몸을 빼는 행위가 아닌 걸로 읽혀지기도 하는데...정작 오웰 자신도 환영받지 못한 글을 써서 출판을 거부당한 적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말을 그렇게 이해하게 되는군요...^^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떤지....궁금하네요,

굿바이 2010-11-10 11:09   좋아요 0 | URL
꽃도둑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지배세력의 혹은 다수의 입맛에 맞는 글을 피하기 위해, [한 개인, 외부자, 게릴라]라는 표현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렇지만, 외부자나 게릴라가 항상 의협심이나 자유,평등에 대한 가치를 존중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 또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오웰의 표현이, 작가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존이라는 무게를 감당하지 않으면서 그저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그런 알리바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기우였습니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기우였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꽃도둑 2010-11-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정치적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나봐요. 또한 한계라는 것에서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것을 직시하는가 회피하는가 하는가 두 종류의 사람은 분명 존재하는 거구요. 오웰의 글쓰기는 직시하는 쪽이었다고 봐요, (물론 직시라고 해서 옳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웰 또한 모순적인 면을 드러낸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고 일관성 없는 논리로 글을 쓴 적도 있었음은 한 인간이 가진 한계라고 봐야겠죠... 그는 소련이 보여준 독재적 사회주의가 아닌 민중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를 꿈꾸게 되는 가장 이상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에서 보자면 대오에서 벗어나 세상의 흐름을 바로보고자 노력하고 실천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당의 입맛에 맞추는 글쓰기가 아닌 그는 끊임없이 당을 비판하며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는 작가였음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거기에 초점을 맟추어서 글을 읽은거구요...ㅎㅎ 사실 굿바이 님 글에 반론을 제기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자는 뜻이었지요,..

굿바이 2010-11-12 23:5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 책에 대해 그리고 작가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동우 2010-11-16 0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美님 댁에서 만난 조지 오웰이 그렇더니 굿바이님 댁에서 만나는 조지 오웰.
나 곧 새겨 읽어야 할 조지 오웰...

굿바이 2010-11-16 11:06   좋아요 0 | URL
동우님의 오웰은 또 어떨지 궁금해요. 저는 따라갈 수 없는 사유의 깊이로 오웰을 이야기해 주세요^^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0월의 경험으로 나는 또 한 번 부담없는 마음으로 신간평가단 분들과 함께 읽을지도 모를 책을 골라본다. 밝은 눈이 있어 좋은 책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일은 앞으로도 없어 보인다. 그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주목할 수 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다섯 권의 책을 더듬어 보자면  

   

 인문학자 8명의 글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대충 그 목록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전통이라는, 만들어진 담론, 특히 잘못된 담론을 짚어보고 그것들을 해체하거나 성찰함으로써 현재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을 궁리해보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로 보인다. 주제도 그러하거니와 믿을 수 있는 저자들이 눈에 띄어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다. 

 

 

 

 내게는 어쩔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것이기도한, 바다,이야기다. 19세기에 쓰여진 책은 바다의 설화를 담고 있다. 역사가의 눈과 마음으로 쓰여진 해양문학의 고전이 이 시절 또 어찌 읽힐 수 있을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라캉은 말했다. 그러니 어쩌면 신도 욕망할 가치가 있는 기표일 수 있다. 그러니 신을 위한 변론은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종교비평가인 저자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뜨거울 것이라 짐작된다. 누구에게나 상실과 결여는 존재하니까, 그것이 신이라고 해도. 물론 인격화된 신이라면 말이다. 

 

 

  

  

 

 습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10개 갯벌과 저자가 특별히 아끼는 갯벌 7곳을 추가해 갯벌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생태기행문으로 읽어도 무방하겠으나, 나는 갯벌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읽어낼 수 있었음 좋겠다. 그것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타인이 살아가는 자리를 지워내려 애쓰는 사람들을 향한, 언제나 너무 힘없는 분노일 것이다. 

 

  저자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다. 단편적으로 학술지에 실렸던 글을 읽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은 늘 정확하지 않다. 여하간 미셸 푸코, 메를로퐁티, 시몬 드 보부아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월리엄 제임스, 그리고 존 듀이의 몸에 대한 관점을 짚었다고 하니, 궁금함과 기대가200%다. 그녀의 뒤태가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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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0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두번째이지만, 정말 신간도서 5권을 소개하려고 하면,,,
너무 읽고 싶은 책들도 많고, 막상 소개 정보가 부족하여
딱히 설명해야할 것도 없어서,, 어려운거 같습니다.

