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1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수술을 하고 한동안 참 힘들었다, 모두가.

 

물론 1호가 제일 고생했고 많이 성장했다고 쓰고 싶지만, 짜증과 예민함이 더 늘었다고나 할까?

 

고통을 통해 성숙에 이르기에 충분하지 않은 고통이라고나 할까. (뭔소리, 아무말대잔치임)

 

돌이켜보면 그건 날것의 아픔이지 존재를 변화시킬 만한 그런 고통은 아니었다.

 

다큐에 나오는 백혈병,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이 엄마가 힘들어할까봐 고통을 참아내는 안쓰러운 그런 모습은 1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숨죽여 울거나 비명도 못지를 정도는 아니라서.

 

1호는 왜 하필 자기가 그런 병에 걸려 이런 개고생(1호의 표현임)을 해야 하는지 하느님을 원망하고 엄마에게 짜증을 쏟아냈다. 나는 주변의 더 힘든 환자들과 불치병에 걸린 사례를 들어 위로했으나 1호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날것의 아픔에 집중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딱히 해줄 것도 없어 그저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다.

 

병명을 들으면 모두가 피식 하고 말겠지만, 정말이지 길고 힘들었던 겨울이었다.

 

징징댈 여유도 없었던 날들이 지나고 나니 찡찡하고 싶다.

 

고생했어, 그래도 훌륭했어, 라고 2, 3, 4월의 나에게 다독다독.

 

그 사이 <울지마, 지로>는 참으로 위안이 되었던 성장소설이었고 간만에 리뷰도 남기고 싶은 책이었는데 그냥 못쓰고 넘어갔다. 하도 뭔가를 쓰지 않다보니 쓰는 문장 문장마다 다 마음에 걸려 지워버렸다.

 

<군함도>를 춥고 힘든 시절에 아주 힘겹게 힘겹게 읽어나갔다.

 

나에겐 이상한 가학성이 있나보다. 힘든 시절에 위안이 되는 말랑한 책을 읽기보다는 뭔가 홀로코스트나 생존기 이런 묵직한 책을 보려는 괴벽이 있다.

 

일제강점기 치하의 민초들의 삶은 너무나 처참하여 읽어나가다 보면 속이 울렁거렸다.

 

아마 나처럼 대다수가 <무한도전>을 통해서 하시마 섬을 접하지 않았을까?

 

하시마 섬의 극한의 학대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생생했다. 조정래 소설을 읽을 때 힘겨웠던 그런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군함도>가 개봉해도 보러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축복>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내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관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새벽에 일어나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언제나 이번 생이 끝이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 새벽에 정말로 무서웠다.

 

대드는 죽음을 맞기 전 주변을 잘 정리하는데 나는 주방이고 서재고 옷장이고 엉망이어서 그것도 맘에 걸려 새벽에 버릴 책이랑 옷을 한참 정리하며 아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파괴왕으로 유명한 주호민.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보내버리더니 최근에 마리텔에 출연하여 프로를 없애버렸다.

 

<셋이서 쑥>은 육아만화인데 설마 가정이 파괴되는 일은 없겠지.

 

초보 아빠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부인의 욕구와 감정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보여서 가정 파괴는 걱정되지 않는다.

 

<셋이서 쑥>을 5월에 친정에 방문했다가 근처 만화박물관에서 보았다. 정말 집 근처로 옮겨오고 싶은 도서관이었다.

 

그 다음 날인 어린이날에 대학 때 친구와 친한 후배랑 셋이서 부암동 일대를 걸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이팝나무가 가득했던 청운 공원, 해질녘 풍경들, 밀크티빙수와 숙주를 곁들인 치킨.

 

세 달 동안 할말을 다섯 시간 동안 다 쏟아부은 듯하다.

 

내가 어떤 얘길 해도 까르르 숨 넘어가게 웃어주는 친구들.

