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청소년도서관이 개관했다. 내 걸음으로 7분, 아이들 데리고 10분 거리이다. 7월 말부터 아이들이랑 거의 매일 가다시피했다. 도서관은 단층 규모로 열람실이 없다! 오옷 그래서 수험생은 자주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들어서서 오른편에는 어린이 열람실이 있고 왼편에는 청소년자료실이 있다. 자료실 규모로는 부족하지만 일단 집앞 도서관에 비해서 장점은 어린이실과 자료실이 한 층에 있어 애들 살피기가 좋다.

 

초등 2, 4학년이라 거의 두면 책만 보지만, 작은 생활의 불편을 처리해줘야 할 때가 있어 같이 있으니 좋다.

 

어제는 아이들 개학하고 층고가 높은 그곳에서 5시간이나 머물렀다. 고시원에 살며 밥값도 부족한 세대인 요즘 20-30대가 카페에 자주 가는 건 공간을 향유하기 위해서라고 한 걸 읽은 기억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특히 층고가 높은, 적당히 높은 그곳이 마음에 든다. 가는길에 저렴하게 아메리카노를 파는 작은 동네 찻집도 많다. 매일 가는 길 말고 단지들 사이 여기저기로 빠지며 이런저런 가게를 구경한다.

 

한동안 뜨겁게 사랑받았던 박준 시인의 산문집.

뭐 별다를 것 있겠어, 가볍게 보자하다가 서표(書標)로 덮어버렸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11쪽

 

 

표지도 서늘하고 첫 장부터 강력하다. 83년생이라는 시인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최근에 내가 초본 세 장이 꽉 찰 정도로 이사다녔다는 걸 알게 되었다. 10대와 20대 대부분을 서울 언저리에서 보낸 사람들, 특히 평균보다 많이 가난했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가난이라 해도 정서의 결은 다르다. 전부터 속으로만 부모가 도시 빈민 출신인 사람과 빈농 출신인 사람의 정서는 어쩐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이 시인과 다른 시인을 비교하고픈데 지금은 생각이 안 난다.

 

사지 않고 빌려봤는데 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손수건도 준다. 이런, 알라딘.

 

  보노보노 전권을 사서 읽고 말지, 개탄하며 역시 빌려본 책.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작가가  자신의 삶과 보노보노를 담담하게 연결짓는 부분.

 

  아, 이런 컷도 있었나 싶어 다시 보노보노를 들추어보게 된다.

 

  울 아들과 딸이 방학 내내 요즘도 보노보노를 닳토록 읽고 있다.

 

  이상한 포즈도 따라하고 너부리의 다리 조르기도 가끔 밤에 한다.

 

초4인 아들한테 다리 조르기 당하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프다.

 

역시나 비어컵이 탐난다. 이런, 알라딘.

 

  역시나 빨강머리 앤을 보고 말지,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옮겨둔 화면, 대사들이 다 기억이 난다. 그건 내가 초인적인 기억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육아로 지친 시기에 다운받아둔 앤을 멍때리며  봐서 그런가봉가. (아빠 어디가 할 시기인가)

 

 작가가 나이들수록 마릴라 아줌마도 이해된다는 부분도 대공감.

 

 어려서는 앤에 푹 빠졌지만 아이 낳고 나서는 매튜와 마릴라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해보게 된다.

 

 

생물학적 엄마, 아빠가 아닌 핏줄로 얽히지 않은 양육자가 상상력이 풍부하고 엉뚱하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앤을 어떻게 감당한 건지. 게다가 마릴라는 편두통을 앓고 있기도 한데.

 

둘리의 고길동이 이해되면 어른이 되기 시작한 거라고 하지. 앤을 좋아하지만 엄격하게 대한 마릴라 아줌마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딸이 2학년이라 언제 봐야지 했는데 <플랜더스의 개> 보고 펑펑 울며 힘들어하던 기억이 나서 어떨까 싶다. 맘이 여리고 요즘 부쩍 고아되면 어쩌나 불안에 가득 차 있어서.

 

<언어의 온도>가 대출중이라 읽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돌아볼 구절이 많았다.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잘 경청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정자에서 어르신들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서로 자기 얘기만 하신다. 안 그러신 분도 많지만.

 

잘 듣고 오래 생각해서 이야기해야겠다.

 

너무 가볍다, 뻔하다 식상하다는 평이 있는데 바른 말은 원래 그렇게 들리는 법이다.

