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열정]은 마치 오시마 나기사의 [밤과 안개]와 같이, 한 장소에서 하룻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열정]의 대화는 사실상 주인공 헨릭 한 사람의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독백이라는 서사적 장치를 통해 천천히, 그러나 긴장감 있게 41년 전의 한 사건이 전개되어 나간다.

플롯이 진행함에 따라 극중 화자 헨릭의 41년에 걸친 삶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간다. 산도르 마라이는 ([결혼의 변화] 리뷰에서 둘 다 언급했던 개념인데) 크리스티나와 콘라드를 '다른' 사람 즉 예술가로, 그리고 예술가가 아닌 사람 즉 헨릭에게는 '시민성'을 오버랩시켜 시민으로, 이분법적인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용어의 선택을 어떻게 하든 간에(예를 들어 음악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 vs 시민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든가 잠정적 예술가 vs 보통 사람,이라든가) 이 구도는 마치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만큼이나 명확하며, 자연스럽게 이 구도 사이의 상호보완 혹은 결합이 문제의 대상이 된다. 유감스럽게도 헨릭은 41년이 걸린 후에서야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예술가는 결코 완전한 결합(결혼?)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절망한다.

세계대전의 와중조차도 이미 초연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75세의 노인이 된 헨릭은, 그러나 여전히 이 이분법적 구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또한 대답을 갈구한다. 아마도 이것만이 헨릭을 살아있게 해주는 마지막 끈일 것이다. 소설의 말미, 41년 만에 콘라드와 재회한 헨릭은 마침내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질문은 둘 다 '예술가'에 속한 크리스티나와 콘라드가 어째서 결합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즉 '비겁함'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기에 콘라드는 대답하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은 바로 그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사람 사이의 진정한 결합에 필요한 '정열'에 관한 질문이다. 41년 동안 기다려온 헨릭의 이 질문에 콘라드는 짧은 rhetorical question으로 대답하고, 남겨진 헨릭에게 니니는 입맞춤으로 대답한다.

작가를 포함해서 누구도 삶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자명한 진리 같지만, 이것을 깨닫기까지 41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시민성과 예술가 그리고 전쟁을 제거하고 나면 [열정]에 남는 것은 바로 이것, 삶에 대한 통찰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열정]은, 분명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이다.(2005년 10월, 필유)



덧: 한국어판이 기초로 하는 독일어판 제목은 Die Glut(The Glow;작열灼熱)이고, 역시 독일어판을 기초로 하는 영어판 제목은 Embers(여신餘燼)라고 한다. 헝가리어 원제목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니 어느 게 맞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판 제목이 그래도 개중에 좀 그럴 듯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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