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SE (dts, 2disc) - [할인행사]
팀 버튼 감독, 마이클 키튼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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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를 보고 감상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길래, [배트맨] 얘기를 먼저 하고 넘어가야겠다. 글쎄, 나는 배트맨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다수의 팀 버튼 지지자들이 그러하듯 오리지날 [배트맨]은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다.

[배트맨]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상당히 많지만, 그중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보다,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슈퍼영웅象과는 달리, 배트맨은 리얼_인간적인_슈퍼_영웅,이라는 점을 고를 것이다. 말하자면 이건 볼트파이브와 건담 사이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건담으로 시작되는 리얼로봇계에 빠져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계에서도, 드디어* 나타난 거다. 인간적인 슈퍼영웅, 그러니까 변신을 하기 위해서는 옷장의 문을 열어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그나마 얼마 날지도 못하지만) 와이어가 필요하며, 격투를 잘 하기 위해 매일밤 푸샵을 하는 그런 슈퍼영웅이 등장한 거다.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여기에 공포, 어두움, 고뇌와 같은 마이너스(-)의 이미지가 배트맨에게 겹쳐진다. 말하자면 역대 최고로 암울한 슈퍼영웅이 탄생한 거다. 이러한 이미지는 일단 배트맨 스스로 의도한([배트맨 비긴즈]에서 밝혀지는) 외양에서뿐만이 아니라 배트맨 자신의 박쥐에 대한 공포,라는 일종의 트라우마의 무의식적 표출이기도 하다. 이런 삐딱한 주인공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에 필름 느와르를 떠올리게 했던 영상미, 그리고 배트맨만큼이나 강렬했던, (역시나) 역대최고 이율배반적인 악당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조커라는 캐릭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배트맨]의 감상 포인트다. 이렇게 종합해보면 오리지날 [배트맨]은 정말 삐딱한 사람이 만든 정말 삐딱한 영화인 게 사실인데, 바로 그게 커다란 미덕으로 작용해 대박이 났던 거다. 후속작들이 하나같이 소포모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망해버린 건 상당히 아쉬운데, 그건 그만큼 팀 버튼의 포스가 강했다는 반증이랄까. 뭐 마무리하자면, 배트맨, 당신은 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05-12-3, 필유)

 

*코믹스가 원작이지만, 어쨌든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 배트맨은 영화 [배트맨]으로 알려져 있는 게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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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2disc) - 할인행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찬 베일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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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팀 버튼이 빠지고 만들어진 배트맨의 후속작들은 하나같이 배트맨의 이미지를 깎아먹기만 했다. 그런 하향곡선 속에서 배트맨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후속작(시퀄)들의 실패가 있었으니 이 프리퀄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만은, 이건 거의 완전 결정타다. 이럴 거면 차라리 시퀄을 만들지 뭐하러 프리퀄을 만들어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자처했냔 말이다. 일단 배트맨 아니 브루스 웨인의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가 밝혀지는 부분까지는 설득력이 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 장면조차도, 겨우 그 따위로밖에 못 만드냐 하는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서도. 어쨌든,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인술(닌지슈)에 입문하여 수련을 하고, 큰 사건에 의해 탈퇴(?)를 하게 되는 시점까지의 진행은 완전 개판이다. 개연성도 설득력도 없을 뿐아니라, 이건 웨인 자체가 모순 투성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하고-_-)/

이어서 마침내 새롭게 탄생한 배트맨은 점점 큰 사건에 휘말려 결국 고담시 전체의 존폐를 놓고 싸우게 된다(고담시는 정말 무서운 도시다. 시리즈 한 편 나올 때마다 대위기에 처하니까). 실로 기발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신무기 테크놀로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뭐 이런 걸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을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런 상상력은 칭찬을 할 모습이다.

하지만 배트맨의 액션신에 대해서는 또다시 불만이 생긴다. 크리스찬 베일의 무술연기 문제라기보다, 그 이전에 카메라의 문제다(참고로 [이퀼리브리엄]에서 크리스찬 베일의 무술연기는 완전 감동이었다). 카메라는 액션신의 클리셰만 남용할 뿐 성의가 없어, 액션의 핵을 짚어내지 못한다고나 할까, 임팩트가 없다. 그 흔한 슬로모션조차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뭐 인술의 특징을 살리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만, 글쎄 과연 그럴까. 뭣보다 압권인 장면은 후반부의 프로토타입-배트카의 시내질주 장면이다. 배트맨이 아무리 제정신이 박힌 슈퍼영웅이 아니라지만, 이건 뭐, 시민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 없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소소하다면 소소한 단점들이지만, 이렇게 몇 줄씩 쌓인 걸 보면, 결국 이 영화는 망했다고 봐야 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참 크더라. 이래서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건데.(05-12-3, 필유)

 

*보너스(인상깊었던 대사): 간만에 조우한 레이첼은 웨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정말 예전의 네가 맞는 거야? 이건 네 모습이 아니야. 하지만 네 행동이 널 만드는 거야." 배트맨의 페르소나를 감추려고 노력하는 웨인에게, 이 말이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을지. 또 한번 슈퍼영웅들만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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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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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가 너무 예쁜 책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제목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라니. 일단 책을 열자 실제로 시작부터 쉽사리 문장에 빨려들어갔다.

 호흡 조절뿐만 아니라 서술자(주인공)의 심리가 투영된 풍경 묘사도 상당히 능숙한 수준이다. 신인작가(게다가 이제 막 20대 초반인)의 겨우 두 번째 소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젊은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소소한 비유를 끌어다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미적 관점을 떠나서 부러운 동시에 존경스럽기도 한 모습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신선한 비유로 넘쳐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부분.