 

 

유행하는 에세이들을 보니 우리?가 얼마나 지쳐 있나 알 수 있었다. 품격 없는 말에 쉽게 상처 입고 어린시절 향수로 남아 있는 애니로부터 위안을 구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앳된 얼굴의 군인을 굳이 군인 아저씨라고 하고 ㅜ.ㅠ 엄마, 왜 군인 아저씨야. 엄마가 더 늙었는데 (안다. 너무나 진실한 딸아)

 

먼 지역에서 근무를 마치고 온 애들아빠는 집에 오면 별말없이 컴퓨터 방에 박혀서 영화를 보거나 예능을 보거나 바둑채널을 본다.

 

모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다.

 

가벼우면 어떤가, 에세이면 어떤가.

 

오히려 요즘은 책 보는 것보다  예능 보는 게 더 무겁고 버겁다.

 

평균이 누릴 수 없는 삶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느 채널을 돌려도.

 

먹고 마시고 여행하고

 

토크쇼에 나와 저마다 특별한 친분을 과시한다.

 

또 너무나 귀엽긴 하지만 키우는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남의 아이들이 예능을 점령했다.

 

 

*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

 

빌려보고 사서도 보고 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쉬어야겠다.

 

도서관 가는 길에

 

그리고 층고가 높고 안락한 의자가 많은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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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벽에 일어나니 천둥 치고 번개 반짝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이 비가 퍼붓고 있다.

 

어제 <만가지행동>을 우연히 집어들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작가님 소설 <세월>을 친구가 추천해서 읽었고 처절하다, 가슴 아프다 그 정도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김형경 작가님 에세이를 아이 키우면서 가볍게 읽었고 잘 읽혔는데 <만가지행동>은 전반부는 잘 읽혔는데 후반부는 불편하다.

 

전반부는 작가님이 여행을 하면서 혹은 일상에서 정신 분석을 받은 것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첫번째 '하던 일 하지 않기'는 유아기에 만들어진 후 검증없이 적용하던 낡은 생존법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 방법의 하나로 '충탐해판' 하지 않기

 

충고는 자기 생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을 남에게 투사하는 것이고, 탐색은 상대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를 경계하는 일었다. 해석은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덧씌우는 일이고, 판단은 제멋대로 남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누구도 그러헤 할 권리가 없지만, 일상적으로 늘 그렇게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행위의 배경에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41쪽   

 

두번째 장'하지 않던 일 하기'는 그동안 회피해 온 마음과 행동의 낯선 영역으로 발을 디디며 새로운 지평을 탐색해가는 과정이다. 무슨 일이든 하기라고 되뇌며 하지 않던 일을 시도하고 분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홀로 있고 불안을 방어하지 않고 무력한 채로 머문다.   

 

세번째 장'경험을 타인과 나누기'부터 불편하다. 작가님 책을 즐겨 읽는 독자들과 독서모임을 꾸려 삶의 경험을 나누고 하는 과정을 담았다.

 

팬카페는 의존성과 나르시시즘의 결집체이다. 1만원 짜리 책을 사서 읽고, 투자한 책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한 정보나 감동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65쪽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그래도 험한 세상에서 그것 하나 부여잡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유아기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라며 지나치게 단호하게 대하는 부분에서 불편했다.

 

흑역사의 하나지만(흑역사 아닌 역사가 있으리)어떤 작가님 팬카페를 이십대에 꽤 오래했는데 우리 눈높이에서 놀아주시고 내 결혼식에도 참석해주시고 축의금도 내주셔서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내가 그 모임에 집착한 건 의존욕구 맞았을 것이다.

 

김형경 작가님 분석에 따르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것인가. 훗

 

형경 작가님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그냥 그 모임 사람들하고는 밥먹고 차마시고 슬렁슬렁 하셨으면 덜 힘드셨을 듯하다.

 

어느 순간에 어떤 책이나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인생이 갑자기 그렇게 크게 바뀔까?

 

자연, 사회적 환경, 가정문제 등 여러 가지가 얽혀 있고 전혀 기대지 않았던 데서 살짝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 이게 참 생의 신비다.

 

네번째 장에서 그래서 영적인 부분이 나오는 것이겠지.

