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키즈카페에 매주 월요일 휴무라고 적혀 있다.

 

아항, 그렇군.

 

나도 이제부터는 월요일 오전에 쉬어야겠어, 무조건.

주말을 애들과 지내면 여기저기 집안꼴도 엉망이고 병원이나 마트나 갈곳이 많은데 일단 쉬기로 했다.

그래봐야 책을 보거나 꼭 보고싶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보는 정도이다.

 

 

 

 

 

 

 

 

 

 

 

 

 

 

 

애들 여름 방학과 주말 등에 가끔 보았던 책들이다.

 

미술치료 책인데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회화에 간단한 감상이 곁들어 있다.  그동안 잘 몰랐던 작가들을 소개받는 것은 좋은데 너무 억지로 효용성 있게 해석하려는 것도 있어서 거부감이 든다. 특히 2편은 시험 준비를 위해 묶었는데 많이 어색했다.  

 

 

 

 

 

 

 

 

 

 

 

 

 

 

 

그래도 <그림의 곁>, <화해>는 더 자연스럽고 적절한 위안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찰스 커런의 <랜턴>을  소개받고 작가의 다른 그림들도 찾아보았다. 나야 저렇게 우아한 부인은 못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뭔가 사색에 잠겨 있는데 귀여운 꼬마 아가씨는 발을 구르며 그림 그리는게 귀여워 한참 들여다 보았다.

 

 

 

 

 

 

 

                                                                                                               

 

 

 

 

 

 

 

 

 

 

 

 

 

 

 

내가 주말에 엄청 피곤했던 건 사실 토요일에 당일로 친정에 다녀와서였다.

 

왕복 8시간 고속버스를 탔다.

겨우 3시간 정도 엄마를 보고, 동생과 이야기를 잠깐 했다.

 

엄마는 올해 인생의 최대 위기라고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급속도로 허물어져가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어디가 그렇게 많이 편찮으신데 왜? 벌써? 라고.

 

 

나도 엄마에게 묻고 싶은 말이지만 사실 이유가 명확하겠는가.

노화나 병듦은 세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힘들게 산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좀더 빨리 노인이 된다.

 

100세 시대에 예순 중반이면 청춘이지, 이렇게 야속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

 

중형병원, 대학병원 병명을 달리해 여기저기 입원하시는 바람에 여동생이 제일 고생을 많이 했다. 난 애들 아빠가 쉬는 날이면 한달에 두세 번 가주었을 뿐.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를 언젠가 기차에서 읽고 혼자 감동해 동생에게 전해주려 했다.

 

하, 단 하루 겪고 두손두발 다 들었다. 엄마 병의 특성상 가족들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역시 책과는 다른 게 각자의 삶이다.

 

저자는 20대에 뇌경색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50대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한 경험이 있다. 간병을 하면서 물론 사람이니 짜증도 내지만 그래도 시종일관 아버지를 잘 보살펴드렸다. 내가 아직도 잘 못하고 있는 것들. 온화한 분위기에서 함께하기, 몇 번을 물어보더라고 화내지 않고 대답하기 등

 

<가족의 발견>은 부제 '가족에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한 심리학'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

 

“트라우마가 크면 클수록 시야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상황을 넓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더 크게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더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10쪽

 

너무나 우리 엄마의 일생과 우리 가족의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었다.

 

 “만성적 불안을 가진 부모는 서로에게 또는 자녀에게 집착하고 불안한 감정을 투사한다. 또 자녀를 과보호하고 지나치게 통제할 뿐 아니라 부모와 같은 불안의 수준을 갖도록 강요한다"  140쪽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떨까?

나의 불안을 아이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과보호하는 측면이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불안'에 대해 자주 입에 올리는 편이다. 늘 조심하라는 말을 달고 산다.

 

 

 

 

 

 

 

 

 

 

 

 

 

 

 

부모가 신포도를 먹으면 자식들의 이가 시리다.

 -에스겔서 18장 2절

 

우리는 부모, 더 거슬러 올라가 조부모, 조상 대의 양육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선대에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있다든가 해서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도 많다.