굿바이 2010-11-08 17:28   좋아요 0 | URL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저는 그저 제가 관심있는 책들만 올려놓는 것 같습니다. cyrus님의 주목신간은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최가 보내온 커피는 [카페인 없는 커피]였다. 언제나 너무 많은 커피를 소비한다고 걱정하더니, 그 걱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군가 나를 염려한다니 하늘이 노랗다. 좋아서. 가증스럽구나, 굿바이,라고 피식거리며 커피를 만지작 거리다 놀라운 사실과 조우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커피다. 에라이 요년~ 그럼 그렇지, 하고 나는 진짜 깔깔거렸다. 최는 나를 웃겨주었다. 목적을 달성하는 최는 여전히 명민하고 사랑스럽다. 너를 알아 후회한 시간이 10년이라면, 너를 알아 행복했던 시간이 또 10년인지라, 우리는 그렇게 대차대조표를 잘 맞추며 언제든 새롭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고맙다. 그러나 마시지는 않겠노라. 나 아직은 굿바이야~

부쩍 마음이 덜컹거린다. 갈비뼈의 칼슘이 빠져나가 내장기관을 단단히 고정시키지 못하는지 덜컹거리는 소리가 하루종일 따라다닌다. 마음이 덜컹거리니 당연히 실수가 잦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과분한 걱정을 받는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카페인이 원흉일까? 카페인이 칼슘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고 하니 진범은 아니더라도 용의자에 올릴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최야. 나는 너의 걱정과 염려를 자양분으로 살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면 미안하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으니까. 더군다나 너의 쓰레기를 먹어 줄 용의도 없구나, 그러면 억울하니까, 그러면 정말 화나니까, 그러니 이 커피는 폐기되어야 옳다. 나 아직은 굿바이야~

12월은 바쁘다는 그러므로 11월도 바쁠 수 있다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일어난 상황보다 더 확신하는, 거기에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방점까지 마구 찍어대는 일군의 모지리들은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모였다. 어쩌면 10월의 마지막 밤, 따위의 향수가 그리웠지만 차마 제 입으로 발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웠을지언정, 누구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는 않는다. 그런건 가끔 눈감아도 되는,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돌아서면 뭔가 짠한 정도의 심파일 수 있으니까,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 아직은 굿바이인거지. 

언제나, 꼭 그렇게 시작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지리들끼리는 좀 어려워, 아이고 어려워 정도의 이야기로 첫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코흘리던 시절의 얼레리꼴레리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착각이 서스펜스로, 환상이 엽기로 변질된 모지리들의 대화를 갈아엎은 것은 예상과 다르게 내가 아니라, 박이었다. 박은 물었다. [그 시절의 허영은 어디서 나온걸까?] 적어도 나는 박이 말한 [허영]이라는 단어를 스무 번은 곱씹었다. 그러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김의 말이었다. [그 시절의 허영은 詩에서 나온거지], 어맛! 이게 무슨 미친년 감나무아래서 떨어지는 감받아먹겠다는 소리인지, 우리는 거의 동시에 움찔했지만, 오다가다 눈맞았다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오고가는 말에 나는 마음이 또 덜컹했다.  

[그 시절의 허영은 詩에서 나온거지]라는 말때문에 자리는 빨리 끝났다.
돌아오는 길, 김이 내게 물었다. 나 좀 멋있었냐?
나는 대답했다. 모지리같다. 
김이 또 묻는다. 굿바이야 그런데 너는 그 시절의 허영이 뭐라고 생각하냐? 
나는 대답한다. 시에서 나오는 거니까, 시겠지.
김이 또 묻는다. 에헤, 진짜로 묻는거다. 진짜로.... 
나는 대답한다. 그럼 아까 한 말은 진짜 아니고?
김이 답한다. 진짜 아니었다. 그냥 해본 소리지....  

그냥 해본 소리가 저리 어처구니 없으면서 그럴싸 할 수 도 있는 걸 보면, 너도 사는 일이 참.....그러니까, 주식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 말하디, 남자가 보이는 호의를 그저 호의로만 생각할 수 없니, 사랑으로는 절대 다이어트가 안되는거다, 백만 송이 장미는 아무나 피워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런 놈 있었으면 그게 우리 차지가 되겠냐, 설령 백만 송이 장미가 핀다고 치자 그럼 누구 하나는 죽어나간다고, 등 할 수 있는 욕을 일단 다 퍼붓고 나는 김을 본다. 이런, 초등학교 시절 신주머니 잃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뭔가 또로록 굴러 떨어질 기세다. 아~  

나는 김에게 말한다. 아니다 나에게 말한다.
김아, 그 시절 우리의 허영은 말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상처가 가장 깊고 심지어 독창적이라고 생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네 말이 반 이상은 옳을 것이다. 우리의 허영은 어느 대목 철저히 어느 詩에서 나온거지, 그렇게 그 시절 우리의 뿌리가 詩였으니까, 너나 나나, 그렇게 원하던 시인이었던 거지. 이렇게 시인하는 나 아직은.....굿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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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1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우 2010-11-02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질들의 대화들은 난해하지만 느낌에는 쉽게 적십니다.
시였군요, 굿바이님과 더불어 모지리들의 그 시절 허영이.

매독 걸린 친구, 세상 모든 병을 앓아보고 싶었다지요.
김승옥 얘기였는데, 무슨 소설이었던가.
그 시절 나와 같은 모지리들의 허영은 바야흐로 그 따위 아류였답니다. 하하

굿바이 2010-11-03 11:43   좋아요 0 | URL
김승옥작가는 확실히 포스가 남다르죠^^

괜히 핑계거리가 없으니, 죄없는 시를 들먹였습니다.
동우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을까, 막연히 상상해봅니다.
허영따위가 있었을까요, 그 시절은 그저 그것조차 생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듭니다.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