 

 

 

 

 

 

 

 

 

 

 

 

 

 

안정적 애착양식을 보이는 내담자들에게는 내면적인 갈등을 해석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안한 애착양식을 지닌 내담자에게는 부드럽게 달래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양가적인 애착양식을 지닌 내담자의 경우, 치료자는 함입(engulfment)에 대한 두려움과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여 나타나는 것을 잘 견뎌야 한다. 애착양상이 혼란스럽고 뒤죽박죽되어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 p207

 

이 책은 읽지 않았지만 관심이 간다. 일반인도 읽을 수 있을 정도라니 한번 봐야겠다. 작가님과 만났던 가인이, 나인이, 다인이, 라인이 등 무수한 인이들은 불안정 애착양식을 지닌 내담자임이 분명하다. 작가님도 고생하셨지만 부드럽게 달랬으면 했는데.

 

뭐 결국 인이들의 문제 ...그 시기에 작가님보다 전문 치료자를 찾아야 했던 것인지.

 

*

 

정신, 심리는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전문가마다 다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치료받고자 하는 사람은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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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8-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 작가님책은 일부러 찾아보는 책인데, 리뷰 감사합니다

뚜유 2017-08-26 04:08   좋아요 0 | URL
부족한 내용인데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
 
머리가 좋아지는 정리정돈법 - 아이를 변화시키는 1% 습관 혁명
오오노리 마미 지음, 윤지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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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갈 무렵 집안 상태는 혼돈 그 자체.

치워라, 정리 좀 해라, 외쳐도 여기저기 책, 놀잇감, 학용품, 레고 등이 널려 있다.

 

이 책은 아이 있는 집이면 으레 마주치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적절하게 제시한다. 아이들을 위한 미니멀리즘은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4인 가정이라고 하면 하루에 각자 물건을 하나씩만 들고 와도 4☓365=1460, 1년에 천오백 개 남짓한 물건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가져오지 않기.

 

그러나 아이들은 호기심도 많고 관심사도 다양하다. 자연히 갖고 싶은 물건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일단 물건이 쌓이면 무조건 엄마 판단으로 버리기보다 '생각 중인 상자'라는 데에 판단을 유보해둔다. 시간이 지나 다시 열어봐도 보관하고 싶은 건 보물상자로 이동하고 아닌 것은 버린다. 버리기 쉬운 물건으로는 작아진 옷, 고장난 장난감, 철지난 프린트물, 상자 등이다. 이게 참 이상보다 쉽지 않은 게 레고상자 같은 것도 아이 입장에서는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되어서 쌓여만 간다. 그런데 이건 어느 정도는 시간이 해결하는듯하다.  

 

아이에게 정리하라고 할 때 막연하게 이야기하기 보다 사용하는 물건, 사용하지 않는 물건으로 나누게 하고 서랍 전체를 꺼내 이 기준에 따라 버리고 수납하게 한다.

 

아이들 짐의 주범은 책과 옷.

 

책과 옷도 1년 이상 읽지 않거나 입지 않는 건 과감히 정리하고 수납할 때 80프로 정도 채워서 꺼내기 쉽고 정리하게 쉽게 한다. 아이 옷이 150사이즈 기점되는 때로 옷 정리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도 공감한다. 이제 성인 사이즈에 가깝게 되어 장농도 다 새로 사야 한다.

 

아이들이 정리를 못한다고 하지만 엄마들이 '추억 스토커'가 되어 버리지 못하는 게 가득이다. 나도 '최초'에 의미를 두고 배냇저고리며 처음 신은 신발을 아이가 11살인 지금도 가지고 있다. 추억은 소중하지만 그것에 매달리다보면 가족들이 현재를 누릴 공간이 부족해진다.

 

아이들 작품 전시 요령도 볼 만하다. 엄마 눈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판단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남기고 싶어하는 작품에 더 가치를 두라는 말이 의미 있다. 새 작품을 집안 한 공간에 일정 기간 전시하다 더 좋은 작품이 나오면 정리한다. 사진을 찍어두고 버리는 게 나은데 애들이 초등인 요즘은 그냥 버리게 된다. 곧 더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 그리고 만들고 그리는 순간 행복하면 된 거니까.