 

2년째 이 친구들과 5월 초에 만나고 있다. 초중고대 성당까지 같이 다닌 후배가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나랑 같은 과를 나온 대학 동기를 알게 되어 누구 언니 아느냐 묻다보니 만나게 되었다. 대학 때는 오로지 동아리방에만 살아 과 동기가 거의 없었는데 나를 기억하는 친구가 있다니.

 

작년에는 그 친구가 너무나 귀한 딸이 커서 나처럼 되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어서 고마웠다.

요 몇년 집에만 있어서 가뜩이나 희미한 자아가 소멸 직전이었는데

김연아도 아니고 김00이같이 커주면 고맙지, 라니.

 

00아

분명히 00이는 지금처럼 멋지고 예쁘게 잘 자랄거야.

 

 

 최근에 들인 땡땡.

 

애들은 다 읽고 나는 겨우 1권 봤다.

 

1호랑 2호는 땡땡, 아독선장, 뒤퐁 상황극에 빠져 있다.

 

왜 싸우는지 알려면 다 읽어야 하는데

 

하루하루 처리할 일이 꽤 된다.

 

뭔가가 고장나거나 뭔가가 다 떨어지고 갑자기 누가 오기도 한다.

 

다 핑계고 요새 뉴스 보느라 할일을 다 못하고 넘어가는 날이 많다.

 

어제도 518 기념식 보고 또 보고

 

좀 부지런 떨었더라면 가보았을 수도 있었는데

 

그냥 나중에 조용할 때 가보고 싶다.

 

올초에 사둔 <소년이 온다>도 아직 다 못 읽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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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 - 특명! 온달을 역사 천재로 만들어라!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
설민석.스토리박스 지음, 정현희 그림, 태건 역사 연구소 감수 / 아이휴먼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샘플북 받자마자 단숨에 정말 즐겁게 읽었어요. 무도 한국사 특강 이전부터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해서 그런지 다음권도 빨리 보고 싶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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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의 영향력-형제자매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 146-167쪽

 

(    )는 공감이거나 제 의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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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화물열차가 바로 옆을 지나가는 것만 같아요. 도무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만 5세 딸과 만 6세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다. 그녀는 임상 정신의학자로 부상당한 퇴역군인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식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훨씬 더 고통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극공감!)                p. 149

 

 

관찰연구결과 만 3세와 만 7세 사이의 충돌은 평균 시간당 3.5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충돌 가운데에서도 일부는 짧은 마찰이었고, 또 일부는 그보다 길었다. 거기에 덧붙여 매 시간 중 10분을 말다툼으로 보내고 있었다. 워털루대학교의 힐디 로스 박사에 따르면 총 8회의 충돌 가운데 화해와 타협으로 끝나는 경우는 단 한 번이라고 한다. 나머지 일곱 번은 그냥 물러나거나 주로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괴롭히고 협박하는 것으로 끝났다.

뉴욕주립대학교 제네서칼리지의 개니 드하트 박사는 만 4세 아동이 어린 동생을 대하는 태도와 친한 친구를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보았다. 박사가 추출한 표본에서 이 아이들은 친구들보다 동생에게 부정적이고 명령하는 언어를 일곱 배나 더 많이 사용했다.  p. 150

 

형제자매는 수천 번의 상호작용을 통해 쑥쑥 자라고 있는가? 크래머 박사에 따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략)

크레머 박사는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도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눈에 띄게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략) 명령형이거나 통제형이거나 다정하거나 사려가 깊거나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다. (중략)

 

연구에 참여한 가정 아이들이 20대가 되어 물어본 결과

“아이들이 잘 지내느냐고 물어보면 늘 변함없이 똑같다고 대답들을 합니다.”라고 크래머 박사는 말했다. (우하하! 이모랑 외삼촌 우리엄마 만세! 어릴 때 사이 좋으면 좋은 사이 어려서 쌓인 건 노인 되어서까지 못 잊어. 특히 제사상에서 맛난 것만 먹던 오빠 )  p.152-153

 

