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책에 실린 <문학 예방>이라는 에세이의 한 대목은 이렇다.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닌 이상, 문학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다......그는 자기가 뜻하는 바를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해 진실을 비틀고 풍자할 수는 있어도, 자기 마음의 풍경을 곡해할 수는 없다."
작가의 글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정하면, 오웰은 녹록하지 않은 경험으로 얻은 마음의 풍경을 어떤 목적으로도 곡해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작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오웰도 <작가와 리바이어던>이라는 에세이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문단의 지식인들이 글을 쓰며 의식하는 이들은 대중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들이 속해있는 그룹, 시쳇말로 업계 종사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두려움을 접고,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의 책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해답의 반은 얻은 셈이다.
그러나, 작가의 글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한계에 봉착한 독자로서 고백하자면, 그의 글이 사실이 아닌 어떤 풍경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에서 그의 말을 빌려오자면,
"그렇다면 작가는 정파 우두머리들의 지시를 거부할 뿐 아니라 정치에 '대해'쓰는 것도 삼가야 한다는 뜻인가? 이 역시 결코 그렇지 않다. 원한다면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정치적인 글을 써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정규군의 측면에 있는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글을 쓰되 다만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의 위치를 주문하는 작가의 말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불편하다. 그것은 그가 강조한 두려움 없는 글쓰기, 마음의 풍경을 곡해하지 않는 글쓰기에 오히려 흠집을 남기는 일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딛고 있는 땅을 살피는 일이 힘겹고 심지어 불가능에 가깝다 할지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응시할 수 있을 때, 응시를 통해 깨달은 곤란한 진실들과 마주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발화할 수 있을 때, 적어도 작가가 말한 정치적인 글쓰기에 힘 혹은 진정성이 실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글이야말로 사후적 해석에만 머무르지 않는 글이 되리라 믿는다.
언제나 그러하듯, 모든 어긋남은 어떤 의도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그러하기에 작가의 글과 내 마음이 어긋나는 자리에서 나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어긋나려고 한다. 그것은 작가의 시절과 또 다른 시절, 21세기의 무람없는 냉소주의자들의 행태가 눈에 밟혔던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별쭝맞은 트집을 잡는 것도 잠시다. 참으로 잠시다.
"전체주의는 신앙의 시대보다는 정신분열의 시대를 약속한다." 는 문장은 오웰의 통찰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내 마음대로 선정한 조지 오웰의 경이로운 성찰이자, 전체주의에 대한 이 시대 최고의 폭로다. 이 문장은 오웰의 <1984>로 이어져 전체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구성원 자신들을 기만하는지 보여주는 모태가 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남은 답변이 있다면 감히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하리라 본다.
누군가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어느 여인을 두고 매혹적이라 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선택과 유기를 두고 망설이는 일은 성가신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맞는 상황이라면, 망설임은 필요한 시간이고,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나름대로 현명하고 예의바른 태도의 여인을 가르켜 매혹적이라고 발화한 것이라면 나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유기할 것을 들고 애매함을 보이는 것은 매혹적일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간교한 행동일 뿐이다. 더 나아가 선택할 것을 들고 애매함을 보이는 것 역시 매혹적일 수 없다. 그저 어리석을 뿐이다. 따라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두고 보인 잠시나마 어정쩡했던 태도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어리석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그의 글을 곁에 두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