 

식탁을 항상 깨끗하게 비워두라는 조언이 유용하다. 다소 엉성하게 정리된 집이라도 아이들 책상이나 식탁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정돈되어 보인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보는 곳에서 공부하는 편이 성적이 잘 오른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이들은 부모가 곁에 있을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미지의 일에 도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부는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방문을 닫아두고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열린 공간인 식탁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30퍼센트를 배출한 유대인을 ‘지혜로운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교육전문가들은 유대인들이 다방면에 걸쳐 높은 성취를 이룬 비결로 ‘하브루타(havruta)’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교육방식을 꼽습니다. 히브리어로 친구 또는 짝을 의미하는 하브루타는 나이·계급·성별에 관계없이 서로 짝을 이루어 토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유대인들은 식탁을 하브루타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평소 가족과 식사하며 활발히 토론하고, 그들의 안식일인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몇 시간씩 토론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가 식탁에서 공부하면 모르는 게 있을 때 질문하고, 부모가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_ ‘공부 잘하는 아이는 식탁에서 숙제한다!’(92쪽)

 

 

공부방에 아이들 책상 두 개가 나란히 있지만 꼭 아이들이 식탁에서 숙제하게 된다.

밑줄은 아주 이상적인 얘기고 꾸물거리지 못하게 하고 빨리 해결하고 재워야 해서 그렇다. 흰 식탁에 연필 자국이 남아 매직스펀지로 주기적으로 지워줘야 하니 그게 좀 문제다. 그리고 가끔은 밥먹는 데 지우개, 연필이 굴러다닌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다이소 같은 데서 손잡이 달린 수납상자를 사서(아니, 만들어도 된다) '공부 박스'라 이름 짓고 학용품을 아이공부방에서 거실 등으로 자유롭게 옮겨주라고 한다.

 

 

 

 

다이소몰, 시스맥스 마이큐브 68005

정리정돈은 뇌의 전두엽이 관장하는 고도의 인지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전두엽이 아직 덜 발달해 정리 정돈이 익숙하지 않다. 전두엽은 두세 살 무렵부터 발달해 스물 다섯 살까지 성숙하는 것이라고 하니 느긋하게 기다려줘야 한다. 너무 뭐라고 다그치지 말고 함께 정돈하자는 것이다. (헉, 대학 때까지 이 지경을 봐야 하다니)

 

전두엽은 사고력, 기억력, 창의력, 문제해결력 등 논리적인 판단을 관장하고 전두엽이 잘 발달해 있을수록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아이의 전두엽 발달을 위해서라도 분류하고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정리가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같은 정리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에 의한 것이어야 할듯하다.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혼돈한 가운데 자료를 찾아내 과업을 얼마든지 훌륭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빡빡한 일정보다 '오아시스 시간'이라고 해서 맘대로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시간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맘에 들었다.

소설가 이기호님 아들이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고 했던가. 아니다 같이 정리해도 반나절을 못 넘긴다. -_-

 

열한 살 초4병 아들은 자기는 아예 '버릇이 없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4학년 정도 되면 반애들이 다 그렇게 된다나.

 

다행히 아홉 살 딸이 같이 열심히 치워준다. 엄마, 이거 버리는 거지 만날 물어봐주고 물건 찾는 것도 도와준다. 스티커나 자잘한 것들을 버리는 데 힘들어하지만 나는 전에 더했으니 이 정도는 양호하다.

 

아이 마음에 여유를 만들어주는 방법

-아이와 매일 웃는 얼굴로 스킨십 할 것

-"너는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한단다"라고 자주 말해줄 것

-하루에 한번은 아이와 밥을 먹을 것. 식사가 힘들다면 간식을 먹어도 좋다. (중략)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무엇일까요?

정답은 "다 괜찮을 거야"입니다. 198-199쪽

 

정리, 정돈도 좋지만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다 괜찮다, 지켜봐주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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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무나 창피한 하루.

 

친구가 류준열 혜리 사귄다고 계속 카톡.

 

실은 친구도 나만큼 좋아해서 둘이 계속 '행복해야해, 넌 반드시'를 외침.

 

보다 못한 후배가 정신차리라고 일갈.

 

 

아무튼 애들이랑 도서관에 있다가 날벼락 맞음.

 

뭔가 팬으로서 굉장히 기쁜 일인데

 

오랫동안 나를 짝사랑해온 남자애가 갑자기 어디서 어여쁜 연하의 여자애 데려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혼란스러워 저녁으로 카레를 하면서 호가든 마심

 

남편도, 애들도 있으면서 주책이구나. 