 그런데 이 남자아이는 어딘가 이상하다. 어디가 이상한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이 애를 바라보는 동안 마치 모래가 빠지지 않아서 서걱거리는 된장국 속의 조개를 씹었을 때와 같은 섬뜩한 이질감이 일순 꿰뚫고 지나간다.(p.9)

 이런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작가는 이 시대 제도권 학생들의 생활 속에서 '따돌림'이라든가 '그룹' 짓기, 오타쿠 현상 같은 것들을 끄집어낸다. 서술자 자신이 따돌림당하는, 혹은 스스로 따돌림을 자처하는 입장이다보니 '그룹'에 속해있는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에 대해 다분히 적개적인 시각의 문제의식이 표출된다. 상당히 뼈있는, 풍자섞인 위트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역시 무수한 성장소설들과 궤를 같이 하여,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AT 필드(cf. [에반게리온])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주인공 하츠는, 지름길로 직행한 키누요를, 뒤늦게 먼 길을 돌아서나마 따라가는 거다. 타인과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이 시대 10대들의 진지한(적어도 당사자들에게는) 자기고백과 자기성찰을 담고 있는 기록으로도 읽힌다.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럴테고.(05-12-2, 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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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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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마치 오시마 나기사의 [밤과 안개]와 같이, 한 장소에서 하룻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열정]의 대화는 사실상 주인공 헨릭 한 사람의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독백이라는 서사적 장치를 통해 천천히, 그러나 긴장감 있게 41년 전의 한 사건이 전개되어 나간다.

플롯이 진행함에 따라 극중 화자 헨릭의 41년에 걸친 삶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간다. 산도르 마라이는 ([결혼의 변화] 리뷰에서 둘 다 언급했던 개념인데) 크리스티나와 콘라드를 '다른' 사람 즉 예술가로, 그리고 예술가가 아닌 사람 즉 헨릭에게는 '시민성'을 오버랩시켜 시민으로, 이분법적인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용어의 선택을 어떻게 하든 간에(예를 들어 음악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 vs 시민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든가 잠정적 예술가 vs 보통 사람,이라든가) 이 구도는 마치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만큼이나 명확하며, 자연스럽게 이 구도 사이의 상호보완 혹은 결합이 문제의 대상이 된다. 유감스럽게도 헨릭은 41년이 걸린 후에서야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예술가는 결코 완전한 결합(결혼?)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절망한다.

세계대전의 와중조차도 이미 초연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75세의 노인이 된 헨릭은, 그러나 여전히 이 이분법적 구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또한 대답을 갈구한다. 아마도 이것만이 헨릭을 살아있게 해주는 마지막 끈일 것이다. 소설의 말미, 41년 만에 콘라드와 재회한 헨릭은 마침내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질문은 둘 다 '예술가'에 속한 크리스티나와 콘라드가 어째서 결합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즉 '비겁함'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기에 콘라드는 대답하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은 바로 그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사람 사이의 진정한 결합에 필요한 '정열'에 관한 질문이다. 41년 동안 기다려온 헨릭의 이 질문에 콘라드는 짧은 rhetorical question으로 대답하고, 남겨진 헨릭에게 니니는 입맞춤으로 대답한다.

작가를 포함해서 누구도 삶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자명한 진리 같지만, 이것을 깨닫기까지 41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시민성과 예술가 그리고 전쟁을 제거하고 나면 [열정]에 남는 것은 바로 이것, 삶에 대한 통찰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열정]은, 분명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이다.(2005년 10월, 필유)



덧: 한국어판이 기초로 하는 독일어판 제목은 Die Glut(The Glow;작열灼熱)이고, 역시 독일어판을 기초로 하는 영어판 제목은 Embers(여신餘燼)라고 한다. 헝가리어 원제목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니 어느 게 맞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판 제목이 그래도 개중에 좀 그럴 듯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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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선 1집 - Reflet
나윤선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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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던 나윤선의 데뷔앨범 [Reflet]을 드디어 사게 되었다. 돈이 생겨서가 아니라 1년을 mp3로 버티다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9월말에 신보도 나왔는데 그건 아직 못 샀고, 일단 처음부터 한 장씩 CD로 모아볼까 한다.

종종 한국의 아티스트가 오히려 해외에서 더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국가별로 문화적 배경이 다르므로, 해외에서 인정받는 음악이 반드시 수준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윤선이 프랑스 재즈 스쿨 CIM을 수료했으며 유럽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녀의 명성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국내에 이런 감성을 가진 보컬리스트가 또 어디 있는가.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스캣을 장기로 가진 보컬리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작사와 곡 해석에 있어서도 그녀의 음악적 역량은 단연 독보적이다. 특히 Jimmy Webb(96년 Pat Metheny의 연주로 더 유명하다)의 곡 The Moon's a Harsh Mistress(#1)는 브러쉬 드러밍 위로 펼쳐지는 그녀의 스캣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곡이고, Hard To Say Goodbye(#8)는 대중적인 멜로디로 다가와 감동을 안겨주는 곡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한국어 가사의 Ballad for Friends(#4)와 원래는 패티김의 곡 초우(#12) 등도 친숙한 크로스오버 재즈(발라드)곡이다. 반면 Horace Silver의 곡 Jody Grind(#3)나 나윤선의 자작곡 Blueside(#7) 같은 빠른 템포의 곡들은 메인스트림 재즈에 대한 나윤선의 해석력과 기교를 볼 수 있는 곡이다.

데뷔 음반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음반에서 나윤선은 안정적이고 서두르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프랑스에서의 충분한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윤선 쿼텟의 백킹과 다른 여러 프랑스 뮤지션들의 참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익숙할 정도로 편안한 기분, 청자에게 이것을 선사하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을까.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아, 빨리 신보를 사야겠다.(2005-10-19, 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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