 

책에서는 부모와 관계를 무조건 단절하는 것.

그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한다.

 

'핵심 불평'을 해결의 씨앗으로 제시한다. '핵심 불평'이란 자신을 괴롭히는 주된 문제로 내면화한 것일 수도 있고 외부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핵심 불평, 핵심 문장을 통해 가족사의 불행을 직시하고 화해의, 치유의 문장을 새로 써가라고 제시한다.

 

내면과 일상을 관찰하고 차차 해결해야지.

 

화해의 메시지가 강한 책이라 도전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월요일 오전은 휴무.

 

꼭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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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어른일 리 없어 - 할머니 선생님이 알려 주는 어른들의 거짓말
시미즈 마사코 지음, 이주희 옮김 / 티티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이런 게 어른일 리 없다고!

 

제목부터 도발적인 분홍 표지의 책에 부제는 할머니 선생님이 알려 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라니. 큰 기대 없이 들었는데 중간중간 정신 없이 서표를 붙이며 읽어나갔다. 독박육아니 똑게육아니 하는 육아서 대신에 부모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나’를 길러줄 책이다.

 

01 귀여운 할머니 따위 되고 싶지 않아요

 

 

어른들에게 A 같은 아이는 얼마나 편한 존재일까요. 그런 아이들과 마주하는 어른의 지위는 언제나 안정되고 위협을 느낄 일이 없습니다. 질문 세례를 받는 일도 없고 스스로를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권력자들은 자신의 칼과 지배력에 어떠한 해도 가하지 않는 것을 ‘귀엽다’고 하는 게 아닐까요. 18쪽

 

 

일본 전설에 나오는 모모타로를 그림 A는 귀여운 그림체로, B는 아기장수 스타일로 투박하게 표현한 것을 보고 학생들은 늘 귀여운 A쪽을 선호한다. 그런데 저자가 A와 B 중 누가 먼저 엄마 무릎에서 벗어나려 할까, 라는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그제야 ‘귀엽다’라는 말의 맹점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귀여운 아이, 귀여운 소녀, 귀여운 여자, 귀여운 아내가 되어 자립할 기회를 쉽게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02 화를 내야만 할 때가 있어요

 

 

화의 밑바닥에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 짜증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대신 희망 없는 인내가 있고, 포기가 있고, 무력감이 양쪽을 덮칩니다. 비굴함과 증오, 모멸과 오만이 우리를 갉아먹어 버립니다. 24쪽

 

 

‘화’는 교육현장에서는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보육현장에서는 교사의 중재로 ‘미안해’, ‘괜찮아’가 남발되고 있다. 자신이 무시당해도, 맞아도 상대에게 화를 드러내기보다 교사에게 이르고 중재받는다. 일상에서 건강하게 화를 낼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커서 부당한 압력을 받아도 화를 낼 줄 모르고 짜증을 내거나 애먼 상대에게 분풀이를 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등굣길에 화내는 여중생을 보고 ‘화내라, 화내라’ 몰래 응원할 정도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전혀 납득하지 못하면서 감정의 앙금을 가득 안은 채 ‘미안해’. ‘괜찮아’ 이후 포옹을 강요당한다. 오카 켄 교수는 “싸움이야말로 상대의 생각을 배울” 기회라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이 감정을 처리할 기회를 쉽게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닐까.

 

03 혼자 조용히 있는 게 뭐가 나빠요?

