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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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우리 겨우 ‘고경단녀’에 ‘동남아’일세.

 

우연히 연락이 닿은 대학 동창이 하는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고경단녀? 동남아?

‘고학력 경력단절여성’, ‘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를 일컫는 말이란다. ‘맘충’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동남아’라 자조하다니! 외국인 노동자 비하의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는 그 단어 정말 싫고 낯설었다. 그런데 딱히 뭐라고 동창에게 훈계하기도 그렇고 해서 애들이 말을 안 듣네, 집안일이 해도 안 해도 그 타령이네, 언제 보자는 둥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다 아이를 핑계로 통화를 마쳤다.

 

그래, 집안일 힘들지, 보람 없지, 노동은 신성하다는데 가사노동은 예외지.

집안일이 힘들고 보람 없는 이유는 대체 뭘까?

 

첫째, 자기 집안일하는 것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사도우미는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 받지만 전업주부는 그렇지 않다. 주부는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무보수 감정노동 종사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볼 수 없어 힘들다.

 

 

결국 부부 중 한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정대현 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p.143

 

 

둘째, 가사 노동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어 있다. 노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자아 실현할 수 있는 부문도 아니다.

 

살림은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허드렛일로 치부되고 자아 실현과는 별개의 것으로 되어 있다. 살림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회 일과 비교해볼 때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며 살림, 육아는 개별적 성취의 분야가 아니다. 물론 요리, 청소, 정돈, 교육 분야의 파워블로거들이 있으나 처음엔 자기 집안일을 하다가 별도로 요리책 출간이나 서비스를 통해 부를 창출한 것이지 자기 집안일만 하는 것으로 사회적 인정이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 남녀를 불문하고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 위치가 높은 편이 아니다. 전업주부의 경우 남편의 사회 경제적 위치를 따라갈 뿐 주부로 사회적 성취나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유독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p. 149

 

 

셋째,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시간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일을 계획하여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 또한 일을 함께 할 동료가 없이 고립되어 있다. 물론 같이 사는 가족이 조력자가 되어야 하나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다.

 

가사노동은 미취학 아이들 육아, 청소, 요리, 집안 수리 혹은 집안에 따라서는 노부모 간병, 취학아동 교육, 관공서, 은행일 등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잡다하다. 개별적으로 남에게 맡기려면 모두 비용이 드는 것이나 내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일이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직장은 출퇴근과 주야간 교대가 명확하지만 가사나 육아는 그렇지 않다. 분절된 시간을 적절히 써가며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종일 동동거려도 집안 꼴이 엉망인 경우가 많다. 회사원 A씨에게 2시간이나 혹은 30분씩 분야가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던져준다면 그가 일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미취학 아동엄마는 아이 컨디션에 따라 시간을 쪼개가며 써야 한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얼 하고 계획은 있지만 막상 변수가 너무 많고 조력자가 없다. 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거나 하는 가정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이 많으니 힘들 것 없다고 하고 한때 ‘영유애엄브(아이는 영어유치원 엄마는 브런치)’라는 괴상한 신조어가 유행하던 시기도 있다. 그러나 그건 계급의 문제이지 전체 여성이 처한 현실과 거리가 멀다. 대개 저소득 가정의 주부는 아이 어린이집 보내는 동안만 가능한 계약직인 경우도 있고 취업준비나 건강 문제 등으로 아이를 보내기도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종일이냐 오전이냐에 따라 다르고 아이가 한 달 내내 기계적으로 어린이집에 출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가정이 선택한 문제에 대해 남들이 뭐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 보육의 질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저 어린이집 보내놓고 엄마는 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넷째, 가사노동은 육체적, 감정노동이 상당하다. 전형적 그림자 노동이다.

 

4-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미취학 어린애들 들어올려 씻기고 먹이고 그 와중에 집안 청소와 요리를 병행해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말했듯이 모든 집안일은 위치를 잃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만들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단순 노동과정이다. 창조적인 결과물이 있는 것은 요리나 재봉 정도일 뿐.

 

집안 일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엔트로피를 일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 상태, 화초 관리상태, 비품 구비 수준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거의 쉼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특히 집안에 혈기 왕성한 미취학 어린이가 있을 땐 엔트로피는 빛의 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어찌나 어질러대는지...), 게다가 그게 여자 아이라면 대외적인 품위까지 챙겨야 하기에(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 고려해야 할 이슈는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결론은.... 집안 꼴을 유지하면서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거 거의 불가능(물론 예외 인정, 몇몇은 알고 있음), 둘이 매달려도 버겁다는 거(남자가 도와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 직접 하든지, 돈 마이 벌어 사람을 고용하든지),www.fb.com/botzzim,

 

미취학, 취학 아동을 돌보는 것, 훈육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노동이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고 아이가 장시간 우는 소리도 참아내야 한다.