프로이드는 틀렸고 셰익스피어가 옳았다. ‘태어나면서부터 형제자매는 부모의 애정을 향한 끊임없는 갈등에 사로잡힌다’는 프로이드의 주장은 학자들과 부모들 모두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짜증나는 애첩설! 첫째가 둘째아이를 본 심정이 본부인이 첩본 것과 같다는 주장, 돌이켜보면 어릴 때 주로 2호 누워 있던 시기에 가장 사이 좋음, 누워 있던 게 일어나 자신의 것을 만지면서 전쟁) 그러나 프로이드의 이론은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자매간의 경쟁은 부모의 사랑을 둘러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는 리어왕 이야기에 더 가깝다.

영국과 미국의 선도적인 학자들로 구성된 한 연구진은 콜로라도 지역의 형제자매 108쌍에게 정확히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물었다. 부모의 사랑은 맨 꼴지를 차지했다. 겨우 9퍼센트가 부모의 사랑을 말다툼이나 경쟁의 원인으로 꼽았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고너릴과 리건(리어왕의 첫째, 둘째)이 파멸당한 이유와 같았다. 즉 성 안의 장난감을 나눠 가지는 문제였다. 큰 아이의 78포센트, 작은 아이의 75퍼센트가 물리적인 소유물을 나누는 문제 혹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문제로 대부분의 싸움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163쪽

다른 이유는 아주 미비했다. 작은 아이의 39퍼센트가 싸움의 원인을 ‘싸움’이라고 답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큰 아이가 자신을 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164쪽

 

 

“다른 요소들과 비교해보면 나이 차는 그리 강력한 예측 요소가 아닙니다. 성별도 마찬가지입니다. 걱정해야 할 다른 많은 요소들이 있어요.”

 

 

그럼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크래머 박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일러준다. 두 형제자매가 얼마나 잘 지내는가를 가리키는 가장 좋은 예측장치 가운데 하나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발언이다. 한쪽의 성격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두 성격의 충돌이 예측 가능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미래의 관계를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설명을 들어보면 꽤 합리적이다. 이는 부모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예측 요소는 큰 아이가 친한 친구와 맺은 관계의 성격이다.

크래머 박사는 둘째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의 어린 자녀들을 연구해보았다. 박사는 이 아이들이 친한 친구와 일대일로 노는 모습을 관찰했다. 상호간에 우호적인 아이들은 몇 년 뒤 동생과도 좋은 관계를 보여주었다.

 

오래 전부터 형제자매는 서로에게서 배운 사회적 기술을 가족 밖의 또래 집단과의 관계에 적용한다고 추측해왔다. 그러나 크래머 박사는 정반대의 흐름도 있다고 말한다. 큰 아이는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배운 것을 이후 어린 동생에게 적용한다. (둘이 자주 싸운다면 또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안녕하세요 고민 상담에 나오는 권위적이고 찌질한 오빠들)

 

사만다 펀치 박사가 지적하듯이 형제자매 관계는 어떤 일이 생겨도 내일 또 볼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별 장려책이 없다. 이들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종신형 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아서 좋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특별히 감형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변화할 동기가 없는 것이다. (찰지다! 엄마 간수 아래 종신형을 사는 두 죄수, 사식이라든가 누울 자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다.)

크래머 박사는 또한 어린이집과 보육시설에서의 행동도 고려했다. 아이들이 학급에서 협동을 잘하거나 집단놀이를 함께 해냈다는 사실이 이후 형제자매 관계를 향상시킨다는 예측은 하지 못했다. 정말로 중요한 요소는 친구들끼리의 진정한 관계, 즉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마음 쓰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높은 동기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내가 지금 배가 고픈지 무릎에 멍이 들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기들도 다 멍이 있으니까요”라고 크래머 박사는 설명했다.

