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어른일 리 없어 - 할머니 선생님이 알려 주는 어른들의 거짓말
시미즈 마사코 지음, 이주희 옮김 / 티티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이런 게 어른일 리 없다고!

 

제목부터 도발적인 분홍 표지의 책에 부제는 할머니 선생님이 알려 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라니. 큰 기대 없이 들었는데 중간중간 정신 없이 서표를 붙이며 읽어나갔다. 독박육아니 똑게육아니 하는 육아서 대신에 부모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나’를 길러줄 책이다.

 

01 귀여운 할머니 따위 되고 싶지 않아요

 

 

어른들에게 A 같은 아이는 얼마나 편한 존재일까요. 그런 아이들과 마주하는 어른의 지위는 언제나 안정되고 위협을 느낄 일이 없습니다. 질문 세례를 받는 일도 없고 스스로를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권력자들은 자신의 칼과 지배력에 어떠한 해도 가하지 않는 것을 ‘귀엽다’고 하는 게 아닐까요. 18쪽

 

 

일본 전설에 나오는 모모타로를 그림 A는 귀여운 그림체로, B는 아기장수 스타일로 투박하게 표현한 것을 보고 학생들은 늘 귀여운 A쪽을 선호한다. 그런데 저자가 A와 B 중 누가 먼저 엄마 무릎에서 벗어나려 할까, 라는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그제야 ‘귀엽다’라는 말의 맹점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귀여운 아이, 귀여운 소녀, 귀여운 여자, 귀여운 아내가 되어 자립할 기회를 쉽게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02 화를 내야만 할 때가 있어요

 

 

화의 밑바닥에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 짜증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대신 희망 없는 인내가 있고, 포기가 있고, 무력감이 양쪽을 덮칩니다. 비굴함과 증오, 모멸과 오만이 우리를 갉아먹어 버립니다. 24쪽

 

 

‘화’는 교육현장에서는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보육현장에서는 교사의 중재로 ‘미안해’, ‘괜찮아’가 남발되고 있다. 자신이 무시당해도, 맞아도 상대에게 화를 드러내기보다 교사에게 이르고 중재받는다. 일상에서 건강하게 화를 낼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커서 부당한 압력을 받아도 화를 낼 줄 모르고 짜증을 내거나 애먼 상대에게 분풀이를 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등굣길에 화내는 여중생을 보고 ‘화내라, 화내라’ 몰래 응원할 정도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전혀 납득하지 못하면서 감정의 앙금을 가득 안은 채 ‘미안해’. ‘괜찮아’ 이후 포옹을 강요당한다. 오카 켄 교수는 “싸움이야말로 상대의 생각을 배울” 기회라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이 감정을 처리할 기회를 쉽게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닐까.

 

03 혼자 조용히 있는 게 뭐가 나빠요?

 

요즘에는 말수가 적은 아이, 혼자 있는 아이는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뭔가 다가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아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일상을 떠들썩한 이벤트와 배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도무지 아이가 혼자 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서두에서 저자는 “인사를 하지 않게 된 소녀가 있으니 성장이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라는 단가를 소개했다. 인사를 하지 않는(못하는) 아이를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어른이 있어 감동했다. 어른을 만나면 곧잘 쾌활하게 인사하던 꼬마도 사춘기가 되어 자의식 과잉으로 힘겨울 때도 있고 혼자가 편할 때가 많다. “적어도 등하교 시간.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으로 있어주면” 좋겠다고 한다. 가만 보면 인사에 목숨 거는 직군 중 하나가 교사 집단인데 참 별난 선생님이셨다. 무리해서 친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다가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04 자신감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자는 흔히 ‘자신감을 가져!’라고 할 때의 그 자신감의 정체가 궁금해 여러 사전까지 뒤져보다 결국 자신감의 근원은 자기 평가라는 점을 깨닫는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조금이라도 뭔가가 낫다고 보이면 금세 자기 평가는 높아지고,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그러지고 자기 평가는 낮아집니다. 그런 자신감 따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것에 휘둘리다니 바보 같지 않나요? 69쪽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주라고 말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아, 할 수 없지. 이런 나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 정도여도 충분하다. 그건 체념과는 다른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실히 살아가는 걸 말한다.

 

05 어둠과 슬픔이 있는 삶의 한가운데로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빛이 있고, 슬픔이 있어야만 기쁨이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둠도 슬픔도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것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고민하고 슬퍼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결심을 하고 한 발짝 내딛었을 때의 상쾌한 긴장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74쪽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원래는 밝은 아이라고” 편드는 척 말을 한다. 마치 어두운 아이라면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는 듯이. 잠깐 봤지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언제나 밝아 보였던 아이들 쪽이었다. 정말 무서운 아이들은 힘든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감정을 덮고 애써 밝은 척 하는 아이들이었다. 저자는 CM송을 쓸 때는 반음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윤형주의 CM같이 조그만 그림자나 망설임도 없는 밝음. 피아노 검은 건반을 전혀 쓰지 않는 상태. 그것이 올바른 심리상태일까?