 

류배우님

드디어 일도, 사랑도 모두 거머쥐셨군요,

제 몫까지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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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임수진 지음 / 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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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운드포크페스티벌에서 계피를 처음 보았다. 첫인상은 어딘가 원불교 전도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음향을 체크하고 공들여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 반했다. 간만에 여자에게 반하는구나. 대체할 수 없는 음색이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목소리대로, 말하는 음성은 음성대로 다 좋았다. 낭독회에도 어울릴 목소리.

 

인터뷰와 강연 등을 찾아보고 음악도 듣다가 아무 기대 없이 어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실망할 각오를 하고. 그런데 정말 최근 읽은 에세이 중에서 제일 교훈적이다. 나도 계피같이 어느 정도 교훈마니아라 만화나 웹툰을 보면서도 억지로 교훈을 찾곤 하는데 ㅋ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라고나 할까. 의연하고 다감하다. 심심하지만, 지루하지는 않게 잘 살아가는 듯하다. 유년기부터 범상치 않았다.

 

학교에서 한마디도 안했던'고독하고 조숙한 아홉 살' 꼬마는 유년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린 시절을 낙원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박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막막함을 느꼈다. 인생이 모래바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분. 물기 하나 없는 거대한 모래 산을 마주하는 기분. p.89

 

나의 유년과 맞닿아 있다.

 

전학간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아 외국에서 온 아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전학간 학교의 담임 선생님 이름은 정말로 홍길동.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노란 은행나무잎이 떨어져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시간은 정말 가지 않았다. 엄마가 일하러 가시면 동생이랑 베지밀 공병에 베지밀과 똑같은 색이 되도록 물감을 섞어서 골목길에 병을 내어두고 누가 가져가나 바라보곤 했다.

 

개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그렇게 정이 많게 태어났을까? 허구한 날 가슴 아프게 p.68

 

어릴 때 계피는 개를 길렀지만 잘 보살펴주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고양이, 물고기 등을 사정이 생기면 공들여 기른다. 작정하고 기른 게 아니라 우연한 기회가 생기면 성심을 다해 돌본다. 이런 점도 너무나 마음에 든다. 동물병원에 알아보고 온갖 수고는 하지만 내가 얘들을 사랑한다고 막 내세우지는 않는다. 난 어릴 때 병아리나 새를 키워본 적이 있지만 언제나 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로 길러본 적이 없다. 어릴 때 개와 얽힌 기억이 있어 무서워하는 편이다. 정이 많은 짐승들이 다가와도 한발짝 물러나는 편이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개나 고양이의 주인에 대한 정은 무척 깊다고 한다. 얘기를 다 들어보면 정말 뭉클하다.

 

전반부에 유년, 자신의 엄마, 아빠 이야기가 살짝 나오고 후반부에 남편, 시어머니 이야기가 있다. 뮤지션 부부라서 언제나 감각 있고 뭔가 이효리 부부 같지 않을까 같았는데 현실적이라 좋았다.

 

시어머니가 때가 낀 락앤락통이나 원치 않는 먹거리를 부쳐와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

 

"우리 엄마가 예전에는 그릇을 이렇게 쓰지 않았거든요...."

나는 그가 하지 않은 말까지 이해했다. 얼른 받아서 말했다, 그럼요, 우리 엄마도 그러는 걸 뭐, 나이가 드니까 잘 안 보이잖아, 힘도 들고, 똑같은 살림을 하루 세 번 삼십 년 해봐요. 어디 그릇 틈새까지 박박 닦고 싶겠어, 나라도 싫겠다.

나는 아픈 사람이 시장에 가서 버섯을 사고, 식초를 넣어 절이려다가 식초가 없어서 냉장고에 있던 레몬즙을 뿌리는 광경을 상상한다. pp.200-201

 

물론 부부 사이라 가끔은 묵은 감정의 감자 뭉치 같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남편의 쓸쓸한 유년기라든가 아픈 시어머님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 사후에 남편이 불렀던 붉은 노을의 의미 이런 부분은 작가의 성정을 짐작케 한다. 상대를 한없이 가여워하고 묵묵히 곁을 내어준다. 별 특징없는 사건이나 평범한 인물도 작가의 시선을 거쳐 일본영화의 한 장면같이 살아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이게 아줌마성에서 제일 슬픈 건데.”

“뭔데?”