 

요즘에는 말수가 적은 아이, 혼자 있는 아이는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뭔가 다가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아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일상을 떠들썩한 이벤트와 배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도무지 아이가 혼자 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서두에서 저자는 “인사를 하지 않게 된 소녀가 있으니 성장이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라는 단가를 소개했다. 인사를 하지 않는(못하는) 아이를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어른이 있어 감동했다. 어른을 만나면 곧잘 쾌활하게 인사하던 꼬마도 사춘기가 되어 자의식 과잉으로 힘겨울 때도 있고 혼자가 편할 때가 많다. “적어도 등하교 시간.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으로 있어주면” 좋겠다고 한다. 가만 보면 인사에 목숨 거는 직군 중 하나가 교사 집단인데 참 별난 선생님이셨다. 무리해서 친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다가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04 자신감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자는 흔히 ‘자신감을 가져!’라고 할 때의 그 자신감의 정체가 궁금해 여러 사전까지 뒤져보다 결국 자신감의 근원은 자기 평가라는 점을 깨닫는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조금이라도 뭔가가 낫다고 보이면 금세 자기 평가는 높아지고,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그러지고 자기 평가는 낮아집니다. 그런 자신감 따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것에 휘둘리다니 바보 같지 않나요? 69쪽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주라고 말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아, 할 수 없지. 이런 나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 정도여도 충분하다. 그건 체념과는 다른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실히 살아가는 걸 말한다.

 

05 어둠과 슬픔이 있는 삶의 한가운데로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빛이 있고, 슬픔이 있어야만 기쁨이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둠도 슬픔도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것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고민하고 슬퍼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결심을 하고 한 발짝 내딛었을 때의 상쾌한 긴장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74쪽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원래는 밝은 아이라고” 편드는 척 말을 한다. 마치 어두운 아이라면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는 듯이. 잠깐 봤지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언제나 밝아 보였던 아이들 쪽이었다. 정말 무서운 아이들은 힘든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감정을 덮고 애써 밝은 척 하는 아이들이었다. 저자는 CM송을 쓸 때는 반음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윤형주의 CM같이 조그만 그림자나 망설임도 없는 밝음. 피아노 검은 건반을 전혀 쓰지 않는 상태. 그것이 올바른 심리상태일까?

 

06 규칙을 잘 지키는 어른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보세요.

 

 

마음이 풍요롭다는 것은 단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중략)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천국을 보는 것과 동시에 지옥을 보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96쪽

 

07 정답을 말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세요

 

 

질문은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해답에는 결국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질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됩니다. 112쪽

 

 

저자는 지식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08 그렇게까지 드러내도 괜찮아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이나 느낌까지 없을 리는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자주 겉으로 활발하게 표현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내면의 활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126쪽

 

 

문학 시간에 저자는 학생들에게 감동을 받은 부분을 이야기하라고 재촉하곤 했는데 어느 날 별로 친분이 없는 학생이 일부러 나오더니 지금은 말하지 않겠지만 몇 년이 지나 이야기하러 가겠노라고 한다. 학생이 스스로 감동을 받은 바가 있고 내면이 변한다면 꼭 교사에게 확인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외눈박이 고양이>의 네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겉으로 조용한 네드의 내면은 사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또 카운슬링에서 범하는 잘못을 지적한다. 이른바 ‘털어놓기 놀이’와 같이 자신의 내면을 함부로 유출하고 속절없이 함부로 자신을 남에게 내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라는 말 자체가 예속자, 측근을 뜻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게 어딘지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어 상담이 두렵다고 한다.

 

09 그래 봐야 상처받는 건 너뿐이라는 거짓말

 

저자는 학생들에게 건방져보라든가 기지개를 펴라고 주문하는데 건방진 건 좋지만 시건방지게 되는 건 곤란하다고 한다. 말장난 같지만 오묘하다. 기죽지 말고 어른들에게 자기 의견을 솔직히 말해도 되지만 오만해지지 말라는 뜻이다.

 

 

"인생에서 진짜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말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작은 무엇인가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추억의 푸른 언덕 저자)

 

 

10 누구나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저자는 가족이 위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때 어떤 가정에서든 그런 일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정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다 해서 아이를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약하지 않다! (물론 영혼을 파괴하는 학대가정의 경우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돌아가기 힘든 가정이어도 어느 한 순간이라도 따뜻함을 느꼈다면 희망은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라도 따뜻함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가정이라면 아동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다.

