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최가 보내온 커피는 [카페인 없는 커피]였다. 언제나 너무 많은 커피를 소비한다고 걱정하더니, 그 걱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군가 나를 염려한다니 하늘이 노랗다. 좋아서. 가증스럽구나, 굿바이,라고 피식거리며 커피를 만지작 거리다 놀라운 사실과 조우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커피다. 에라이 요년~ 그럼 그렇지, 하고 나는 진짜 깔깔거렸다. 최는 나를 웃겨주었다. 목적을 달성하는 최는 여전히 명민하고 사랑스럽다. 너를 알아 후회한 시간이 10년이라면, 너를 알아 행복했던 시간이 또 10년인지라, 우리는 그렇게 대차대조표를 잘 맞추며 언제든 새롭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고맙다. 그러나 마시지는 않겠노라. 나 아직은 굿바이야~

부쩍 마음이 덜컹거린다. 갈비뼈의 칼슘이 빠져나가 내장기관을 단단히 고정시키지 못하는지 덜컹거리는 소리가 하루종일 따라다닌다. 마음이 덜컹거리니 당연히 실수가 잦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과분한 걱정을 받는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카페인이 원흉일까? 카페인이 칼슘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고 하니 진범은 아니더라도 용의자에 올릴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최야. 나는 너의 걱정과 염려를 자양분으로 살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면 미안하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으니까. 더군다나 너의 쓰레기를 먹어 줄 용의도 없구나, 그러면 억울하니까, 그러면 정말 화나니까, 그러니 이 커피는 폐기되어야 옳다. 나 아직은 굿바이야~

12월은 바쁘다는 그러므로 11월도 바쁠 수 있다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일어난 상황보다 더 확신하는, 거기에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방점까지 마구 찍어대는 일군의 모지리들은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모였다. 어쩌면 10월의 마지막 밤, 따위의 향수가 그리웠지만 차마 제 입으로 발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웠을지언정, 누구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는 않는다. 그런건 가끔 눈감아도 되는,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돌아서면 뭔가 짠한 정도의 심파일 수 있으니까,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 아직은 굿바이인거지. 

언제나, 꼭 그렇게 시작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지리들끼리는 좀 어려워, 아이고 어려워 정도의 이야기로 첫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코흘리던 시절의 얼레리꼴레리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착각이 서스펜스로, 환상이 엽기로 변질된 모지리들의 대화를 갈아엎은 것은 예상과 다르게 내가 아니라, 박이었다. 박은 물었다. [그 시절의 허영은 어디서 나온걸까?] 적어도 나는 박이 말한 [허영]이라는 단어를 스무 번은 곱씹었다. 그러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김의 말이었다. [그 시절의 허영은 詩에서 나온거지], 어맛! 이게 무슨 미친년 감나무아래서 떨어지는 감받아먹겠다는 소리인지, 우리는 거의 동시에 움찔했지만, 오다가다 눈맞았다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오고가는 말에 나는 마음이 또 덜컹했다.  

[그 시절의 허영은 詩에서 나온거지]라는 말때문에 자리는 빨리 끝났다.
돌아오는 길, 김이 내게 물었다. 나 좀 멋있었냐?
나는 대답했다. 모지리같다. 
김이 또 묻는다. 굿바이야 그런데 너는 그 시절의 허영이 뭐라고 생각하냐? 
나는 대답한다. 시에서 나오는 거니까, 시겠지.
김이 또 묻는다. 에헤, 진짜로 묻는거다. 진짜로.... 
나는 대답한다. 그럼 아까 한 말은 진짜 아니고?
김이 답한다. 진짜 아니었다. 그냥 해본 소리지....  

그냥 해본 소리가 저리 어처구니 없으면서 그럴싸 할 수 도 있는 걸 보면, 너도 사는 일이 참.....그러니까, 주식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 말하디, 남자가 보이는 호의를 그저 호의로만 생각할 수 없니, 사랑으로는 절대 다이어트가 안되는거다, 백만 송이 장미는 아무나 피워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런 놈 있었으면 그게 우리 차지가 되겠냐, 설령 백만 송이 장미가 핀다고 치자 그럼 누구 하나는 죽어나간다고, 등 할 수 있는 욕을 일단 다 퍼붓고 나는 김을 본다. 이런, 초등학교 시절 신주머니 잃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뭔가 또로록 굴러 떨어질 기세다. 아~  

나는 김에게 말한다. 아니다 나에게 말한다.
김아, 그 시절 우리의 허영은 말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상처가 가장 깊고 심지어 독창적이라고 생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네 말이 반 이상은 옳을 것이다. 우리의 허영은 어느 대목 철저히 어느 詩에서 나온거지, 그렇게 그 시절 우리의 뿌리가 詩였으니까, 너나 나나, 그렇게 원하던 시인이었던 거지. 이렇게 시인하는 나 아직은.....굿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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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1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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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1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우 2010-11-02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질들의 대화들은 난해하지만 느낌에는 쉽게 적십니다.
시였군요, 굿바이님과 더불어 모지리들의 그 시절 허영이.

매독 걸린 친구, 세상 모든 병을 앓아보고 싶었다지요.
김승옥 얘기였는데, 무슨 소설이었던가.
그 시절 나와 같은 모지리들의 허영은 바야흐로 그 따위 아류였답니다. 하하

굿바이 2010-11-03 11:43   좋아요 0 | URL
김승옥작가는 확실히 포스가 남다르죠^^

괜히 핑계거리가 없으니, 죄없는 시를 들먹였습니다.
동우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을까, 막연히 상상해봅니다.
허영따위가 있었을까요, 그 시절은 그저 그것조차 생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듭니다.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