공교육, 사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걸 엄마들이 하는 경우도 많다.(엄마표) 훈육의 경우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고도의 감정 노동이다. 발달단계에 이르지 않아 설득이 불가능한 미취학 아동의 육아는 고도의 정신적 스트레스, 죄책감, 수치심 등을 안긴다. 특히 육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에서 맘충이라 불리는 스트레스도 크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중략)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다섯째, 가정 내의 자원과 공간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한 가정에서 생활비 중 주부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쓰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 주부인 경우 자신만을 위한 비용이나 공간이 충분치 않다. 개인 용돈이나 자신만의 방이 있는 주부는 상위 몇 프로일 것이다.

커피숍이나 찜질방에 나와 있는 주부들 중 매일 그렇게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회사원이라 해도 월급루팡이라 불리는 회사에서 틈틈이 노는 족속이 있듯이 인스타 유명엄마들도 그런 부류일 뿐이다. 대개 아주 잠시 짬을 내어 쉬고 있는 분들인데 회사원들이 보기에 낮시간대에 나와 있어 편하게 보일 뿐. 김구라가 찜질방에 있는 엄마들 부럽다고 하자 양희은 씨가 저 엄마들 밤새 애들 보초 서고 병간호하다 이제 나온 거야.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한 것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받는다.

p.188

 

 

 

여섯째, 현대사회에서는 살림과 양육에 대한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중상층 이상의 전업주부가 수행하는 살림과 육아가 표준이 되어 많은 여성들을 괴롭게 한다. 전업 주부라고 하면 진짜 ‘업(카르마)’을 진 듯하다. 집안은 미니멀리즘에 맞게 잘 정돈되고 인테리어는 북유럽풍에 맞게 모던해야 한다. 아이는 건강식으로 잘 키워야 하고 여러 엄마표 놀이와 교육으로 감성 있게 커야 하며 인지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미모관리도 되어서 아름답고 감각 있는 엄마여야 한다.

중상층 전업주부의 이런 고민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생계형 맞벌이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 맞벌이나 파트타임을 한다고 해도 가사노동은 엄마의 몫으로 남는다. 맞벌이는 원해도 맞살림이나 맞밥은 싫은 분들이 많다. 또한 경력단절 여성의 급여는 터무니없이 낮고 노동요건은 열악하다. 그래도 살림살이가 팍팍해 전업주부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특히 아이들이 중고등 가는 시기에, 즉 40-50대 여성 취업률이 다시 높아진다. 높은 학원비, 치솟는 물가, 노후 대비 등으로 고소득층을 제외하고는 팔자 편한? 전업주부로 있을 시기도 사실 몇 년에 불과하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p.144

 

 

참으로 의미 있는 조사결과이다.

심지어 남성 주부로 있을지라도 취업한 여성보다 가사를 더 많이 하지는 않는다니.

 

이 소설의 마지막은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로 끝을 맺는다.

가사로 인해 회사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 노동력을 선호하는 것이다.

 

픽션이 아닌 논픽션 같은 결말이다. 20대 여성 취업률은 그 나이대 남성보다 높다가 출산과 육아하는 시기에 떨어져서 다시 40-50대 중장년층로 가면 높아진다.

 

왜 남자들은 팔자 좋은? 중상층 가상의 전업주부를 설정해두고 전체 여성들을 비난할까.

저임금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현실 세계의 어린 여자아이들,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40-50대 이모님들은 보이지 않는 걸까.

가깝게는 매일 장을 보고 밥을 차리고 청소하는 엄마나 부인, 누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남초 카페나 게시판에서는 개별 케이스를 들어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 요새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드세고 자기 주장만 강하다고 연일 성토한다. 이 소설을 읽은 남자들은 불편해하고 '맘충'이라는 단어도 민폐 끼치는 무개념 진상 엄마들이 있어 나온 것이라며 단순히 커피마신다고 저렇게 말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을 키워본 엄마들은 가끔은 적대적 시선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 특히 아빠를 동반하지 않은 외출에서.  

 

이제 출산과 육아는 보편이 아닌 선택적 현상이 되었다. 비혼 1인가구는 급증하고 자발적, 비자발적 딩크부부가 많아졌다. 따라서 출산과 육아라는 개인의 선택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82년생 김지영 씨는 이런 시기에 아이를 낳아 기른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을 지녔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아이를 같이 키워도 서로 경험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온전히 그 감정의 결을 이해할 수 없다.

 

개별적 체험은 정말 그 체험의 당사자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어 절망한다.

 

한편 이해할 수 없어 조소한다.

이 소설 평점에 유난히 별 하나가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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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7-08-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궁금했는데 아주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뚜유 2017-08-15 08:48   좋아요 1 | URL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