 

 

11 당신의 세상은 그렇게 작지 않아요

 

작가는 존경하는 사람이 부모나 선생님인 학생은 좁은 세계에 갇힌 것이라고 한다. 아들이 청년기가 되어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느니 하면 자신은 어리석은 존재니 바짝 기쁘긴 하겠지만 아들이 한심하게 여겨질 거라고 한다. 얼마나 쿨한 엄마인가! 또 자신을 편하게 만드는 사람만 만나지 말고 불편하게 하는 존재들과 부딪혀야 성장한다고 조언한다.

 

12 심심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

 

03번과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는 학생들을 혼자 내버려 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과제를 부여한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고 그런 시간을 스스로 만드는 훈련 없이 어른이 되어서 요즘 아이들이 제대로 못 사는 건 아닐까?

 

또 요즘은 일상을 하찮게 생각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정체와 동의어로 취급한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늘 특별한 체험을 준비하고 아이의 일상을 1년 내내 축제처럼 기획하려고 한다. 여기서 뜨끔했다. 내가 어려서 제한된 경험을 해서 용기가 없고 제한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애들 어릴 때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이런저런 기획된 행사에 많이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충분히 혼자 지낼 법한 초4, 초2인데도 주말이면 심심해, 오늘은 어디 안 가? 를 달고 산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배려 경쟁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는 말도 인상 깊다. 예를 들어 손님이 오셨는데 내가 미처 차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나보다 먼저 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는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멋진 사람들의 조용한 배려를 지켜보기로 한다고. 맞다, 정말.

 

이 멋진 할머니 선생님은 내가 먼저 스스로 바로 서야 비로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고 반복해서 주장한다. 또한 스스로 서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K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데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교육을 할 때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를 던져준다. 특히 귀여움 받으려 하지 말라는 말은 나에게 하는 이야기. 아이들에게조차 귀여운 엄마가 되려고 한 적이 있다. 깊이 반성...

 

*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고......무언가를 많이 해야 행복해진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사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그랬듯이 10대는 허공의 시절, 비우고 또 비워야 행복해진다. 꽉 차서 넘치는 잔이 되기보다 크게 비어 있어 어느 것이든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큰그릇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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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면 패턴이 성공적이다. 애들이랑 10시쯤에 잠들어 4-5시에 일어나는 패턴. 그래봐야 이틀이지만 좋은 예감이 든다. 고칠 수 있다! 불면증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불면 이후엔 두통, 소화불량이 이어지고 고통스러웠다. 아이 낳은 엄마들이라면 크고 작게 수면 장애를 겪는다. 이제 초등이건만 여전히 엄마 옆에 붙어자는 애들 덕분에 애들 생활에 맞추어야 그나마 오래잔다.

 

결혼 전에는 새벽 3시까지도 노는 올빼미였으나 육퇴(육아퇴근, 애들 잠듦)하고 내 시간 갖는다고 사치부리다가 밤새워 고통받기 일쑤라 아예 애들 따라 새벽형으로 바뀌었다.

 

4-6시 사이에 애들 안 일어나는 시간 게다가 새벽, 우중충한 감성에 젖을 일도 없고 진작 이렇게 순응할 것을. 애들 때문에 오랜 습관이 바뀌는 게 억울해 그간 미련하게 살았네

 

*

 

위 책들은 아줌마들에게 추천하면 호불호가 엄청 갈린다. 대개는 불호다.

 

주말부부 어느덧 3년차 게다가 애들은 초등. 주변에서는 전생에 나라를 몇번 구했냐고 한다. 중년에 접어들면 부부들 사이가 다들 이 정도인 건가, 아니면 나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가.

 

물론 삼시세끼 차려야 하는 수고는 덜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들이 삼시세끼 안 먹는 건 아니다.

애들이 갑자기 크게 아프거나 해도 정말 홀로 다 돌봐야 한다. 말만 '독박'이 아닌 진정한 홀로육아. (한부모가정에 비할 데가 아니긴 하지만) 

 

올 초에 아들이 수술하고 난 병실에 아들이랑 같이 있어주고 아홉 살인 딸은 혼자 빵 먹고 학원가고 그렇게 지냈다. 시댁도, 친정도 먼데 미취학 아동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제만 해도 자전거 안장 높여주려다 힘이 부족해 낑낑거리는데 보다 못한 어떤 동네 아빠가 대신 해주었다. 고마우신 분. 아저씨도 육아하다 보면 오지랖 만렙. 이런 오지랖은 너무 좋다.