다시 말해 부모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친구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부모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중요한 것이지요”라고 크래머 박사는 결론지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크래머 박사가 진정으로 하고자 애쓰는 일은 아이들의 관계를 형제자매 관계에서 진정한 우정에 가까운 무언가로 개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싸움은 새로운 희생타(야구에서, 타자 자신은 아웃되지만 자기편의 주자가 진루하거나 득점할 수 있게 치는 타격)가 된다. 싸움에 대한 벌은 단지 타임아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치 있는 적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충분히 싸우게 두라는 것, 물리적이거나 심각한 언어 폭력이 없으면 개입하지 말자. 대개 내가 시끄럽고 불편해서 관두라 하는 것이니 자기들끼리 의사 소통을 조율할 것!)

 

 

 

 

 

 

 

 

 

 

 

 

 

 

 

훈육하는 데 현실적 팁이 있음! 블로그에서 봐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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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는 독감에 걸려 오늘 아니지 어제 학교에 가지 않았다. 22일에 포켓몬 신작 대개봉이라고 해서 카드 받아야 한다 해서 비오는데 무리해서 먼 영화관을 다녀온 탓인가 아니면 시험 전날 딱 하루 11시까지 공부한 탓일까 자책하다 1호네 반아이들이 이미 a형 독감으로 3명이나 결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밤새 1호는 뒤척이며 괴로워하며 나 이러다 죽을 거 같다고 하며 날을 샜다, 나도 안타깝지만 딱히 할일이 없어 이런저런 책을 보며 주물러 달라고 하면 주물러 주고 물 먹여주고 그랬다. 이젠 어디 아픈지 말할 수도 있고 열도 38-39도 사이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냥 미친듯이 독감 종류 검색하고 타미플루 부작용을 검색했을 뿐이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결국 독감 판정 받고 학교 쉬고 해열제만 먹이며 쉬었다. 죽 조금 먹고 자고 공기계로 포켓몬 검색해서 누워서 보다 보노보노 보다 동생 기다리다 동생 와서 놀다 지금은 잔다.

 

*

 

2호 재우다 같이 9시에 잠들어 나와보니 <도깨비>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평일에나 볼까 했더니만 이런 행운이!

 

드문드문 봐서 어느 회인지 모르겠으나 <도깨비신부와 보물상자>도 <도깨비>에 나온다. 올해 2호 잘 때 많이 읽어준 책이다. 요즘은 2호가 눈이 많이 나빠져서 잘 자리에 책은 읽지 않고 그냥 누워 두런두런 얘기하다 잔다. 진작 이럴걸. 책을 안 읽는 애들도 아닌데 뭘 잘밤까지 그렇게 책을 읽어주었나 싶다.

 

드라마는 진짜 안 보려다 마늘 찧고 콩나물 다듬다가 <도깨비>를 보았다. 앞의 책에 이끌려 드라마를 보다보니 이건 뭐 공유니므 말이 안 되잖아.

 

계절은 딱 겨울이라 폴라티 자주 입지 긴 코트자락에 얼굴은 신비한 오각형에다 쌍커풀은 없고 눈빛은 깊은데 김고은이랑 티격태격할 때 눈빛 손짓 고개짓에 잔망잔망.

 

3월 초에 2호 책상 사러 가서 가구점에 붙은 화보 보며 이래서 팔리겠어 했던 과거의 나님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니? 커피프린스 보며 느끼하다 했던 몇십 년 전의 나님아 진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

 

게다가 애들 학교 보내고 만나는 류배우님(응팔 재방송한다. 맘아파 복습도 못하다 이제 다시 보기 시작. 열심히 일하다 류배우 장면 나오면 달려와 보기 꿀쨈)은 어쩌고.

 

온 나라가 샤머니즘에 사로잡힌 이들의 국정농단으로 초토화된 후 민간신앙?으로 위로받고 있다.

 

사고무친 천애의 고아인 지은탁이 도깨비신부이고 도깨비, 저승사자, 삼신할매 등 온갖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

 

지은탁과 김신이 메밀꽃을 들고 있던 바다를 보고 애들 어릴 때 자주 갔던 강릉이 가고 싶어졌다. 지은탁과 김신이 서 있던 메밀밭을 보니 봉평에 가고 싶어졌는데 실은 촬영지가 고창이란다. 언제 가봐야지.