 

06 규칙을 잘 지키는 어른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보세요.

 

 

마음이 풍요롭다는 것은 단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중략)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천국을 보는 것과 동시에 지옥을 보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96쪽

 

07 정답을 말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세요

 

 

질문은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해답에는 결국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질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됩니다. 112쪽

 

 

저자는 지식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08 그렇게까지 드러내도 괜찮아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이나 느낌까지 없을 리는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자주 겉으로 활발하게 표현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내면의 활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126쪽

 

 

문학 시간에 저자는 학생들에게 감동을 받은 부분을 이야기하라고 재촉하곤 했는데 어느 날 별로 친분이 없는 학생이 일부러 나오더니 지금은 말하지 않겠지만 몇 년이 지나 이야기하러 가겠노라고 한다. 학생이 스스로 감동을 받은 바가 있고 내면이 변한다면 꼭 교사에게 확인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외눈박이 고양이>의 네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겉으로 조용한 네드의 내면은 사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또 카운슬링에서 범하는 잘못을 지적한다. 이른바 ‘털어놓기 놀이’와 같이 자신의 내면을 함부로 유출하고 속절없이 함부로 자신을 남에게 내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라는 말 자체가 예속자, 측근을 뜻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게 어딘지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어 상담이 두렵다고 한다.

 

09 그래 봐야 상처받는 건 너뿐이라는 거짓말

 

저자는 학생들에게 건방져보라든가 기지개를 펴라고 주문하는데 건방진 건 좋지만 시건방지게 되는 건 곤란하다고 한다. 말장난 같지만 오묘하다. 기죽지 말고 어른들에게 자기 의견을 솔직히 말해도 되지만 오만해지지 말라는 뜻이다.

 

 

"인생에서 진짜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말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작은 무엇인가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추억의 푸른 언덕 저자)

 

 

10 누구나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저자는 가족이 위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때 어떤 가정에서든 그런 일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정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다 해서 아이를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약하지 않다! (물론 영혼을 파괴하는 학대가정의 경우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돌아가기 힘든 가정이어도 어느 한 순간이라도 따뜻함을 느꼈다면 희망은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라도 따뜻함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가정이라면 아동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다.

 

 

11 당신의 세상은 그렇게 작지 않아요

 

작가는 존경하는 사람이 부모나 선생님인 학생은 좁은 세계에 갇힌 것이라고 한다. 아들이 청년기가 되어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느니 하면 자신은 어리석은 존재니 바짝 기쁘긴 하겠지만 아들이 한심하게 여겨질 거라고 한다. 얼마나 쿨한 엄마인가! 또 자신을 편하게 만드는 사람만 만나지 말고 불편하게 하는 존재들과 부딪혀야 성장한다고 조언한다.

 

12 심심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

 

03번과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는 학생들을 혼자 내버려 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과제를 부여한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고 그런 시간을 스스로 만드는 훈련 없이 어른이 되어서 요즘 아이들이 제대로 못 사는 건 아닐까?

 

또 요즘은 일상을 하찮게 생각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정체와 동의어로 취급한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늘 특별한 체험을 준비하고 아이의 일상을 1년 내내 축제처럼 기획하려고 한다. 여기서 뜨끔했다. 내가 어려서 제한된 경험을 해서 용기가 없고 제한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애들 어릴 때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이런저런 기획된 행사에 많이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충분히 혼자 지낼 법한 초4, 초2인데도 주말이면 심심해, 오늘은 어디 안 가? 를 달고 산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배려 경쟁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는 말도 인상 깊다. 예를 들어 손님이 오셨는데 내가 미처 차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나보다 먼저 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는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멋진 사람들의 조용한 배려를 지켜보기로 한다고. 맞다, 정말.

 

이 멋진 할머니 선생님은 내가 먼저 스스로 바로 서야 비로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고 반복해서 주장한다. 또한 스스로 서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K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데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교육을 할 때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를 던져준다. 특히 귀여움 받으려 하지 말라는 말은 나에게 하는 이야기. 아이들에게조차 귀여운 엄마가 되려고 한 적이 있다. 깊이 반성...

 

*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고......무언가를 많이 해야 행복해진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사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그랬듯이 10대는 허공의 시절, 비우고 또 비워야 행복해진다. 꽉 차서 넘치는 잔이 되기보다 크게 비어 있어 어느 것이든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큰그릇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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