 

그 많은 동네엄마들 중 힘들겠어요, 매일 못보잖아요 이런 말 하는 분 딱 한 분 보았다. 신혼도, 새댁도 아닌데 어쩐지 찡했다. 친한 분은 아닌데 잘살고 계신 거예요,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싶었다.

 

공식 커플이면서 언제나 약간은 싱글의 정서를 가진 나는 여전히 이런 책들이 좋다. 철이 덜 들어서 그런다. 그냥 공감공감.

 

<혼자를 기르는 법>은 시니컬하고 담담하게 싱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중간중간 하는 일이나 행동이 나랑 많이 닮았다. 혼자 자연물 다큐 보며 인간사에 대입해 쓸데없이 감상적이 되기도 하는 거나 정말 뜬금없는 농담하는 거. 햄스터나 물고기를 기르며 육아나 인간사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머 코드가 맞는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는 단행본으로 빌려보았다.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는 그 시스템과 맞지 않아 과감히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한다. 칭찬받는 고래가 되어봐야 고래한테 좋은 게 아니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게 고래의 삶에는 더 맞다. 상처를 품어 진주로 만든 조개. 그런데 조개는 그 진주를 가질 수는 없다.

 

자기계발서 식의 격려, 채찍보다는 어차피 "내 마음" 쪽이 훨씬 중요하다.

 

<어쿠스틱 라이프>는 간만에 보았는데 열육아 중이시구나. 감각 있는 작가답게 잘 키우고 있는 것 같고 여전히 금슬도 좋고 흐뭇흐뭇. '가차 없는 남편' (192화) 시리즈가 재미 있었다.

 

엄마들이 모이면 의도치 않게 쇼미더머니 스타일로 남편의 나쁜 버릇이나 이해할 수 없는 점에 대한 배틀이 열리는데 난 물론 거의 듣고만 있다. 엄청 부당하다고 열변을 토하기는 하는데 학창시절 학생주임이나 괴상한 선생님 흉보는 듯한 그런 수준이다. 학창시절에 그렇듯이 뭔가 자극적 에피소드를 끌어내는 사람이 위너. 그래도 뭔가 이혼 직전의 심각한 이야기는 물론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이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것도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일까. 학교 책 읽어주기 봉사를 올해부터 하고 있어서 생각보다는 괜찮다. 그냥 학교 일 많이 하는 분들 뭔가 돼지엄마 같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돼지엄마라고 인정하니 편하다. 그것도 대왕 돼지엄마. 체형도 뭔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고 (오래도록 오열) 

 

*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

아이 낳기 전의 나와

아이 낳고 변한 내가 만나

악수하며 사이 좋게 놀고 있다.

 

혼자, 어차피, 어쿠스틱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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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학 다닐 때(거의 20년 전 ㅜ.ㅠ ) 페미니즘 열기가 뜨거웠다. 물론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는 남자애들을 만나면 너도 엄마성 쓰냐는 질문을 받았고 군가산점제는 왜 반대하는가 여성은 왜 군대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을 주어야 했다. 당시 모 대학에 다니던 남학우와 우연히 헌법재판소 앞에서 군가산점제에 대해 한참 토론하던 기억이 난다. 토론의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한이 깊었던지? 사시 붙고 자기 붙었다고 자랑했다. 물론 진심으로 엄청 축하해주었다. 