 

광대 승천해서 보다가 딱 한 번 눈물을 찔끔한 장면은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려고 문을 연 순간 반려견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난 반려견을 키운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냥 막 뭉클했다. 내가 문을 연 순간 기다리고 있을 그 누군가가 떠올려졌다. 막 서럽고 벅차서 요나탄을 만났을 때 스코르빤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런 낭기열라에 들면 만나고 싶었던 소중한 사람들 다 만나고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한없이 부족한 나라는 존재는 온전해지는 걸까?

 

 

도깨비 끝나고 이어서 펼쳐든 <아무도 아닌>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 너와 내가 죽은 뒤에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안이 되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죽어서. 실리를 만날 것이다. 실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리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 도 없는 어떤 것, 어떤 상태로든 남아 있을 테고 내가 죽은 뒤, 실리와 나는 서로 그런 상태로, 그런 상태로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 실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그러나 없다.

없다.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뿐이다.  

 

황정은, <명실>, p.105   

 

다 굳은 만년필촉을 미지근한 물에 녹이는 명실이 할머니였다니. 노트나 만년필이 필요하고 젤리를 씹는 사람이 할머니?

 

우리 할머니 오랜만에 나오셨네.

 

전에도 당혹스러웠고 다시 읽는 지금도 역시 그랬다. 잔등긁개나 접는 부채, 중절모, 양갱 등의 소품으로 우리는 노인을 한정한다.

 

애들 아빠 외할머니는 구순을 넘기셨다. 명절마다 방문하면 그래, 너희들이 누구?라고 하신다. 이제 할머니와 혈연관계로 연결되는 분들 말고는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혈연관계라도 아주 가까운 이들은 없다. 그 자손들 뿐. 그런데도 그 이름으로 자주 누군가를 부른다고 하신다.

 

나는 남았다. 얼마나 됐나. 얼마나 오래 남아 있었나.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그러실까.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잘 있지? 잘 있지?만 반복하신다. 거기 그렇게 사라지지 말고 있어 달라는 뜻으로 들려, 슬프다.

 

애들은 그때마다 집에 가고 싶어한다. 겨우 일 년에 한번 될까 말까 한 방문인데.

 

나도 그랬다. 우리 증조할머니도 구순을 넘기셨다. 난 시골집에 갈 때마다 마귀할멈이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며 울었다. 도시에서 살다 방문한 어린시절의 난 꽁꽁 얼은 자리끼와 거친 손등, 검버섯 등이 정말 낯설고 무서웠다. 고려청자빛 요강이 방구석에 놓여 있고 쥐오줌 자리로 얼룩진 천장이라는 배경도 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런 증조할머니도, 아빠도, 세종대왕도, 이순신(뜬금없지만 1, 2호가 천국이 있다면 만나고 싶단다)도 내 몸에서 넋이 분리되는 그 순간 만나게 되는 걸까? 그 넋은 어느 아름다운 곳으로 향할까? 아니면 온전히 소멸하는 것일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

내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아니, 오늘이지)이고 온갖 대형교회와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가 성대하게 거행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해 아들을 보내고 그 아들을 희생해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했다는 기독교의 정수는 한국인에게 얼마나 낯선 것일까?

 

병인박해 때부터 믿기 시작해 그 조상을 본받아 정통 신자라는 교인분 말씀을 들으며 난 그것을 실감했다. 예수님을 본받아도 아니고 병인박해 때 돌아가신 조상이라니.

 

평범한 신자가 기독교 사상을 서구처럼 체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건 공부하고 고민해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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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엄마들에게 - 큰소리 내지 않고 아이를 크게 키우는 법
최민준 지음 / 살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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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들 다 겪어보고 주변도 둘러본 결과 아이 성향마다 다른듯. 꼼꼼하고 기센 초등여아들 사이에 눌린 아들엄마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책. 틈새시장 공략 대성공. 딱 세바시 강연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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