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다닐 때(거의 20년 전 ㅜ.ㅠ ) 페미니즘 열기가 뜨거웠다. 물론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는 남자애들을 만나면 너도 엄마성 쓰냐는 질문을 받았고 군가산점제는 왜 반대하는가 여성은 왜 군대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을 주어야 했다. 당시 모 대학에 다니던 남학우와 우연히 헌법재판소 앞에서 군가산점제에 대해 한참 토론하던 기억이 난다. 토론의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한이 깊었던지? 사시 붙고 자기 붙었다고 자랑했다. 물론 진심으로 엄청 축하해주었다. 

 

그 시기의 나는 무엇보다 끝없이 자신을 검열하고 싸워가야 했다. 아니 아예 '나 자신'을 싸워가야 할 존재로 규정했다.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답답한 스타일로만 입고 약간의 호감을 가지는 단계에서도 내 잣대로  가차없이 몰아냈다. 그보다 드러나는 미인도 아니고 애교가 있지도 않은 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대상은 많지 않았다. 이게 또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기가 약하고 순하게 생겼고 해서 2호선과 1호선 최악의 구간을 오가며 성추행도 엄청 당했다. 나의 방식은 당당히 맞서고 싸우기보다 백팩을 엉덩이까지 두르고 가슴 앞에는 커다란 화판을 두르는 방어적인 것이었다.   

 

여자애들과 사이가 좋았나 '자매애'가 있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고 때부터 화장실에도 같이가고 무리에서 편이 되어주고 하는 여자애들만의 관습에 충실하지 못해 단짝 친구 그런 개념의 친구는 없었던 듯하다. 그냥 '반장' '조용히 자기 일하는 애' 정도였다.

 

이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정말 외롭게 살았다 (잠시 오열)

 

언니네에 방을 개설하고 페미니즘 잡지 읽는 사람들 모임에도 기웃거렸다. 우연히 미혼모였던 한 활동가의 방을 들여다보고였는지 아니 가깝게는 일찍 혼자된 엄마의 삶을 늘 보아서 그랬는지 20대 후반에 불안해졌다. 아홉수라는 한국 특유의 무속성이 더해져 그전에 결혼을 했다. 친구들 중에서 거의 손꼽을 정도로 이른 결혼이었다. 늘 비혼을 주장하던 내가 일찍 결혼한 데에는 이렇듯 가정사와 성격이 더해진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어려서 아버지 없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게 자란 탓에 나는 제도권에 들어가야 안정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우굴을 피해 달아난 곳이 호랑이굴"이었음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후로는 육아 카페나 사랑과 전쟁에 한번쯤 나올듯한 사연을 한 가득 안게 된다.    

 

*

자본주의보다 가부장제가 오래된 것이고 매우 공고하다. 작동하는 방식이 정교하다.

싸움은 쉽지 않다. 계급 문제와 얽혀 더욱 복잡해진다. 아직도 공부하는 중인데 어렵다.

 

나는 딸과 아들을 다 키우기 때문에 더 잘 공부해야 한다. 남매라 확실히 둘이 많이 싸우기는 하지만 서로 남녀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는 듯하다.

 

어제 이 책을 읽고 일부분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2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사회다. 어디서부터 얽혔는지 알 수 없는 실타래.

 

 여상을 나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철학을 배우고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적재적소에 여성시들이 잘 배치되어 좋았다. 읽지 못했던 시도 많이 소개받았다.

 

아쉬운 건 금융계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서울여상이어 그렇게 차별받지 않았다는 부분. 저자 역시 또다른 의미에서 분리를 하고 있다.

 

목동 단지에서 '고졸'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위축되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나도 동네 엄마들에게 학번을 물어본다든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일 때 대학 이야기는 가급적하지 않는다. 특히 지방에 살게 된 이후로 지방대에서는 그렇게 하냐고, 진짜 생각없이 말했다가, 혼난 적이 있다. 들어보니 지역의 학교에서는 군기가 센 편이었다. 그래서 놀라서 정말 그러냐고 했을 뿐이었는데

 

 

올해 샀던 책들인데 많이 보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는 실전용. 성차별적인 언행에 맞서는 법을 담았다. 유쾌하게 읽고 알라딘에 다시 팔았다. 나머지는 읽고 있는 중. 많이 새롭다. 그동안 완전히 백기를 들고 투항해 살아서 그런지 두렵고 어색하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묵혀두었다 딸아이 읽으라고 해야겠다.

 

 

 

 

 

 

 

 

 

 

 

 

 

 

 

이런 책들이 널리 읽힌다는 게 젊은 여성들 역시 억압과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겠지.

 

남초 인기 커뮤니티에서 군대에 다녀오지 않고 고시나 입사 시험에 두각을 드러내는 중상층 여학우는 그저 이기적이고 배척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전과 달리 역차별 세상이라고 토로한다.

 

데이트도 더치페이, 결혼시 집할 때도 반반, 생활비도 반반.

 

살림은, 육아는?

 

이걸 애초에 반반으로 딱 갈라 한다는 게 가능한가?

 

딱 떨어지게 공평하게 처음부터 세팅된 것도 아닌데 기계적으로 접근한다.

 

군대도 여자들도 다 가고 3D산업에도 여자들이 진출해 하란다.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저임금돌봄노동, 감정노동의 영역은 안 보이나보다.

 

그냥 모든 게 혼돈이다. 서로서로 자기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만 말을 쏟아낸다.

 

군대 안 가서 졸업하자마자 고시 패쓰한 중상층 여학우, 이기적인 썸녀, 알바할 때 불쾌하게 군 전업주부들, 메갈(이 집단은 나도 싫다) 등을 전면에 내세워 여자들은 이래서 안 된다고 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여자라서가 아니라 계급적 문제, 사회 구조적 문제, 개인 인성 등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 건데 내가 봤거든, 겪었거든 하면 게임 끝.

 

 

시댁 냥이는 언제부터인가 배가 불러와 몇 달 전 새끼를 낳았다. 발랄하던 냥이는 털의 윤기를 잃고 어딘가 많이 날카로워졌다.

어린 냥이들은 어미의 의사와 상관 없이 분양되어 갔다.

 

그냥 그런 냥이를 보면서 참 너도 나 같구나 싶어 애처로웠다.

 

*

페미니즘 서적을 오랜만에 보았는데 오랫동안 피로하다.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게 아니라 현재가 훨씬 더 안 좋아서.

 

  

*

또 이런 책 속의 주장을 접하며

맞아, 옳아

하지만 이것도 다는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도 참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인생은 고해야. 특히 대한민국에서

 

 

그냥 아모르 파티에 맞춰 머리나 흔들어야 하나.

 

<파니핑크>도 다시 보고 싶네

<성냥공장 소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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