 

그 시기의 나는 무엇보다 끝없이 자신을 검열하고 싸워가야 했다. 아니 아예 '나 자신'을 싸워가야 할 존재로 규정했다.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답답한 스타일로만 입고 약간의 호감을 가지는 단계에서도 내 잣대로  가차없이 몰아냈다. 그보다 드러나는 미인도 아니고 애교가 있지도 않은 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대상은 많지 않았다. 이게 또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기가 약하고 순하게 생겼고 해서 2호선과 1호선 최악의 구간을 오가며 성추행도 엄청 당했다. 나의 방식은 당당히 맞서고 싸우기보다 백팩을 엉덩이까지 두르고 가슴 앞에는 커다란 화판을 두르는 방어적인 것이었다.   

 

여자애들과 사이가 좋았나 '자매애'가 있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고 때부터 화장실에도 같이가고 무리에서 편이 되어주고 하는 여자애들만의 관습에 충실하지 못해 단짝 친구 그런 개념의 친구는 없었던 듯하다. 그냥 '반장' '조용히 자기 일하는 애' 정도였다.

 

이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정말 외롭게 살았다 (잠시 오열)

 

언니네에 방을 개설하고 페미니즘 잡지 읽는 사람들 모임에도 기웃거렸다. 우연히 미혼모였던 한 활동가의 방을 들여다보고였는지 아니 가깝게는 일찍 혼자된 엄마의 삶을 늘 보아서 그랬는지 20대 후반에 불안해졌다. 아홉수라는 한국 특유의 무속성이 더해져 그전에 결혼을 했다. 친구들 중에서 거의 손꼽을 정도로 이른 결혼이었다. 늘 비혼을 주장하던 내가 일찍 결혼한 데에는 이렇듯 가정사와 성격이 더해진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어려서 아버지 없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게 자란 탓에 나는 제도권에 들어가야 안정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우굴을 피해 달아난 곳이 호랑이굴"이었음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후로는 육아 카페나 사랑과 전쟁에 한번쯤 나올듯한 사연을 한 가득 안게 된다.    

 

*

자본주의보다 가부장제가 오래된 것이고 매우 공고하다. 작동하는 방식이 정교하다.

싸움은 쉽지 않다. 계급 문제와 얽혀 더욱 복잡해진다. 아직도 공부하는 중인데 어렵다.

 

나는 딸과 아들을 다 키우기 때문에 더 잘 공부해야 한다. 남매라 확실히 둘이 많이 싸우기는 하지만 서로 남녀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는 듯하다.

 

어제 이 책을 읽고 일부분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2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사회다. 어디서부터 얽혔는지 알 수 없는 실타래.

 

 여상을 나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철학을 배우고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적재적소에 여성시들이 잘 배치되어 좋았다. 읽지 못했던 시도 많이 소개받았다.

 

아쉬운 건 금융계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서울여상이어 그렇게 차별받지 않았다는 부분. 저자 역시 또다른 의미에서 분리를 하고 있다.

 

목동 단지에서 '고졸'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위축되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나도 동네 엄마들에게 학번을 물어본다든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일 때 대학 이야기는 가급적하지 않는다. 특히 지방에 살게 된 이후로 지방대에서는 그렇게 하냐고, 진짜 생각없이 말했다가, 혼난 적이 있다. 들어보니 지역의 학교에서는 군기가 센 편이었다. 그래서 놀라서 정말 그러냐고 했을 뿐이었는데

 

 

올해 샀던 책들인데 많이 보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는 실전용. 성차별적인 언행에 맞서는 법을 담았다. 유쾌하게 읽고 알라딘에 다시 팔았다. 나머지는 읽고 있는 중. 많이 새롭다. 그동안 완전히 백기를 들고 투항해 살아서 그런지 두렵고 어색하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묵혀두었다 딸아이 읽으라고 해야겠다.

 

 

 

 

 

 

 

 

 

 

 

 

 

 

 

이런 책들이 널리 읽힌다는 게 젊은 여성들 역시 억압과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겠지.

 

남초 인기 커뮤니티에서 군대에 다녀오지 않고 고시나 입사 시험에 두각을 드러내는 중상층 여학우는 그저 이기적이고 배척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전과 달리 역차별 세상이라고 토로한다.

 

데이트도 더치페이, 결혼시 집할 때도 반반, 생활비도 반반.