“남편한테선 이제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걸 이해하게 되어버린다는 거야. 미혼인 경우에는 그래도 희망이란 게 있는데 남편이 있다면 진짜 디 엔드잖아. 다른 남자를 찾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좀 큰, 차원이 다른 액션이란 말이지.”

“아.....”

“그런 거.”

“......결혼한 상태에서만 오는 외로움이 있긴 한 거 같다. ”

 

“그런데 나쁘지 않아. 포기를 하게 되니까. 나쁘게 말하면 포기고 좋게 말하면 인정인데, 결혼 안 하면 영원히 희망을 가지거든. 안 당해봐서. 내 마지막 사람도 내 것이 아니라는 배신감, 함 당해봐야 알지. 그니까 희망이 있는 상태에서는 백 퍼센트는 없다는 걸 절대 인정 안 하려 하거든. ㅈ도 백퍼센트가 어딨냐. 세상에.”

“으하하하하하.”

“이게 ㅈ나 인생의 레슨이거든. 백 퍼센트는 백 퍼 없거든. 백 퍼센트를 요구받는 사람은 또 얼마나 갑갑하겠느냐고, 지는 한다고 하는데. 점점 ‘행복해지려면 이대로를 고마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를, 이 지하철 ‘사랑의 편지’ 같은 데 나올 것 같은 말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

pp.233-235

 

 

 

'아줌마성'에 대해 심히 공감한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더 이상 진정으로 설레지 않고 생기를 잃어가는 상태가 아줌마성의 본질이다. 지하철 '사랑의 편지'나 잡지 '좋은 생각'을 보고 진정으로 감동할 때 난 이제 정말 아줌마가 되었다고 느낀다.

 

아들이 엄마 개미 허리 같아.

아이구, 고맙네 아들.

개미는 머리, 가슴, 배로 이루어져 있지, 우하하.

하고 도망갈 때 난 다 아는 농담이지만(마음의 소리에서 봤다, 요 녀석아) 엄청 분한 척하면서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진정한 엄마가 된 기분. 막 의기양양하구나. ㅋ

 

 

의지 없는 인생의 아름다움.

어영부영 가는 인생의 사랑스러움.

의지로는 사랑할 수 없지. 의지로는 사랑을 지속할 수도 없다. 적어도 나는 할 수 없다.

p. 179

 

 

어영부영... 흐지부지...

이런 거 정말 싫었는데 요즘의 생활이 딱 그렇다.

뭔가 막 주장하고 나면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30대에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어떤 사상이라든가 주장보다는 그 속의 사람이나 상황을 보게 된다. 그러니 점점 더 할말이 없어졌다. 애들에게도 얘야, 넌 이렇게 살아라, 하는 게 점점 적어진다.

 

나는 오히려 무언가에 대해 강한 의견을 토로하고 나면 좀 염려가 된다.

다른 이가 그러는 걸 봐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그 의견이 살다보면 변할 수도 있을 텐데.

살다보면 정도가 아니고, 새로운 정보와 경험이 있을 경우 당장 내일이라도 변할 수 있는데.

무엇을 파고 파고 들어가면 입장이 바뀌는 일은 정말 흔하지 않던가.

입장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이해해버리는 마음이 나지 않던가. 슬쩍 풀어져버리지 않던가.

p.177

 

다 그럴 수도 있지, 를 달고 산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정말 사람 수만큼의 주장이 있고 같은 편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해도 완전히 같은 생각은 아니라는 거다.

 

다른 사람 충고 듣지 마. 다 자기 맥락에서의 자기 말이야. 충고 안 들어서 망할 거면 망해버려.

네 방식대로 망해버려. 망해서 빨리 알아차리게.다 늦어서 망하면 어떻게 다시 돌아오려고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말고 확, 알겠지 확, 피어버리자. p.250

 

속시원하다. 충고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 입장을 확인받고 싶은 것일 뿐이다. 빨리 시도하고 망하든 흥하든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게 좋다. 그리고 지나치게 걱정 말고.

 

 

*

 

에세이에서는 '놈팡이' 같은 일상을 주로 썼지만 실은 바지런하게 일하고 살림하는 듯하다.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답게 의지나 생각이 아닌 자동적으로 몸에 밴 부지런함이 있겠지.

 

나보다 계피님은 무려 몇 살이나 어리지만 대학 때 속깊은 후배를 보고 많이 배웠듯이 삶에 대한 태도를 한 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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