 

살림은, 육아는?

 

이걸 애초에 반반으로 딱 갈라 한다는 게 가능한가?

 

딱 떨어지게 공평하게 처음부터 세팅된 것도 아닌데 기계적으로 접근한다.

 

군대도 여자들도 다 가고 3D산업에도 여자들이 진출해 하란다.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저임금돌봄노동, 감정노동의 영역은 안 보이나보다.

 

그냥 모든 게 혼돈이다. 서로서로 자기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만 말을 쏟아낸다.

 

군대 안 가서 졸업하자마자 고시 패쓰한 중상층 여학우, 이기적인 썸녀, 알바할 때 불쾌하게 군 전업주부들, 메갈(이 집단은 나도 싫다) 등을 전면에 내세워 여자들은 이래서 안 된다고 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여자라서가 아니라 계급적 문제, 사회 구조적 문제, 개인 인성 등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 건데 내가 봤거든, 겪었거든 하면 게임 끝.

 

 

시댁 냥이는 언제부터인가 배가 불러와 몇 달 전 새끼를 낳았다. 발랄하던 냥이는 털의 윤기를 잃고 어딘가 많이 날카로워졌다.

어린 냥이들은 어미의 의사와 상관 없이 분양되어 갔다.

 

그냥 그런 냥이를 보면서 참 너도 나 같구나 싶어 애처로웠다.

 

*

페미니즘 서적을 오랜만에 보았는데 오랫동안 피로하다.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게 아니라 현재가 훨씬 더 안 좋아서.

 

  

*

또 이런 책 속의 주장을 접하며

맞아, 옳아

하지만 이것도 다는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도 참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인생은 고해야. 특히 대한민국에서

 

 

그냥 아모르 파티에 맞춰 머리나 흔들어야 하나.

 

<파니핑크>도 다시 보고 싶네

<성냥공장 소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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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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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157쪽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항상 내처질 때 고아라고 느낀다.

 

혈연지연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일정 부분 고아가 아닐까?

 

아니다. 이것조차 사치스러운 소리다. 정말로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실로 눈물겨웠다. 같이 울어줄 이가 없는 아이들. 그래서 더 마음 아팠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11쪽

 

가열차게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자고 세상밖으로 나선다. 학교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모아 보금자리를 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런 걸 모두 평범한 삶이라 하지만 모두에게 허용된 삶은 아니다. 아등바등하는 동안 그늘은 깊어만 간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에서 '밝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밝아야 할 시절인데 마냥 그럴 수만 없는 청춘이 많다.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사실 국민 대다수가 밝을 수 없는 '불친절한 노동'에 장시간 시달렸다. 작가의 아버지도  고물상, 메리야쓰 공장 노동자, 구청기능직 공무원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왔다. 오죽하면 아들에게 대학가지 말라고 했을까. 대학 가서 졸업하고 취직해서 아이 낳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 불행의 끈을 자르라고, 출가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단다.

 

막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는 자식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라 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렇게 살아왔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한번은 미아리 극장에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최무룡 씨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갔어. 너 최무룡씨 알지? 몰라? 그 때 극장들은 로비에 벤처스ventures류의 경음악을 크게 틀어놓았거든. 아, 신나지. 그리고 대형 거울도 있었어. 그 때 어디 가정집에서 거울을 들이고 살았나? 극장이나 가야 거울이 있지. 극장 로비에 앉아 거울을 보는데 구석에 어떤 거지가 앉아 있더라고. 거지도 영화를 보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보니 그게 내 모습이었어. 그 때가 양복점 일하기 전에 창동으로 고물 주우러 다닐 때니까 행색이 말이 아니었지.(울먹이시다 끝내 오열. 겨우 그치고) 그 영화 줄거리가 꼭 내 이야기 같았어. 주인공이 고아인데 나랑 처지가 비슷하더라고. 영화 끝나고도 집에 갈 때까지 울었어. 당시 홀아비로 살던 네 할아버지가 나보고 왜 우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푸른 하늘 은하수> 보고 오는 길이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먼저 그 영화를 봤나봐, 그러더니 나더러 더 울라고......(다시 오열)" 164쪽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고 아들은

 

"그리고 나중에 내가 고아가 되면 <푸른 하늘 은하수>도 구해봐야지. 그때는 내가 아버지처럼 엉엉 울게. 그래. 끊어요. 그말 울고, 아버지" 

 

라고 한다. 아버지의 말은 절절한 한편의 시 같다. 시인과 아버지는 실로 대한민국에서 드문 부자관계 아닌가. 맘껏 울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이라니.

 

시인은 아버지 뻘인 문인들과도 친분이 있는 편이라 자주 술자리에 동석한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와라”는 외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 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18쪽 (중략)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19쪽

 

 

70-80대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면 일상적인 한 마디 대화가 그대로 유언이 되어버린다. 우리 외할머니의 경우 '목마르다'였나. 그것도 남에게 전해들었다. 시아버님이 내게 남기신 유언은 정말로 유언다웠다.

 

"너는 말이 없지만 그래도 믿을 만해"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젊다고 해도, 친구라 해도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 마지막으로 서로 주고받은 말이 유언이 된 경우도 많다. 한 친구는 내게 "아이 다 키우면 그래도 그때는 볼 수 있겠지'라고 했다. 아이가 아직 다 크지 않아서 10년이 지나도록 못 보고 있다. 한때는 애인보다 소중했던 친구였는데. 가끔 그애 남편 블로그를 들여다보다 그마저도 열없어 관두었다. 잘 지내고 있으면 된 거지 꼭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이제 들지 않는다.

 

*

시인은 서울 태생인데 이게 참 시인에게는 득이 될 게 없다. 그저 군대에 갔을 때 '서울 깍쟁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정도이다. 나도 유년을 서울 언저리에 보냈고 별 의미는 없다. 그냥 여의도에서 자전거 타고 중고등 시기에 시험이 끝나면 명동에 가고 그 정도이지 수도 서울에 살아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문화적인 것을 맘껏 누린 것도 아니었다.

 

작가, 시인이라면 순천, 보성, 통영, 남해, 강릉 출생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과도 비슷하다. 시인은 서울 태생의 한계를 지우려 남도로 봄마중도 가고 여러 곳을 여행다녔다. 나도 5년 전 광주에 온 이후로 남도의 여러 곳을 기회가 날 때마다 다녀보았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 두시간만 가면 경치 좋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남도다.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69쪽 

 

봄이 오려고 하면 정말 해남에 가게 된다. 아이들은 두꺼운 겉옷을 입고 나섰다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 달음박질치며 옷을 벗는다.

 

올해 초에 통영 거제에도 가보았다. 알쓸신잡으로 더 유명해지기 전에도 통영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비린 걸 즐기지 않는 나도 한그릇 잘 비웠고 어쩐지 어른이 된듯한 느낌도 들었다.

 

*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려면(아니 한곳에 붙박혀 생활하기만 해도) 당연히 돈이 필요할 것이다. 전업 시인은 그래서 힘들고 시인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문인들이 창작을 통해 벌어들이는 평균 연봉은 214만원이라 한다. 월급이 아닌 연봉이 214만원.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63쪽

 

밥벌이와 꿈이 일치하지 않는 신산한 삶을 오래 살아와 그런지 시인은 빨리 늙어버렸고 이런 선배 문인의 이야기에 위안받나보다. 

 

시인의 시는 사실 오래 전에 유명한 드라마에서 제목만 보았고 산문도 처음이다. 그런데 어느 장이 시이고 어디가 산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고 자꾸 돌아가서 다시 읽고 싶은 장이 생긴다. 경험의 장이 같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 변두리에서 유년을 난 사람들의 정서라고나 할까.

 

시인이 남도로 여행다니며 쓴 시와 글이 따스해서 좋다. 산문집도 잘 되고(이미 잘 되셨지만) 앞으로 시집들도 잘 읽혀서 오래오래 쓰셨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중략)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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